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 김비언즈@kymbianz의 웹진 <언어와 삶>에 올린 저의 글을 백업했습니다. 


@Peeper Kym

여는 말

불특정다수에게 보내는 편지에 마음이 충분히 담길 수 있을까요? 이미 따뜻해진 분들이든, 괜히 발 끝이 시리기 시작한 분들이든, 새로 불꽃을 피어올리는 분들이든, 많은 분들께 편지를 보냅니다. 


“이리 와서 몸 좀 녹여” 

🌊김파도 (@justwomyn_xx1) 

https://youtu.be/wNzHZbDukLY

🎵 가을방학, "취미는 사랑"

모닥불

모닥불 하면 올해 초 정도에 봤던 불초상-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떠올라요. 다음으로는 좀 지겨운 풍경이 따라옵니다. 수련회 때 캠프파이어를 했던 흐릿한 기억, 어쩐지 엄마를 부르게 하는 교관과 훌쩍이는 학생들의 울음소리. 지긋지긋한 광경이요. 수련회나 수학여행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전 그런 자리를 좀처럼 좋아하지 않았고 울라며 멍석 깔아주던 일정들은 더더욱 싫어했어요. 전 최루형 영화를 어쩌다 봐도(예전에는 가끔 봤습니다, 어언 과거의 일이었습죠.... 제가 소속된 글쓰기 모임 레즈라이트 버블단의 여름님이 쓰신 표현을 빌리자면, 전생의 일이었습니다요)자존심 상해 하면서 일단 우는 인간이라 그 모든 "울어!!" 시간에 울었습니다. 네... 사실 지금도 옆에서 누가 울면, 실은 그냥 티비에서 여자가 울기만 해도 따라 울어요. 어릴 때부터 이것만은 잘 고쳐지지 않네요.

그리고 지금입니다. 모닥불을 떠올리면요, 춤추는 것처럼 타오르지만 조금도 무섭지는 않은 불길과 그 불길을 빙 둘러싼 여자들이 떠올라요. 어떤 여자는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눕니다. 어떤 여자들은 여자들의 노랫소리와 불이 타오르는 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서로의 장단을 맞춥니다. 방금 또 어떤 여자가 다가와 자리를 깔고 앉았네요. 조금 멀리 떨어진 채 입을 좀처럼 열지 않던 여자는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자기에게 한껏 편한 자세로 웃음을 터뜨립니다. 어떤 여자는 떠나가서 자기만의 모닥불을 피웁니다. 적당한 자리를 보고 고르고 땅을 다져 재료를 꺼내 불을 피워올리는 일은 홀로, 또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합니다. 잠시 서성이면서 여자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던 또다른 여자는 새로 모닥불을 피우기도 합니다. 또 그 곁에 여자들이 모여드네요. 서성이던 또다른 여자는 새로운 모닥불에 다가갑니다.

제게 모닥불은 여자가 만들고 여자가 모여 여자들끼리 놀며 살며 불길을 피우는 모습 자체입니다. 바짓자락에 불이 옮겨 붙어도 모를 만큼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옮겨붙은 불을 발견한 이들에게는 물이 가득해 불이 붙은 바짓단은 타오르기도 전에 말짱해질 거예요. 좋은 불은, 다른 이에게도 옮겨갈 테고요.

내 자리가 노잼이면 안 되는데

이 광경은 제가 최근 느껴온 여성주의자들-특히 레즈비언들의 모습입니다. 전 고작 2~3년 전에 비해 확 다른 사람이 됐고 1년 전쯤에 레즈비언 정체성을 되찾기도 했어요. 근 몇달간은 여러 여자들의 도움과 애정으로 여러 번 선을 넘어왔습니다. 그럼에도 걱정은 쓸데없이 많고 타인에게 다가가는 일은 어려워요. 성격이 좀 뻔뻔해놔서 일단 사람과 마주하면 뇌를 약간 꺼둘 수 있기 때문에(그래야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어느정도 친근하게 굴 수 있지만요. 음, 약간 다른 소리지만 최근 오프라인 모임을 주최하고 싶다 얘기한 적이 있는데요. 저는 트위터에서 교류할 때에 비해 사람을 직접 만나야 오히려 더 편히 교류할 수 있을 때가 많아요. 코로나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은 성격이죠? 예전에는 그 반대였는데, 눈을 보고 얘기하면 상대가 더 쉽게 좋아지더라고요. 그리고 sns 상에서 교류할 때와 달리, 사람 대할 때 머릿속으로 걱정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실시간으로 상대와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럴 시간이 어딨겠어요. 그 사람을 알아갈 시간도 모자라잖아요. 그래서 더 jjs(보통 '진정성'을 비꼼의 의미로 표현하는 거지만, 웃기니까 그냥 여기에도 씁니다) 있게 교류할 수 있을 것 같아 오프 모임을 열고 싶었던 겁니다.

사실 저는 뭔가 주최하는 일 자체를 아주 꺼려요. 전 대학 시절 술자리에서 제 테이블이 좀 노잼 같기만 해도 희미한 죄책감 비슷한 걸 느끼던 사람이거든요. 나때문에 재미없는 것 같고, 내가 웃겨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를 못해서 느끼는 괴상한 죄책감이요. 저는 만난 자리에서 친해지기보다 이미 친해진 누군가가 껴 있어야만 재밌을 수 있는 스타일이거든요ㅋㅋㅋ 친한 사람이 같이 있으면 훨씬 마음이 놓이고 약간 말랑해지더라고요, 팽팽하게 긴장한 정신줄이요. 뭐, 요즘은 그런 감각을 느끼지 않지만, 아무튼 주최자가 되는 건 정말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에요. 실제로 모임이 생기면 모든 구성원이 함께 그 모임을 꾸려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부담이 컸어요.

그리고, 저는 현재 김비언즈 외에도 레즈라이트 모집에 떨어진-혹은 모집 소식을 몰라 놓쳤던 레즈비언들이 모여 만든 "레즈라이트 버블단"에 들어가 있습니다. 두 팀 모두 사랑해 마지않지만, 실은 둘 다 제가 적극적으로 들어가거나 만든 곳이 아니예요. 다른 분들이 만들어주시자 맞다 나도 좋다 하고 들어간 것에 가깝지요. (버블단의 경우에는 잠시 자리를 뜬 사이에 제가 들어가 있었어요! 어요어욧, 못 들어갔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요.) 다시 말하자면, 누군가 청해주지 않았다면-등을 밀어주지 않았다면-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혼자 글을 쓰다가 부담을 느껴 한 달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생활을 하며 종종 외로워 했을 겁니다. 많은 분들이 서로 교류를 하고 세상을 넓혀가는 모습이 부러웠으니까요. 손을 내밀어주셨던 김비언즈의 후추님과 나무님, 레즈라이트 탈락 후 혼자 쓰는 레즈라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여름님, 우리 대화를 보고 '혼자 쓰는 레즈라이트'가 아니라 함께 쓰는 팀 작업장을 제안해주셨던 나무님께 고마워요. 당연하게도, 마음을 전해도 될 거라는 확신을 주신 다른 분들께도요. 둥님, 보고 계세요? (사실 후추님 나무님 의사는 안 물어봤고-근데 허락해주시겠지 안 된다면 공개 전 저를 규탄하시겠죠 뭐~-여름님이나 둥님은 언급을 허락해 주셔서 남기는 거예요! 김파도느은 모두를 사랑헌다~)

물불 가리지 않는 버블*

'커뮤니티 내의 작은 버블이 있을 수 있고 그 버블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고, 없다가도 있어질 수 있고, 서로 만나다가 합쳐지기도 하고, 나뉘어지기도 한다. 이것 자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 이민경, 몸글 온라인 강연 중

7월 경이었을까요, 이민경 작가님은 몸에서 뻗어나가는 글쓰기 강연을 여셨습니다. 시간이 안 맞기도 했고 금전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직접 듣진 못 했어요. 하지만 직접 다녀왔거나, 온라인 강연을 들으신 수많은 분들이 단순한 감상으로 끝나지 않는 구체적인 후기와 생각들을 나눠 주셨습니다.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와닿아 어떤 갈증을 해소시켜주기도 하고 저 스스로 수많은 생각들을 해보게끔 싹을 틔워주기도 했었지요. 그 중 최근 들어 가장 와닿는 이야기는 지금 인용한 구절이었습니다. 온도에 따른 이미지는 전혀 다르지만, 작가님이 말씀하신-그리고 수많은 여자들이 생각하는 버블은 모닥불과도 상당 부분 닮아 있을 거예요. 여자들이 있는 자리는 딱딱하고 딱 달라붙어 어느 한 군데에 균열이 생기면 부서지는 자리가 아니라,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만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면서 유동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말씀에도 크게 공감했었습니다.

모든 여자는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토록 거대하고 다양한 세상들이 얼마나 다채로운 관계를 쌓아나갈 수 있을지 설레곤 했습니다.

혹시 저한테 그런 말을 들으신 적이 있나요? "글 써도!! 이런 글 좀 써도!" 혹은 질문이 아닌 트윗을 했는데 제가 멘션을 단 적이 있나요? 먼저 말을 건 적은요? 만약 있었다면, 아마 그건 80%의 확률로 두세 번 고민하고 나서, 귀찮아 하면-달갑지 않아 하시면 어쩌지, 하며 별별 걱정을 다 하면서도 말이 걸고 싶어 용기낸 행동이었을 거예요. 특히 글을 써달라 했다면, 혹은 쓴 글을 보여달라 청했다면 그건 당신을 보여달라는 청이었을 겁니다. 끈적한(?) 의미는 아니니 혹시나 염려하지는 마시고, 당신이 궁금하며 당신의 세상을 일부분 보여주셨으면 한다는 청-당신의 세상이 좋으니 더 알고 싶다는 말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전 참 겁이 많아요. 이미 여러 번 언어와 삶에도 언급했고 최근 버블단에 남긴 레즈라이터 레터 후기에도 구구절절 적었듯,

4-2. 레즈라이트 4편 후기 https://www.notion.so/4-2-4-25f54bf943a34c928faa7a57bcc2d62d

저는 온통 걱정과 두려움을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떤 콘텐츠에 대한 후기든 그 사람의 오리지널 콘텐츠든 그 사람이 보이는 수많은 창작물을 읽길 참 좋아해요. 당연히 제가 써낸 글에 대한 후기를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애정으로 내 작품을 읽어내는 누군가의 감상평이 달갑지 않기는 어려울 것도 같아요.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지는 작품들을 만나도 표현하기란 어려웠어요. 표현하는 게, 피드백을 드리는 게(피드백 지옥 말고) 얼마나 중요한지는 충분히 잘 알고 심지어 더 티내자!란 말까지 떠들고 다니면서도 정작 저는 자주 망설이곤 했어요.

실은 제가 티를 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글과 웹툰, 영화를 보며 살고 있습니다. 현생에 집중하는 건 당연하고, 저에게는 틈틈이 다른 여자들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좋다는' 마음을 직접 표현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작가분께도 이렇다 할 얘기를 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닿지 않을 만한, 내 글을 읽지 않으실 듯한 분들의 작품에만 평을 남기거나 그에 대한 마음을 공유하곤 했어요. 말하려니 영 쑥스럽기도 하고, 상대에게 부담스레 다가갈 것 같기도 하고, 내 생각을 궁금해할까 싶기도 하고, 어떤 숭배 없이-해가 되지 않게끔 내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가 먼저 다가가놓고 느리게 응답할까봐 걱정하기도 했네요. 사실 김비언즈분들과 처음 행아웃방을 파기 시작했을 때에도 "시간상 문제로 자주 못 들어갈 것 같다"라는 이유로 행아웃행을 거절한 적이 있었지만 정작 들어가고나서는 맨날 붙어 있었어요. 재밌고 좋으니까 다른 일을 좀 일찍 끝마치고 자주 들어가서 떠들었거든요. 그러니 전 제 수많은 걱정이 대부분 우려로만 그칠 것임을 압니다. 다가갔을 때 거부감을 보이는 분이 계신다 해도, 뭐 그럴 수 있는 일이고요. 제가 궁금해하는 분들, 작품에 세상을 담는 분들은 대부분 다가감을 꺼려하지 않으실 거라는 사실도 압니다. 다 아는데도 제가 실제로 발걸음을 떼기란 어려웠어요. 나무님 후추님과의 교류를 통해 훨씬 많은 선을 넘어온 이후에도 예전에 비해 훨씬 가신 두려움은 아직 잔존하고 있었습니다. 음, 이건 다른 분들의 문제가 아니예요. 그냥 제가 저를 믿지 못해서 그런 거였습니다. 안 그래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지금도 저에게 확신이 없거든요.

"표현해야 알지!"

맞는 말이예요. 그래서, 아 좋아함을 표현해도 되겠다- 말해도 되겠다-날 보여줘도 밀어내지 않겠다 싶은 사람을 만나면 한껏 표현하곤 했어요. 전 장난을, 정말 생각보다도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놀리고 놀림당하고, 그냥 장난스레 애정을 표현하고, 노간지 모먼트를 부끄러움 없이 내보이기도 하면서 여자들과 노는 일은 즐거웠습니다. 여자들이 웃는 게 좋았어요.

하지만-어유, 이쯤 되면 답답하실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읽어 보세요, 애가 좀 달라졌을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김비언즈 팀원분들, 그리고 버블단분들과는 가까워졌습니다. 두려움은 확 줄어들었고요. 하지만 버블단에 쉽게 마음을 붙인 건 나무님 덕이에요. 전 정말이지 먼저 무언가를 시작하고 다가가는 일에는 젬병인데, 사랑으로 가득한ㅋㅋ 그리고 이미 친해진 분이 모두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글을 써달라 얘기하시니 그에 편승해 저도 소소하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저 위에 제가 쓴 레즈라이트 레터 글을 혹시 보셨나요? 실은 작가분들께 직접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글을 읽으며 이러저러한 일이 떠올랐고, 이런 관점이 특히 좋았다는 이야기들, 또는 감정들을요. 그런데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말을 해도 될까? 대화를 제대로 못 이어가면 어쩌지(저는 술자리에서 제 자리가 재미 없으면 책임감을 느꼈던 인간입니다.....)? 사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좋긴 한데!!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해져서는 혼자 쭈글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제, 음, 모르겠어요. 전 늘 두려웠지만 나아갔거든요. 아주 간절하면 많이 두렵더라도 하기는 했어요. 여러 사정때문에 김비언즈 활동을 제대로 못할까봐 속으로는 한껏 걱정을 했으면서도 그 사람들이, 또 그 사람들(네 후추님 나무님입니더^^)과 함께 해나갈 활동이 재밌고 좋아서 결국 했고, 음....벌써 몇 번째죠? 웹진으로는 여섯 번째 마감을 하고 있네요. 심지어 오늘이 우리 백 일이에요. 전 백 일을 기념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 건 연인 사이에서나 세는 거라 생각했는데(전생의 생각입니다... 나무아미타불.. 전 물론 무교입니다...), 제가 드디어 백 일을 맞네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유, 평생 갈 것 같아요.

https://youtu.be/JFpEl6SxJT8

🎵 가을방학, 이름이 맘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무서워도 일단 해본 숱한 결정 중에는 영 좋지 않았던 결정도 물론 있었지만, 좋았던 일이 더 많았습니다. 김비언즈 활동도 그랬고 인풋이 생각보다 많이 들었던 네이버 블로그도 그랬으며 아주 오랜만에 닉네임을 자아가 느껴지지 않던 이름에서(정확히는 제 자아가 덜 드러나는) "파도"로 바꾼 결정도 그러했네요. 약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레즈라이트 버블단도 그렇고요. 애정을 느끼면, 좋으면 표현해보기로 한 뒤로 조금씩-전 조금 느린가봐요- 조금씩 문을 두드려보고 있습니다. 두려울 때 뒷걸음질하기보다는 일단 고개를 들어보기, 그 전에 내 발이 땅에 잘 붙어 있으며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아주 가끔, 제 글을 궁금해 해주시거나 좋아해 주시는 분들을 만나면 내 글이 그런 마음을 받을 수 있는 글인가 싶어 얼떨떨하면서도 좋습니다. 너무 좋아요. 내 세상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신기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이건 비밀인데요, 전난년 님께서 제가 예전에 쓴 극락왕생 후기 글(포스타입 블로그에 매 화별로 쭉 의식의 흐름으로 쓴 후기 글이 있지요!)이 정말 좋았다고~ 나무 님을 통해ㅋㅋ 전달해 주셨어요. 말이 되나요??? 이럴 수가 있나?? 아무 반응 기대 않고 좋아서 써온 글, 심지어 별 티엠아이가 다 들어간 후기 글을 봐주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 자체도 기뻤지만 그걸 다른 분을 통해 전해 들으니 말로 전하는 편지를 받은 기분이었어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인가 싶은 자기비하적 감정이 또 들고 올라오긴 했지만, 전 뻔뻔하기도 하거든요. 일단 반갑고 좋은 건 좋은 거니까 반기기로 했습니다.

보세요. 참고 읽으니까 괜찮죠? 아주 느려도 저는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죠. 조금씩 다르게, 정도나 모양은 다를지라도 당신들을 사랑해요. jjs 없게 들릴까요? 내친김에 사랑한다고 음성녹음본이라도 올릴까 잠깐 고민해 봤어요🤔 아 너무 관종 같으니까 이건 접도록 하겠음다.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은 진짜예요.

저를 궁금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 괜히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가 떠오르지만 그건 아니구ㅎ 큼큼, 고맙고 사랑해요. 특히 나무님과 후추님께.

*눈치 채셨나요? 전 중의적인 표현라든지, 장난스러운-말장난을 좋아합니다. 누가 그런 걸 좋아해~ 싶은 것도 꽤 좋아해요. 그리고 듣는 것보다 하는 걸 좋아합니다. 친해지기 시작하면 마구 장난을 치고 싶어져서 가끔.. 누구세요? 같은 반응을 듣기도 하네요...... 첫인상이랑 딴판이라고....

사회주의비언일까요?

사실 이번 편을 쓰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여러 여자분들의 닉네임을 밝혀도 괜찮을까, 였어요. 물론 밝힌 이름은 모두 당사자께 허락받았습니다.

생각도 걱정도 많은 제가 우려한 건 그 부분이 아니라, 이게 "우리끼리의" "다른 사람은 못 낄 느그(?)네 판" 으로 여겨질까봐였어요. 나는 글을 읽는 건데 자꾸 모르는 이름(아실 분들이 많겠지만)이 나오면 딴 세상 얘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잖아요. '그 누구도 소외되게 하지 않기 위해 모두가 평등하게 일정한 거리만을 유지하게 하는 분위기'가 여성주의 측면에서도, 인간관계 측면에서도 결코 좋지 않다는 데에 무척 동감하면서도- 좀 더 강하거나 긴밀하게 연결된 사람들을 웹진 지면에 밝혀도 될지에 대해서는 주저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닉네임을 언급한 건 김비언즈 멤버 두 분 정도였을 거예요. 적어도 우리는 팀인데다가 독자/청취자 분들이 각자의 콘텐츠를 모두 보실 수 있을 테니까 직접 언급을 하더라도 거리감을 느끼지 않으실 것 같았거든요. 제 경우에는 두 분을 제외하고 특별히 가까운 분이 거의 없기도 했습니다. 내적으로 친밀감을 느끼는 대상은 많았지만요.

저는 소외감을 참 쉽게 느끼는 사람입니다. 제법 많이 달라진 지금도 습관적으로 괜한 서운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상대의 잘못이 아닌, 그저 제 감정의 문제로서 서운함을 느낄 때죠. 객관적으로 봐도 서운할 일이 아닌데 느낄 때면 아차- 싶습니다. 아, 이건 지금 내 상태가 안 좋아서 상황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구나, 같은 판단이 들면 감정을 적당히 갈무리하고 그래도 서운(?)하면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서운함의 근원을 풀 수 있도록 욕망을 표현한다는 말이에요. 일단 기억하기로는 서운함을 티낸 적은 없고, 느껴본 적 역시 이전에 비하면 정말정말 적어서(혹시나 이 글을 보는 분들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아무 거에나 서운해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건 또 아니며 혹시 뭘 느꼈다더라도 표현했을 테고, 전 그런 적이 정말 거의 없거든요.) 그래도 김파도 발전했다-싶어요. 그런데 전 평생토록 늘 저같은 사람들이 눈에 밟혔거든요.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사람을 만날 때면 누군가가 소외당하거나 소외감을 느낄 만한 상황 자체를 싫어하게 됐습니다. 내 코가 석자 아닌가 싶으면서도 대화에서 누군가가 발언권을 못 얻는 것 같으면 신경이 쏠렸습니다. 저는 저와 친한 사람이 자리에 없으면 영 발언을 안 하는 사람이기에 제가 그 분의 발언권을 챙겨(?)드릴 수는 없음에도 신경이 쓰이곤 했어요. 약간은 흑역사지만, 모 연예 소식 커뮤니티 *스티즈를 할 때 익명 게시판을 자주 봤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빈다 싶으면 "댓글 없는 글"만 골라서 댓글을 우르르 달고 다녔습니다. 아니... 분명 어떤 반응을 원하는 글을 쓴 사람이라면, 아무 댓글 안 달렸을 때 슬플 거잖아요? 아닐 수도 있지만 보통은 아 글을 또 올려야 하나 싶어서 귀찮은 감정이라도 느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때는 제 멘탈 케어가 더 시급했을 때인데, 그럼에도 제가 받고 싶은 행동을 타인에게 해주곤 했어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 누구 하나라도 더 많은 이에게 관심을 두었습니다. 익명 게시판은 서로가 서로를 모르므로 다른 근심걱정 없이 교류할 수 있었거든요. 그 교류가 질적으로 어땠는지, 저에게 보탬이 되기는 했는지와는 별개로요.

저는 사회주의비언인 걸까요? 여전히 특정한 몇몇에게 애정을 주는 일은 두렵습니다. 시작에는 끝이 따르지만, 그 끝이 새로운 시작을 부르기도 하며 그냥 순간순간의 만남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고루 마음을 주고 싶어요. 우스갯소리로 한 사회주의비언이라는 말이 일단 저에게는 꽤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 코는 대충 두 자 쯤인 것 같지만, 그래도 자꾸 신경 쓰이는 분들이 많은데 어떡하겠어요. 정말 어이없게 들릴 것 같은데, 전 김비언즈 분들을 언급할 때에도 언급 순서를 고르게 뒤바꿔요.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알아요. 그런데도 그냥 누군가 자꾸 뒤로 가는 상황 자체가 싫어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경우에까지 강박을 쏟은 거죠. 음, 그런데 이것 자체가 나쁜 습관은 아니예요. 그냥 예전에 익힌 버릇의 흔적 같은 겁니다. 여전히 조금 더 뒤로 빠져 있는 듯한 사람이 있으면 신경 쓰입니다. 이 모든 말들이 시혜적으로 들릴까 우려되지만, 요즘은 그런 분들을 본 적이 없어서 빛바랜 강박이 그래도 힘을 덜 씁니다. 마음이 기댈 곳이 생겨서 제 마음이 조금 안정되기도 했고요.

분명 최근의 모든 분위기와 흐름을 알지만 두려워서, 이미 다들 친한 것 같아 적응하지 못할까봐, 혹은 정말 의욕 충만한데 상황이 되지 않아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그런 분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 사람들을 보면 괜히 초조해지고, 소외감만 느끼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늘 걱정돼요. 물론 그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감정 자체는 누군가의 책임이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그런 괴로운 마음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는 건 그저 제 바람일 뿐이잖아요. 지난 <언어와 삶> "정착지" 편에서 후추님이 김비언즈의 공간이 일종의 베이스캠프가 되길 바란다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이곳이 초조와 소외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또다른 연결과 새로운 모닥불을 피우게 만들 힘이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 말하고 싶다면 얘기해 주세요. 저도 그런 불안을 자주 느끼곤 했어요. 와, 저 사람들은 저렇게 친하시구나, 신기해라, 연은 누군가 이어야만 유지가 되고 발전이 될 텐데 나는 그런 걸 못 하겠어- 괜히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죠. 지금도 약간은 이전의 모습이 남아 있지만 그토록 겁 많고 스스로 그은 선 안에서 단절감이 주는 안정에 젖어 있던 저도 이만큼 달라졌잖아요. 느리게 걷고 있더라도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좋으면 좋다고, 아쉬우면 아쉽다고, 당신의 이야기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표현해 주세요. 정작 저는 표현을 덜 하면서 이런 권유를 하자니 좀 민망스럽지만 저는 여러분의 생각이, 세상이 궁금합니다.

당장 어렵거나 주저하게 되거나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리 와서 몸 좀 녹여 볼래요?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를지도 몰라요, 젖은 상태에서는 불이 잘 붙지 않지만 새로운 불을 쬐며 몸을 말리면 스스로-또는 누군가를 통해 불이 피어오를지도 모르고요. 당신이 피울, 피우고 계실 불씨가 궁금합니다. 피곤하고 힘들어 몸이 차가워지면 이 곳에서 몸을 녹일 수 있길 바라며, 저는 모닥불에 새 장작을 넣고 있겠습니다. 사실 장작이 필요한 건 나 아닌가? 주제넘은 권유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음, 역시 전 뻔뻔한가봐요. 장작은 같이 넣을 수도 있고 꼭 대단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제 세상을 궁금해하신 순간, 저는 당신께 새로운 불씨를 얻는 셈이니 서로 불씨를 교환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고, 속 편하게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소소하게 자랑하자면, 글 상단에 첨부한 "취미는 사랑"이라는 노래는 절 닮았다며 친구가 일러줬던 노래예요. 물을 준 화분처럼 웃어 보이던 사람은 저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당신일지도 모르겠어요. "그의 눈에 비친 삶은 서툰 춤을 추는 불꽃"이라는 가사가 마음에 닿아 첨부한 노래지만요. 두 번째 노래는 제가 좋아하는 다른 노래예요.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나쁜 습관이 얼른 물러가길 바라며, 애정을 담아 편지를 마칩니다.


참고자료


후기

마감을 하기 전에는 아 이렇게 저렇게 써야지, 이번에는 다른 분들께 구체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써야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작 쓰기를 시작하니 또 생각과는 다른 이야기가 나와버렸네요. 계획대로 글을 쓰는 날이 오긴 올까요? 어쩐지 제 못난 부분을 꽤 많이 밝힌 것 같아 민망스럽지만, 그래도 이야기는 환영합니다. 트위터를 통해, 김비언즈의 공간에, 어떤 방식으로든 말을 걸어주세요. 일단 해보면 속이 시원해질 거예요. 예전에 쓴 글과 톤이 달라졌죠? 즐겁게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https://www.notion.so/8-dbc4bdaae94746c4983f827f91948383 

김나무의 "쥐구멍 어디 없나요? 죽겠어요...",

김후추의 "이미"

그리고 우리의 게스트 김나오의 "당신의 모닥불 앞에서" 

를 함께 즐겨 주세요. 역시 이야기는 나누어질 때-또다른 이야기를 만날 때 제일 즐거우니까요.


https://twitter.com/Kymbianz/status/1271381741517672449?s=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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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pper Kym

글로 세상을, 또 당신들을 만나는 여성주의자이자 레즈비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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