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 -김재환- 강사실로. '


학원 수강생 중, 재환만 자작곡을 내지 못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담당강사와 상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재환이 있는 반의 담당강사인 민현이 재환을 호출했다. 자꾸만 부푸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강사실의 문을

두들겼고, 들어오라는 민현의 음성이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 앞에 서자 민현이 옆에 놓인 의자를

톡톡 치며 앉으라 한다. 짤막하게 심호흡 한 후 재환은 조심스레 의자에 앉았다.

고요했다. 우연이었는지 강사실엔 민현 뿐이었고 그로 인해 가져다주는 정적은 생각보다 사람을 미치게 했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1시간이 지나는 듯한 느낌을 받던 재환에게 민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 재환아, 작곡이 잘 안돼? 일지 보니까 이번이 처음인 것 같던데.. 무슨 일 있어? "


아니요, 저도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이럴 때 어떻게 했어요? 라고 묻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으나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재환의 복잡한 심경을 눈치채기라도 하듯 민현은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 선생님도 작곡 막힐때 많았어. 근데 보통 사랑 관련해서 많이 막히더라. "

" 사랑이요? "

" 누군가를 좋아할 때, 사랑을 시작할 때, 사랑이 불안할 때, 사랑이.. 끝날 때. "


마지막 경우를 말할땐 민현의 눈동자와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듯 했다. 민현은 애써 티내려 하지 않았고,

재환도 굳이 아는체 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당신에게 공감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민현의 말을 들은 재환은 잠시 생각하다 툭. 내뱉듯 물었다.


" 선생님, 사랑이 뭐에요? "


순간 민현이 멈칫 했다. 어처구니 없는 질문일 것이다. 민현이 연애박사도 아니고 국어국문학과도 아닌데

사랑이란 단어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말해놓고도 나는 등신이다 진짜. 를 속으로 외는 재환이었다.

죄송하다고 얘기할까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그러자. 라고 결론짓고 목구멍까지 말이 차올랐을 때, 

민현이 대답했다.


" 글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으면서도 세상을 다 잃을 듯 불안한게 사랑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해. "


선생님, 저는 지금 선생님을 가지지도 못했는데 세상을 다 잃은 듯 불안한데요. 이건 사랑인가요?













# 6


민현과의 상담 후 재환은 꾸역꾸역 가사를 써 곡을 완성했다. 일단은 제출이 중요했기 때문에 급한 불부터

껐고, 평가에 대한 고민은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한 고비 넘겼다 생각하며 다음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에 앉아있는데 대휘의 지나치게 꺄르륵 거리는 소리가 조금은 거슬리는 재환이었다.


" 대휘야. "

" 웅? "

" 연애통화는 나가서 해줄래 너 꽁냥질 발산하는게 고슴도치 급이야. "


꺄하하 이 형이 뭐래. 하고는 재환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통화를 계속하는 대휘였다.

대휘는 연애중이다. 그 어디였지.. 아, 리라아트고에 다니는 배진영과. 

배진영은 꽤나 유명했다. 엄청 잘생긴 얼굴과 소보로빵보다 작은 얼굴.

그래, 언젠가부터 의식을 안하고 있었는데 대휘도 게이였구나.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도 게이.

위아더 게이다 염병할.. 갑자기 또 착잡해지는 재환을 보고는 대휘는 조금 서둘러 통화를 종료했다.


" 형, 요즘 왜그래? "

" 뭐가. "

" 시름시름 앓는 물만두같아. "


물만두가 어떻게 앓니. 삶아지면 몰라도.. 시덥잖은 말을 내뱉자 또 꺄르륵 거리며 좋아하는 대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휘는 재환보다 2살이나 어린데 어떻게 자신이 남자를 좋아하는지 알았으며,

그 좋아하는 동성의 상대와 어떻게 연애를 시작했는지. 17살 너에게는 언제 봄이 왔을까.


" 대휘야. "

" 웅, 왜? "

" 너는 그.. 언제 너가 남자 좋...아하는거 알았어? "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늘 밝은 모습으로 티내지 않는 아이일지라도 그로 인해 상처받은 일이 있을까 해서.

답지 않게 성숙한 마인드와 써내려가는 곡들로 대휘는 어떤 아이인지 대충 파악이 됐다. 상처받고 힘든거

티내지 않는 아이.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신경 쓰는 아이. 그래서 더 궁금했다. 너의 시작은 어땠니.

그런데 대휘의 대답은 재환을 놀라고 또 멍하게 만들었다.


" 남자 좋아하는걸 안게 아니라 사랑에 빠졌는데 그 사람이 남자였던거지! "


그래 대휘야. 그게 정답인가봐.














# 7


재환은 대휘와 대화하며 생각했다. 자신의 편협한 시선이 전부였다고 생각한 지난날의 후회를.

그리고 첫눈에 반한걸 상대가 남자라 인정하지 못하고 친해지고 싶다고 말한 지난날도.

재환은 자신에게 봄이 왔음에도 여름이려 애썼고 그래서 결국 가을에 머무르게 되었다.

재환의 마음은 가을이 될 수 없는데도.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

후회와 자책의 환상 콜라보레이션이 마음에 회오리치는데 대휘는 한번 더 재환의 뒤통수에 망치를 꽂았다.


" 근데 형 민현쌤 언제부터 좋아했어? 오신지 얼마 안됐잖아. "


무슨 소리냐고 대답했어야 하는데 멍청한 김재환은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답했다.

대휘는 자신이 눈치가 빨라서 그런것도 있다고 하면서 뒤에 이어 붙인 말이 재환의 행동과 생각을 바꾸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


" 형 눈빛이 달라져! 형이 아무리 다른데 집중해도 민현쌤 보면 시선이 고정돼. 한시도 눈을 못 떼는 것처럼. "


누가 자기 자신은 스스로의 가장 큰 친구라고 했을까. 나는 이렇게도 내 자신을 모르는데.

재환의 표정은 세 번 변했다. 놀랐다가 당황했다가 마지막엔 뭔가 알았다는 표정.

이제서야 자신이 가야 할 지표가 어디인지 알 것 같은 재환이었다. 어떤 존재든 간에 시작이란 이런게 아닐까.

수천번 넘어지지만 결국 일어나 걷는 갓난아이도 첫 발을 내딛으려는 시도 끝에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지만

변화가 두려운 재환은 발을 내딛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수천번의 넘어짐이 있어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기에 수만번 넘어지지 않는게 아닐까. 재환도 대휘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제서야 자신을 알았다.

재환의 눈이 맑게 빛났다. 그리고 노트를 펼쳐 곡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사람만을 위해.















# 8


" 재환이 오늘도 있네? 선생님이랑 밥먹으러 가자. "


대휘와의 대화 이후로 곡 작업에 몰두하는 재환이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다 집에가도

홀로 연습실에 남아 연주하고 녹음하고, 마음에 안드는 부분은 수정하며 스스로 연습을 자처했다.

그래서인지 늦게까지 남아있는 재환의 저녁을 민현이 책임지게 되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기특해서였는지 흥미가 생겼던건지 민현은 재환이 남아있을 때마다 저녁을 같이 먹었다.

재환은 매일매일 커지는 마음을 곡에 다 담아내려 애썼다. 민현과 밥을 먹으며 어느정도 친해지면서

좋아하는 마음은 붙잡을수도 없이 커져만 가서 하나도 빠지지 않고 곡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 선생님. "

" 응 재환아. "

" 밥먹고 있다가 4번 연습실로 와주실 수 있어요? "


그거야 어렵지 않지. 곡 다썼어? 라고 묻는 민현에게 재환은 으흥흥.. 하며 가볍게 웃어주었다.

재환이 굳이 4번 연습실에 남아있던건 이유가 있었다. 민현이 자신을 처음 불러준 연습실이어서.

별거 아닌 일이지만 재환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다. 민현이 그만큼 자신에게

소중하고 커다란 존재여서. 그래서 오늘 드디어 결실을 맺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 어떤 곡보다 심혈을 기울이고 멜로디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은 곡을

민현에게 선물할때가 됐다고.














# 9


" 재환이 곡 좀 들어볼까? "


저녁을 꽤 많이 또 같이 먹으며 재환과 민현은 많이 친해졌다. 그래서 이런 너스레 정도는 가볍게 칠 수 있는

장난이었는데 민현에게 곡을 들려주겠다고 데려온 아까의 호탕한 재환과는 달리 지금 재환은 사고회로가

어지럽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시작하지? 뭐부터 해야됐더라? 조금은 긴장한 듯 우물쭈물하자

민현이 움직이며 세팅을 하나하나 도와주었다. 재환아, 일단 앰프부터 연결하고. 응응 그치그치.

상냥하게 다독이며 재환을 도와주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재환의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설레는 감정이 식은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에게 곡을 들려줘야겠다는 확신이 강해져서.

그래서 재환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민현을 앉히고 그 앞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재환의 기타가 울리고 목소리가 쏟아져내렸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내가 이만큼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한음한음 정성을 다해 불렀다.


" ..잘썼네 ."


재환의 연주가 끝나고 민현의 첫마디였다. 조금은 어렵게 꺼내는 듯 해보였다. 

누가 들어도 한 사람에게 바치는 사랑노래를 듣는 민현의 표정이 복잡미묘했기 때문에. 

그런 민현을 바라보던 재환은 기타를 내려놓고 민현의 앞에 걸어가 말했다.


" 선생님. "

" 응 재환아. "

" 제가 선생님을 좋아해요. "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잘못 뱉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수없이 되뇌이고 삼켰던 그 말. 그래도 떨리는 마음은 감출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고 말한 재환이었다. 그런데 민현이 조용하다.


" ..재환아. "


잠시간 이어졌던 정적을 깨려 민현이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재환도 눈을 떴고 민현은 차근차근 말을 이어갔다.


" 나도 너한테 아무런 흥미나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너가 조금, 아니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재환아. "


긍정적으로 흘러가던 기류와 대답을 가로막는 한숨 섞인 대답이 따라왔다.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 재환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민현의 답을 기다렸다.


" 나는 너와 나이차이도 극복하고 널 만나볼 자신이 있어. 근데 너는? "

" ..네? "

" 넌 어떤 걸 극복하고 날 만날 수 있어? 나이는 그렇다쳐도 넌 네가 게이라는 걸 극복할 수 있어? "


말문이 막혔다. 정확히 말하면 막혀버렸다. 재환은 그것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이 마음만 전해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어리석었다.

민현이 말하는게 무엇인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왜냐면 자신이 극복하지 못한 모습만 보여줬으니까.

첫눈에 반했던 상대가 남자여서 그걸 말하지도 못하고 친해지자는 말만 뱉어댔고,

민현은 이미 그걸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재환에게 확인이 필요해보였다.

지금 이 순간조차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지만 그렇다고 가벼이 내뱉을 문제도 아니었다.

말을 뱉어놓고 행동으로 책임지지 못하는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그래서 더 신중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걱정하고 있지 않았던 문제가 현실로 닥쳐왔다. 입술을 달싹이며 대답을 망설이던 재환에게 

민현은 조금은 씁쓸한 듯 웃으며 한마디를 더했다.


" 난 상대방이 4년간 극복하지 못해서 결국 헤어졌는데.. 그걸 다시 겪고 싶진 않다 재환아. "


선생님, 저번에곡작업이 막힐때 여러가지 경우를 말했잖아요. 

마지막 경우를 말하실 때 힘들어 보였는데, 선생님과 그분의 사랑은 끝났지만 

선생님은 사랑을 끝내지 못해서 그런거였나봐요. 

선생님한텐 미련이란게 남았는데,

저는 아직 사랑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감정만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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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환이의 처음은 험난하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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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일 1편 업로드 목표 / 워너원올팬 / 커플링 요청시 작성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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