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절임

비속어 주의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니야. 머리가 빙빙 돌고 졸리지도 않은데 눈이 자꾸만 감긴다. 7월 초 기말 고사를 앞두고 여름 초입에 들어섰음. 5월 행사도 끝났겠다 (개같이 망했지) 6월에 들어선지 벌써 일주일 하고도 3일이 지났다. 점점 햇빛이 뜨거워지고 공기마저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지독한 여름을 느끼기도 전에 지독한 감기에 걸려버린 김여주는 안간힘을 쓰며 판서를 하고 있었음. 갑작스레 무더위진 공기에 집중은 더 안됐는데 악으로 깡으로 김여주 50분 수업 꽉꽉 채웠음.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고 해도 무방했음. 원래 시험 닥치면 쌤들 시험 문제 하나 알려줬다~ 이러시면서 괜히 수업 더 집중하게 어그로 끄심. (정작 그 문제 그대로 안 나오고 꼬아서 내심) 빙빙 도는 머리를 겨우 부여잡고 쌤이 알려준 부분 체크하고 교과서 덮은 김여주가 그대로 책상에 머리 박았음. 아 하늘이 돌아. 판서를 하긴 했는데 평소 같이 하던 스타일대로 못해서 다시 공부하면서 수정 해야됐음. 아아. 진짜 조퇴하고 싶다. 밥 먹듯 학교가 지루해 조퇴증 끊는 애들이 오늘만큼은 존나 미웠음. 진짜 조퇴해야할 건 쟤네가 아니라 나라고...


"여주야 옷 안 갈아입어?"

"..아, 응.. 지금 갈아입으려고."


불행 중 다행으로 4교시에 체육이 있었음. 체육은 시험 일주일 전에 교실 수업으로 바뀌는 거였어서 이번주까지는 야외로 나가야했음. 날씨도 좋겠다~ 체육 쌤들 제일 좋아하는 날씨였음. 그 반대로 김여주 컨디션 존나 최악, 마이너스. 현재 상태로는 수업은 무리니 말씀 드리고 점심 시간까지 보건실에서 쉴 심산이었음. 이미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애들은 다 밖으로 이미 나갔고 남은 여자애들 체육복 갈아입고 왔는데 김여주 요지부동으로 책상에 엎어져 있으니까 애들이 물었음. 옷 안 갈아입냐고. 갈아입어야지... 했는데 갈아입을 힘이 없어. 


"내가 문 잠그고 갈게."


마지막으로 남은 김여주가 교실 문 잠그고 간다고 하니 남아있던 여자애들 알겠다며 저들끼리 먼저 교실을 빠져나갔음. 체육복 갈아입다가화장실에서 휘청일 뻔한게 한 두번이 아니라 김여주 현재 자신의 상태 존나 쓰레기임을 인지하고 체육복 갈이 입는 거 멈추고 그냥 교복 차림으로 얼른 나가서 쌤한테 말씀 드려야겠다 싶었음.


"안색 많이 안 좋다. 어어 알겠어, 오느라 고생했네."


이 악물고 운동장으로 나가니 벌써 애들 줄 맞춰서 체조 중이었음^^; 주인공마냥 마지막으로 등장해서 출석부 찾는 체육 쌤한테 출석부 드리면서 상태 말씀 드리니까 어지간히 김여주 안색이 안 좋아보이셨는지 고개 끄덕이셨음. 감사합니다.. 고개 꾸벅이고 다시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김여주 애들이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는데 그런거 신경 쓸 겨를 도 없었음. 그냥 빨리 보건실 가서 이 물 먹은 솜 같은 몸 좀 뉘이고 싶었다.


"아이고, 어떡하지? 지금 자리가 없어서..”


매번 올때 마다 비었던 간이 침대는 어째서 전부 주인이 있는건지 설명 좀. 머리가 지끈 거리다못해 누군가 주먹으로 쿵쿵 때리는 듯 이상한 이명이 울렸음. 김여주 상태가 제법 심각하다는 걸 단번에 캐치했음에도 오늘따라 골골 대는 학생들이 많았기도 하고 막 들어온 애들이 대다수였던 지라 가서 쉬고 있는 애들 보고 이제 그만 일어나 네 교실로 가렴! 이럴 수도 없었음. 괜히 불편하게 자기가 더 미안한 표정을 짓는 보건 선생님께 아니라며 감기약 하나를 받아냈음. 입구 근처 정수기에서 물 받아서 약이랑 같이 먹으려는데 보건쌤 이번 4교시 다른 반 성교육 수업 하러 가야해서 자리를 비운 다고 하셨음. 너무 힘들면 소파에 조금 쉬었다가 수업 들어가라고 김여주 어깨 두어번 두드리고는 보건실 빠져나가셨음. 보건 샘은 진짜 툭툭 친 건데 하도 몸에 힘이 없었어서 손바닥에 있던 감기 약 바닥으로 떨어짐. 다시 약 달라고 하기엔 보건 쌤 이미 나가버린 뒤고. 시바... 하다 못해 정수기 아래로 들어간 건지 보이지 않는 알약에 한숨 쉰 김여주가 반대편 손에 있던 물도 버리고 소파에 물 먹은 솜 인 듯한 몸을 겨우 움직여 제법 푹신한 소파에 앉았음.

 근데 보건실 대따 넓네. 반쯤 풀린 눈으로 보건실 구경 하던 김여주는 그런 생각을 끝으로 앉아서 눈을 감고 나름의 휴식을 취했음. 보건실이 2층에 위치해 있어서 저 멀리 운동장에서 반 애들이 소리가 아득하니 들렸음. 눈을 뜨기도 힘들어 이대로 그냥 앉아서 잠깐 잠이나 청할까, 싶었음. 그리고 그 순간 옆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낄 새도 없이 몸이 붕 떴음. 동시에 정말, 정말 미약하게 맡아졌던, 교복에 스며든 익숙한 냄새.


"....."


보건실에 있는 네개의 간이 침대 차지 하고 있던 이들 중 한 명은 나재민이였음. 수업은 존나 지루하고, 날씨는 딱 낮잠 자기 좋고. 꾀병 한번 제대로 부린 나재민이 침대에서 무료하게 핸드폰이나 하고 있던 때였음. 보건실 문이 열리고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데 조금 잠긴 목소리가 들렸지. 네 개 간이 침대는 각각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커튼을 살짝 열어 밖을 쳐다봤음. 사방이 커튼으로 쳐져 있어서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는데 커튼 그거 조금 열었다고 눈이 조금 부셨음. 그 사이로 여자애가 겨우 중심을 잡고 있는게 보임, 누가 봐도 나 아파요. 나재민은 양심에 찔려 상체를 아예 일으켜 밑에 널부러져 있는 슬리퍼를 신었음. 나갈 보건 선생님 몰래 대충 이부자리까지 깔끔히 정리 한 다음에, 문 닫히는 소리 들리고 몇 분 있다가 커튼을 확 쳤음. 

대충 약아 빠진 새끼. 이제노는 지금 오고 있단다 미친놈 등등 어쩌구 저쩌구. 무의미한 톡방 알림 대충 읽씹 하고 소파에 몸을 축 늘어뜨린채 제 몸을 맡긴 1학년 한테 다가갔음. 침대 비었으니 쓰라고 하려고 손을 뻗었다만.


"..와씨,"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뒤통수를 판별하기도 전에 갑자기 넘어온 머리를 다급히 손으로 받아냈음. 제 손바닥에 닿은 살결에 놀라기도 잠시, 점점 느껴지는 열기에 고개를 조금 기울여 얼굴을 확인 했음. 응 예상대로 김여주. 나재민 그 얼굴 확인 하자마자 심장 존나 떨어져서 자연스럽게 비속어 나오려던거 꾹 참았음. 손바닥 위로 불규칙하게 내뱉어지는 열기에 간지러워 당장이라도 손을 떼버리고 싶었다만, 김여주한테는 그럴 수 없가 없더라고. 조심 스럽게 손바닥으로 김여주 고개 정자세로 돌려놓고는 무릎 안쪽과 등을 손으로 감싸 들어올렸음. 아 솔직히 쪼굼 버겁긴 했는데^^ (몸에 힘이 없어 축 늘이고 있으니까) 나재민 이 악물고 최대한 살금 살금 자신이 방금까지 썼던 간이 침대로 갔음. 

팔 부들 거릴 정도로 천천히 또 조심 스럽게 김여주 침대로 내려놓았음. 김여주가 절대 무거워서가 아니고! 괜히 깰 까봐 나재민이 제 몸에 힘 빡 줘서 살짝 뒷목에 열이 올랐음. 아 존나 덥네. 날씨도 날씨기도 했고 나재민이 하복 안으로 입은 반팔티 펄럭이며 간이 침대에 다소 불편하게 누워있는 김여주 내려다봄. 


"...하..진짜.."


그냥 편히 자라고 한 쪽만 구부려진 다리, 가느다란 발목 한 손에 잡아 펴주고. 어깨도 바로 펴주려는데,


"쌤 수업 갔다 했지?"

"나재민 이 씹 새끼는 아직도 처 자냐? 존나 개 꿀 빠네."


익숙한 놈들 목소리가 들림. 빌어먹을 하필 이 타이밍에? 작게 시발... 한 마디 해주고는 주위를 대충 김여주 이불 덮어주고 그냥 나가야겠다 싶었음. 커튼 사이로 얼핏 보이는 놈들 실루엣이랑 김여주 번갈아 봤음. 재민아, 정신 똑바로 차리자.


"...물..."


그러고 이제 슬리퍼 한 발자국 내딛었는데 오로지 본능만이 남은 김여주가 나재민의 하복 아래 삐져나온 반팔티를 겨우 잡아챔. 아까 버린 물 먹을걸. 약도 못 먹었으니 점점 심해지는 열기가 몸을 달궜고, 식도를 메마르게 했음.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그리 중얼임을 나재민이 못 들을 리 없었고, 여기서 자칫했다가는 개좆될 수가 있음을 직감했음. 나재민이 가장 먼저 할 일은 같은 공간에 있는 제 친구들을 보건실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었음. 조심히 교복 바지 주머니에 있는 폰 들어 밝기 최대한 낮추고 단톡방으로 들어가서 다 어디 갔냐고 톡을 보냄. 당연히 보건실에 있을 줄 알고 온 이동혁네 무리들은 그 카톡 보고 나재민 반인가본데? 이 새끼 언제 감? 오늘은 좀 빨리 왔네? 이러면서 슬리퍼들 질질 끌며 보건실을 나갔음. 뭐야 언제 감? 줄줄이 터지는 단톡 알림은 둘째치고 한시름 돌렸다 싶어 작게 한숨 쉬는데, 설상가상. 더 큰 산이 여기 있네.


"야..야, 왜 일어나."


물이 절실한 김여주는 기어코 반 쯤 감긴 눈으로 상체를 일으켰음. 그리고는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려 제 신발을 찾았음. 만약 김여주가 깨면 앞에 있는 자신을 어떻게 보고 생각할까 식겁 했던 나재민은 갔다 준다며 손바닥을 보여 제발 나오지 말라 하고는 커튼을 쳐 환한 보건실로 나감. 빛 반사에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는 정수기 앞으로 다가가 종이 컵에 물을 담기 시작했음. 같은 보건실 안인데 온도는 천지 차이네 시발... 뒷목에 자리 잡은 열기들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음. 


"자, 물,"


물 떠와 다시 김여주에게로 가니 아직도 반쯤 멍한 상태로 눕지도 않고 눈만 끔뻑 끔뻑. 빨리 주고 나가야겠다. 김여주 손에 물이 가득 든 종이 컵 쥐어주는데 제정신이 아닌 애한테 뭘 바래. 김여주 손에 잡히자마자 추락하는 종이 컵은 안에 든 물을 뱉어버렸고 반 이상 엎어진 종이컵에 나재민은 머리가 지끈 거림. 손 진짜 많이 가네. 다행히 신발 안에 떨어지지 않아 종이컵 다시 주워들고 버려 새로 물을 떠왔음. 이번엔 제대로 먹자, 좀. 김여주가 제대로 자기 스스로 먹을 리 만무해 나재민이 앉아 있는 김여주 옆에 살짝 걸터 앉아 종이 컵을 김여주 입 앞에 들이 밀었음. 입 벌려. 


"...야,"


입을 겨우 벌려 먹긴 하는데 꿀떡 꿀떡 넘어가는 물은 입 밖으로 삐져 나와 턱을 타고 줄줄. 얘 진짜 나한테 빚 진거다, 이거. 한 손은 종이컵, 한 손은 김여주 턱 끝 아래로 떨어지는 물 받고, 시발... 엄마도 아니고. 목이 많이 말랐던 건지 마지막 한 방울 까지 먹는 김여주. 나재민은 제 모습을 어머니에 비유하기도 잠시, 아니, 커튼까지 쳐 있고, 조명까지 오프 된 이 분위기에서 내가 얘 물을 먹이고 있는 것도 웃기고,... 


"...아.."


시원한 물이 메마른 식도를 흠뻑 적심에 무거웠던 몸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아 종이컵에서 입을 떼고 김여주가 신음함. 아 시발 이게 맞아? 나재민은 존나 혼란스럽다. 아직도 김여주 턱 끝에 맺힌 물방울들은 제 손바닥 위로 떨어지고, 물을 먹은 김여주 입술은 반짝이고. 왜 이런 희대의 쓰레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건지. 김여주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대로 눈을 감고 뒤로 넘어갔고 뒤척이며 침대 위에서 편한 자세를 찾았음. 그거 가만히 내려다 보던 나재민은 지긋한 시선을 떼고 손바닥에 흥건한 물을 종이컵에 담고 엄지로 손 끝을 튕겨 손에 묻은 물을 대충 털었음. 진짜 가야겠다 싶어 걸터 앉은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김여주 현재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음.


"시발..."


도대체 얘 오늘 나한테 왜이래? 이를 악물고 자세를 편히 바꾸기 위해 움직여 훤히 드러난 김여주 허벅지 위로 침대 아래 담요 꺼내 덮어줌. 오 지져스, 하나님. 오늘 김여주라는 사탄을 보내 저를 시험하시는 건가요. 수업을 한 것도 아니고 몸을 그리 크게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기진맥진한 기분이 들어. 터덜 터덜 슬리퍼 끌고 커튼 쳐, 종이컵 정수기 옆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보건실을 나섰음. 쿵, 닫히는 문 뒤로 하복 교복을 벗어 재낀다. 


"존나 덥네...."


그리고는 안에 입은 반팔 다시금 펄럭이며 열기를 식힘. 이게 쨍하고 내리는 여름 기운 때문인지, 보건실 안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을 김여주 때문인지. 


"야 니 도대체 어디 있었음?;"

"으; 야 땀 봐 이새끼;"


뭘 물어.


"..쌤한테 들켜서 뺑뺑이 함."


후자지.




고등학교에서 재회한 그 오빠




 7월에는 기말 고사가, 6월에는 모의고사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음. 그리고 김여주는 6월 모의고사를 거하게 말아먹음. 살아 오면서 이런 점수를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가채점 하면서 점점 굳어지는 안면과 저도 모르게 날카로워지는 눈빛. 중간에 때려칠까 했는데 모의 고사 아침 엄마가 가채점 한 시험지 가져오랬거든. 고등학교로 들어서다 보니 아무래도 부모님의 학구열은 대단했음. 김여주도 그걸 모를 리 없었고 3월 모의고사를 제법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한 김여주인데… 이 성적을 엄마한테 보여주라고. 무어라 다그치진 않겠지만 그늘이 질 얼굴이며, 괜히 이번 한번으로 무너지지 말고 마음 다 잡으라며 심심찮은 위로를 할 게 뻔했음. 그러면서 아빠와 그런 말을 하겠지. 아무래도 여주 학원 보내야할 거 같은데. 


그리고 김여주는 생전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야자를 쨌음. 기말이 곧인데 자꾸만 떠오를 그늘 진 엄마 얼굴이 떠올라 집중도 안 됐을 뿐 더러 같은 반에서 전교권에서 함께 논 여자애는 이번 6월 모고를 대박 쳤다더라. 수능까지 시간도 나름 있었고, 6월 모고는 이번이 처음임. 근데 무엇이 그리도 김여주를 불안하게 했을까, 신입생 대표나 학급 회장이라는 직책 때문일까. 야자를 짼 김여주는 나름의 절망감에 빠져 꼬맹이들이 한 바탕 놀고 간 놀이터 그네에 엉덩이를 붙이고 상 하로 왔다 갔다. 

기분 개구려. 한시라도 빨리 털어버려야지. 이깟 모고가 뭐라고. 그러다가 이런 걸로 좌절할 시간이 아까워 삐걱 거리며 그네에서 일어났음. 다시 학교 야자실로 들어가는 것은 무리니 근처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라도 하고 가야겠다 싶었음. 그 전에 달달한 걸로 우중충한 기분 좀 풀고.


"아니 이제노 좋아하는 애 있다고? 누가 그래?"


군것질 거리 코너에서 제일 달달한 걸 찾고 있으니 딸랑 거리며 편의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일명 똔꼬 치마 입고 새빨간 틴트 바른채, 고데기로 앞머리 뽕 한 껏 올린 여학생들 입장. 같은 교복으로 보아하니 못해도 고2, 근데 오면서 까랑 까랑 대화 소리 들어보니 익숙한 이름이 들려. 이제노래. 그럼 고3이라는 건데. 저쪽도 달달한 군것질을 사러 온 건지 김여주 근처로 다가와서 과자며 초콜릿 이며 한번 집어보고 내려놓고.


"어. 유민구가 말해줬어. 걔 좋아하는 사람 있는 거 같다고."

"아 유민구 걔는 입만 열면 구라야 믿지 마."

"맞아, 걔 별명 입벌구임."


다소 거친 단어로 저들끼리 대화하는 걸 듣자니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 싶었음. 이제노가 누굴 또 좋아하나보지. 고1때는 연상 누나 좋아했던 거 같은데, 이번엔 누구려나. 영양가 좃도 없는 주제에 1+1 하는 초코바 두개 집고 굽혔던 무릎을 피던 참이었음.


"그런가, 유민구가 1학년이라고 하긴 했거든."

"1학년? 미쳤네. 존나 철컹 철컹 할 일있냐?"

"아 맞아, 야 왜 그때 3학년 진예현? 맞나, 아무튼 둘이 얼마 못 갔대."

"야 그게 언제적 일인데; 2년 전이다."

"아 몰라. 아무튼 1학년 좋아한다는 건 개씹구라야. 이제노가 뭔 도둑놈도 아니고;"


1,200원입니다. 가성비 제대로인 초코바를 결제 하면서도 뒤에 디저트 코너에 가 있는 대화 소리에 귀를 귀울였음. 하긴, 생각이 있으면 고3이 고1을... 물론 예외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아 미자 딱지 떼고 사회로 나갈 이들이 갓 고등학교 입학하여 수능도 봐야하는 열 일곱을 좋아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사회에 가면 두 살 차이 아무 것도 아니긴 한데 십대 사이에서는 까마득한 차이였음. 독이 될 관계. 김여주도 동의 하는 바라 저딴 소문은 정말 개구라겠거니 결제 마치고는 미련 없이 편의점 출입문을 힘껏 열었음. 딸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치마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림.


엄마

> 오늘 모의 고사 어땠어?


부러 보고도 대답을 피해 초코바 하나 포장지 찢어 입에 물었음. 존나 인공적인 단 맛. 설탕 맛. 살 찌는 맛. 어째 기분이 더 구려짐. 다 바스라지는 초코 과자들 덕분에 입도 텁텁해 반도 먹지 못 하고 근처 쓰레기 통에 처박았음. 스터디 카페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아 걸음을 빨리 하니 금세 도착했음. 근데 시발 자리가 만석임. 김여주 같이 모고 망해서 똥줄이 탔나, 아 그건 아닌 거 같아. 얼핏 보니 대부분 행색이 어딘가 초점 잃은 눈으로 인강 듣고 있는 사람들 뿐이야. 생기부에 들어가는 마지막 고사, 1학기 기말을 잘 마무리해야하는 고3들이 대부분이었음. 고1 김여주 보다는 고3 저들이 더 똥줄 타겠지. 더 불안하고. 그 생각에 김여주는 별 수 없이 발 길을 돌려야만 했고, 한 순간에 방랑자 신세 되어 어쩌지 싶은 와중에 바로 옆 건물 피시방이 들어오는 거다. 아 여기 그때. 

이동혁네 무리 만난 그 피시방인데. 멍하니 반짝이는 피시방 건물만 보다 갈 곳도 없겠다, 대충 여기서 인강이나 들을까 싶었음. 뭐, 설마 그 오빠들이 있겠냐 싶었고.


"오늘은 치킨 가즈아~"

"니만 눈 똑바로 뜨면 될 듯. 자자, 오늘만큼은 민구새끼가 눈 감지 말기를 우리 다같이 기도하자~"

"저 씨발놈은 참 말 이쁘게 해."

"응 니 인중."


김여주가 결제 하고 자리 앉아 인강 들은 지 1분도 안돼서 이동혁네 무리 들어오는 거 실화?; 시발 것도 무슨 자기들 지정 자리인 건지 빈 맞은 편에 우르르 앉는데 김여주 다 익은 벼 처럼 허리를 최대한 구부리고 들어온지 10분도 안돼서 짐 챙겼음; 시발... 오늘 진짜 되는 일이 없네. 저 오빠들 한 명이 대표로 싸그리 결제하러 가는 거 보고 최대한 어깨 움츠리고 얼굴 보이지 않으려 손으로 얼굴 가린 채 종종 걸음으로 피시방을 빠져나갔음. 


"..너 여기서 뭐 해?"


피시방 건물에서 4층이라 엘베 타고 내려가야했는데 엘리베이터 옆이 화장실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도중, 화장실에서 나온 이제노랑 딱 마주쳤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여기서 뭐하냐는 이제노 말 끝나자마자 엘리베이터 문 열리고, 이제노한테 대답 할 틈도 없이 도망치 듯 들어와 닫힘 버튼 존나 누르는데, 

쿵. 


"........"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컨버스 하나가 떡하니. 컨버스에 부딪혀 엘리베이터가 다시 열리고, 못지 않게 당황한 이제노와 눈이 마주쳐 김여주는 몸의 힘을 뺐음. 허겁 지겁 짐을 챙긴 탓에 제대로 잠그지도 못한 가방이 툭, 어깨에서 팔꿈치로 떨어졌음. 


"뭐야 이제노 쟤 어디가는거임?"

"......"


그러게.




/




데자뷔. 피시방 앞 버스 정류장. 데려다준다는 이제노. 오늘은 야자를 안 하냐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음. 그냥 쨌어요. 그러니 이제노가 답지 않게 두 눈을 크게 뜨는거 있지. 네가? 그 김여주가? 라는 눈빛이야. 김여주는 그거 다 보였지만 괜히 외면하며 휭휭 빠르게도 달리는 차들을 멍하니 바라봤음. 무슨 일이 있었구나 싶은 이제노는 별 다른 말을 묻지 않았고, 그냥 넌지시 한마디 해.


"집 가기 싫어도 가야지."


금방 어두워져. 이제노 말 대로 금방 어두워질 것 같은 하늘을 올려다봤음. 학교도, 스터디 카페도, 그 흔한 피시방에도 제가 있을 곳이 없네. 벌써 시간은 7시를 넘어 가고 있었고, 야자가 9시에 끝나는데 지금 가면 왜 이렇게 일찍 왔냐는 엄마 물음에 무어라 답해야 할지 버스 오는 거 기다리면서 고뇌했음. 그러다가,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림.


"야 진짠가봐;"

"미친 실화야..?;"

"1학년 맞아, 쟤?"


아까 그 편의점에서 마주친 똔꼬 치마 언니들이다. 저들끼리 경악해서는 김여주와 이제노를 가리키며 숙덕이는데 김여주, 어딘가 모르게 쎄해. 아 시발 그거 아닌데. 이제노가 좋아하는 1학년. 단박에 떠오른 활자에 모르는 사람 인 척이라도 해야하나 싶어 엉덩이를 움직여 버스 정류장 의자 가장 자리로 움직였는데...


"이거 봐봐. 귀엽지."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이제노가 성큼 다가와 옆에 앉더니 김여주한테 제 핸드폰을 들이밀어. 이제노 폰 화면에 있는건 그놈의 청설모였음. 김여주 존나 놀라서 대답도 못하고 당황해서 이제노 한번 보고 반대편으로 고개 돌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박 대박 이러면서 보면 안될 것 본 것 마냥 입을 틀어막고 시선은 이쪽으로 계속 고정 한 채 걸음을 옮기더라. 씨바 좆됨. 단박에 좃됨을 직감한 김여주가 자꾸 핸드폰 들이밀면서 청설모 사진이나 보여주는 이제노를 원망 어린 눈으로 바라봤음. 이 웬수야.

그러다가 문득 내린 시선 안으로 들어찬 울긋 불긋한... 아 시바 좀 떨어져! 하복을 입은 이제노의 울긋 불긋 자기 주장 강한 팔에 의자 끄트머리에 엉덩이 걸치고 있는 김여주는 그냥 옆으로 넘어지고 싶었다. 그때 부터 지금까지 존나 변태 같다, 내 자신이. 하여튼 여름이 문제야. 여름이. 이 오빠는 여름에도 다 가린 쫄티 입어야, 시발 쫄티가 더 위험할 듯. 그냥 365일 패딩만 입으라 해. 


"예전부터 느낀건데."

"....에?"


존나 이제노 팔뚝이랑 눈싸움 하고 있는데 진작에 핸드폰을 거둔 이제노가 바로 앞에서 김여주 쳐다보고 있었음. 아 씨발 존나 수치스러워. 설상 가상으로 당황해서 삑사리 까지 나는데 김여주 더이상 참을 수 읎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가.


"네가 그렇게 뚫어져라 보면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억,"


중심 잃고 몸이 기울었다가 반동으로 다시 돌아왔음. 맞잡은 손이 제법 힘을 주어 끌어당긴 탓에 이제노와의 거리는 한층 더 좁혀지고 꽉 맞잡힌 왼손으로 전기가 찌릿 찌릿. 김여주는 당장이라도 마주한 시선을 피하려 안간힘인데 이제노는 느릿하게 두 눈을 깜빡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더래.


"아 기분 나쁘진 않아. 근데 다음부턴,"

"......"

"내가 눈을 감아주든, 네가 티 나지 않게 보든, 둘 중 하나는 해야할 거 같아."


누가 봐도 놀리는 것 같이 한쪽 입꼬리 끌어올리고 그리 말하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요..."


김여주는 목이 멘다. 존나 사막이야, 수분이 없어. 말이 안 나와.


"그래도 열심히 뛴 보람은 있네."


펄럭- 펄럭-. 더워 하며 교복 안에 받쳐 입은 제 반팔을 거칠게 펄럭였던 이제노가 다시금 떠올랐고, 그와 동시에 이상한 수치스러움이 몰려왔음. 씨발, 죽고싶다. 손이 잡혀 있어 얼굴을 가릴 수 없어 고스란히 이제노는 그 새빨개진 얼굴을 눈에 담으며, 푸하. 뭐가 그리도 즐거워서. 근데 그렇게 웃다가,


"...진짜,..."

"응?"

"개쪽팔려..."

"..어?"


김여주를 울려버림. 





고등학교에서 재회한 그 오빠













이게 좀 묘한게, 여주X재민은 여주가 의도치 않게 떽뚜어필을 하는 쪽이고, 여주X제노는 제노가 머... 고의로(^^) 하는 것이고. 제노 여주가 자기 몸 보고 그러는게 다 느끼고 알아챘었음. 개앙큼보이임. 그리고 재민이는 은근 쑥맥, 샤이보이..

다음에는 오빠동생들이나 박힌 돌로 찾아뵙겠습니다 힛. 

아무래도 오빠동생들일 듯. 

그리고 어제 재회 txt. 쓰면서 안건데 언제 구독자 7천이 넘었다 그려.. 다들.. 

사랑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월요일에게..

제발 꺼져. 회사 꺼져. 나 글 좀 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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