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습관은 이제 인격이라 할 만큼 바꾸기 힘들다. 멀어지다가 가도 다시 가까워진다.


바로 독서가 그 주인공이다.


나의 독서 이력은 초등학교가 시작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한글을 떼지 못했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훗날 어머니께 그 사정을 들으니 2살 터울의 동생이 한글을 익혔으니 당연히 내가 잘 할 거라 믿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불행히 당시 나는 아니었다. 그런 내가 초등학교 생활이 순탄할 리가 없었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께 가정 통신문을 보냈다. 내용이야 뻔했으리라 짐작한다.


그렇게 짧은 1학년 생활이 끝났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학교를 그만뒀다. 그리고 이후 1년 동안 어머니의 스파르타 교육이 시작됐다.


그렇게 나의 독서 생활도 시작이었다.


어머니의 한글 교육은 독서가 중심이었다.


매일 1시간을 소리내서 읽었던 게 지금도 기억이 남는다. 덕분에 나는 한글 발음 하나는 좋다는 소리를 지금까지도 종종 듣는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독서 이력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주저 없이 과거 취미란에 ‘독서’를 당당하게 쓸 만큼 다독가다. 지금은 양보다 질을 더 신경쓰지만 한때는 1 년에 수백권을 읽을 정도였다. 그런 경력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다양한 독서는 나의 세상을 향한 관심사를 반영했다.


그런 까닭에 나의 독서 범위는 꽤나 넓다. 문학에서 비문학, 그 중에서도 철학, 예술, 과학, 기술, 경제 등 필요하다면 닥치는 대로 읽는다. 그게 나의 독서 방식이다.


두려움 없이 궁금하면 찾아 읽는다.


말 그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즐긴다.


일단 관심사가 생기면 내 첫 관심은 검색이다. 주로 아마존에서 해당 키워드로 책을 찾는다. 아무래도 관심사가 문학이 아니라면 영어권 자료가 양이나 질이 풍부하다고 생각해서다. 그렇게 책을 찾는다. 번역이 있으면 번역을 읽고 그렇지 않으면 원서로 읽는다.


해당 주제의 책을 찾아 읽고 또 그 책을 단서 삼아 참고 문헌을 찾는다. 그러니 나의 독서는 항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이다. 관심 분야를 넓히고 깊게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나의 독서는 쉴 틈이 없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지각(perception)이다.


물론 처음 시작은 이 주제가 아니었다. 들뢰즈의 <시네마>를 읽던 중 이미지를 이해하기 위해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을 거쳐 신경 과학 분야에 이르렀다.


이 정도까지 공부를 진행한 이유는 일단은 궁금한 점은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 때문이다. 한때 철학 전공자였던 나는 근대 철학의 인식론에 갇혀 지각을 이해하고 있었다. 소위 표상주의가 내가 이해하는 지각의 기초였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들뢰즈나 베르그손은 전혀 지각을 이렇게 접근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해가 도통 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게 시작이었다. 얄팍하게나마 다른 접근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새로운 이해가 생겼다.


인식인 확장된 것이다.


공부의 출발은 독서다.


물론 과거 학교에 속해 있던 시절의 독서와 다르다. 대학에서 업을 갖고 있지 않은 나는 논문을 쓸 필요가 없다.


논문 위주의 읽기는 내 관심이 아니다. 그저 관심 분야의 책을 읽을 뿐이다. 내가 물리적 책을 선호하는 이유는 수백 쪽의 책이 지니는 매력 때문이다. 풍부한 서지, 그리고 체계. 책을 쓰는 게 가능하다면 해당 저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게다가 책을 굳이 사지 않아도 읽을 기회는 많다. 바로 도서관이라는 공공 장소를 거쳐서 말이다. 이 얼마나 돈 안 드는 취미란 말인가.


도서관은 나의 친구다.


우리의 독서율은 형편 없다.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다양하다. 이와 함께 책을 읽을 이유도 많다.


정보를 획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나는 책을 읽는다. 다양한 맥락을 제공받는 데 책만큼 좋은 매개는 없다. 설령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만한 정보라도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혀 의미가 없다. 이런 점에서 책은 해당 주제의 폭넓은 맥락을 제공한다. 그게 여전히 책이 유효한 이유다.


보통 책을 읽으면 단 몇 줄의 메모로 남는다. 몇몇의 진술이 내 이해인 것이다. 아마도 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 책을 고를 것이다.


다음에 어떤 책을 읽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이유다.

쓰고 싶은 것과 읽고 싶은 것 사이 어딘가에서 쓰는 글쓴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주제로 교양서 한 권을 썼다. 문의 cogitoy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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