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웨이홈으로부터 약 5년 뒤의 이야기

파프롬홈의 일부 설정을 바꿔 차용했습니다. 

그루밍 범죄 장면에 대한 짧은 묘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사는 파프롬 홈을 그대로 가져온...)






"이 작전은 폐기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네. 토니 스타크의 차가운 목소리가 훈련장에 울려 퍼졌고 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해독 세럼이 스파이더맨의 몸에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들지 않는다기보다 그의 힐링 파워인지 뭔지가 세럼의 작용을 방해하고 계속 그의 몸을 정상화시켰다. 스파이더맨에게 세럼의 지속시간은 1분도 채 안 되었고, 덕분에 지금의 피터는 무방비상태로 영 어벤져스 앞에서 세뇌 가스에 푹 절여진 상태가 되었다. 시험용으로 약하게 배합된 것이라 일시적인 것이라 한다지만은. 


"그럼 지금 세뇌된 상태라고?"

"아무 느낌 없는데요?"

"손."

케이트는 마치 강아지 훈련을 시키는 양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스파이더맨의 손이 자연스럽게 케이트의 손 위에 얹어졌다. 둘은 동시에 오~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거 가져와." 옐레나는 거기에 한 술 더 떠 제 단도 껍데기를 반대편으로 던졌다. 커버는 부메랑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갔다. 피터가 반사적으로 커버를 공중에서 낚아채기 위해 몸을 틀었다. 

"애한테 뭘 시키는거야?" 토니가 기겁하면서 스파이더맨의 목덜미를 붙잡고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에요. 결국 세럼의 작용은 신경계랑 연결되니까..."

"그 말은.."

"벽에 스스로 머리를 박아 니 이마와 코에 연결된 신경을 터뜨리면 될 거 같아."

"근데 전.. 그것도 금방 나을걸요...?"

"그러니까 니 회복 시간을 미리 측정해서 환풍구 속에서 정기적으로 벽에 머리를 박아 피를 내야겠지."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군." 이래서 꼬맹이들하고 일하기 싫어. 토니는 스파이더맨을 거의 품으로 안으면서 옐레나로부터 아예 떼어놨다. 쬐끄만 것들이 못하는 소리가 없어. 그리고 너는 뭘 맞장구를 치는거야. 제정신이야? 



-

영 어벤져스 고문인 토니 스타크와 스티브 로저스까지 작전에 투입되다보니, 미션 지원은 더 빵빵해졌고 본새도 그럴싸해졌으나 본디 사공이 많으면 많을수록 배는 산으로 가는 법이다. 샘은 점점 더 머리가 아파왔다. 미션일은 하루하루 점점 다가오는데 작전은 세우는 족족 폐기되고 진척이 없었다. 토니 스타크는 새로운 작전을 세울 때마다 헛점을 찾아내 태클을 걸었다. 


"내가 새로운 작전을 하나 생각했어." 

토니가 침묵속에 말을 꺼냈고, 모두의 시선이 토니에게로 몰렸다. 아- 결국 이렇게 하자는 거였잖아... 


"나한테 드론이 있어. 여러... 기능이 있는 드론이지. 수십대에서 백 대 정도까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데, 그 드론을 BARF기술과 연동하면 이 작전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BARF는 일종의 증강현실을 만드는 장치야. 드론에 내장된 홀로그램 기능과 합치면 더 그럴싸하게 만들 수 있겠지. 제일 처음 투입하는 게 사람이 아닌 드론이 되는거야. 그들이 우릴 세뇌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살짝 눈속임을 쓰자는 거지."


"진짜 스파이더맨이 아니고 스파이더맨의 환영을 이용하자는 말이군. 그래, 작전 상으로도 스파이더맨이 후발대로 가는 게 팀이 기동하는 데도 유리할테니까."

"그래, 세뇌된 이쪽 모습을 홀로그램 환영으로 만들어 우리가 먼저 적에게 제시하는 거지. 그들이 거기에 몰입할 때 우리는 뒤를 치는 거고."

"괜찮은 아이디어 같은데? 하지만 환영을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멤버들의 동선과 합을 더 철저히 짜야할 것 같아." 캡틴까지 토니의 아이디어에 동의했다. 

"가장 먼저 BARF를 사용할 스파이더맨이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될텐데."

"괜찮아 꼬맹이는 똑똑하니까. 이정도는 쉽게 다룰 수-"


"아니 음, 전, 우욱-"


스파이더맨은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쳐들어갔다. 





*

피터는 한 번에 마스크를 벗어버린 뒤 변기를 붙잡고 속을 다 게워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묽은 액체가 계속 목구멍을 역류했다. 


"왜 그래? 속 아파? 세럼 때문에 그런거야?"

망설임도 없이 화장실로 성큼성큼 따라 들어온 토니는 구역질을 하는 피터의 곁으로 다가왔다. 저 지금 토하고 있다고요, 창피해요. 피터는 상황에 맞지 않게 그런 생각을 했다. 토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정말로 걱정된다는 얼굴로 피터의 등을 쓸어줄 뿐이었다. 한참을 꺽꺽대던 피터는 변기를 짚고 머쓱하게 일어났다. 


"... 전 괜찮아요. 다른 분들한테도 괜찮다고 말 좀 전해주시겠어요? 세수하고 나갈게요."

"정말 괜찮은 거 맞아?" 토니가 재차 물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거에요. 토니. 토니가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러나 피터는 계속 씻어야한다고 고집을 피웠고 어떻게든 버티려는 토니에게 명백한 축객령을 내렸다. 진짜 죄송해요. 근데 냄새 나잖아요. 토니는 그것도 별로 상관 없다니까!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그 세뇌 가스에 자백제 성분도 있는 거 알지? 내가 제대로 물어보면 지금 너는-"

화장실의 문을 붙잡고 실랑이를 하다 토니가 홧김에 내뱉은 말에 아이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토니는 그 눈을 마주하고 하려던 말을 급히 거두었다. 

"아니 안 그럴게. 그냥 너 얘기하고 싶을 때 얘기해도 되니까-" 토니는 양 손까지 들어올리며 명백하게 더이상 화내지 않겠다고 항복의 제스처를 취했다. 

피터는 화장실 문을 닫으려다가 토니를 빼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토니가 예측할 새도 없이 두 손을 토니의 얼굴에 착 하고 갖다 붙이는 것이었다. 토니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피터는 잠시 두 손을 토니의 얼굴위에 두고 뭔가 확인 하는듯 잠시 심호흡을 하며 눈알을 바삐 움직이더니 "이젠 됐어요."하고 문을 닫았다. 토니는 닫힌 문 앞에 한참동안 서 있었다. 





*

저는 지금보다 어렸고, 애정에 취약한 상태였다. 토니의 아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곁에 그 이는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제 눈 앞에서 죽었으니까. 


당시의 피터에게 퀜틴 벡의 얼굴 위로 사랑했던 이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실 피터의 기준에서 그들의 외형은 그렇게 닮지 않았다. 그러나 저를 어린애 대하듯이 틱틱거리면서도 꼭 필요한 순간에 다정한 말투, 오만한 태도,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제스처, 그런 것들에서 피터는 토니를 떠올렸다. 피터는 토니 스타크의 죽음 이후 의식적으로 그에 대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지만, 벡을 알게 되고 나서는 자기도 모르게 모든 곳에서 그의 흔적을 미친듯이 쫒고 있었다. 


"스타크씨는 제 실수를 모두 알고 있었어요."

"네게 선택권을 준 거지."

"그래서 제가 선택한 거에요." 

"맙소사 kid, 그럼 정말 토니 스타크의 애를 낳을거야?"

진심이었나보네. 콘돔 광고를 찍어야 될 남자가 유일하게 남긴 자식이라니. 그리고 그것이 세상인 양 소중히 품고 있는 어린 미망인. 그는 너를 사랑했던거야. 퀜틴은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이 사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 어떻게 될 거 같아 피터?" 사람들이 순수한 마음을 믿어줄 거라고 생각해? 그의 유산은 모두 무너질거야 피터. 그 때도 그가 계속 영웅일까?

애는 못되게 내뱉는 제 말에 울먹이기 시작했다. 저는 그들의 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지. 둥글고 순한 눈매에 눈물이 가득 차오르고 결국 그것이 또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릴 때, 그것만큼 짜릿한 순간이 없었다. 


"넌 똑똑한데 너무 순진해."

힘들었지 나한테 기대. 아이는 결국 눈물 어린 얼굴을 제 어깨에 묻는다. 잔향도 안나는 오메가한테 이렇게 몸이 동하다니. 퀜틴은 조소했다. 토니 스타크가 가지지 못한 것이 제 손 안에 있었다. 그는 피터의 귀 뒤와 목덜미 등을 두꺼운 손가락으로 주물러댔다. 입술이 닿을랑 말랑하는 짧은 거리를 두고 두 사람의 숨소리가 교차했다. 아이는 시선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양 눈을 내리깔고 있었고 풍성한 속눈썹이 젖어 들어가 나풀댔다. 퀜틴은 두 손을 들어 소년의 허벅지로 가져갔다. 소년은 달라붙는 검은 수트만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감촉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뜨겁고 말랑거리는. 그리고 토니 스타크가 두고 간. 

점점 안쪽으로 향하는 두 큰 손에 아이는 퍼뜩 정신이라도 차린건지, 애는 몸을 뒤틀었다. 아-앗 잠깐만요, 이건. 

"나도 끝까지 할 생각은 없어. 누구와 달리 난 뭔가 책임지는 게 싫거든."

그냥 재미만 좀 보자는 거지. 그가 낮게 웃었다. 현실 감각 없는 어린애를 속이기는 너무 쉬웠고, 그 과정은 퀜틴에게도 즐거운 것이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네가 충분히 강했다면, 토니는 죽지 않았을거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지금 네 모습을 본다면 토니 스타크가 뭐라고 할 거 같아?




_

영국에서 돌아온 후, 그리고 엠제이가 제 존재를 잊기 전, 피터는 악몽을 꾸고 새벽에 막무가내로 그녀를 찾아간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안 그래도 제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메이를 괴롭힐 생각이 없었고, 네드의 단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고 있던 엠제이는 창문을 두드리는 스파이더맨을 별로 놀란 기색도 없이 방에 들여줬고, 피터는 펑펑 울면서 죄책감의 근원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 사람이 너한테 한 짓은 그루밍 범죄야.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똑똑한 엠제이는 모든 이야기를 듣고 건조하게 진단을 내렸더랜다. 

"하지만 난 토니를 실망시켰어."

"오 피터. 하지만 토니는 이제 없잖아."

엠제이는 슬프게 말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을. 피터, 지금은 너랑 네 뱃속에 있는 아기만 생각하자. 피터의 목을 끌어안고 엠제이는 조용히 그를 위로하려 했다. 피터는 그 노력을 헛된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계속 토니를 생각해. 왠지 토니가 다시 돌아올 것 같단 말이야.' 그래서 피터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토니가 돌아와도, 이런 나를 보고 예전처럼 사랑해줄지 모르겠어.'






*

"드론이 문제인거지?"

드론 다 빼. 또야?! 토니 스타크가 명령조로 말하자 샘의 절규가 들려왔다. "애가 벌벌 떨기만 하고 아예 움직이지를 못하는데 작전 수행을 대체 어떻게 한다는거야." 토니가 으르렁댔다. 너 진짜 왜 그래? 케이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표정으로 물어왔다. 훈련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피터도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드론들이 자신을 엄호하며 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주변의 모든 것이 환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렸을 때 현실과 환영을 구분하지 못하여 큰 코 다쳤다면, 이제는 주변의 모든 것이 전부 가짜로 보였다. 피터는 도통 집중하지 못했고 옐레나의 발차기에 정통으로 맞아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았다.   


영 어벤져스와 샘, 스티브 그리고 토니 스타크까지 함께 모여있는 이 공간이 환영이고, 나는 낡은 아파트에 혼자 누워있는 것 아닐까. 저 사람은 토니가 아니고 벡인 거 아닐까. 만약 지금 이 상황이 미스테리오의 환영이라면 언제부터 날 속인걸까? 처음부터?  


"스파이더링."


토니가 스파이더맨의 어깨를 그러잡으며 나지막히 말해왔다. 적당히 강하게 움켜 쥔 데에서 그의 악력이 느껴졌고 마주치는 숨결이 코 앞에 느껴졌다. 피터는 다시 이것이 현실임을 상기한다. 


"오늘 훈련은 끝이야."

"...지금 미션일이 며칠 안 남은 건 알고 있지?"

"알아. 하지만 오늘 더 진행하는 건 불가능해."

그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스파이더맨은 거의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고 아까부터 묵언수행이라도 하는 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빠르게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는 조리개는 애의 상태를 충분히 대변해주었다. 

"스파이더맨을 제외하고 플랜을 다시 짜볼게."

"아니에요. 저, 할 수 있어요!"

자신을 제하겠다는 샘의 말에 반사적으로 피터가 소리쳤다. 토니의 눈썹이 꿈틀했다. 

"지금 너 굉장히 아파보이거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네가 말해줄 생각도 없겠지만, 제대로 고민해보고 다시 말해줘." 샘은 피터의 말을 다시 한 번 물렀다. 그리고 니 보호자랑도 담판을 짓던지 해라. 심술궂은 말을 덧붙이면서. 멤버들이 하나하나 훈련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완다가 와서 피터에게 뭐라고 말을 걸려고 했으나 토니가 빨리 사라지라는 양 매서운 눈짓을 하자, 그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맞서 째려보더니 밖으로 휙 나갔다.

 

넓은 훈련장에는 토니와 스파이더맨만이 남아있었다.  


"오늘 민폐 끼쳐서 죄송해요."

피터가 대화의 공백을 이기지 못하고 서둘러 가방을 챙겨 나가려고 하자, 토니가 그의 얇은 손목을 움켜 잡았다. 


"피터, 집에 가지마. 나 오늘 너 못보내."


에디를 이쪽으로 데리고 올테니까. 여전히 스파이더맨 마스크를 쓰고 있는 그에게 토니가 굳이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토니는 애의 상황이 무엇인지 알았다. 애는 명백하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었다. 강박부터 시작해 온갖 정신병을 달고 살아온 제가 가장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것이었다. PTSD의 가장 즉각적인 치료 요법은 노출이었다. 자신을 괴롭게 만든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상상하고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저와 자세히 이야기하고 서로 묵은 때를 털어놓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터였다. 아직 자백제의 효과가 돌고 있다면 지금이 적기였다. 

하지만,

토니는 오늘의 피터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에게 시간은 많으니까. 내가 잊어버린 2년보다 더 더 긴 시간이 남아있을테니까. 그래서 토니는 아무말 없이 소년의 손을 끌어와 제 손 위에 겹춰두었다. 손등을 살살 토닥이며 애를 다그치기보다는 일부러 자신의 불안을 호소했다. 네가 걱정돼. 나 요즘 잠도 잘 안 와. 아이의 동정심에 호소하면, 피터는 또 순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거다. 알겠어요. 






*

새벽에 토니의 침실이 천천히 열렸다. 설핏 잠이 들어 있던 토니는 비몽사몽 중에도 밤손님을 기꺼이 맞았다. 

"잠이 안와?"

토니는 피터를 자연스럽게 제 침대로 이끌었다. 제 몸을 옮겨 애가 누울 자리를 만들고 이불 속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꼼꼼히 몸을 덮어주었다. 밖에 얼마나 서 있던 것인지 몸이 찼다. 그는 아무말도 묻지 않고 제 온기로 애의 몸을 데웠다. 


"키스해 주세요. 토니."


피터의 목소리가 물기에 어려있었다. 토니는 아무말 없이 아이의 입가로 제 입술을 내렸다. 잘게 몇번 맞닿은 입술은 숨과 타액을 교환하면서 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토니는 피터의 혀를 잡아채고 옭아매면서 깊게 빨아올렸다. 한참을 숨을 공유한 후, 귀 뒤 그리고 목선과 쇄골을 따라 쏟아내는 키스에 피터가 으응-하고 짧은 신음을 냈다. 토니는 행위 하나하나에 집중하다가 애가 몸을 점점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피터의 뒷목에서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피터... "

"흐으.....향 풀어주세요. 토니....."

토니는 이유를 캐묻는 대신 기꺼이 제 알파 향을 애에게 덕지덕지 묻히기 시작했다. 마치 마킹을 하듯이 꼼꼼한 움직임이었다. 


피터는 확신한다. 이 사람은 토니 스타크이다. 퀜틴 벡은 죽었다. 토니는 부활했으며 기억을 모두 잃었음에도 다시 제게로 돌아왔다. 그는 만지면 만지는대로 느껴졌고 토니의 향이났다. 이 사람은 나의 토니가 맞았다. 피터는 변하지 않는 참인 명제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며 곱씹었다. 

향을 맡고 진정이 되었는지 몸의 떨림은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 대신에 토니는 축축해지는 제 어깨께가 느껴져 피터를 다시 고쳐 안았다. 두 사람이 몸이 떨어진 곳 없이 밀착되었다. 그는 훌쩍대는 피터의 울음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제가 토니를 배신했어요."

피터가 겨우 입을 떼고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넌 여기 있잖아." 토니는 피터가 가진 불안의 근원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하지만 피터가 그것을 은연중에 노출시킬 때면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정말 애가 정말 땅으로 훅 꺼져버릴 것 같아서. 토니는 식은땀으로 푹 절은 피터를 싫은 기색 전혀 없이 안고 있었다.   

"토니가 죽어있을 때 토니를 가장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저는 토니가 죽은 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일말의 희망을 가졌고, 그냥 토니라고 믿고 싶기도 했어요...저는 어렸고 멍청했어요. 어떻게 착각할 수 있었을까요.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에요."

토니는 아이가 사라져 버릴 것이 두려운 와중에도, 저의 순진함을 고백하는 아이의 얼굴이 미치도록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에겐 아무런 질문도 대답도 필요 없었던 것이다. 넌 날 배신하지 않았어. 나를 기다려줬잖아. 에디를 포기하지 않았잖아. 내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도 나를 받아줬잖아. 지금 나와 같이 있잖아. 토니는 제 잘못을 시인하려는 물기 어린 얼굴을 살피다가 힘들게 다시 입을 떼려는 피터의 입술에 제 얼굴을 다시 가져다 댔다. 그는 다시 한번 아이의 아랫입술과 혀를 깊게 빨아들였다. 


괜찮아. 너는 아무 말 안 해도 돼. 


어둠 속에서 토니의 안광이 빛났다. 

그 새끼들은 내가 다 족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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