186.

장민은 막 면도를 끝내고 푸르스름한 빛이 비치긴 했지만 말끔해진 턱선을 손으로 쓱 문질렀다. 매끄러웠다. 늘 있던 수염이 없어져서 제 얼굴임에도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제야 링루이가 알던 얼굴로 돌아온 것 같아서 그의 반응이 살짝 기대되었다.

‘이참에 머리카락도 좀 자를까?’

장민은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면서 어깨 참에 닿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보았다. 그건 천천히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면도까지 하느라 시간을 너무 지체한 것 같아 장민은 속도를 내어 머리카락을 툭툭 털었다.

 

장민이 거실로 나왔을 때 링루이가 보이지 않았다. 설거지를 다 끝냈는지 식탁과 싱크대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벌써 침실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사실 장민이 씻고 있는 동안 할 일을 마친 링루이는 호기심에 먼저 침실로 들어갔다. 거실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침실에는 싱글침대에 옷장, 책상, 의자가 전부였다. 역시나 단출한 살림이었다. 한쪽 구석에 요가 매트가 놓여 있었고 그 옆 앉은뱅이 탁자에 향초가 올려져 있었다. 아마도 명상할 때 사용하는 물품인 것 같았다. 옷장을 열어보았더니 바람이 통할 정도로 듬성듬성 옷이 걸려 있었다. 예전의 장민의 드레스룸을 생각한다면 상상하기 힘든 변화였다. 책상 위에는 책이 빽빽이 꽂힌 책꽂이가 있었는데 명상, 공예, 여행, 어학, 에세이,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보였다.

링루이는 시원한 밤공기가 들어오도록 창을 열고 여행책을 한 권 꺼내어 침대에 드러누웠다. 침대는 싱글치고는 한 사람이 자기에는 넉넉한 사이즈였다. 하지만 둘이 자려면 꼭 붙어야만 떨어지지 않고 잘 수 있을 크기였다. 장민이 불편하지 않도록 꼭 안고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건성건성 넘기고 있는데 침실 문이 열렸다.

“뭐해?”

“왔어? 엇!”

링루이는 장민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막 샤워를 끝내서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감싸고 있는 장민의 얼굴이 말갛게 빛났다. 그러나 얼굴이 빛나 보이는 건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의 수염이 사라진 것이다. 링루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장민 앞에 다가섰다.

“너, 면도했구나!”

“어.”

링루이는 장민의 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고는 다시 양손을 들어 얼굴 여기저기를 쓰다듬었다. 장민은 쑥스러워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의 손이 양 볼을 감싸고 있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왜 밀었어?”

“뭐... 그냥.”

“나 때문에?”

“아니.”

이번에도 마음과는 다른 말을 했다. 이상하게도 오늘 여러 번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드는 장민이었다. 링루이는 장민의 표정을 살피더니 개구지게 웃으며 말했다.

“히히히. 이제야 내가 아는 장민 같다. 지금 보니 너 별로 안 늙었구나.”

“뭐?”

“하하하하. 솔직히 말하면 수염 때문에 너 좀 늙어 보였어.”

“너!”

장민은 링루이에게서 늙어 보였다는 말을 듣고 상처받았다. 자신이 본 링루이는 예전 모습 그대로인데 자기는 늙어 보였다는 말인가? 이건 연인에게 듣기에는 왠지 치명적인 말이었다.

“너도 늙었거든. 우이씨! 다시 수염 길러야지. 기껏 면도했더니.”

“아아~! 그건 안되지. 내가 이 얼굴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절대 수염 기르지 마.”

링루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장민이 뭐라 대꾸할 틈도 없이 입술을 겹쳐왔다. 쪽쪽 거리며 입술을 맛보던 링루이가 갑자기 입술을 뗐다. 장민의 입에서 상쾌한 박하 향이 났기 때문이다.

“앗!”

“왜?”

“나 양치 안 했어. 지금 하고 올게.”

“뭐?”

“민아. 잠깐만 기다려.”

‘뭐야. 아니... 양치 안 해도 되는데.’

링루이가 허둥지둥 침실 밖으로 나가버려 장민은 어이가 없었다.

‘참, 칫솔 꺼내 줘야지.’

장민은 문득 꺼내 놓은 칫솔이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욕실로 쫓아갔다. 욕실 문을 열자 링루이는 벌써 칫솔을 입에 물고 열심히 닦고 있었다.

“어? 그건...”

“아... 이거 네 꺼...”

“으으... 새것 쓰면 되는데. 거기...”

장민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욕실 거울 옆 벽장을 가리켰다. 링루이는 치약 거품이 가득한 입을 벌려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뭐 어때? 키스도 하는 사이에...”

“그래도...”

장민은 고개를 흔들며 벽장에서 새 칫솔을 꺼내 놓았다. 링루이는 그새 양치질을 다 하고 가글을 하면서 한마디 했다.

“아니, 장민이 언제 이렇게 깔끔쟁이가 됐어?”

“원래도 깔끔했어.”

“네가?”

“그래.”

“흠... 그래? 얼마나 깔끔한지 함 볼까?”

링루이는 장민의 엉덩이를 붙잡아 자신에게로 당기며 얼굴을 디밀었다. 하지만 장민은 엉덩이에 놓인 나쁜 손을 찰싹 때리고는 재빨리 욕실을 빠져나갔다.

“어허. 어딜. 입이나 잘 헹구고 나와.”

“하하하. 다 했어. 같이 가.”

링루이는 입을 빠르게 몇 번 더 헹군 뒤에 장민을 따라 침실로 들어왔다. 장민이 취침을 위해 침실 주 전등을 끄고 간접 등을 막 켰을 때 링루이가 다가와 와락 안았다. 그리고는 얼굴을 감싸 쥐고 입술을 덮쳤다. 좀 전까지 장난치던 것과는 사뭇 다른 깊고 진한 키스였다. 바로 입술을 비집고 들어온 그의 혀가 사정없이 입안을 헤집었다.

“으읍...”

금방 양치를 끝낸 후라서 그런지 링루이의 키스에서 박하 향이 났다. 시원하고 달콤했다. 이번엔 장민도 능동적으로 움직였다. 링루이의 허리를 감아 강하게 끌어안았다. 셔츠를 움켜쥐었다가 이내 손을 넣어 맨살을 어루만졌다. 너른 등과 어깨가 손바닥 가득 만져졌다.

“아아...”

 

두 사람은 입술을 맞댄 채 침대로 걸어갔다. 한참이나 서로를 탐하던 입술이 그제야 떨어졌다. 링루이가 장민을 침대에 바로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 앉았다. 아래에 누워 자신을 올려다보는 장민이 너무 섹시해 보여 아래가 뻐근해져 왔다. 링루이는 셔츠를 머리 위로 벗어 버리고 장민의 셔츠도 벗겼다. 마른 듯 보여도 가슴 근육은 여전히 잘 자리 잡고 있었다. 링루이가 부드러운 손길로 가슴을 쓰다듬자 장민이 링루이의 팔을 당겨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링루이. 사랑해.”

링루이는 귀를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전율을 느끼며 몸을 떨었다. 마주 닿은 가슴으로 두 사람의 심장박동이 하나로 합쳐져 쿵쿵대는 게 느껴졌다. 그는 장민의 얼굴에 촘촘하게 키스를 퍼부으며 화답했다.

“나도. 사랑해.”

이마부터 시작된 키스는 콧등과 코끝을 지나 윗입술에 내려 앉았다. 링루이는 입술을 가볍게 빨았다 놓았다. 그리고 다시 아랫입술을 지분거리더니 입안 가득 베어 물고 빨아당겼다.

“아흣!”

혀를 굴리며 자신을 사로잡는 키스에 장민은 또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아직 키스만 했을 뿐인데 벌써 몸이 반응하는 터라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까도 자기가 먼저 갔는데 이번에도 그럴 수는 없었다. 장민은 몸을 돌려 링루이 위로 올라와 그의 가슴을 밀며 몸을 반쯤 일으켰다.

“아... 왜?”

“하아... 이번엔 내가 먼저... 내가 할래.”

장민은 판판하고 미끈한 링루이의 가슴과 배를 어루만지다가 허리를 쓸었다. 링루이의 입에서 듣기 좋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앗... 아...”

장민은 고개를 숙여 정성껏 가슴에 키스하기 시작했다. 링루이가 조금씩 몸을 뒤척였다.

“아흑! 민... 민아.”

링루이는 갑작스러운 강한 자극에 신음을 뱉으며 장민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장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춥춥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감겨든 상태에서 장민이 움직이자 그것 또한 참을 수 없이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다. 링루이는 어느새 장민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의 머리를 자기 쪽으로 더 가깝게 당기고 있었다.

“하아.. 읏... 아앗!!”

사랑하는 이가 절정을 느끼며 몸의 긴장을 놓고 풀어지는 그 순간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 줄 몰랐다. 장민은 가슴 가득 행복감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주 바라보는 링루이의 눈빛이 촉촉했다.

“링루이... 고마워.”

“뭐가?”

“이렇게 나타나 줘서... 그리고... 미안해.”

장민의 눈빛도 물기를 머금었다. 그걸 본 링루이가 장민을 가슴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바보같이... 이리 와.”

장민은 링루이의 품에 포옥 안겼다. 따뜻했다. 링루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히 말했다.

“이제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마. 앞으로 더는 미안할 짓 안 하면 돼.”

“으음. 그럴게.”

장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링루이가 재차 물었다.

“약속한 거야?”

“응.”

장민이 고개를 들어 확신에 찬 어조로 다짐했다.

“절대로 널 떠나지 않을게. 죽더라도 네 옆에 있을게.”

“무슨. 죽긴 왜 죽어?”

장민의 뜬금없는 말에 링루이가 어이없어하자 장민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히히.”

“아! 아니다. 너 죽을 수도 있겠다.”

링루이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을 바꾸는 바람에 장민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응?”

“내가 지금부터 널 가만 안 둘 거거든. 너, 너무 좋아서 죽을 수도 있겠다.”

“뭐어?”

장민은 링루이의 농담에 실소가 나왔지만 자기가 먼저 시작한 거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이어진 링루이의 키스에 더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다시 하나가 되어 서로를 갈구했다. 링루이는 자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장민을 구석구석 애무하기 시작했다. 마침 열린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조금은 서늘하게 느껴지는 바람이었지만 침대 위 두 사람의 열기에 힘을 쓰지 못하고 흩어졌다.

“하아... ”

“아흑... ”

“민아. 네 안에 들어가고 싶어.”

“으응... 좋아...”

링루이는 장민과 한 몸이 되어 온통 그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그가 자신을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5년 동안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그곳은 다시 처녀림이나 다름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괜찮아. 계속해.”

링루이가 망설이는 것을 느낀 장민이 괜찮다는 듯 허리를 감아왔다.

“아아.. 하지만...”

링루이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하윽... 으읏.”

“헉... 어윽.”

신음이 뒤엉킨 가운데 간간이 서로의 입술을 찾아 키스를 나누었다. 오로지 이 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온 감각이 한 곳을 향해 치달았다. 둘은 동시에 격정의 순간을 맞았다. 삽입이 없어도 함께 맞는 절정이 너무 짜릿해서 가슴속에 파도가 출렁이듯 충만감이 차올랐다.

“민아. 하... 너무 좋았어. 사랑해.”

“나도. 사랑해. 정말 좋았어.”

“우리 씻고 한 번 더 하자.”

링루이가 눈을 감고 장민의 귓바퀴를 살짝 지분거리며 속삭였다. 장민도 무거운 눈꺼풀을 느끼며 대답했다.

“응. 잠시만 이대로 있다가...”

“그래. 그러자.”

두 사람은 새우처럼 옆으로 돌아누운 자세로 몸을 꼭 붙이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벌써 자정이 넘었고 둘 다 무척 피곤했다. 씻고 침대도 정리해야 했지만 꼼짝도 하기 싫었다. 그렇게 링루이와 장민은 그 상태 그대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장민은 온종일 봉사활동을 했고 링루이는 하루에 국경을 넘나드는 장거리 운전을 두 번이나 했다. 감정 소모도 많은 하루였기 때문에 만족스런 섹스 후에 잠에 빠져드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시원한 밤바람이 기웃대듯 살랑거리며 열린 창문 틈으로 드나들었다. 바람이 드나드는 것도 모른 채 둘은 단잠에 빠졌다.



파트5_8화는 앞부분에만 꾸금 조금 나오는데 성인 발행해서 뒤늦게 9화 클린 버전 만들면서 같이 붙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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