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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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다니엘은 넓은 풀밭 위에 누워있었고 풀밭은 새벽 이슬에 젖어 다니엘의 등을 촉촉히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꽃향기. 

진한 꽃향기가 그 공간을 모두 메우듯이 가득 차있었다. 숨이 안쉬어질 정도로 어질어질한 꽃향기에 다니엘은 살며시 눈을 떴고 강한 햇살 밑으로 조그마한 실루엣이 눈 안에 들어찼다.


"누구..."

"그쪽이야말로 누구신데 여기 누워있어요?"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따져 묻는 실루엣이 눈에 익숙해져 갈 때 쯤, 다시 어두워지는 시야와 귀에서 강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다니엘은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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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디지? 한참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눈을 뜬 다니엘은 어리둥절했다. 왠 하얀 꽃이 사방팔방 피어있는 정원...? 아까 전 꿈 속에서 나던 진한 꽃향기가 진동했다. 거긴 분명 꿈 속이었는데...여긴 뭐지, 다니엘은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흰 꽃만 가득 피어있는 정원을 빠져나오자 높고 커다란 돌담이 다니엘의 앞을 막아섰다. 허허벌판에 유일하게 우뚝 솟은 돌담을 따라 오른쪽으로 쭉 걸어가자 다니엘은 정원에서 보았던 하얀 꽃들이 얽혀 피어있는 작은 통로 하나를 발견했다. 간신히 성인 한명이 통과 할 만한 그 곳을 다니엘은 홀리듯이 들어갔다. 다니엘은, 대충 뭐 이것도 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실 자각하지 못했지만, 더 대담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작은 통로를 통과하자 차가운 공기가 다니엘을 스쳤고 조금 어두운 실내에 눈을 몇번 꿈뻑거리던 다니엘은 눈 앞에 펼쳐진 모습에 헙,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굉장히 높은 천장에, 온통 대리석으로 지어진듯 반들거리는 바닥과 기둥이 길게 늘어져있었다. 생각없이 기둥을 쓸어보던 다니엘은 멀리서 무리지어 오는 누군가를 발견했고 반사적으로 기둥뒤에 몸을 숨겼다.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누군지 궁금했던 다니엘은 기둥 뒤에 숨어 슬쩍 지나가는 그 무리를 조심스레 살펴봤다. 사람의 모습인듯 한데 하얀 가면을 쓴 것 같아 보였고 어딘가 쎄한 느낌에 뒷걸음질 치려다가, 툭.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아...죄송..."

"어? 아까봤던 그 사람이네?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요?"


네??? 놀란 다니엘은 뒤돌아 본인과 부딪힌 상대방을 확인했다. 내 콧잔등 정도 오는 키에 뽀얀 피부, 올려다보는 눈빛이 앙칼지면서도 묘한 느낌이네, 꿈 속에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다니엘이었다. 어림짐작해서 본인보다 4살정도는 어려보이는 얼굴은 아까 봤던 하얀 가면들과 달리 그냥 평범한 사람같았다.


"여기 어떻게 들어왔냐구요. 막 들어오면 큰일날텐데."

"아 저기 그냥 저 통로로..."

"저건 또 어떻게 찾았대, 얼른 나가요! 괜히 여기 있다가 들키면 진짜 큰일나요."


투덜거리면서도 불안한지 자꾸 양손으로 손톱을 매만지는 이름 모를 상대방의 재촉에 다니엘은 다시 이끌리듯 통로 밖으로 쭈뼛거리며 나가는데, 끊임없이 앞서 걸으며 투덜거리는 아이.


"저기요, 여기 사람도 아닌것 같은데 겁도 없이 그렇게 함부로 막 돌아다니고 그러지 마요."

"여기가 어딘데요?"


그러게, 여기가 어디지? 갑자기 밀려오는 의문과 함께 이상하단 눈으로 다니엘을 바라보던 아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허, 하고 한숨을 뱉더니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여기, 그 쪽 꿈 속이잖아요."

"네?"

"당신 지금 꿈꾸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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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진동하던 진한 꽃향은 어디가고 코를 찔러오는 알콜 냄새에 다니엘은 눈을 찌뿌렸다. 뭐야, 병원?

방금까지 일어난 일들과 나눈 대화들이 너무 생생한데, 이게 꿈이라고?  다니엘은 뻐근한 몸을 손가락부터 조심스럽게 움직여봤다. 이상하게 왼쪽 다리가 묵직하다. 뭐지?

아, 나 결국 그 차에 부딪혔구나.


"어머, 일어났구나!!"


화장실에 다녀왔는지 젖은 손을 털며 들어오던 다니엘의 엄마는 몸을 일으키려던 다니엘을 보곤 놀라 급하게 침대 옆으로 와 다니엘을 부축했다.


"어...혹시 제 왼쪽 다리, 부러졌어요?"


다니엘은 왼쪽 종아리부터 발 끝까지 칭칭감겨있는 깁스를 보며 엄마에게 물었고 정신없이 부축하며 옷매무새를 매만져주던 다니엘의 엄마는 다니엘의 물음에 눈을 피하며 그게...하고 말 끝을 흐렸다.


"왜요, 설마 저...못걷는데요?"

"아니... 못걷는건 아닌데 니엘아, 그런데..."


무용, 못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 

조금은 예상했지만, 그래도 믿고 싶지않았던 현실이었다. 다니엘은 눈 앞이 깜깜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본인의 미래도. 이 나이까지 현대무용 그거 하나만 보고 살았는데, 다른 건 관심가질 틈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내 삶이고 미래였는데, 할 수 없다니,

그럼 이제 난 뭘해야 하지.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필이면 지금, 이제 막 무용수로 시작해보려는데 왜 나야. 그 차는 왜 나를 치고 간거지?

다니엘은 비집고 나오는 눈물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참을 엄마와 부둥켜 안고서 서럽게도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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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미련은 오랜시간 다니엘을 붙잡으려했지만 더이상 울고 좌절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엔 많은 일들이 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다른 것이 분명 존재할거라 믿었다. 다니엘은 올곧고 맑은 사람이라 망가져버린 미래를 마냥 두고 볼 수 없었다.

마음이 어느정도 정리된 듯 했던 그 날, 다니엘은 또 진한 꽃향기를 맡았다. 그 때 봤던 그 곳이었다. 분명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졌던 기억들이었다. 어떤 곳이었는지 무슨 향이었는지 그 아이가 어떻게 생겼고 목소리가 어땠는지, 꿈에서 깬 뒤로 잊혀지고 있었는데 꽃향기를 맡으니 거짓말처럼 그 꿈들이 기억이 났다. 뭐야, 같은 꿈을 또 꾸는건가?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다니엘 스스로 꿈을 자각하고 있었다. 

두번째로 방문하는 정원을 다시금 둘러보던 다니엘은 어딘가로 시선이 이끌렸고, 이 정원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하얀 꽃들 사이에 갈색 머리 뒷통수가 귀엽게도 동그랗게 자리 잡고있다. 그 때 그 사람인가? 다니엘은 홀린 듯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저기, 안녕."

"뭐야! 아 깜짝이야!!! 뭐에요??? 여기 또 어떻게 왔어요???"

"그냥, 눈 뜨니까 여기던데.."


머쓱하게 뒷통수를 긁적이며 하핫, 하고 어색하게 웃어보이자 그 아이는 다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여기 오면 안된다니까, 왜 자꾸 오는거야 진짜... 중얼거리며 느리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저기, 이름이 뭐야?"

"네? 그게 왜 궁금해요??? 그리구 왜 자꾸 반말해요??"

"딱 봐도 어려보여서, 편하게 말이 나왔나봐. 기분 나빴으면 미안."

"아니 뭐, 기분 나쁜거까진 아니궁...여기 사람 아닌데 자꾸 오니까 걱정돼서 그렇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앙칼지게 대답하더니 다니엘의 사과에 언제 그랬냐는듯 입술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생긴 것처럼 동글거리게 말하네, 다니엘은 틱틱대는 아이가 마냥 귀엽기만 했다.


"나도 오고 싶어서 온게 아니고, 꿈꾸면 여기서 눈이 떠지는거라... 좀 당황스러워."

"흐음...그래요? 알았어요! 저는 대휘에요. 여기 살구있어요!"


나는 다니엘, 그냥 형이라고 불러도 돼. 만나서 반가워. 내미는 다니엘의 손에 대휘는 알 수없는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살며시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런데, 어차피 여긴 내 꿈인데 왜 위험한거야?"

"꿈 속이긴 한데... 여긴 다른 곳이에요, 그....형....이 꾸는 꿈은 아니에요. 그래서 이렇게 자꾸 오면 안돼요!"


대휘는 입에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 부끄러운 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다른 곳? 분명 내 꿈 속이라고 했는데... 알 수 없는 대휘의 말에 다니엘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정확한 설명을 해달라했지만 더 자세하게는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그럼 돌아가는 방법은?"

"음...저번엔 어떻게 돌아갔어요?"


그 때? 어떻게 돌아갔었지...? 대휘가 나한테 뭐라고 말하고, 그 뒤에 깬 것 같은데. 


"너가 나한테...뭔가 말하면 되는 것 같은데."

"제가요???"

"응, 저번에도 그랬잖아."

"아! 그 때... 뭐라고했지..."


생각이 잘 안나는지 눈을 감고 미간을 팍 찌푸리던 대휘는 한참동안 뭐더라...하고 고민하더니, 생각났어요!!! 갑자기 바락 큰소리로 방방댔다.


"형, 지금 꿈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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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눈을 뜨면 이상하게 또 흐릿해진다. 분명 방금까지 눈앞에서 방방대던 아이의 이름이...무슨 휘였는데, 그리고 어떻게 생겼더라. 쌍커풀이 있었던 것 같기도, 없던 것 같기도 하다. 

오직 알 수없는 그 꽃향기만이 다니엘의 코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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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몇 번 다니엘은 대휘를 만날 수 있었다. 왜 자꾸 오냐며 여기 오면 안된다고, 큰일 날 거라고 당장 돌려보내겠다며 성질부리던 대휘는 어느 순간부터 포기한건지 계속 찾아오는 다니엘에게 화를 내려다가도 그러려니 하는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모든 꿈이 다 그 곳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걱정이나 근심없이 편하게 잠들었을 때, 그럴 경우에만 다니엘은 그 정원의 가운데서 꽃향기를 맡으며 눈을 떴다. 알게 된건 그것뿐이 아니었다. 왼쪽 다리를 다친 다니엘이지만 그 곳에선 멀쩡하게 뛸 수 있었고 춤도 출 수 있었다. 아쉬운건 꿈 속에서 두시간 정도 머무는 시간이 눈을 떠보면 6시간씩 지나있는 것이다. 다니엘은 그 시간이 못내 아쉬웠다.

종종 이 곳에 오면 서로 뭘하며 하루를 보냈는지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휘는 주로 정원을 가꾸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단다. 언제 한번 들려달랬더니 또 그 앙칼진 목소리 절대 안된다며 방방거렸다.


"형은요? 형은 뭐하는 사람이에요?"

"나? 음...원래 무용했어."

"우와, 그래서 그렇게 춤을 예쁘게 추는구나!"

"나 춤추는건 또 언제 봤어??"

"아아니...!!! 우연히!!! 정원에 물주다가! 어라 근데 왜, 했어라고 그래요?? 지금은?"

"지금은 못해, 꿈에서 깨면 왼쪽다리가 부러져 있거든."


세상에... 대휘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미안한 눈으로 다니엘을 보며 어떡해...세상에...를 연발했다.


"그래서 요즘엔 그림 그리는데 빠져있어, 손은 멀쩡하거든."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휘에게 씩 웃어보이며 대휘를 향해 양손을 흔들던 다니엘은, 그림 그리는 것도 재미있다며 언제 대휘 너도 그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슬픈 눈으로 다니엘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대휘는,


"그치만 형은 깨어나면, 나 기억 못할텐데..."


시무룩해져서 기억두 못하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려주냐궁... 쭈물거리며 투덜거렸다.

대휘 말대로 이상하게 꿈 속에선 생생하게 보이던 얼굴이 눈을 뜨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름도 이렇게 열심히 부르고 외워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다니엘에게 대휘는 꿈 속 허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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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휘와 꿈 속에서 만난지 몇 달이 흘렀다. 다니엘은 퇴원했고 몇 번의 재활치료를 주기적으로 받고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 외에 다니엘의 관심사는 하나 더 있었다. 백번을 물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짙은 향기의 하얀꽃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내고 싶었다. 왠지 그 꽃이 이 이상한 꿈의 실마리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건 그 향기, 여기서도 맡으면 바로 생각날 것 같은데 식목원이나 꽃시장을 몇군데 돌아도 찾아내지 못했다.


"형 오랜만에 왔네요!"


대휘와는 많이 친해졌다. 사실 다니엘에겐 친한 관계 그 이상이지만 나에게는 3개월이 대휘에게는 1개월정도 밖에 안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대휘는 다니엘의 마음을 따라오기 벅찼다.


"요즘은 걱정이 많았나봐요? 한동안 못왔던 걸루 봐서..."

"요즘에 부쩍 현실이 치열했거든, 할 것도 많았어. 핸드폰도 바꿨고, 퇴원하고 치료도 받고 그림도 그리느라..."


이상하게 대휘는 다니엘이 꿈 밖의 이야기를 하면 어딘가 기대하면서도 알 수없는 표정을 지었다. 가지 못하는 곳이라서 궁금한걸까, 싶은데 그 기대 뒤의 슬픈 표정은 무슨 의미인지 다니엘은 알 수 없었다.


"근데 대휘야, 우리 옛날에 갔던 저 돌담 너머는 뭐가 있는거야?"

"그건 궁금해하지두 말아요! 형 여기 이렇게 오는것도 감사히 생각해야 되거든요!"

"왜? 어차피 꿈이고 너가 깨게 해줄건데..."


다니엘은 몇달동안 찾아온 이 정원 말고 대휘와 다른 곳이 가보고 싶었다. 이 꿈 속에서라도 대휘와의 추억을 만들어야 현실에서 조금 더 이 아이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히 이게 형 꿈이 아니라니까요, 정말..."


대휘는 아휴 답답해! 하며 가슴을 콩콩치더니 암튼 절대 안된다며 얼굴 앞으로 크게 엑스를 그려댔다. 그럴수록 저 안이 궁금한건 어쩔 수없는 사람의 마음이지 않을까. 다니엘은 대휘 몰래라도 저 곳을 구경하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때는 정말, 그저 꿈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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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여느날처럼 정원에서 눈을 뜬 다니엘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고 두리번거리며 정원에 대휘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항상 다니엘이 이 곳에 올 때 쯤 대휘는 함께 마실 꽃차를 끓이기 때문에 찾으러 나오기 전에 다니엘은 빨리 여길 빠져나가야 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금살금 정원을 빠져나온 다니엘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기억을 살려 돌담을 따라 쭉 걸어갔고 어렵지 않게 통로를 찾아냈다. 그 때와 다름없이 길고 어두운 통로에는 여전히 하얀 꽃들이 잔뜩 피어있었다.

조심스럽게 들어서자 그 때처럼 어디선가 불어오는 서늘한 공기와 차가운 대리석이 다니엘을 맞아주었고,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다니엘은 양팔을 살살 문질렀다. 여긴 도대체 뭐하는 곳이지, 확실히 대휘랑 추억을 쌓을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하얀 가면을 쓴 무리들이 여전히 그 공간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다니엘은 그들의 눈을 피해서 긴 복도를 돌아다니며 이곳 저곳을 구경했다. 별로 화려하지도 않고 볼거리도 없는, 그저 대리석으로만 도배된 듯한 공간. 별거 없어보이는데 대휘는 왜 그렇게 정색했던거지, 돌아가서 자세하게 물어봐야겠다. 

다니엘은 결국 별 재미를 찾지 못하고 뒤돌아 나가려는데, 저 멀리서 시끄럽게 말소리가 들려왔고 반사적으로 복도 끝 모퉁이에 몸을 숨겼다. 또 하얀 가면을 쓴 무리들이다. 그들이 지나갈 때 떠들고 있는 말들을 좀 엿들어볼 수 있을까 해서 최대한 집중하고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데,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대휘...? 대휘 이름이 왜 저것들 입에서 나와? 뭐라는거야...대휘가 파수꾼이라고...? 대휘가 왜?


"요즘엔 별로 잡아오질 못하네, 수상해 그 녀석."

"그치? 분명 한 놈 있는 것 같은데... 무슨 꿍꿍이냐, 여태 못 데려오고."

"저러다 그 분한테 걸리면 큰 일 날텐데..."

"괜히 우리까지 모가지 날라가는거 아닌가몰라."


들으면 안될 걸 들은 것 같았다. 그들이 떠들어대는 말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대휘가 원래 나를 잡아다가, 누군가에게 바쳐야해? 여길 지키는 파수꾼이었어? 그럼 나는 왜 그냥 놔둔거고... 다니엘은 혼란스러운 사실에 생각없이 터덜터덜 복도를 걸어나왔다. 본인이 지금, 몰래 이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단 걸 망각한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긴 복도를 무방비하게 걷는 다니엘이 그들에게 발각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이 거기, 당신 뭐야."

"잠깐만, 너 여기 사람이 아니네?"

"뭐?? 설마 너가 그놈이냐?!?"


다니엘은 당장 그 곳을 빠져나와 정원을 향해 달렸다. 뒤에서 쫓아오는 하얀 가면의 무리들. 괜찮아, 대휘가 꿈에서 깨게만 해준다면 끝나는 일이다. 나는 현실로 돌아가기만 하면 돼. 다니엘은 급하게 대휘를 찾았다.


"대휘야!!! 빨리 돌아가게 해줘!!!"

"무슨 일이에요?? 아니, 언제 왔어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당장 돌아가야해. 쫓기고 있거든, 내가. 들켜버려서..."


네??? 대휘는 그제서야 다니엘의 뒤를 쫓아오고 있던 무리를 발견했고 대휘의 동공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쳤다. 하지만 이내 입술을 앙 다물고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다니엘의 뺨을 두 손으로 붙잡아 눈을 맞췄다.


"형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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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깨어난 지 삼주가 지났다. 삼주동안 다니엘은 어떤 꿈도 꾸지 못하고 깊은 잠만 잤다. 아직도 그 아이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데, 마지막 나를 돌려보내는 순간 내 뺨을 잡던 손의 떨림과 그 애가 울고 있었다는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진짜 울었던가? 분명 눈에 맺힌 눈물을 본 것 같았는데, 그것도 허상이었던가. 모든게 확실하지 않았다.

슬슬 걱정이 됐다.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는지. 나 혼자 도망친건 아닌지. 그리고 그들이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진 않을지. 그 곳에 가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니엘은 꿈과 현실을 자꾸 혼동했다. 다시 가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에게 묻고 싶은게 너무 많았고 확인하고 싶은게 많았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나를 왜 살려두었는지, 그 마음이 무엇인지. 점점 그 아이의 얼굴이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가, 

너무 보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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