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국


A. 처음엔 생각했죠, 누구 홀리는 데 도가 튼 인간이라고.

웃지 마십쇼. 그 당시엔 신방과 김태형 별명이 인간윙크병기였습니다. 지나가는 개랑만 눈 마주쳐도 윙크한다더라 썰이 돌았다고요. 멋모르고 들어간 동아리 술자리에서 자꾸 제 쪽을 보고 윙크를 하는 거예요? 전 제 뒤에 누가 있겠거니 하고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죠. 암만 그래도 그렇지 통성명밖에 안 한 사이에 윙크 세례 너무하잖아요. 갈매기살 먹다 체할 것 같아서 먼저 물어봤다니까요. 선배, 인공눈물 필요하세요? 

동아리 사람들이 다들 김태형은 애먼 인간 꼬시는 낙에 산다 그랬어요. 소문이 자자했어요. 대숲엔 가끔 욕도 올라왔죠, 홀려놓고 나 몰라라 한다고. 아 웃을 일이 아니라니깐요? 가만 있어도 들러붙을 판에 여기저기 웃어주고 잘해주고 온몸으로 '좋아해줘' 오라를 뿜어놓곤 사람 마음 나몰라라 하고 건너가는 거예요, 악질이죠, 타고난 악질.

그 이후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 이 사람 애정결핍. 한 학기 다 가기도 전에 동아리 여자애 여럿이 고백하고 차이고 동아리 탈출했습니다. 남탕 됐다 이거예요. 그 주범이 낮에는 학교에선 꽃 꽂고 웃음 흘리고 다니면서 밤에는 그 남탕이랑 고깃집 술자리 와서 걸걸한 목소리로 '야 술 빼다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하고 군기반장 했어요. 그때쯤 든 생각은, 아 미친놈.

탈출은 지능순. 근데 어디 입대 얼마 안 남은 1학년 남자애들이 쉽게 동아리 버리나요? 그거 아싸 지름길이라 못 그래요. 전 미대라 과에 남자도 썩 없고, 그땐 은근 내성적이었어서 동아리가 세상의 전부 같고 나가면 세상 무너질 것 같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 주당 동아리에서 술고문 꾸역꾸역 당하면서, 그래도 밥이라도 사주니까 니들이 선배다 옛다 하는 마음으로 끌려다녔다고요. 그치만 술 이기는 사람이 어딨어요. 종내엔 도저히 안 되겠어서 소주잔 마시는 척 하다 허리 숙여서, 고깃집 불판 밑에 왜 그 동그란 플라스틱 쓰레기통 있죠, 거기로 버렸거든요. 뭐 줍는 척 하느라 몇 초 정도 허리 숙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머리가 쑥 하나 더 내려오는 거예요. 테이블 밑에서 윙크병기와 은밀한 눈맞춤. 헌데 웬일로 윙크는 안 하고 삼백안으로 검은 동자를 반만 서늘하게 뜨고 노려보는 거예요. 와 그 날이 어제처럼 생생하네. 놀라서 못 움직였다니까요. 그니까 가까이 와보라고 까딱까딱 손짓해요. 예? 이러면서 쪼다처럼 귀 들이댔더니 술에 젖은 목소리가, '야, 술 빼다 걸리면 어떻게 된댔어?' 해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뫄뫄뫄 어떻게 되는지 알지?' 묻기만 했지 그 어떻게가 어떤 건지는 들은 기억이 없는.... 그래서 대답 못 하고 있었더니 또 손을 까딱까딱해요. 이미 엄청 가까운데. 귀에 바짝 입 갖다대더니 속삭이더라고요. '나한테 뚫리는 거야.'

세기의 미친놈이 나타났다. 그 즈음 김태형은 꼬닥꼬닥하게 컬이 들어간 헤어스타일이었는데, 그게 절묘하게 양아치와 미친놈 그 경계의 느낌이었달까.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네요. 지금은 엄청 다듬어진 거예요, 그땐 패션이 미친듯이 날뛰는 망아지 같았어. ...제가 누구 패션 지적하고 그럴 입장은 아니지만요, 곱씹자면 그랬다고요. 근데 그 누더기 같은 조각들이 모이면 묘하게 예술작품 느낌 아시죠. 머리는 웬 중세귀족풍보드라운웨이브, 맨발에 순백의플리플랍, 옷은 기분따라 제멋대로라 하루는 라이더재킷 하루는 무릎늘어난츄리닝. 아무튼 그때 김태형은 말로 설명이 안 돼요. 누가 봐도 정체가 궁금할 만한 사람. 그게 그때의 신방과 김태형.

고깃집에서 과음한 바람에 도저히 3차는 못 가겠다고 발빼고 나오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요. 돌아보니까 김태형이었습니다. 


선배는 3차 안 가세요?
가.
지금 3차 안 가시고 계시잖아요.
간다고.
제가 3차인가요?
아니 너한테 갔다가 3차 간다고.
저 왜요?
데려다주고.
...선배 지금처럼 말도 없이 몰래 혼자 뒤에서 데려다주는 건 보통 미행이라고 합니다.
너는 평소에 말도 없다가 취하니까 혀 잘 돌아간다?


그날 별일 없었어요. 집도 모르면서 데려다준다고 나섰다가 저 언덕 위에서 자취하는 거 알고는 엄청 헥헥대면서 후회하더라고요. 야 너는 이걸 매일 오르락내리락 하냐고, 미친 허벅지 펌핑 지대루다 이러면서. 아 방금 저 김태형 성대모사한 거예요, 똑같죠.

체력 완전 저질. 가는 길에 자기 힘들다고 편의점 들러서 아이스크림 사주더라. 다시 언덕 올라갈 땐 거의 제가 이고 끌고 업다시피 했어요. 힘들다고 가기 싫다고 얼마나 징징거리던지. 참 내.... 자취방 도착했는데 앞에 현관에 턱하니 쪼그려앉아요. 문이 막혀서 어떡해요 저도 같이 쪼그려 앉았죠.


니가 그 유명한 조소과 전조소지. 조소과에 조소 그 자체가 있다던데 안 봐도 너다.
칭찬을 되게 칭찬 아닌 말투로 하는 재주가 있으십니다 선배.
그르냐.
선배도 유명하세요.
개새끼로?
......
아냐?
선배.
어.
선배 아프시죠.


그때 김태형 길다란 눈이 살짝 커졌던 것 같고. 암튼 그때야 쳐다보더라고요. 


선배 애정결핍이죠.


저는 혹시라도 결례가 될까봐 큰 결심하고 물어본 건데. 딱 5초 후에 김태형이... 울었어요. 그런 운 게 아니라, 너무 배 찢어지게 웃다가 울었어요. 와 웃음소리 한번 호탕하더라 동네 사람들 다 깨는 줄 알았다고요. 


그 뒤로 이야기가 좀 이상해집니다? 어디서 번호를 알았는지 모르겠어요, 뭐 사실 명색이 같은 동아리니 번호야 어디서든 구할 수 있었겠지마는. 밥 사주겠다고 사람 불러내선 분식집에 웬 재벌2세 포스로 다리꼬고 앉아 있더라고요. 이모, 더운데 선풍기 여기로 옮겨도 돼요? 쩌렁쩌렁 묻고는 대답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선풍기 갖고 와서 앉아버려. 와 이건 진짜, 매일 오는 단골이거나 미친듯한 친화력이다 생각했습니다. 분식집 이모가 너 이럴 거면 니 선풍기 들고와서 하나 놔두라고 김태형 등짝을 찢어지게 때리고 갔는데, 진짜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김태형이 맥반석오징어처럼 몸을 말 때는 살짝 고소했고.

저 그냥 라면 시켰는데 김태형이 갑자기 제 말 끊고는 '야, 떡라면 먹어' 그랬어요. 아 네... 떡라면이 500원 더 비싸서 그러겠다고 했어요. 가타부타 토 안 달고 그러겠다 하고 조용히 있으니까 앞에서 김태형이 막, 자기가 왜 떡라면 먹으라고 했는지 설명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어. 그 눈빛이 너무 이글이글해서 일부러 안 물어봤어요, 끝까지. 물어봤자 뻔했겠죠. 술 빼다 걸리면 뚫린다는 거 연장선 아니겠어요? 

둘이서 땀흘리면서 라면 실컷 먹는데 갑자기 김태형이 저 똑바로 보면서 그래요. '어.' 전 그거 감탄사인 줄 알았잖아요. 그래서 그냥 계속 라면에 떡 건져 먹는데 김태형이 또, 더 똑똑한 목소리로 '어' 그래요.


뭐가 언데요?
애정결핍이냐며.
......
맞는 것 같아.
......
그니까 좋아해줘.


오래된 미니 선풍기가 테이블에서 탈탈 돌아가다 멈췄습니다. 단무지 담던 이모가 와서 선풍기 궁딩이를 틱틱 쳐보곤 고장났나 배터리 다 됐나 중얼중얼하더니 새 선풍기로 바꿔줬어요. 그러는 내내 김태형이 저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어요. 전 그날 목구멍에 떡 걸려 체했고요.


그 뒤론 죄다 그런 식이었어요. 흐믈흐믈. 제가 스파이더맨 진짜 좋아하거든요. 개봉 2주 전에 이미 개봉날 아이맥스 정중앙 로얄석으로 끊었어요, 제 자신을 위해서. 근데 개봉 이틀 전에 김태형이 문자로 묻습디다, 스파이더맨 보러가자고. 


형 저 이미 예매했어요.
언제?
20일이요.
개봉일이네. 어디서 보는데?
용산 CGV요.
몇 시?
4시20분.
아이맥스네. 좌석은 뭔데?


좌석까지 물을 땐 설마설마 했거든요? 근데 아니나 다를까.


G17이요.
G18 비었네. 그럼 그날 보자.


...뭐, 이런 식? 모든 게 이런 식? 뭐가 이렇게 자연스럽고 뭐가 이렇게 사람이 결리는 게 없고 뭐가 이렇게... 솔직히 인정, 나 그땐 좀 내성적이었거든요. 조소엔 큰 취미 없는데 그냥 혼자서 몰두해서 집중하는 게 취미였을 정도로요. 근데 와 이 인간은 인간관계 풀어나가는 재주가 남달라, 성희롱만 안 하면 인생 스승으로 삼고 싶다, 근데 심지어 그 성희롱도 기분 안 나쁜 게 문제야, 이 사람은 내가 기분 안 나빠하는 것도 미리 알겠지? 나 하루종일 그 생각했어요. 진짜 신기하다 생각하면서. 의외로 친해지니까 윙크는 별로 안 쳤어요.

그날 영화 보고 나서였나? 아니다, 그 이후에 뭐 재밌는 영화 하나 더 나왔는데 그것도 얼렁뚱땅 같이 보고 나서였나. 죄송해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무튼 그때 본 영화가 시간이 늦었어요. 애매해서 영화 보기 전에 밥 먹고, 영화 끝나고 나선 맥주만 한잔 하고 바로 집 갔단 말이에요. 둘 다 학교 근처 자취하는 거 매한가진데 이 형이 또 굳이 굳이 언덕오른다, 데려다주겠다고. 언덕 오르면서 또 막 곡소리 낸다, 아이고 정국아 닌 돈 안 주고 허벅지 펌핑해서 좋겠다야 우리 정국이 이두박근 함 만져보까 조소하느라 팔도 펌핑됐는지이 하고 아주 사투리 섞어서 할배 말투 흉내내면서, 어떤 건지 알아요? 제가 진짜, 이제는 사람이 너무 종잡을 수가 없으니까는 튕기는 게 일상이 되더라고요. 


아 절로 가요 좀.
나 무굔데.
......진짜 싫다.
말과 다르게 입이 웃고 있다?
형은 정말, 입만 다물면 멋있는데.
나 멋있어?
......
너도 멋있어. 새파란 게 팔십 먹은 노인네처럼 잔소리할 때 입모양이 너무 귀엽구.


그날도 자기 죽겠다고 곡소리를 해서 언덕 중간 편의점에서 한번 쉬었고요. 편의점에서 캔맥 하나씩 들고 갔어요. 산 위에 자취방이라 사람도 없고, 밤이라 서늘하고. 그리고 현관에서 1분 거리에 공원 초입이 있어서 막 아줌마들 허리 돌리는 운동기구랑 벤치 있거든요. 거기서 캔맥주했어요. 맥주 탁 까자마자 김태형이 얼굴 들이밀고 '술잔 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속삭이더니 허공에 쭈압 뽀뽀하고 단숨에 빠졌어요. 완전 치고 빠지기 달인.

...이라고 생각했는데 불과 30분 뒤에 그 분이 빠지는 걸 모르고 치기만 하더라고요. 아니 그니까, 나 술 다 마시고 이제 슬슬 들어가야지 하고 일어나려는데 팔을 딱 잡아요. 너 왜 술 안 빼냐, 나한테 꽂히는 게 글케 싫어? 이런 농담을 서슬퍼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하니까 이거 뭐 어떻게 반응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데, 김태형이 남은 캔맥주 시원하게 꺾어버리곤 입가 촤악 손등으로 닦아주고, 퍽 대단한 결심한 것처럼 그래요. 목소리 촤악 깔고.


함 하자.


가만히 서 있으니까 기다리다 못해서 또 한번 제 팔 흔들고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재방송.


하자, 나랑.
...뭐를요.
뭐겠어.
......대박이다 진짜.
너 나 좋아하잖아.


저는 진짜 그때 그 충격을 잊지 못하겠어요. 한번 하자는 것보다, '너 나 좋아하잖아' 이 대사가 만 배는 더 충격적이었어요. 실탄이 머릿구멍을 매섭게 뚫고 지나간 것처럼 삽시간에 정수리가 서늘해져서 찌릿했다고요. 전 몰랐는데, 듣고 보니 그런 거예요. 그렇더라고요. 나도 몰랐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래서 한참 멍하게 보기만 했는데 김태형이 그 틈을 캐치한 건지, 아예 막 사탕 사달라는 애처럼 조르기 시작한 거죠. 하자, 어? 한다고 닳냐? 하자, 하자, 하자, 하자 함 하자 전조소. 진짜 수십 가지 버전의 '하자'로 염불하는 걸 듣다듣다가 황당 게이지가 머리끝까지 차더라고요. 진짜 탁, 다 내려놓듯이 황당해서 물었어요. 너무 황당해서 목소리도 삑사리났던 기억.


형은 대체 뭐슨 사람이에요?


그니까 전 그때, '뭐하는 사람'인지랑 '무슨 사람'인지가 한꺼번에 궁금했던 것 같네요. 그런데 마음이 급해서 뭐슨 사람인지 물어봤어요. 목소리 뒤집어지고 말도 꼬였고, 제가 뭐 더 할 말도 없고, 안 닳는대도 그렇게 하기는 싫어서 걍 집에 혼자 들어와버렸어요. 그래, 안 닳는대도 그렇게 하기는 싫어서. 


그 뒤로 저 마음에 사춘기가 와서요. 뭐, 마침 기말고사 기간이기도 했고요. 서로 바쁘게 기말고사 치고는 후다닥 부산 가서 요양했어요. 김태형 가끔 전화 오고, 가끔 문자 오고, 가끔은 막... 술 취해서 혀 다 꼬여서 못 알아들을 음성도 남기던게 그것도 일주일을 못 갔어요. 어쨌든 나중엔 학교에 한 번 가야 해서 갔는데 그날 하필이면 동아리 창립제고 해서 딱 마주친 왕고 선배한테 소처럼 끌려갔어요. 어 근데 김태형 별로,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거예요. 여 전조소 왔느냐, 어서 내 술잔을 채워보거라!

전 그날 술 별로 안 마셨고 김태형이 아주 코 삐뚤어지게 마셨어요. 선생님, 술 깨는 데 초코우유가 의외로 괜찮은 거 알고 계셨어요? 모르셨으면 이제 아시라고요. 아니 저도 그날 김태형이 쪼꼬우유 쪼꼬우유 노래를 부르길래 그제서야 알았어요. 애처럼 쪼꼬우유 쪼꼬우유 으아앙 하는데 그거 징그럽게 보던 왕고선배가 야 막내야 가서 편의점 쪼꼬우유 다 털어오그라 해서 만 원 들고 심부름 갔습니다. 다 털어오라면서 여덟개 사니까 동전 몇 개 거슬러주더만. 이야 스무살 처먹고 대학까지 와서 초코우유 셔틀을 하는 내가 참 나다, 이런 생각하면서 달 보면서 다시 술집 걸어가는데 술집 옆 골목에 김태형이 멀쩡하게 서 있었어요. 가로등 밑에서. 나는 이해 못하는 그 펌머리에 박시한 맨투맨, 바람막이랑 세트일 것이 분명한 검은색 츄리닝 바지에 웬일로 슬리퍼 말고 운동화. 처음봤던 날 처럼 눈을 살벌하게 뜨고 손을 까딱까딱. 이리 오래요. 솔직히 좀 쫄았는데 최대한 아닌 척 우유 마시면서 쭐래쭐래 갔죠.


야 전정국이.
넵.
그간 잘 지냈냐?
넵. 형님도 잘 지내셨죠.
밥도 잘 묵고 잘 지냈더나 마.
옙.
밥이 넘어가더나?


또또 시비 건다. 또. 또오. 설설 웃으면서 눈치 살폈는데, 이상하게 이게 말은 농담처럼 사투리 섞어 그러는데 눈이 안 그랬단 말예요. 눈이 사람 찔러서 사정없이 꿸듯이. 난 그래서 그때, 아 꼬챙이에 여러번 고이 접혀 꽂히는 사각 어묵의 마음을 알 것 같아 싶더라니까요. 정말 이상하게 마음이 아프고 막. 


밥이 넘어가더냐고. 내 연락은 다 씹고.
......
미안하다 그럼 이번만 봐준다.
......
이번 학기 무사하고 싶으면 얼른 사과해.
형 저 군대 가요.


미안하다고 말하기 싫었죠. 그럼 다시 도돌이표 될 것 같으니까. 근데 앞에서 부릉부릉 막 시동 건 사륜차처럼 이러고 서 있는 걸 보니 그냥 말만 안 하고 뻐팅겨선 안 되겠더라고요. 내가 아무리 신체조건이 더 빼어나도 싸움은 무조건 미친놈이 이겨요, 더 악 받친 놈이 이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털어놓은 거예요. 개강 때문에 상경한 거 아니고 휴학계 내고 자취방 짐 빼러 상경한 거라고 말이죠. 근데 그랬더니 김태형 눈동자가 처음엔 놀랐다가, 나중엔 정말... 모르겠어요 세상에서 처음 보는 눈처럼 하얗게 비어서. 안 미안한데 이상하게 미안해지더라고요. 정말 하나도 안 미안한데.


아무나한테 다 이러죠 선배는.
......
저 탈출합니다. 


탈출은 지능순이라고 제가 말했던가요? 저 머리 좋아요. 저 자기관리의 신이라고요. 전 제가 망가지는 걸 못 참겠어요, 그대로 제가 수렁에 빠지는 그 뻔한 길을 못 두고 보겠어요. 


충성.


거기서 저는 이등병 경례하고 술집 들어가...려다가 도로 뒷걸음질쳐서 나와서 여태 멍한 김태형 손에 초코우유 들려주고 온 것 같다. 술 깨라고. 빨대도 챙겨줬던 기억이 나네요. 그 당시엔 꽤 침착했던 듯.

그리고 군대 가서는 뭐... 아 근데 상담사님 제가 왜 이 얘기 하고 있죠? 질문이 뭐였죠 선생님?








&김태형


A. 전정국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정국이 알겠죠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시는데요. 

...아니, 싸우자는 게 아니고요, 그렇게 들렸으면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이혼 상담하러 왔는데 대뜸 전정국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니까 이게 뭔가 싶어 그러죠. 저 오늘 되게 저기압이라 답이 공격적으로 나갔슴다 죄송합니다. 반성합니다. 

참고로 이혼 신청은 걔가 했어요. 아니 쌤, 생각해보세요. 걘 진짜 이상한 애야 그쵸. 싸우고 나선 절대 둘이서 화해 안 하고 '법정에서 만나' 이러고 여기 온다니까요 심지어 여긴 법정도 아니잖아요 상담실인데?


Q. 이혼 생각이 없으시단거죠

A. 걘 있대요?

Q. 있으세요?

A. 이보다 더 없을 수가 없습니다.


아주 그으냥 환장을 하겠씁니드아 슨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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