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수위 있습니다.



[국민] Ready for the floor_w. 제철망개




실내 스튜디오에서 화보 촬영이 잡혔다. 아침만 되면 붓는 얼굴을 가진 덕에 매니저가 오기 전까지 아이스팩으로 온 얼굴을 짓누르고 있었다. 뭘 좀 먹겠냐는 매니저의 걱정스런 물음에도 고개만 저었다. 촬영이 끝나면 밥을 먹겠다고 억지로 웃어 보이긴 했다. 새 싱글의 컨셉은 팬들의 요청을 수용하여 퇴폐미가 더해진 노출 없는 섹시함으로 정해졌다. 남준형이 만들어 준 노래와도 어울리는 컨셉이었고 다행히 촬영도 팀 활동을 할 때 함께 작업해 본 적 있는 감독이었다.


“지민씨, 노래 좀 틀까요?”

“네, 음… 좀 나른한 분위기 곡으로요.”

“요새 이 곡, 많이 듣던데. 차트 10위 안에 들었네.”


내 노래는 극비를 이유로 촬영장에서도 틀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곡을 틀어달라고 하니 내 귀에 들려오는 노래는 또 이안이었다. 내 표정이 어두웠는지 별로냐며 노래를 바꾸려는 조연출을 막았다. 괜찮다고. 나도 요즘 자주 듣는다고.




녹화 했던 심야 예능의 방송시간을 매니저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갈 뻔 했다. 이미 내 분량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내 모습을 모니터 하는 것보다 이안을, 정국이를 보는 게 더 중요했다. 정국이는 여전히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운지 카메라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고 준비된 대사도 매끄럽게 말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여리해 보이던 눈빛이 바뀌고 부드러운 노래를 부름에도 호소력은 짙었다. 옛날, 길에서 버스킹을 하던 정국이는 남아있지 않았다. TV에는 눈과 귀를 빠짐없이 매료시키는 싱어송라이터 이안이 있었다.

전화를 하기에는 무례한 시간이었지만 통화기록을 뒤졌다.


「…지민형?」

“혹시 깨웠으면 미안해.”

「아니, 작업하고 있었어요.」


뭔가를 기대하고 전화를 한 것은 아니다. 네가 그렇게 힘들어 했던,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채 살아야 하는 삶에 결국 너도 들어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 그 삶은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그저 격려 몇 마디 하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본방 봤어. 노래 좋다.”

「나도 봤어요. 형 무대. 오랜만에.」

“음원 순위도 잘 나오고….”

「형도 싱글 준비 한다면서요.」

“아, 어….”






「형, 보고 싶어요.」

“….”

「나 안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어 해도 되는 거였냐.”



말이 못되게 나갔다. 억울했으니까. 내가 그렇게 아니라고 했을 때는 믿지도 않더니. 전화기 너머로 정적이 이어지는 게 못 견디도록 어색했다. 우리는 그때보다 성숙해졌겠지만 우리가 품었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먼저 보고 싶었다고 하면 지는 기분. 나는 어느새 정국이를 두고 감정의 득실을 따지고 있었다. 나는 죽도록 아팠고, 미치도록 보고 싶었고, 속을 까뒤집어 보일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먼저 거절한 것은 정국이었다. 정국이는 나에게 변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억울한 기분인지 전정국, 네가 알긴 하냐고.






마지막 녹음을 하는데 남준형이 찾아왔다. 내가 먹을 간식과 스탭들이 먹을 것 까지 손에 잔뜩 들고 나타나서는 내가 만든 곡, 지민이가 보컬로 망치는 건 아닌지 걱정 돼서 찾아왔다며 녹음이 끝날 때까지 시스템 옆에 앉아 노래를 들었다. 몇 십번을 부르고 더 이상 부를 기운이 없어서 손사래를 치는 나에게 형은 ‘박지민 최고다’ 하며 박수를 쳐줬다. 형은 곧 활동을 시작할 나를 위해 칼로리가 적은 것으로만 간식을 싸왔다. 손에 뭐만 닿으면 부서뜨리는 사람이, 이런 건 또 섬세하다니까.

매니저는 이미 집으로 보냈다며 남준형은 기어이 차에 나를 태웠다.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형이 운전하는 차가 얼마나 무서운지 형만 모를 거라고 형을 놀렸다.


“다시 활동하는 거, 잘 생각했어.”

“형은 안 해요? 랩라콘, 겁나 보고 싶은데.”

“푸흐…, 윤기형한테 물어봐.”

“윤기형 동면 하나 봐요. 전화하면 꼭 자다 깼대요.”

“근데, 지민아.”

“석진형 맛집 도장 깨기…, 네?”

“정국이 나랑 곡 작업하기로 했어.”





*




바지 안으로 직접적인 접촉을 한 날부터 우리는 한층 더 거리낌이 없어졌다. 활동 중에는 어려웠지만 짬이 생기면 꼭 정국이를 만났다. 시간이 없을 땐 길에 파는 음식을 사먹고 한나절 여유가 있는 날에는 정국이 방으로 갔다. 정규앨범을 내고 아주 조금이었지만 지하철을 타면 ‘걔 아냐? 걔, 복근, 지민?’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말을 걸어오는 팬에게는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드디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게 얼마나 큰 희열이었는지.


- 아까 팬한테 사인 해줬다.

- 오, 이제 얼굴 막 가리고 다녀야겠네요.

- 신기하다, 헤헤.

- 근데 복근 너무 많이 까잖아요. 씨.


정국이 방에 도착하면 옷부터 벗었다. 얇은 이불을 덮고 누워 속옷만은 남겨 놓고 옆구리를 간질이며 히히덕거리다가 분위기가 녹진해지면 입술을 붙였다. 장난스럽게 쪽쪽거리다가 누구랄 것도 없이 혀가 닿으면 금세 웃음기는 잦아들고 숨소리만 커졌다. 정국이는 내 목이 예쁘다고 했다. 손가락으로 쓸어보다가 꼭 입을 댔다. 그러다가 정도가 심해지면 이로 깨물고 아프도록 쭉쭉 빨기도 했다. 그런 날은 꼭 벌겋게 자국이 남아서 나한테 잔소리를 들었다. 잔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국을 남겨야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 자국을 들켰다. 남준형한테.


- 지민아.

- ….

- 여친 생겼어?

- ….

- 회사가 연애금지는 아니어도, 조심은 해야지.

- …죄송해요.




남준형이 똑똑하기도 했지만, 내가 그만큼 멍청했다. 정국이랑 만나기만 하면 하루가 저물도록 연락도 없이 벌건 자국을 달고 숙소에 돌아오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나랑 정국이가 보통 사이가 아닌 걸 모를 수 없었다. 파스를 붙이고 담이 온 거 같다고 둘러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빨렸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정국이가 목덜미를 물어오면 기겁을 하고 떼어냈다. 남준형이 눈치 챈 거 같으니까 제발 보이는 곳에만 하지 말라고 했더니 정국이 눈썹이 꿈틀거렸다.


- 화났어?

- …그럼 안 보이는 데는 괜찮은 거죠.

- 응…, 근데 상체는 코디누나들이 맨날 보는, 으앗!!

- 그럼 여기.


다리가 번쩍 들렸고 바지와 속옷이 쑥 벗겨졌다. 방은 볕이 별로 들지 않아서 밝진 않아도 대낮에 멀건 하반신을 고스란히 내놓는 게, 어쩐지 배덕감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손만 대봤을 뿐, 서로의 아랫도리를 제대로 본 적은 없어서 나보다 어린 정국이 눈앞에 내 두 다리가 벌려지는 게 수치스러우면서 짜릿했다.


- 여기, 입으로 할 거예요.

- 아, 앗…, 정국, 아…!




안 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손은 정국이의 머리카락을 그러쥐고 입은 좋다고 야한 소리만 냈다. 꽤 수위 높은 행위를 하고 나니 다음부터는 더 한 것을 원하게 되고 정국이도 그랬다. 활동 중에도 시간이 나면 정국이 방으로 달려가 땀을 빼며 거친 유사행위를 하고 밖에 나와 편의점 같은 데서 밥을 먹고 헤어졌다. 정말 시간이 없어서 짧게만 보는 날엔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만나 얘기만 나누다 헤어져야 했는데 그러고 나면 다음에는 지난번에 못한 것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처럼 헉헉 댔다. 삽입만 없었을 뿐, 삽입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다했다.





내가 두 번 째 정규 앨범을 내고 정국이가 미성년자 딱지를 뗀 날, 우습지만 그걸 기념하기 위해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 스무 살이 된 정국이는 나보다 키도 골격도 커져있었다. 뭣도 모르고 주워들은 것으로만 실행하려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요령도 없이 젤만 발라 밀어 넣으려는 정국이는 힘만 써댔고, 버텨보려던 나는 아프고 힘들기만 했다. 나중에는 그 부위가 따갑도록 부어서 눈물이 주룩 흘렀다. 그때까지도 어떻게든 해보려던 정국이도 내가 우는 걸 보고 놀라서 미안하다며 같이 울어버렸다. 다 큰 사내놈 둘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벌거벗고 누워서 엉엉 우는 꼴이, 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만 하다.

제대로 된 섹스는 그로부터 몇 번이나 실패를 하고 나서야 할 수 있었다. 내가 없을 때 정국이는 어지간히도 그런 걸 찾아 본 건지 제 딴에는 뭐라도 해볼 거라고 달려드는 게 귀엽기도 하고 가끔 두렵기도 했다. 한 뼘이 더 될 정도로 커진 아랫도리를 꺼내며 토끼처럼 웃는 얼굴을 보이면,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것과 아래로 느껴지는 것이 일치가 되질 않았다.


데뷔 3년차부터는 마음대로 바깥을 걸어 다닐 수 없게 됐다. 미친 듯 스케줄을 소화하고, 행사가 잡히면 무조건 뛰고, 야외무대에서 비를 맞으며 춤추고 노래하고, 첫 단독콘서트를 가졌다. 그렇게 살았더니 뭐든지 열심히 하는 아이돌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내가 잠꼬대로도 염원했던 아이돌. 나와 내가 속해있는 팀은 거의 그런 아이돌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를 직접 만나기 위해 듣지도 않을 앨범을 수 십장씩 사는 팬이 생겼고, 무대에서는 팬의 얼굴보다 카메라 렌즈가 더 많이 보였다. 일거수일투족이 거의 실시간으로 SNS에 퍼졌고 조금이라도 말실수를 하거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보이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그런 아이돌로서의 생활이 이어졌다.




야음을 틈타 사생팬의 눈을 피해 외출에 성공하면 내 발길은 자연스레 정국이가 있는 지하방으로 향했다. 그래봐야 해가 뜨기 전에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야 했지만. 정국이는 아마추어 사이트에 자작곡을 올리기 시작했다. 극적인 반응은 없었지만 정국이는 창작하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고 했다. 녹초가 된 내가 침대에 퍼질러 누우면 정국이는 새로 만든 멜로디를 꼭 두 세 개씩 들려줬다. 정국이가 만든 멜로디와 그 위로 얹어지는 정국이의 목소리는 나를 끝없이 빠지게 했다. 정국이가 부른 노래는 나만 알고 싶다가도 눈앞에 보이는 지하방의 풍경이 안쓰러워서라도 정국이의 성공을 바라게 되었다.

함께 있는 시간은 1분 1초가 흐르는 게 아까워서 어떻게든 꼭 붙어있었다. 다음 날 스케줄이 있다고 하면 정국이가 ‘형 힘들면 안 돼요’ 하고 꾹꾹 참는 게 보였다. 그게 너무 귀엽고 애틋해서 정국이의 얼굴에 뽀뽀를 퍼부었다. 우리 정국이, 우리 정국이, 하면서.


- 형.

- 어?

- 우리 사랑하는 거 같아요.




신기하게도, 정국이한테서 그 말을 듣자마자 정말 사랑을 느꼈다. 말로는 나눠 본 적 없는 이 행위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좋을지, 생각하기도 귀찮아서 뒤로 미뤄버리고 그저 손이 가는대로만 해 왔던 걸 사랑이라고 이름 붙이니 가슴이 마구 벅찼다. 아, 내 사랑은 정국이. 정국이었구나. 우리는 정말 사랑했다. 손을 잡고 다닐 수도, 보고 싶을 때 맘껏 볼 수도, 기껏해야 하루에 메시지나 전화 한 번 밖에 할 수 없었어도 우리가 한 것은 사랑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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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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