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설탕 최애곡!

🎧 나비 - 마음이 다쳐서 (Feat. Crown J)

절친이 내 혈육한테 차인 썰 푼다

w. 뮤트




이대로는 안 되겠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언제까지 울기만 할 거야? 청심환 먹방하고 싶을 정도로 심장 펄떡펄떡 뛰어대는 거 가만히 방치만 하고 있을 거냐고. 누구한테 죄지은 것도 아닌데 두근두근 쿵쿵 착잡하고 심란하고 짜증나고 막 눈치없이 설렜다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 이제 그만 느끼고 싶잖아. 이제노 좋아하는 거 아무도 뭐라 안 했는데, 이제노는 도와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자진모리 장단으로 공연하는 거 이제 그만두기로 해. 




그러려면 소금이한테 솔직해야 될 것 같아. 안 좋아하는 척 연기하는 거 언제 들킬지 모르잖아. 이동혁도 바로 눈치챘는데 김소금도 언젠가 알게 되지 않겠어? 그때 돼서는 변명도 못해. 아무리 친구 생각해서 그런 거라고 해도 한 명 바보로 만든 꼴 밖에 더 되나.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털어놓으면 좀 괜찮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설탕 본인 마음이 좀 정리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아니야. 안 돼. 그럼 이제노는? 이제노 발목 잡고 싶지는 않은데. 걔는 짝사랑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아니... 성공까지는 말고 그냥... 적당히 슬퍼하다가 훌훌 털어냈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소금이한테 고백해야 되잖아. 그래야 정리가 되지 않을까? 근데 내가 말해버리면... 나 때문에 소금이가 이제노랑 거리두면? 그래서 이제노 짝사랑 망해버리면? 그건 진짜 진짜 진짜 너무 싫은데...?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냅두면... 이제노가 정말로 김소금한테 고백해서, 소금이도 이제노한테 마음이 생겨서... 둘이 사귀면 어떡하지? 내가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을까? 이제노는 사랑과 우정 둘 다 잡고 싶어서 벌써부터 서운하다고 그러는데. 셋이 놀게 되는 날도 왠지 많을 거 같잖아. 싫어 절대 셋이서는 안 만날 거야. 둘이 놀라고 하면 되지. 그래봤자 이설탕은 김소금 이제노가 나오라고 하면 거절 못할 걸. 




세 번째 서랍에서 꺼낸 예쁜 편지지... 도로 집어넣어. 소금이한테 일단 편지로 예고장을 보내려고 했거든. 그동안 말 못해서 너무 미안하고 이제서야 뒷북치는 것도 너무 미안한데 너한테는 솔직해야 될 것 같다고. 진심 꾹꾹 눌러담아서 내가 할 얘기가 있어 소금아 하려고 했거든. 근데 생각해 보니까 그럼 꼬여버리는 게 너무 많은 거야. 




그래. 김소금도 이제노한테 마음 있는 것 같아. 이제논데? 이제노잖아... 아직 제대로 자각을 못한 것 뿐이지 분명 백퍼센트 호감일 걸. 짝남 이민형이랑은 대화를 한 번 해봤어 뭘 해봤어. 심지어는 연상 여친이랑 잘 만나고 있다는데 어쩌겠어. 임자 있는 사람 좋아하는 것보다 마음 정리 쉬운 게 없잖아. 어 그럼 나도...? 김소금♥이제노 결혼식 상상하던 이설탕 동공지진 온다.




... 아니야. 아니야. 안 돼. 나는 정리 못해. 둘이 천년 만년 만나도 나는 안 될 거 같은데. 둘이랑 인연을 끊던 혼자 잠적을 하던 어떻게든 멀어지려고 할 것 같은데. 열여덟 시련이 이렇게 크다. 소금이랑 이제노랑 같이 교실 올라가던 뒷모습까지 떠올리니 마음이 답답해져. 그래서 결국 편지지 다시 꺼낸다. 편지지에 쓰기 전 노트에 연습까지 해. 




김소금 안녕?

편지는 오랜만이지? 사실 연습장에 지금 연습하는 거야

 



찍찍 긋고 다시 쓰고 찍찍 긋고. 미쳤니? 누가 편지를 이따구로 써. 걍 카톡으로 보낼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이설탕 몇 문장 더 끄적이다가 걍 노트 덮어. 됐다. 난 모르겠다. 걍 인생 망한 거지 뭐. 이렇게 살다보면 언젠가 해는 뜨겠지... 해탈한 눈동자로 스탠드 끄고 씻으러 간다. 하지만 머릿속엔 이제노 다친 거 괜찮을까.. 둥둥.. 소금이랑 양호실 갔을까.. 둥둥.. 둘이 무슨 얘기했을까.. 둥둥... 까맣게 타들어간 구름들이 둥둥 떠다녀.




다음 날 아침. 7교시까지 빡빡하게 수업있는 날이라 다들 벌써부터 축 처져있어. 졸린 눈 부릅뜨고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풀로 채우고서 맞이한 점심시간. 배고프기는 한데 오늘따라 점심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매점 햄버거로 대충 떼우고 꿀잠 자기로 한 조미료들. 마침 생선까스 나오는 날이라 아쉽지가 않아요.




초스피드로 양치하고 각자 책상에 엎어져.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줘서 추우니까 담요까지 슥 덮고. 아 행복해. 너무 행복하다. 점심시간이 사십 분이나 남은 거야. 너무 행복해... 이대로 시간아 멈춰줘. 그런 생각하면서 이설탕 단잠에 빠진다. 아니 빠지기 직전이었는데 불청객(?) 등장으로 꿀잠 자기 실패. 뒷문에서 뭐야 이여주 어딨어 아 쟨가 맞네 이여주 담요 !@#$ 중얼대는 이동혁 목소리가 들렸기에...




이여주 뭐하냐

아.. 누나 지금 잠들기 직전이야 나중에 다시 와

친구 데리고 왔는데 얘가 너 궁금하대 내가 이카소라고 자랑했거든 인사 좀 해




친구..? 친구를 굳이 굳이 이 황금같은 점심시간에 담요 뒤집어 쓰고 자려는 나한테 데려와? 뭐 어쩌라고!!! 라는 심정으로 언짢은 티 팍팍 내면서 고개 들어. 어김없이 본인 앞자리에 뻔뻔하게 앉아서 에너제틱한 눈빛으로 이래. 오빠 친구 인사해. 그 말에 눈썹 드라마틱하게 휜 상태로 삐딱하게 옆자리 쳐다보는데 어라... 






ㅋㅋ 안녕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이동혁 친구. 명찰에 적힌 황인준 석자 보고 생각해. 아 얘가 나재민 친구... 근데 그건 그렇고 되게 잘생겼... 첫인상이 너무 호감이라 이여주 본능적으로 표정 유하게 풀면서 인사 건네.




어.. 어 안녕

초면에 미안 이동혁이 꼭 인사해야 된다고 그래서

쟤가 좀.. 그래 괜찮아

ㅋㅋ 그렇구나

나 사실 너 알아 나재민 친구라며 유치원 같이 다녀서

학원도 같이 다녔었어 피아노 학원

아하... 글쿠나

..... 음

..... 음..

아 그래서 내 이름은 황인준...

어.. 맞아 알아

내 이름 알아?

그.. 이거 명찰

아 명찰..

... 너 그림 잘 그린다며? 미대 준비하는 거야?

고민하는 중이야 그냥 취미로 그리는 거라

그렇구나...




세상에 이렇게 어색할 수가.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은 아닌데 이상하게 황인준이랑은 왕어색. 이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자칭 인싸 이동혁 슬쩍 쳐다보는데 애 표정이 좀 이상해. 본인이 생각한 분위기가 아닌가 보지. 그게 좀 웃겨서 웃음 꾹 참으면서 눈짓해. 무슨 말이라도 던져봐 이동. 




애원의 눈빛 날리는데도 이동혁 영 반응이 없어. 얘가 왜 이래? 황인준도 어떻게 좀 해보라는 표정으로 이동혁만 보고. 완전 총체적 난국. 김소금이라도 와줬으면 하는데 쩌기에서 완전 꿀잠 자고 있는 거 같잖아. 결국 보다 못한 이여주가 맛탱이 가버린 이동혁 어깨 툭 치면서 말해. 




야 뭐해 왜 멍 때려 니가 데려와놓고...

.... 어어 왜

뭐하냐고ㅋㅋ 니 친구 어색하대잖아...;;^_^

아 쏘리 야 황인준 이제 가자

엥 이대로 가게? 진짜 인사 시키려고 데려온 거야?

그럼 뭐 인사했음 됐지 




어라 대답도 약간 삐딱해. 얘가 왜 이래 하면서 쳐다보니까 벌떡 일어나서 이래. 황 일어나 애들이 너랑 축구해야 된다고 했어. 누구한테 쫓기는 것처럼 황인준 데리고 뒷문으로 향하는 이동혁. 황당해서 둘 지켜보는데 황인준이랑 눈 딱 마주쳐. 이동혁한테 질색하던 표정 확 풀고는 손 흔드는 전학생 황씨. 어색절정 인사에 이여주도 엇 잘 가... 하고 만다.




뭐가 지나간 거지. 눈 끔뻑끔뻑 칠판 쳐다보는데 또다시 눈 앞에 드리운 이동혁. 깜짝 놀라서 소리 지르려고 하는 순간, 이동혁이 야야 쉿 애들 잔다 이러고 진정시킨다. 그러자 이여주 이마에 빠직 세우곤 따져.




아 ㅡㅡ 심장 떨어질 뻔 했잖아 왜 또 왔어

너랑 놀려고

엥 축구한다며

황씨 데뷔전이라 아깝기는 한데 걍 걔만 보냈어 나는 오늘 쉬려고 부상입음

부상? 어디 다쳤어?

마음이 다쳤어

.. 니가 나비야? 갑자기 마음은 왜 다치고 난리

그냥

ㅡㅡ?

그런 게 있다




물을 끼얹고 왔나 애가 답지 않게 싱겁게 구니까 이여주 눈 게슴츠레 뜨고 훑어. 안광 양호 피부도 뽀송뽀송 머리도 감은 것 같고 좋은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이상할 거 하나 없는데 자꾸 탐탁치 않은 눈깔로 쳐다보잖아.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한숨 삼키고 막 입술 축이면서 이걸 따져 말어 이런 표정으로 애타게 만들어. 참을 인 열 번 새기며 기다리 이여주 결국 게이지 폭발해서 이동혁 멱살 잡아.     




빨리 말 안 해? 뭔데 뭐냐고!!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얘기해 뭐 뭐 뭐 뭐가 불만이야 ㅡㅡ

ㅋㅋㅋㅋㅋ 어쭈 안 놔?

어허 ㅡㅡ

ㅋㅋ 됐고 야

뭐가 됐어 하나도 안 됐어 여기서 된 건 이여주 미모 밖에 없음

..; 오반데

누나가 관심 가져줄 때 얘기하세요 안 그럼 니 쫓아내고 잔다 걍

.. 야

뭐 

니는 낯짝에 너무 약해

엥? 낯짝? 갑자기 뭔 소리야

아이러니네 낯짝에 약하면 나한테도 약해야 되는데 약한 정도가 아니지 걍 끔뻑 죽어야 되는 거 아니냐?

... 뒤지고 싶어? 제대로 얘기 안 해?

뭐냐 아까 황인준이랑 있을 때 엄청 쑥스러워 하더만

아~ 인준이는, 

야 얼마나 봤다고 벌써 인준이래 황인준이야

..? 아 너 설마..

... 뭐 뭐가

위기 의식 느껴? 너보다 잘생긴 거 같아서? 자칭 킹카 자리 뺏길 거 같고 그래?ㅋㅋㅋ

ㅋㅋ 하... 야 니는.. 됐다

ㅋㅋㅋ 야 걔 잘생겼더라 약간 어른들한테 예쁨 받을 거 같은 상이야




이여주로 말할 것 같으면 남자 한정 철저하게 따지는 외모지상주의. 그런 본인의 친구로 지내는 걸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이동혁한테 귓구녕 닳도록 얘기한 적도 있어. 




그림도 잘 그린다며 어울려 인준이는 약간 서양화 쪽이야 순수예술

예술 좋아한다 내가 이카소 이카소 하니까 진짜 카소라도 되는 줄 아나봐

카소가 아니라 피카소거든? ㅡㅡ

내가 그걸 모르겠냐? 내가 그 시대 파리지앵이었으면 카소랑 예술적 담화를 나눴을 거라고

오늘 왜 이렇게 예민하지? 어? 급식 잘못 먹었냐? 급하게 먹었지 또 그래서 일찍 올라와서 나 방해하는 거지? 

뭘 방해해 바빠?

꿀잠 자려고 했다고

; 아 자는 건 오바지 나랑 놀아 심심해

지금 놀아주고 있다고 생각 안 함?

.. 야 근데

또 왜

아니다

ㅋㅋㅋㅋㅋ... ㅎㅎ ㅋㅋ




이여주 이제 해탈. 어이없어서 실없는 웃음도 나와. 니 진짜 왜 그래?ㅋㅋ 어디 아파? 너 나한테 뭐 죄진 거 있냐?! 아니지 니 성격에 뻔뻔하게 말하고도 남았겠지. 더위 먹었어? 동혁이 더워? 얘 데리고 매점 가야 되나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여야 되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이여주, 본인 책상에 팔 얹고 턱 괴고서 별안간 빤히 보는 이동혁 이마에 손 갖다대. 그러자 이동혁 흠칫한다.




뭐야.. 왜 왜

열은 없는데? 뭐지

그러면서 은근슬쩍 사람 마빡 만지려는 수작 모를 줄 알어?

수작이 아니라 희생

그럼 더 곤란하고 뭔 내 이마 좀 만지겠다고 그 고운 손을 희생해 너 나 사랑해?

ㅋㅋ 꺼져... 제발 제발! 사랑은 무슨

허..

... 나 지금 진짜로 상처 받았어 어떡하냐

아 왜 사랑한다고 해줘? ㅡㅡ 내가 미쳤늬..?

엎드려 절받기 사절이야

.... 엎드려 절받기..?

.....

그거 아님 뭐 받아줄 거라는 거? 뭐야; 진짜 이상한데?

ㅋㅋ 아 뭐가 야 배고프다 너 왜 급식 안 먹음

말 돌리지 마세요 아저씨

ㅋㅋㅋ

ㅋㅋㅋㅋ야 뭐야 왜 상처를 받아? 너 나 좋아해?




웬만하면 장난으로 넘어가겠지만 이동혁이 진심으로 상처받았단 표정을 하니까. 




아니 뭘 그런 걸 물어봐




...? 더 혼란스러워진 설탕이. 솔직히 이것도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물어본 건데 이동혁이 찐으로 당황한 거 같잖아. 예상 밖 전개에 동공지진 와. 얘 여기서 왜 안 받아쳐? 이런 걸로 한두 번 놀아본 것도 아닌데... 진짜 이상하게 진짜 의심되게 왜 이러는 거냐고.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고요한 정적이 10초를 넘기고 있는데 그때 이동혁이 설명하는 모션 취하면서 이래.







아니 봐 너 외모지상주의라매 내가 봐도 그런 거 같애 진성 변태인 이유도 약간 그 연장선이라고 봐야지 변태들이 아무거나 먹냐? 하나하나 까다롭게 다 따져가면서 먹는다고 그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애한테 인정을 좀 받고 싶다.. 뭐 이런

.....

ㅋㅋ 하... 그니까 내 말은

.......................

.. 나도 잘생겼다고

.. ㅋㅋ

...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ㅠㅠ

ㅋㅋㅋㅋ 나 갈게

아 앉아 ㅡㅡ ㅋㅋ 너 내가 너한테는 잘생겼단 말 안 해줘서 삐진 거?

ㅋㅋ 어^^

ㅋㅋㅋ ㅠㅠㅠ 아... 진짜 대박이다

그래 내가 이렇게 가오가 없다

야 알겠어 그럴 수 있어 근데 남자가 그런 걸로 삐지면 안 된다 그게 미남의 미덕이야 야! 너 잘생겼어 기죽지 마 내가 말 안 해도 넌 타고나길 미남이야 언변도 좋고 센스도 좋고 어? 인기 많잖아 너 게임도 잘해 지존권도 쿨하게 쏘고 아 이거면 끝났지

그래.. 고맙다

ㅋㅋㅋ 너 더위 먹었나 봐 누나가 아이스크림 사줄까? 지금 매점 가?




그러자 이동혁 마른 세수하는 것처럼 본인 얼굴 막 쓸어만지더니 고개 저어. 이여주는 그거 보면서 킥킥 깔깔 허리 젖혀가며 웃고 이동혁은 바닥난 자존심과 가오의 여운을 느끼듯 잔잔한 헛웃음 흘려.




너무 재밌다...... 나 잠 깬 거 같애

날 이렇게 대하는 여자...

내가 첨이지 엥 근데 첨은 아닐 거 같은데; 너가 연옌이야? ㅡㅡ

이거 회복 좀 걸릴 거 같은데 어떡하냐

아이스크림 사준다니까ㅋㅋ 그거 먹고 떨쳐버리쇼 왕자님

ㅋㅋ 아이스크림 말고 더 큰 거 받고 싶은데

뭐 

너 수학여행 가지?

엥 당연히 가지

그럼 그때 말할게 나 고민 좀

잠만 잠만




이여주 그대로 일어나려는 이동혁 팔 휙 잡고서 물어. 이거 약간 소원권 느낌인데? 뭘 그렇게까지 하지? 죽을? 그러자 이동혁 어깨 으쓱이면서 대답해. 




왕자 자존심 벅벅 긁혔는데 그정도도 못 바래? 




음. 논리가 좀 이상한데 뭐 소원을 빌어봤자 하루 꼬봉 편의점 털기 이런 거겠지 싶어. 장난끼는 심해도 애가 착해가지고.. 글고 좀 귀여워 보이는 거야. 




그래서 걍 알겠다고 하면서 등 토닥토닥 두들겨준다. 잘생긴 동혁이 나중에 봐요~ 대놓고 놀리니까 포기한 듯 손 휘휘 저으면서 퇴장하는 이동혁. 이여주는 허리춤에 흘러내린 담요 올려 덮고서 생각해. 고작 잘생겼단 말 듣고 싶어서 저런다고? 나한테? 쟤 진짜 나...




좋아하나?




방금 전의 이동혁 말투 행동 표정 다 곱씹던 이여주. 고개 도리도리 저으면서 엎드려.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학원가고 싶다 그림 그리고 싶다 원장님한테 까이고 싶다. 일주일 내내 야자 하려니까 죽을 맛이야. 같은 반 친구들 우는 소리 내면서 8,9교시 준비할 때 당당하게 가방 메고 빠이~! 약올리면서 나가는 거 진짜 짜릿했는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힘이 안 나. 지금 가서 월말평가 보면 이제노 가뿐하게 이길 수 있을 거 같고 그래.




그래도 어떡해 공부해야지. 그래야 최저 맞추지. 6등급 무시하던 이민형 코 납작하게 해주려면 공부해야지 어쩌겠어. 에휴 하 휴 하 한숨 내쉬면서 가방에서 연습장 꺼낸 이여주. 오늘은 교과서 본문 모조리 다 외울 작정으로 토끼 박힌 볼펜 쥔다. 




그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연습장 펼쳤는데 세상에. 전날 밤 김소금한테 편지 쓴다고 연습하던 게 보여. 식겁해서 슥 공책 닫고 두리번. 다행히 야자할 때는 책상 다 개인으로 독립시켜서 본 사람은 없는 거 같아. 안도의 한숨 내쉬면서 최대한 소리 안 나게 찢는다. 지익.. 찍... 멈칫 찍.. 찍. 깔끔하게 찢긴 종이 아무렇게나 구겨서 가방 안에 쑤셔넣어. 




오늘은 자리를 안 바꿔서 김여주가 저 멀리 앞에 있어. 동글동글한 뒷통수 보면서 몰래 카톡 하나 보내. 열 김여주 빡공하네 귀여워. 김여주 한 번 집중하면 옆에서 치킨을 흔들어도 모르기 땜에 답장은 안 기다려. 중간고사가 얼마 안 남아서 그런지 다들 완전 집중모드. 그래서 이여주도 오랜만에 빡공한다.




쉬는 시간 댕댕댕. 종 울리자마자 이여주 앓는 소리내면서 앞자리에 앉은 친구 등에 토끼 머리 쿡쿡 찔러. 힘들다. 지선아 힘들어. 나 집에 보내줘. 그러니까 큭큭 웃으면서 야 우리 튈래? 이러네. 잠깐 솔깃해서 벌떡 몸을 일으킨 이여주, 마침 밝아진 핸드폰 화면 슥 봐. 이제노한테 온 카톡.




[아이디어 스케치 챙겨서 쉼터로 와]




아 맞다. 맞다 맞다. 이여주 허겁지겁 오키오키 답장 보내고서 가방 뒤져. 얘네 중간고사 끝나자마자 실기대회 나가는데 이제노랑 같은 파트 신청해서 원장한테 컨펌 받기 전 서로 피드백 해주기로 했었거든. 그래서 손에 잡히는 에이포 다 챙겨서 헐레벌떡 나간다. 그냥 이제노 볼 생각에 신난 거야.




그러다 쉼터 코앞에서 멈칫. 아까 대충 구겨서 집어넣은 종이가 사이에 낑겨있는 거. 와 좆될뻔; 혼자 중얼거린 이여주 교복치마 주머니에 대충 넣으면서 이제노한테 인사해. 




하이 하이 늦어서 쏘리




이제노 고개 끄덕이면서 대답해. 




오늘은 대충만 봐주고 내일 마저 하자 시간 빠듯할 거 같아

긍까 나 너 아니었음 까먹고 있었을 뻔




이제노 맞은편에 앉아서 스케치한 거 촥 펼쳐두는데 왠지 민망해져. 본인 껀 에이포에 막 끄트머리 구겨져 있고 설명도 휘갈겨서 열심히 들여다봐야 되는데, 이제노는 깔끔하게 검정 크로키북 하나. 대충 훔쳐봐도 잘 그렸어.




짱난다 잘했네 이제노

너도 잘했어

인사치레 집어치워

ㅋㅋ 나 빈말 안 하는 거 알잖아 

알아 나 이번에 좀 열심히 했어 대상도 노려볼 만하지 않아?

대상은... 좀 양심이 없고

흥이다

너 맨날 개체 끝에 이상한 날개 달더라 정체가 뭐야 도대체

이상하다니 이상하다니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내 욕망을 투영한 거야

주제에 맞게 투영을 해 지금은 날 때가 아니야

.. 맞아 사실 고치려고 했어

할 거 없어서 채운 거지?

.. 맞아 어떻게 알았지?

뻔하지 너는




여기 말고 여기에 달던가. 샤프 쥐고 이여주 그림 위로 휙휙 스케치 덧붙이는데 분하게도 이제노 아이디어가 꽤 괜찮은 거. 낼름 먹기는 좀 그렇고 아 뭔데 왜 왜 ㅡㅡ 짜증내면서 뭐라하니까 이제노 조용히 웃어. 가져갈 거면 얼른 가져가. 무심하게 툭 말하니까 이여주 기다렸다는 듯이 넵 땡큐! 하고 흐흐 웃는다.





얘네 있는 쉼터는 어떻게 생겼냐면 둥근 테이블 몇 개에 작은 책꽂이 다섯 개. 자연친화적으로 독서하라고 나무 모형도 몇 개 심어져 있는 나름 여기서 핫한 플레이스. 점심 시간엔 애들로 북적북적해서 빈자리 찾기 어려운 곳인데 야자 때라 그런지 아무도 없어. 짝남 얼굴 감상하기 딱 좋다는 뜻.





그러다 눈에 띈 이제노 팔. 오른쪽 팔꿈치에 커다란 데일밴드가 붙어있어. 그때 넘어지고 팔꿈치도 까졌나 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장면에 입 꾹꾹 다문 이여주. 그러다 슬쩍 물어봐.




너 여기도 다쳤어? 

그냥 좀 까졌어

아팠겠다 근데 너 그때 넘어지고 쪽팔렸지

아니 그게 왜 쪽팔려

멋있는 척 하다가 넘어진 거니까 무릎은 괜찮아? 그때... 피 철철 나던데 흉 남는 거 아냐?

흉은 안 생길 거 같아 생겨도 뭐 상관없고

야 남자는 무릎이 생명이야...

무릎이 왜

몰라? 암튼... 그래서.... 

뭐 

소금이랑 올라가면서 무슨 얘기했어?




사실 진짜로 궁금한 건 이거였다. 소금이랑 무슨 얘기했는지. 이설탕이 보기에도 소금이가 약간 이제노한테 호감이 있는 거 같잖아. 뭔가 진전이 있는 대화를 나눴을까? 너무 궁금해. 두근두근. 이여주 괜히 떨려서 조용히 심호흡해. 그러자 이제노 본인 팔꿈치 슬쩍 보면서 이래.




별 얘기는 안 했고 이거 김여주가 붙여준 거

아.. 밴드?

그냥 냅두면 큰일난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더라 연고랑 밴드 빌려온다고




글쿤. 소금이가 붙여줬구나. 고개 끄덕이면서 리액션 하는 이여주. 그래서 안 떼고 있는 건가? 약간 너덜너덜한 거 같은데. 새걸로 갈아야 될 거 같은데. 음... 글쿤. 혼자서 또 고개 끄덕끄덕. 기분이 막 우울한 건 아니고 걍 모르겠어. 




그래서 종소리 울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언제 그렇게 야자 시간을 칼같이 지켰다고. 오늘은 감독도 없어서 좀 널널한데도 세상에 둘도 없는 모범생인 척 에스키스 정리하면서 이래. 야야야 종쳤다 나 먼저 간다? 이제노 대답도 안 듣고 허둥지둥 쉼터 빠져나온 이여주. 교실에 딱 들어서니까 김소금이 안기면서 중얼대.




어디 갔다 왔어 나 울고 있었잖아

ㅋㅋ 나 보고 싶었어?

엉 우리 이번 야자는 같이 앉으까..? 혜영이한테 자리 바꿔달라고 할까?

음... 그럴까?




그러다 스치는 생각. 이건 진짜 무의식인데 곧 터질 사건을 본능적으로 직감하는 거지. 동시에 허전한 듯한 치마 주머니. 어라 우겨넣은 종이가 보란 듯이 안 느껴져. 여주야 잠깐만. 김여주 떼어놓고 주머니 위로 손 더듬더듬 하는데 너무 얇고 반듯해. 주머니 안으로 슥 손 넣어봐도 잡히는 게 없네. 순간 소름이 확 돋으면서 이제노 얼굴 떠올라.




이여주 어디 가!




김여주 외침에도 냅다 뒷문으로 뛰쳐나간 이여주. 쉼터로 곧장 달려가. 아니나 다를까 이제노가... 무언가를 보고 있어. 아 제발. 제발.




야 이제노..!




일단 이름부터 외치고 본 이여주... 이제노 손에 들린 종이가 매우 구겨져 있다는 걸 알아채고 절망해.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가서 휙 낚아채면서 말해. 야 이거 내꺼야. 어차피 아닌 척 잡아떼도 소용없거든. 글씨체는 둘 째 치고 내용만 봐도 누가 썼는지 유추 가능해서.




이거 읽었어? 어디까지 읽었어?

... 너가 쓴 거 맞아?

아니.. 어디까지 읽었냐고 내가 먼저 물었잖아..




이제노랑 눈 마주치고 있는 게 이렇게 떨릴 일이었던가.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공포영화라도 본 것처럼 막 불안해. 쪽팔려. 본인인 거 알까? 이름은 없었는데. 아닌가 이름 적었나 내가? 




이름을 적었든 안 적었든... 그게 뭐가 중요해. 이설탕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게 저라는 걸 눈치챈 것 같아. 나 진짜 어떡하지. 걍 모르는 척 나오지 말 걸 그랬나. 그럼 이제노는 못본 척 모르는 척 해주지 않았을까. 별의 별 생각 다 드는데 이제노 표정이 너무 차분해서 더 무서워. 




설상가상 엎친데 덮친 격으로 김소금까지 등장해. 




여주야 여기서 뭐해 어? 제노 안녕

오랜만

ㅋㅋ 우리 아까 봤는데요?

ㅋㅋ 얘 좀 데리고 가 

여주? 왜왜 둘이 뭐하고 있었는데?

실기대회 얘기 좀 한다고 내가 불렀어 

아~ 그래서 뛰어나간 겨? 난 또 뭔일 있는 줄 알고 따라나왔네! 그거 종이는 뭐야?




김여주가 기웃기웃 들여다보니까 이제노가 슥 김여주 앞 가리고서 이래. 너 저번에 나 빌려준다던 노트. 지금 줄 수 있어? 그러자 김여주 박수 짝 치면서 아! 오케 지금 가져올까? 그래주면 고맙고. 




자연스럽게 화제 돌리는 이제노 보고 이여주는 입술 깨물어. 지금 기분으로는 도와주는 게 하나도 안 반가워. 나 어떡하지. 왜 이따구로 들키지? 왜 이렇게 칠칠맞아서 정리 좀 할 걸. 편지는 왜 쓴다고... 본인의 습관까지 탓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으니까 이제노가 작게 말해. 




김여주 오기 전에 숨겨




그 말에 머리 한 대 얻어 맞은 거 같아. 그래도 지금 김소금한테 들켜서 좋을 건 없으니까 느릿느릿 접어서 주머니에 넣는 이여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와. 일단 이제노가 너무 미워. 너무 서운해서... 어쩔 줄 모르겠어.





이여주 홀린 듯이 중앙계단으로 직진해. 곧장 아래로 내려가는데 이제노는 잡지도 않고... 김여주 목소리도 들리는 거 같은데 일단은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그런 이여주를 가만히 바라보는 이제노.













약간 표정이 애매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한편 우다다다 계단 내려가던 이여주. 멈춰서 고민해. 다시 올라가? 말아... 그래 말자. 인생 거하게 망해버리자. 극단적이게 돼버린 설탕. 아무래도 뭐라고 썼는지 기억도 제대로 안 나서 다시 읽어봐야 될 것 같아. 1층 복도 서성이다가 결국 정문 바깥까지 나온 이여주 운동장 스탠드에 풀썩 앉아. 구긴 종이 꺼내고는 벌벌 떨리는 맘으로 천천히 읽는다. 선생님한테 들킬지도 모르는데 그런 거 하나도 신경이 안 쓰여.









아까보다는 조금 차분해져. 한 번 읽었을 때는 이제노 같은데 천천히 진짜 천천히 두 번 세 번 읽어보면 마냥 이제노 같지는 않아. 김소금이랑도 친구고 학원을 같이 다니는 친구... 솔직히 이제노가 제일 유력하기는 한데, 학원에 남사친이 이제노 밖에 없는 것도 아니잖아. 오며 가며 인사하는 남자애들도 몇몇 있고 그중에 같은 학교 다니는 애도 있는데.




근데 암담하다. 애써 희망회로 돌려볼 수는 있지만 눈치 빠른 이제노가 지금쯤 엇갈린 퍼즐 다 맞추고 있지 않겠냐고.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여주 오기 전에 숨겨

김여주 오기 전에 숨겨




귓가에 맴도는 이제노 목소리. 나쁜 새끼... 그렇다고 그걸 그렇게 말하냐?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면서 그걸... 화제 돌려주면 뭐해. 나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닌데? 병을 주고 약을 줬어야지. 약 주고 병으로 후두려 때리는 게 어딨어. 나쁜 놈. 이여주 쪽지 구겨서 쥔 채 무릎에 얼굴 묻는다. 




여주야...




그때 등장한 김여주. 어떻게든 찾아왔을 거 예상해서 이여주 별로 안 놀라. 짝사랑까지 이따구로 들킨 마당에... 걍 초연한 표정으로 옆자리 툭툭 두들겨준다. 그러자 살포시 앉은 김여주 이여주 눈치보면서 우물쭈물해.




 여주... 기분 안 좋아? 무슨 일 있었어? 혹시 이제노랑 싸운 거야?




고개 저은 이여주, 김여주 반대편 본인 오른쪽에 널부러진 쪽지 안 보이게 하고서 대답해.




싸운 건 아닌데 그냥 애매해졌어

왜..? 

.... 여주야

응 

나 너한테 말 안 한 거 있어

뭔데..? 

나... 

.. 사실 좋아하는 사람 있어

어?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뜬금없는 고백에 김여주 완전 놀란 눈 해. 좋아하는 사람? 누구? 근데 그게 제노랑 관련이 있어? 김여주 머리 막 쌩쌩 돌아가는 소리 다 들리는데 이여주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어. 더 이상 숨기는 것도 너무 힘들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말하자 싶은데, 이제노 생각하니까 그냥 마음이 턱 막혀. 이미 멀어진 거 같고... 끝난 거 같고. 내가 다 망친 거 같고.




소금

너 아직도 이민형 좋아해?

어? 민형이 오빠? 민형이 오빠...

.....

모르겠어 너한테 여친 있다고 들었을 때 있잖아 그때 만큼 막 슬프지는 않아 정리된 건가 이 정도면

정리된 거지 그럼

그런가... 근데 이건 왜? 




이미 물은 엎질러져서 말해도 될 거 같은데... 쉽사리 입이 안 떨어져서 침묵 또 침묵. 그러다 김여주가 진지한 목소리로 불러. 여주야. 응... 완전 힘없이 대답한 이설탕, 이어지는 김소금 물음에 멈칫해.  




혹시 이제노야? 너가 좋아하는 사람




이설탕은 가만히 김소금 쳐다봐. 방금까지는 걍 모르겠다 다 말하자 싶었는데 막상 저렇게 물어보니까 망설여져. 초집중하고 김소금 눈동자 뚫어져라 봐. 소금이의 표정을 조금이라도 읽어서... 어떻게든 유추해서 좋게 좋게 본인은 어떻게 되도 좋으니 그냥 남들 좋게만 평화롭게 조용하게 최대한 무사히 끝내고 싶거든. 




응 좋아해




근데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봐... 그냥 본능적으로 툭 진심이 튀어나와 버렸어. 그리고 이어진 작은 침묵. 정적. 이여주는 식은땀 흘리며 한숨 삼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걍 지구가 멸망하길 비는 수 밖에...
















한 독자분이 쪽지로 그랬어요

설탕이랑 소금이 보고 조미료들이라 부른대요

조미료즈래 나 너무 귀여워서 벅벅 웃었잖아

.. 근데 당신들은 눈물을 벅벅 흘리겠지

.. 미안혀


*짤은 여름 느낌+상황에 적절한 표정 오백시간동안 찾다가 걍 때려쳤고요 자체 필터링으로 여름 하복 입은 아이들로 상상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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