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은 빤히 보이는 위험을 향해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솥에 넣어 조릴 용도의 무를 자를 때.

무는 틈 없이 속이 들어찬 채소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지 않으면 날붙이를 튕겨내고 만다. 잘 든 한 자루의 식칼과 잘 켜진 나무 도마가 필요하다. 도마 위에 무를 올리고 칼질을 하다 보면, 무를 잡아둔 다른 쪽 손이 보인다. 그러면 쓸데없는 호기심 내지 충동이 든다.

칼로 손을 내리치면 어떻게 될까. 마디의 끝이 잘리는 기분은 무엇일까. 살이 베이고 피가 흐를 때의 감각은 어느 정도로 고통스러울까. 호기심의 끝이 손에서 다른 손으로 향하고, 시선이 도마 위를 타고 잔인하게 흘러든다. 물론 시도를 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무용한 일이기 때문에.

사냥하는 섬 주민을 볼 때도 비슷한 충동이 든다.

철새 떼가 귀환하는 늦봄에서 초여름 무렵이 섬의 사냥철이다. 새를 잡기 위해 화승총 한 자루를 메고 사냥을 나가는 주민이 많다. 그의 집에서 이백여 미터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언덕 근처 빨간 지붕 집에 사는 남자 역시 일 년 중 사냥철이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마을을 빠져나가 섬의 중심부인 항구 근처에 가면 사냥꾼의 수는 셀 수도 없다.

새는 몇천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중에는 홀몸으로 나는 새도 있다. 깃털이 숭숭하게 빠진 늙은 새도 있다. 가족 단위의 새도 있다. 한번 짝을 지은 수컷과 암컷은 떨어지는 일이 별로 없다. 가족이든 홀몸이든 수천 마리의 새 떼는 몇 년간이나 한데 모여 찾아온다. 섬에서 알을 낳고, 다른 섬을 향해 가고. 도착한 섬에서 먹이를 먹고, 구애 활동을 하고. 그리고 또 다른 섬을 향하여 날아간다. 사냥에 나선 주민들은 새에게도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군다. 화승에 불을 붙이고, 점화된 총의 끝이 불꽃을 내뿜기를 반복한다. 사냥철에는 섬의 하늘이 번쩍번쩍 빛난다. 새가 추락한다. 몇 시간에 걸친 시끄러운 사냥이 반복되고 나면, 참가자 모두 어깨마다 새를 한두 마리씩은 걸머진 채다. 발자국이 지나간 자리마다 드문드문 떨어진 핏방울, 바람에 날려 흩어진 깃털, 죽음이 자리한다. 그는 벌써 두 해 동안이나 사냥철을 지켜보았다.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날아가는 철새 무리 사이에 끼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른다. 그는 총부리가 자신을 향하는 꿈을 꾼다. 총알에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탄환이 제 심장을 꿰뚫기를 바라본다. 그러나 새 떼 사이에 끼어봤자 무용하다. 이 또한 그의 능력이 허용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충동 중에는 하나가 또 있다.

바로 깎아지를듯한 암벽의 끝에 발을 걸치고 서는 일.

섬은 돌무더기가 잔뜩이었다. 섬 가장자리를 둘러싼 진회색 암벽의 위에는 연녹색의 풀과 이끼가 한가득 덮여있다. 암벽의 위에서 아래를 향해 고개를 내려본다. 벽을 향해 달려와 부닥치는 검은 풍파와 그 풍파가 빚어낸 부스러기, 하얗게 휘날리는 찝찌레한 포말의 회오리가 보인다. 자신도 모르게 발을 떼어 물 안으로 잠기고 싶다는 충동, 해파가 밀려드는 풍경 속에 뛰어들어 하나가 되고 싶다는 충동. 들끓는 바다가 보는 이를 자극한다. 섬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같은 바다지만, 배 위에서 보는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더 짙고, 어둡고, 속이 전혀 비치지 않는다. 한번 가라앉고 나면 다시는 해면 위를 향해 떠오르지 못하리라.

그에게 있어 가장 간편하게 자신을 절명케 하는 방법은 물속을 향해 뛰어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끝내 시도할 용기는 내지 못했다.



2.

이비는 엄마와 단둘이 살았다. 여덟 살 난 꼬마 아이로, 피부가 검고 머리는 항상 위로 바짝 묶어 틀어 올린다. 이비가 사는 집은 집을 지었던 아빠의 취향으로 인해 섬의 다른 집들에 비해 유독 지붕이 경사지고 뾰족하고 처마가 길게 내려왔다. 그로 인해 늦여름에 폭풍우가 밀려오면 처마 맨 아래쪽이 바람에 부서지는 일이 흔했다.

원래 이비는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다. 엄마에게 듣기로는 레드라인 근처라고 했다. 태어났을 시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비가 갓난아이이던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아빠는 떠나왔던 자신의 고향으로, 섬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이사에 동의했다. 오로지 아빠를 위해서였다.

그래서일까, 엄마는 술을 마시면 항상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 양반은 날 여기까지 끌고 와 놓고 일 년 만에 죽었지.

엄마는 이 섬으로 이사 와서야 처음으로 농사를 짓게 되었다. 서툶 그 자체. 이비의 엄마는 홀몸으로 밭을 갈았고, 어린 이비는 언제나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빨래하고, 젖은 세탁물을 빨랫줄에 널고, 키우는 가축에게 밥을 먹였다. 여덟 살이 감내하기에는 힘든 일이라고 생각할 법도 했지만, 섬에서의 생활은 불평 한마디 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시간이 났어도 불만을 말하기는 어려웠다. 엄마의 일은 훨씬 더 많았으므로. 농사와 가사. 혼자서 가정 내의 많은 일을 분담하는 이비의 엄마. 매일 손을 바삐 놀리는 엄마의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히는 일은 지나치게 흔해 입 밖으로 낼 수도 없는 사건이었고, 찬 해풍을 맞아 고뿔이 걸려 고생하는 것도 별것 아닌 일이었으며, 파종을 위해 땅을 갈다가 갈퀴로 정강이를 내리찍을 때야만 좀 별일이 있었다고 말할 만했다.

섬에 의사가 나타난 건 이비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2년 전이었다. 큰 배 여러 척이 섬에 도착했다. 배가 지나치게 많고 커다래서 항구 내로 들어오지 못할 정도였다. 배 대부분은 이비의 눈에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똑바르지 못해 균형이 기울어졌고, 난간이나 돛대가 부서지거나, 돛이 새카맣게 그을린 상태였다. 앞에 용머리를 단 배 한 척만 멀쩡했다. 많은 사람이 배에서 내렸고, 얼마간 머무르다, 다시 배를 타고 떠났다. 단 한 명의 사람이 남았다. 아무도 그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했다.

남자는 키가 훌쩍 컸고, 보라색 셔츠를 입었으며, 그의 셔츠 깃에서는 짠 소금과 눅눅한 바닷바람 냄새가 풍겼다. 그가 걸을 때면 코를 찌르는 듯한 독한 냄새도 살짝 풍겼는데, 이비의 엄마는 그 냄새가 역청 냄새라고 말했다. 이비는 역청이 무엇인지 몰랐다.

남자는 이비의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터를 잡았다. 이비의 이웃집. 돌 언덕 비탈길에 자리 잡은 집 중 하나. 그들의 마을은 섬에서도 폭포에 가려진 마을로 유명했다. 해안가의 절벽 위에서 쏟아지는 폭포를 지나, 좁은 동굴을 빠져나가면 아름답고 소담한 마을이 나온다. 땅은 고르고 평탄하다. 마을 둘레는 높은 돌 절벽으로 둘러 쌓여 있다. 이비네 집은 그 중에서도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이비네 집에서 꼬불대는 흙길을 타고 우측으로 약 백여 미터 걸어가면 남자의 집이 보인다. 이비의 집보다 지붕이 덜 뾰족하고, 벽에 물레방아가 설치되어 있는 통나무집. 예전에는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다 무너지고 버려졌던 곳으로, 원래 살던 집 주인은 이미 한참 전에 섬을 벗어난 후였다.

큰 배가 들어오고, 잘 켜진 모래색 목재가 쌓이고, 인부들이 그 집 주위에 텐트를 쳐가며 머물렀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겠는, 나무 궤짝도 몇 개 씩이나 집 앞에 쌓였다. 반파된 집이 깔끔하게 세워지고 난 다음 남자는 이비의 이웃이 되었다. 엄마는 남자의 집을 물레방앗집이라고 불렀다. 이비가 처음으로 인식한 이웃집 주민이었다.

마을을 둘러싼 절벽을 오를 때면 숨이 차올랐다. 그와 다르게 남자의 집은 같은 언덕 비슷한 높이에 위치했다. 절벽과 다르게 경사가 아닌 그저 굴곡진 둘레길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비는 고른 숨을 내쉬며 남자의 집까지 걸어갔다. 문을 두드렸다. 새로 고쳐 단 문은 빡빡했다. 열리는 소리가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닫힌 문이 열리는 광경은 언제 봐도 재미있다. 닫힌 문은 일직선이다. 그 틈새가 벌어지면 길고 검은 직사각형이 된다. 속에 무엇을 숨겨두었는지는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까만 틈 사이로 남자가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엄마와는 다르게 그의 키는 지나칠 정도로 커서, 한참이나 위로 올려봐야만 했다. 목이 아팠다.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이비가 물었다.

남자는 완전히 문 밖으로 몸을 내밀더니 천천히 두 다리를 굽혔다. 남자의 한쪽 무릎이 땅에 닿은 후에야, 이비는 남자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새빨간 안경테 사이로 비치는 눈동자가 꼭 물에 비친 하늘같았다.

남자가 대답했다. "나는 마르코라고 해요이."

"이제 여기에 사시는 거예요?"

이비의 눈은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반짝대며 빛을 냈고,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남자의 반응은 덤덤했다.

"응."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인데요? 우리 엄마는 아저씨가 의사라던데 진짜인가요?"

남자가 삐죽하게 솟은 제 머리터럭을 손으로 눌렀다. 머리카락이 위를 향해 용수철처럼 삐져나왔다.

"그려, 아저씨는 의사여."

"와, 다행이다! 우리 엄마는 맨날 다치거든요. 완전히 이사오신거예요? 영원히 여기서 사시는거죠?"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요이.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넌 이름이 뭐냐?"

"제 이름은 이비예요. 마을에서는 다들 저보고 꼬맹이라고 하니까, 아저씨도 저를 꼬맹이라고 불러도 돼요."

순간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남자가 말했다.

"꼬맹이라는 표현은 아무에게나 쓰면 실례인겨. 이비라니 좋은 이름이네요이. 앞으로 이비라고 부를게요이."

남자는 말투가 이상했다. 이비가 들어본 사투리와는 사뭇 다른 말투였다. 그리고 말투 만큼이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어색했고, 어딘가 서툴어 보였다. 이비의 엄마는 술에 취하면 혀가 꼬였고 얼굴이 붉어졌다. 눈썹은 밑으로 처지고 가끔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남자는 울지도 않았고 술을 마시지도 않았지만, 엄마가 술에 취하면 보여주는 표정과 왠지 느낌이 비슷했다. 이비의 엄마는 그 표정에는 쓸쓸함이라는 감정이 담겼다고 말했다.

이비는 남자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오고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우리 섬으로 갑자기 이사는 왜 왔는지, 말투는 왜 그런 식인지, 지금 눈썹이 왜 밑으로 처져 있는지, 술 냄새도 안 나는데 우리 엄마처럼 술을 마셨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물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의 눈이 이미 이비의 얼굴을 지나 뒤로, 산으로, 바다로……. 어딘지 알 수 없는 깊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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