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룸메이트 구함.

여자만.

부엌 공동, 화장실 각 방에 하나씩 있음

개인 친구 방문 시 미리 연락하면 가능.

주차 가능.

금액 조정 가능.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이 조건보다 나은 곳을 찾기엔 시간도 없었다.

다만 걸리는 것은 저 ‘여자만’이라는 단어가 매우 걸렸다. 가보니까 막 변태가 있고 그런 거면 어쩌지? 라는 고민과 동시에 이마이 리사는 이미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후면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지낼 집도 구하지 못했다니 큰일이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지금쯤 지낼 집을 마련해놓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지리를 익히는 게 목표였건만 생각보다 주변에 가격이 상당했다. 만만하게 보고 느긋하게 굴던 과거의 자신에게 한번 주먹을 날렸다. 닿지 않았겠지만 기분은 풀리니까 됐다.

연락을 보내자마자 5분도 안되어 답장이 왔다. 오, 이거 잘하는 짓일까. 내일 미리 유키나에게 -내 소꿉친구인데 신인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내일 잘 풀리면 집중인 취미를 물어보면서 들어보라고 해야겠다.- 미리 연락을 해놓고 가도록 하자고 다짐하고 일단 잠을 자기로 했다.

 

가기로 했던 시간보다 늦고 말았다.

아 망했다. 이마이 리사 왜 그랬니. 집주인에게 잘 보여봤자 무슨 소용이야... 이미 약속 시간에 늦었는데!

아침부터 머리가 말썽이었고 여전히 말썽이었다.

집주인에게 조금이라도 좋게 보여서 금액이라도 깍아보겠다는 의미였는데 이미 첫인상은 글러먹었다고 생각했다.

띵동-.

일단 집 외관은 매우 평범하고 기본적인 그대로였다. 오는 중에 주변 집들을 보았을 때 전부 리모델링을 한 모양이었는데 이 집은 전혀 그런 것을 하지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외관만 그대로고 속은 리모델링 했을 수도 있겠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 이마이 리사...씨? 맞나요?”

와우, 미인. 아차, 실례다.

“네, 어제 연락드린 ‘이마이 리사’입니다.”

“늦으셨네요...”

“아하하.. 그게...”

진짜 할 말이 없었다. 늦은 건 사실이고 집주인이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을 좋아하면 그런 거다. 나는 ‘룸메이트’로 온 거긴 한데 결국은 세입자나 다름없었다.

“여기가 복잡하니까 늦었나보네요.”

“아.. 네... 그..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여태 온 사람들보단 나아요. 들어오세요. 둘러보고 계약을 할지 말지 정해야죠.”

“아, 네. 감사합니다.”

양심이 조금 찔린다만 고픈 입장에서 가만히 있기로 했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가만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낫다고.

집 내부는 정말 깔끔했다. 그리고 집주인은 만약 계약하면 쓰게 될 방은 이 방이라고 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침대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침대, 옷장, 책상... 이미 왠만한 가구는 이미 들어와 있었다.

가구는 바꾸고 싶으면 개인 사비로 바꾸면 돼요. 그리고 바꿀 땐 말해주세요. 창고에 넣어두게.

창고도 있었어? 리사가 놀란 눈으로 집주인을 바라보았다.

“창고는... 공유하긴 조금 그래서.. 보고 싶어요?”

“아.. 괜찮나요...? 창고 있는 집은 로망이 있어서...”

“별 거 아닌데... 차 있나요? 써있듯 주차도 가능해요.”

“아 봤어요. 아직은 없지만... 안정이 되면 작은 차로 하나 마련하려고요.”

“.... 이 근처로 오시는 이유가 직장이 근처인가요?”

“네. 아, 혹시 그러면 문제가 되나요?”

“그냥 물어본 건데요. 이쪽이에요... 아 그 전에 부엌이 여기에요. 음... 냉장고에... 제 식사만 건드리지 않으면 뭘 쓰든 자유에요.”

식사를 건들 이유가 있나? 리사는 조금 이상한 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겠어요.’ 라고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집주인은 차고는 여기, 창고는 여기에요. 하고 한번에 소개했다.

창고는 왜 부끄럽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이걸 부끄럽다고 할 것까진 아니었다. 그냥 그 사람의 작은 작업실이 있었다.

“아 혹시 가구... 직접 만드신 거였어요?”
“네...”

“멋지다... 수제가구라니 저 처음 써 봐요.”

“음... 고마워요. 이제 들어가죠. 계약을 할지 말지는... 들어가서 계약서 보면서 마저 생각하세요.”

아 맞다. 나 계약하러 온 거였지.

리사는 잠시 이 집주인이 공방에서 가구를 제작하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집주인에 대해 잠깐 말해보자면 푸른 느낌의 머리색을 가졌고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는데 마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가구를 제작한다니! 멋있어 보였다.

뭐 그것과는 별개로 집주인은 자리를 권하며 ‘차? 커피?’ 라고 물었다.

“아... 카페인이 적은 걸로 있나요...?”

“아, 루이보스 있어요. 나도 잘 모르지만 선물 받은 거라..”

“그걸로 부탁할게요. 아, 아니 제가 할까요?”

“앉아서 계약서를 먼저 보고 있는다면 시간 절약이 되겠네요.”

넵, 알겠습니다.

리사는 입을 다물고 탁자에 놓인 계약서를 들고 읽었다.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위치, 사생활이 지켜지고, 방도 작지 않은 이런 집을 어디서 다시 볼 수 있겠는가.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이 공고는 리사가 집을 찾기 한 달 전부터 있던 공고였다. 무슨 문제가 있는데 자신이 못 본 건 아닐까.

“아 맞아. 여기 화장실은 어떻게 되지?”

“공용으로 하나 있고 방에도 하나 있어요.”

집주인이 리사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쓰게 될 방에 청소나 이런 건 각자 개인적으로 하나요?”

“.... 생각 안 해본 부분인데....”
이건 생각지도 못했다.

이것저것 질문했을 때 집주인은 다 대답을 해주었다.

사기는 아닌 모양이다.

근데 집주인은 나이가 몇이지?

궁금해서 계약서를 내려다보니 아까부터 몰랐던 집주인의 이름과 나이를 알게 되었다.

“나랑 동갑?”

“뭐, 뭔가요...”

“아니... 젊으시네요...”

“... 네.”

이마이 리사는 잠시 동안 있던 그 정적을 아직도 있지 못한다.

그리고 그 날 이마이 리사는 히카와 사요라는 집주인의 룸메이트가 되었다.

그 정적을 느끼고도 포기하기엔 그 집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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