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부 엔딩 시점으로 3부와 4부에 관한 전반적인 네타가 존재합니다.
- !!주의!! 승화(죠타로x카쿄인), 화디오(카쿄인x디오), 디오승(디오x죠타로)의 커플링이 동시에 등장하기에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습니다. 유의해서 읽어주세요.
- 가벼운 느낌의 코믹/일상물로 편의에 따른 이런저런 설정 날조가 존재합니다.



 

 

“저…….”

 

“음?”

 

머뭇거리며 이쪽을 쳐다보길 만날 때마다 여러 번. 할 말이 있느냐고 물어봤던 것에도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젓던 게 수어 번. ‘죠타로 씨가 그만큼 잘생겨서 그런가 봄다, 부럽네에.’ 하는 죠스케의 말에도 가시지 않았던 석연찮음.

 

다행히 그 궁금증은 지금 풀리려는 것 같다.

 

모리오쵸의 흉악한 연쇄 살인마 키라 요시카게를 처리하는 일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을 꼽자면 역시 스기모토 레이미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은 영혼이지만.

 

스기모토 레이미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계속 기다렸다. 평범하게는 눈에 띄지도 않는 외로운 골목길 안에서. 이어지는 희생을 막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외로운 시간을 오래 버틴 레이미는 드디어 목적을 달성했다. 키라는 죽었다. 더 이상의 희생자는 없다. 혹시 몰라 어느 정도를 두고 봤다. 갑작스러운 실종 뉴스가 더 이상 없다는 건 확실했다.

 

목적을 달성한 채로 승천만을 앞두게 된 스기모토 레이미.

 

다 함께 가지 말라고 부탁하는 말에도 레이미는 굳건했다. 자신의 목적은 끝났고 바라던 일도 이루어졌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영혼의 세계로 떠나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인 만큼 거부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틀 후에 인사를 나누자고 한 레이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설 때.

 

죠타로는 그를 슬쩍 잡아 오는 레이미의 손길을 느꼈다.

 

레이미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눈짓했다. 작별의 날을 지금 당장으로 잡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스기모토 레이미는 쿠죠 죠타로와 단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죠타로는 그동안 매번 레이미가 그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봤던 이유를 이제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이미는 매번 만남마다 유독 죠타로만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모두가 한 번씩 레이미에게 의아하게 물어볼 정도였다. 얼굴에 뭐가 묻은 것도 아니고, 어색하게 느끼거나 무서워하는 것도 아니고. 죠스케는 잘생긴 얼굴에 시선을 한 번 더 주게 되는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한 죠스케도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건 알았다.

 

아무리 물어봐도 답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일이다. 일이 다 끝난 마당에 이야기해 줄 줄은 몰랐다.

 

죠타로는 레이미가 그를 몰래 잡았다는 걸 내색하지 않았다. 레이미가 몰래 그를 잡아 온 걸 보니 그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이제껏 많은 경험을 쌓아온 그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 정도는 간단했다. 죠타로는 티가 나지 않게 다른 사람들을 전부 돌려보낸 후 혼자 남았다.

 

이미 날이 저문 시간, 주변의 인적은 없었다. 레이미는 무언가 큰 결심을 한 것처럼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상하게 쳐다보던 시선 안, 매번 녹아 있던 망설임의 답을 스스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죠타로 씨. 혹시 유령을 무서워하세요?”

 

“아니. 그럴 리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지만 죠타로는 단호하게 답했다. 애초에 눈앞에 있는 레이미도 유령이었다. 죠타로는 그녀를 보고 놀랐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개 아놀드를 보고 놀라기는 했지만 유령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목의 상처가 노골적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유령이라 그에 대한 아픔은 느끼지 않는다고 하지만,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시선이 간다.

 

레이미는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를 빤히 바라보던 표정이 굳건해졌다.

 

레이미는 망설임을 완전히 밀어낸 표정으로 땅을 한 번 쳐다보더니, 크게 심호흡을 했다.

 

“죠타로 씨. 저…….”

 

“음?”

 

레이미는 손을 들어 죠타로를 불렀다. 그녀는 그가 가까이 다가와도 부족하다는 것처럼 계속 손짓했다. 죠타로는 레이미의 손짓에 따라 몸을 낮추었다.

 

조금 더, 조금 더. 언제까지 재촉할 것처럼 손짓해 대는 레이미 때문에 죠타로는 허리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평소 일정하게 유지하던 그녀와의 거리를 과감하게 좁히고 나서야.

 

레이미는 그제야 발뒤꿈치를 살짝 들었다. 단둘뿐인데도 그에게만 비밀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처럼 귓가에 대고.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고 희미한 목소리로, 스기모토 레이미는 쿠죠 죠타로에게 속삭였다.

 

“죠타로 씨, 당신에게 악령이 붙어 있는 것 같아요.”

 

뭐.

 

죠타로는 눈을 깜박였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라 머릿속에 바로 박히지 않았다.

 

레이미는 그에게 확답을 주듯이 덧붙여 속삭였다.

 

“그것도 둘이나.”

 

뭐어어……?!

 

 

 

*

 

 

 

‘당신에게 악령이 붙어 있는 것 같아요.’

 

죠타로는 멍한 얼굴로 레이미를 바라보았다. 다짜고짜 악령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눈앞의 스기모토 레이미가 유령 그 자체였으니까. 다른 유령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유령끼리 서로를 못 본다는 게 이상한 일이다.

 

죠타로는 레이미의 말을 한 박자 늦게 알아들었다. 뒤늦게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자 레이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죠타로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레이미는 뒤돌아보면 안 되는 골목에 있었지만, 지금은 일행을 배웅하느라 골목 밖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그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령이 꼭 서 있으라는 이유도 없지. 죠타로는 어깨 위를 쓸어보고 하늘을 쳐다보고 좌우도 돌아보았다. 그래도 없는 건 없는 거였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 해서 볼 수 있을 거라면 레이미가 말해 주기 전 죠타로 또한 알고 있을 것이었다.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보면서 레이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면 그들을 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죠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이니 악령이니 하는 걸 무서워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붙은 것들이 거슬렸다. 게다가 악령이다. 괜히 악령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리 없다. 사람에게 좋을 것 하나 없는 존재다. 그들을 보고 당장 떼어내지 않으면.

 

레이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의 동작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혼자서 이곳으로 다시 오세요. 죠타로 씨가 그들을 볼 수 있도록 해 드릴게요.’

 

레이미는 이미 그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죠타로는 레이미가 일행에게 말했던 ‘이틀 후’를 단번에 이해했다. 레이미는 지금처럼 그가 알고자 할 때까지 대비했던 것이었다.

 

지금 당장 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레이미가 머무는 곳은 유령 골목. 가로등 하나 서 있지 않은 데다 밤이면 귀곡성이 들렸다. 죠타로는 수긍하고 내일을 기약하며 물러섰다.

 

그 일이 바로 어제의 일이다.

 

죠타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서둘러 움직였다. 마음 같아서는 금방 달려가고 싶었지만 통행이 많은 출근 시간은 적합하지 않았다.

 

죠타로는 악령 이야기를 다른 곳에 말하지 않았다. 대신 혼자서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 고민했다. 언제부터 붙어 있던 건지, 어떻게 붙어 있는 건지, 왜 붙어 있는 건지. 누구인지 하는 고민은 소용도 없었다. 추려 보려고 해도 짐작 가는 곳이 너무 많았다.

 

적어도 하나만은 짐작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레이미의 기색은 줄곧 이상했다. 그걸 생각하면 그 악령은 그가 레이미를 만나기 전부터 그에게 붙어 있던 것이라고.

 

고민은 새벽 시간쯤부터 사그라졌다.

 

지금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어차피 다음 날 보게 될 것들이었으니까.

 

한낮에 인적이 드물어지자 죠타로는 밖으로 나섰다. 망설이지 않고 레이미에게로 향했다. 머릿속에는 이미 그 괘씸한 두 악령 녀석들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 찼다.

 

레이미는 그에게 알려줄지 말지를 끝까지 고민했다. 그걸 봐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종류가 아니거나 힘이 약할지도 모른다. 죠타로도 소위 말해 ‘악령이 붙었다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잠도 잘 잤고 입맛도 있었고 몸도 건강했다. 뭐, 일이 조금 바쁜 건 악령 탓이 아니었으니까.

 

여러 생각이 드는 머리로 죠타로는 인적 없는 길을 따라 골목 앞에 다다랐다. 뒤돌아보면 안 되는 골목의 유령 소녀는 그가 언제 올지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레이미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손을 흔드는 레이미를 보며 죠타로는 다시 뒤돌아봤지만, 역시 그녀가 말했던 악령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낮이라서 그런 건가.

 

왜 뒤를 돌아봤는지 알겠다는 것처럼 레이미가 작게 웃었다.

 

“이쪽에서는 볼 수 없을 거예요. 안쪽으로 들어와요, 죠타로 씨.”

 

골목 안쪽.

 

레이미와 골목 안쪽에서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뒤돌아보지 않아야만 한다는 제약은 생각보다 신경 쓰였다. 아무리 주의한다고 해도 혹시 모르는 사이에 홱 돌아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쿠죠 죠타로는 그 정도의 신중함은 갖춘 남자였다.

 

죠타로는 모자의 챙을 꾹 누른 채 망설임 없이 골목 안으로 걸음을 들이밀었다.

 

골목으로 몸을 들이자 레이미가 저쪽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죠타로는 조금 놀랐다. 레이미보다 앞장서서 골목으로 들어왔는데. 하마터면 뒤쪽에 있는 건가 싶어 돌아볼 뻔했다.

 

경쾌하게 걸어온 레이미가 웃었다.

 

“여긴 유령 골목이거든요. 산사람보다 유령이 힘을 발휘하는 공간이죠.”

 

멍멍!

 

어느새 그녀의 옆으로 달려 나온 아놀드가 죠타로를 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죠타로는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컹컹 짖는 아놀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꼬리가 부러질 듯이 팽팽 휘저어졌다.

 

보기 좋다는 듯 웃는 얼굴의 레이미가 마찬가지로 아놀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죠타로를 바로 쳐다보았다.

 

“그런 만큼 죠타로 씨에게 붙어 있는 ‘악령’ 또한 이곳에서 힘이 가장 강해질 거예요.”

 

그리고 그건.

 

“이곳에서 당신이 그들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뜻이죠.”

 

레이미는 죠타로를 향해 웃어 주었다.

 

죠타로는 레이미의 어깨 너머를 쳐다보았다. 꺾어지는 골목의 직전까지 시선을 줬지만, 다른 사람, 다른 유령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하게 볼 수 있다더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죠타로는 앞으로 걸어가려다가 멈칫했다. 여전히 레이미는 생글거리는 웃음을 머금은 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시선.

 

설마, 죠타로가 그 생각을 떠올리기 무섭게.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잡아 왔다.

 

죠타로는 화들짝 놀라 돌아보려고 하다가 간신히 멈칫했다. 이곳은 ‘뒤돌아보면 안 되는 골목’이었다. 돌아보는 순간 어깨를 잡은 이 손이 그를 끌고 힘껏 끌고 갈지도 모르는 것이다. 죠타로는 간신히 진정했다.

 

어깨를 잡은 손은 심지어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하나. 화들짝 놀라 곤두선 신경으로 죠타로는 어깨 위에 올라간 손의 느낌이 서로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레이미는 그에게 붙어 있는 악령이 둘이라고 했다. 그 둘이 사이 좋게 그의 어깨를 한쪽씩 나눠 잡고 있는 것이다.

 

죠타로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입가에 저절로 시린 미소가 걸렸다. 이쪽이 뒤돌아볼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해 멋대로 붙들고는 제 앞에 모습도 보이지 않는 두 명.

 

그런 괘씸한 ‘악령’ 녀석들을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지.

 

“만만하게 봤군. 자존심이 상하는데?”

 

그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처럼 스타 플라티나가 순식간에 조금 떨어진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유령에게 스탠드가 아예 안 먹히는 게 아니라는 건 로한에게서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이딴 악령 정도는 스타 플라티나로 당장 날려 버리겠-

 

“으악, 자- 잠깐만요, 죠타로!”

 

-그 순간.

 

“다, 다짜고짜 공격하려고 하지 말아 줘!”

 

귀에 들어오는 익숙한 목소리가 아니었더라면 분명.

 

죠타로는 생각했던 것처럼 스타 플라티나로 상대를 날려 버리지 못했다. 스타 플라티나는 금방이라도 후려갈길 것처럼 주먹을 힘껏 말아쥐고 있었지만 그 주먹을 휘두르지 못했다.

 

다급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는 말투, 허둥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목소리.

 

한참 동안 듣지 못했다. 특히 최근에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죠타로는 그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이후로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몇 번이나 꿈에서 그리고 떠올리며 잊지 않고자 했던…….

 

그만큼 그리웠기에.

 

10년 동안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지만 쿠죠 죠타로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머리가 멍하고 생각이 텅 비었다. 제 뒤에서 들려왔던 목소리는 분명…….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 상대를 공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제껏 쌓였던 그리움만큼 가슴에 감정이 울컥거리며 차올랐다.

 

죠타로는 그답지 않게 더듬거리는 입술로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다시는 부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름이 입술 새로 튀어나왔다.

 

“카, 카…….”

 

하지만 그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

 

“그러기에 이 디오가 말했지 않았나? 장난치지 말라는 말을 무시하더니 꼴좋군.”

 

“너무 무시하지 말아 줄래? 예전과 다르게 지금의 죠타로는 침착하고 진중한 성격이니까 누구냐고 물어보기부터 할 줄 알았지. 너라고 달랐을 줄 알아?”

 

“짐작이 보기 좋게 빗나간 기분이 어떻지?”

 

“아, 이런. 아쉽게 됐네. 스타 플라티나를 그대로 놔뒀다면 네 위치랑 더욱 가까웠는데.”

 

“뭐라고?”

 

“아아, 화나셨어요? 속 좁긴.”

 

뒤이어 끼어든 다른 목소리에 죠타로는 다시 말문이 턱 막혔다.

 

아까와는 다른 느낌으로 머리가 멍하고 생각이 텅 비었다. 방금의 목소리와 같았다. 이번 목소리도…… 죠타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10년 동안 똑같이 듣지 못했던 목소리라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조금 전의 그리운 목소리와는 달랐다.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잊을 수 없는 아픔을 가져다주었던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기억이 거슬러 올라 섬뜩하고 불길한 예감을 건네주는 이름.

 

감동으로 꽉 눌려 있던 가슴이 혼란스럽게 엉켰다.

 

뒤돌아보면 안 되는 골목이 아니었더라도, 죠타로는 지금 이 순간 드물게 고개를 돌려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멍하니 서서 떨리는 시선을 감추지 못하는 죠타로의 뒤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티격태격했다. 서로 다른 말투, 서로 다른 목소리, 그리고 서로 다른 성격이지만. 죠타로는 그 둘의 대화가 언뜻 굉장히 친하게 들린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그들이라면 결코 저런 식으로 친하게 대화하지 않을 텐데.

 

하지만 귀로 들리는 건 현실이었다. 이윽고 둘이 대놓고 서로의 이름까지 부르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자 죠타로는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식은땀이 가득 찬 손바닥만 말아쥐고 있을 때, 앞에 선 레이미가 손을 짝짝 마주쳤다.

 

“잠깐만요, 저기요? 여기가 ‘뒤돌아보지 못하는 골목’이라는 건 알고 있는 거 맞죠?”

 

“아.”

 

“그랬던가?”

 

티격태격하던 말다툼이 레이미의 목소리에 뚝 끊어졌다. 더 싸우는 대신 멀뚱한 목소리가 나란히 그제야 알았다는 듯한 의아함을 표했다.

 

어깨에서 손이 떨어진 지는 한참이었지만 그들은 그제야 쭉 뒤쪽에 머물러 있던 자리로부터 앞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스기모토 레이미는 유령이지만 꼭 산자처럼 느껴진다.

 

그것처럼 앞으로 걸음을 옮기는 두 명에게서도 나란한 발소리가 났다.

 

그러게, 죠타로는 레이미가 그에게 속삭였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쿠죠 죠타로에게 붙었던 ‘악령’은 ‘둘’이었다고.

 

그의 뒤로부터 천천히 걸어 앞으로 와 나란히 선 둘.

 

죠타로는 그제야 그 두 명을 정면에서 마주 볼 수 있었다.

 

아주 예전, 그러니까 오래전. 이집트의 더운 바람에 쓸리고 퍼석한 모래에 묻어 두고 왔던 아릿한 기억들…….

 

그때의 그 기억이 지금 쿠죠 죠타로 앞에 서 있었다.

 

목소리만으로도 멍했지만 그 모습을 똑똑히 눈에 담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이닥쳤다.

 

그 기억을 가져다준 당사자 중 하나가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안녕, 죠타로.”

 

살짝 기울인 고개에서 결 좋은 붉은 머리카락이 사르락 흘러내렸다. 자색 눈동자가 생긋 휘면서 그에게 명백한 반가움을 표시했다.

 

“뭐, 이렇게 인사하게 될 줄이야…… 쿠죠 죠타로.”

 

오만한 듯 치켜올린 고개에서 붉은 눈이 선득하게 빛났다. 낮의 하늘에서도 멀쩡한 흰 피부를 한 위압감 넘치는 남자가 조금 샐쭉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카쿄인, 디오.

 

쿠죠 죠타로의 눈앞에 서 있는 둘은 분명 예전 그때 죽은 사람이었다. 시신조차 온전하지 못한 채 틀림없이 목숨을 잃은 둘.

 

죠타로는 경악한 표정으로 두 명을 쳐다보았다.

 

‘쿠죠 죠타로’에게 달라붙어 있는 ‘두 명의 악령’은…….

 

……카쿄인과 디오였던 것이다.

 

정말 믿을 수 없게도.

 

 

 

*

 

 

 

단정하고 섬세한 이목구비. 약간 예민한 느낌을 주는 첫인상이 될 수 있는 얼굴이지만 색이 강한 붉은 머리카락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잠시 홀린 듯 시선을 돌렸다가 쳐다보면 오묘한 색의 자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맞아 주어 찰나의 인상을 잊게 한다.

 

굵은 선에 선명한 인상이지만, 남자답다는 말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하는 미인이다. 화려한 금색 머리카락과 흰 피부는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멋대로 빠져들고 홀리게끔 한다. 이질적이고 선득한 붉은 눈만 아니었더라면 그의 앞에서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것이다.

 

죠타로는 떨리는 시선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그들 둘은 죠타로가 어떻게 해도 잊을 수 없는 이들이었다.

 

한쪽은 이집트의 길지 않은 여정, 그동안 나눴던 짧은 시간의 우정만으로 제 목숨까지 잃어가며 그를 도와주었던 친구. 여정이 끝나 집으로 돌아왔어도 죠타로는 한동안 그 생각에 묶여 힘들고 괴로워했다.

 

다른 한쪽은 여정의 목적이자 끝. 제 손으로 직접 그를 죽인 후 햇빛에 부스러져 사라지는 모습까지 끝끝내 확인했던 원수이자 악의 축. 해냈다고 여기면서도 그로 인해 잃었던 많은 것을 떨쳐내지 못해 죠타로는 한동안 악몽처럼 그의 모습을 꿈처럼 보았다.

 

그런 둘이 한꺼번에 쿠죠 죠타로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죠타로는 둘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카쿄인과 디오라니. 그 둘은 죽은 지 벌써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유령이라고 해도 최근의 얼굴들만 떠올려 보았기에 그들일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많이 놀라셨나 봐요. 으음…… 말해 주지 말 걸 그랬나?”

 

정신이 든 건 레이미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두 명의 옆에 나란히 선 레이미가 미안한 얼굴로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죠타로는 레이미의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젓고 나서야 퍼득 정신이 들었다. 멍한 기분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비로소 머리에 이성이라는 것이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죠타로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면서 레이미가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스기모토 레이미는 분명 그에게 악령이 붙어 있다고 했는데.

 

죠타로는 디오를 노려보았다. 이쪽은 악령이라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지긋지긋한 얼굴이었다. 승리하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의 운도 따랐다는 걸 지금 와서는 인정하고 있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악몽 같은 기억을 여기에서 마주할 줄은 몰랐다.

 

디오는 심지어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디오 특유의 오만한 웃음을 다시 마주하게 되니 소름이 돋으면서 동시에 울컥하듯 울분이 치밀었다. 저 때 저 얼굴에 몇 방 더 날려 주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했었는데. 멋대로 웃고나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우리가 언제 웃으면서 얼굴을 볼 사이였던가?

 

죠타로는 순간 멱살부터 쥐어 잡고 싶은 속을 누르며 카쿄인을 쳐다보았다. 기억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빠르게 기분이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조금 돌발적인 구석도 있었지만, 디오의 얄밉고 성질나는 모습이 기억 그대로인 것처럼 그에게 다정하게 웃어 주던 카쿄인도 기억 그대로였다.

 

죠타로는 영문을 알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 디오가 악령인 건 이해했지만, 카쿄인은 아니다. 그까지 그런 이름으로 묶일 리 없다. 악령이라는 말 때문에 혹시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죠타로는 카쿄인을 흘깃 살폈다. 카쿄인은 원망 같은 건 알지도 못한다는 것처럼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다. 얼굴에는 반가움 말고 다른 게 녹아 있지도 않았다. 꼭 예전 사막 한가운데에서 맞았던 밤 같았다. 카쿄인은 즐거운 얼굴로 그에게 조잘조잘 말을 걸다가 그보다 먼저 잠들었다. 그때처럼 카쿄인은 뭔가 말을 걸고 싶어 좀이 쑤시는 얼굴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죠타로는 카쿄인을 알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가 악령일 리는 없었다.

 

죠타로는 레이미를 쳐다보았다. 레이미는 그의 질문에 순순히 웃으며 답해 주었다.

 

“보통 사악한 유령을 악령이라고 하지만…… 사실 악령이라는 건 꼭 나쁜 일을 해야만 되는 게 아니에요. 유령의 기준은 다르달까?”

 

“유령의 기준?”

 

“이들이 죠타로 씨에게 붙어 있으니까 악령이라고 하는 것뿐이에요. 원래 유령은 사람에게 붙지 않거든요. 특정 장소나 물건이라면 모를까.”

 

레이미는 그 말을 하며 골목을 둘러보았다.

 

“제가 이 골목에 붙어 있는 것처럼요.”

 

죠타로는 그가 알고 있는 또 하나의 유령을 떠올렸다. 키라 요시카게의 아버지였던 키라 요시히로였다. 그는 키라 요시카게의 집에 붙어 있었다. 그걸 떠올리니 레이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 것 같았다.

 

그걸 알게 되자 더욱 새삼스러워졌다.

 

카쿄인과 디오. 이들은 특정 장소가 아니라 특정 사람, 즉 자신에게 붙어 있는 것이었다. 이곳은 둘과 연관된 어떤 장소도 아니었으니까.

 

레이미는 그녀가 두 명을 처음 봤을 때를 간단히 이야기해 주었다.

 

죠타로와 단둘이 있는 이제야 이야기하는 거지만, 레이미는 ‘쿠죠 죠타로’라는 남자와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둘을 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로한과 코이치에게 말을 전할 수 있는 인연이 닿았다. 그걸 계기로 키라의 흔적을 함께 논의하기 위해 다 같이 자리에 모였을 때, 레이미는 죠타로의 뒤에 서 있는 두 명을 처음 보았다.

 

모인 사람들은 죠타로를 포함해서 다들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 두 명은 유독 이질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왜 그럴까 싶어 고개를 기울이면서 둘을 쳐다보았지만 당장은 키라에 대한 이야기가 급했다. 레이미는 더 이상 다른 희생자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죽은 줄도 인지하지 못한 채 일그러진 얼굴로 공포에 떨며 승천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자신과 같은 유령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레이미는 가만 서 있던 둘이 아무렇지 않게 공중의 한 자리씩을 차지하는 걸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은 깜짝 놀란 레이미는 돌아보지도 않고 저희끼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 또한 그들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이 어깨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는 당사자인 죠타로 또한.

 

레이미는 그들에게서 느껴졌던 이질감의 정체를 알았다. 그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령이었던 것이다.

 

유령이기는 했지만 레이미는 자신과 같이 한 장소에 묶여 있는 다른 유령은 아놀드말고 본 일이 없었다. 그랬기에 처음에 이상한 걸 느꼈어도 바로 죽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항상 ‘쿠죠 죠타로’와 함께 있었다. 레이미는 그 모습에 그들이 다른 장소나 물건이 아닌 죠타로라는 사람 자체에 붙어 있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처럼 죽은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땅 위를 걷다가 공중을 떠 있다가 괜스레 주변 사람에게 느껴지지도 않는 장난을 걸다가 하는 모습이 더없이 익숙했다.

 

그들은 처음에 레이미가 자신을 보는 걸 알지 못했다. 그러나 몇 번 마주친 후에 눈치챘다. 금발 쪽이 빨간 머리를 쿡 찔러 그녀를 가리켰고 빨간 머리 쪽은 경악한 얼굴을 하다가 뒤늦게 얼굴이 제 머리 색처럼 새빨개진 채 죠타로의 뒤로 숨었다.

 

덕분에 레이미는 매번 죠타로가 올 때마다 어색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유령에 쓰인 사람이라니. 아무리 그녀가 긴 유령 생활을 지속했다고 해도 처음 보았다.

 

그녀를 알아챈 후로 빨간 머리 쪽은 항상 부드럽게 눈인사를 건넸지만 다른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시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빨간 머리 쪽이 레이미에게 흥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인사하는 것도 그저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오직 한 사람, ‘쿠죠 죠타로’의 주변만을 빙빙 돌며 떠나지 않았다.

 

말을 걸어 보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코앞에 있는 키라에게 집중해야 하는 것도 그랬고 그런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게 해도 되는지도 조심스러웠다. 죠타로는 항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왔고 그들은 하나같이 두 명의 유령을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상대가 레이미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다. 레이미는 그들이 자신과 말을 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만날 때마다, 만나지 않을 때조차. 레이미는 줄곧 고민했다. 그들의 존재를 알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그들이 죠타로에게 붙어 있게 된 연유는 모르겠다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들이 하는 건 죠타로의 주변에 있거나 죠타로가 하는 말에 들리지도 않는 말 참견을 하거나 둘이서 서로 티격태격 싸우거나 서로 이야기하는 것 정도였다. 심지어 사이도 좋아 보였다. 한 명이 졸고 있으면 다른 한 명이 깨워 주었다.

 

긴 고민 끝에 키라의 일이 마무리될쯤이 되어서야 레이미는 그들의 존재를 죠타로에게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쫓아내거나 떨어뜨리는 방법은 모른다. 그들이 죠타로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정체는커녕 이름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장소도 물건도 아닌 쿠죠 죠타로라는 사람에게 붙어 있었다. 사람에게 붙어 있는 유령은 변질되기 쉽다. 그들이 얼마만큼 이런 모습으로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악령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제 선에서 방법을 찾지 못하더라도. 레이미는 죠타로라는 사람을 믿었다. 그의 현명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신뢰하고 있다. 게다가 이건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의 일이 아니라 죠타로의 일이다. 역시 알려 줘야 할 것 같아.

 

죠타로를 남겨 귓가에 소곤소곤 속삭인 직후. 레이미는 처음으로 둘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주었다. 이제껏 어색한 시선으로 피하던 것과 달랐다. 정확하게 그들과 맞서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둘은 단번에 레이미가 죠타로에게 속삭인 말을 눈치채 버렸다. 레이미는 그녀를 쏘아보는 붉은 눈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걸 아는데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런 기세를 막아 준 건 그녀에게 인사만큼은 꼬박꼬박 해 주던 다른 쪽이다. 노려보던 남자를 홱 거세게 잡아당긴 그는 레이미에게 부드럽게 눈웃음을 보였다.

 

“스기모토 레이미 씨.”

 

레이미가 자신을 향한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둘이서 서로 이야기하던 건 많이 들어봤지만, 레이미에게 말을 건 건 처음이다.

 

통성명도 하지 않았는데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들 또한 이곳에서의 대화를 전부 들었으니까 그렇겠지만.

 

그래도 갑작스럽게 자신을 향한 말이 당황스러웠다. 거기에 이렇게 정중한 말씨일 줄도 몰랐다. 레이미는 대답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몰라 눈만 깜작거렸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여전히 예의를 차리는 상냥한 말씨로 물었다.

 

“혹시 저희가 죠타로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난 그런 힘이 없는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자신이 있는 골목길이 생각났다. 원래는 지도상 없는 구역인 뒤돌아보면 안 되는 골목. 레이미는 그 골목의 힘으로 모두의 눈에 보일 수 있었다. 레이미는 키라의 끝조차 그곳에서 보았다.

 

죠타로는 평소 그 골목 안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신중한 성격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만 들어올 수 있다면, 어쩌면. 레이미는 그 희미한 확신을 따랐다.

 

그녀는 죠타로에게 내일 이곳에 오면 붙어 있는 악령을 볼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속삭였다. 흘깃 옆을 쳐다봤을 때는 잘되었다는 듯한 표정을 한 그가 예쁘게 웃고 있었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레이미 씨. 그래서 정말 이렇게 보게 되었네요. 그렇지, 죠타로?”

 

레이미의 옆에서 살폿 웃은 카쿄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그 말만으로 모든 게 설명되는 건 아니었다. 레이미의 이야기는 레이미가 그들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만 설명해 줄 뿐이었다. 죠타로는 여전히 그들의 존재가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심지어 카쿄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쾌활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뒤편에서 보이는 디오조차도 퉁명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무언가 내색하는 표정은 아니었고. 그들이 그렇게 태평하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죠타로는 그들을 낯설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맞받은 카쿄인이 자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그 희미한 한숨에 죠타로는 가슴 한 켠이 쿡 찔리는 기분을 느꼈다.

 

카쿄인은 죠타로에게로 걸어왔다. 죠타로는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 채 굳은 듯 멈추어 있었다.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까. 레이미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자신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분명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그런 요청을 해 봤을 것이다. 그리고 카쿄인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한다면.

 

카쿄인이 그의 손목을 감싸 잡았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촉에 죠타로는 순간 움찔했다. 잡아 쥔 힘이 생각보다 강했다. 유령 같은 게 아니라 정말 살아있는 것만 같다. 그만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미안하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었지만 그 말 하나가 떨어지지 않았다. 카쿄인이 자신에게 할 말이 드물게 두려웠다. 죠타로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자신이 그의 옆에 있던 것도 아니고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변명같이 느껴졌다.

 

카쿄인은 죽어서 자신에게 붙어 있었다. 그 사실이 떠올라 죠타로는 아득해졌다. 유령이니 악령이니 하는 걸 두려워하진 않았다. 카쿄인이 그에게 해를 끼치리라고 생각도 안 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에게 남아 있을 감정이 있다면 하나뿐일 것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잡은 손목이 세게 당겨졌다.

 

와락

 

눈 깜짝할 사이에 카쿄인은 죠타로를 꼭 끌어안았다.

 

그와 카쿄인은 여전히 키 차이가 많이 났다. 바짝 붙어 서 있으면 항상 정수리가 훤하게 보였다. 이렇게 안겨 있어도 반대로 안은 것 같았다. 카쿄인은 그 키 차이에 투덜투덜 불평을 하곤 했다. 지금 그를 끌어안고 있는 건 카쿄인이었지만 죠타로의 시야에는 그때와 같은 광경이 보였다.

 

그때와 같은 광경.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죠타로.”

 

카쿄인의 나긋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금 눈앞의 광경처럼 그 목소리 또한 기억과 같았다. 여전히 다정하고 상냥한 목소리다.

 

“힘들었죠? 고생 많았어요.”

 

“읏.”

 

그 말을 듣는 순간 예전 기억의 한 귀퉁이가 울컥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정말 현실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죠타로는 모자의 챙을 꾸욱 누른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자그마한 소리로 웃으면서도 카쿄인은 배려해 주는 건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가지가지 하긴, 옆에서 디오가 퉁명스럽게 비꼬았지만 그 순간만큼 죠타로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죠타로는 고개를 숙인 채로 한참 동안 일렁이는 감정에 푹 젖어 들었다.

 

 

 

*

 

 

 

아득하게 밀려오는 어둠을 맞아들이며 카쿄인은 눈을 감았다. 이런 곳에서 이런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던 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싫다고 해서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애써 친구를 사귀었는데 고작 며칠밖에 같이 있지 못했어. 긴 고독에 비해 함께 있던 시간이 너무 짧음에 지독한 미련을 느끼면서.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죠타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쿄인은 영문을 몰랐다. 윗부분이 조금 구겨진 검은 모자가 눈에 들어왔다. 죠타로는 그보다 키가 컸기 때문에 이렇게 내려다보는 일은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앉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지, 이게? 난 죽은 게 아니었나?

 

그 착각은 잠시뿐이었다. 카쿄인은 장례식의 침통한 풍경을 바라다보면서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아무리 제 얼굴을 자신보다 남이 볼 일이 더 많다고 해도 자기 사진까지 못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엑, 장례식장?!”

 

……영정 사진 같은. 카쿄인은 흰 꽃과 검은 옷이 가득한 칙칙한 풍경을 쳐다보면서 다시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 버렸다. 산 사람의 장례식을 치를 일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난 죽은 거겠지?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지독한 허망감이 밀려왔다. 카쿄인은 멍하니 장례식장의 풍경을 쳐다보았다. 몇 명은 그를 위해 울고 있었고 몇 명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도 웃지 않았다. 음울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카쿄인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만 이곳의 아무도 그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쳐다보고 있는 죠타로조차도.

 

카쿄인 노리아키의 생은 이걸로 정말 끝이 난 것이다.

 

색깔 하나 없는 무채색 장소로 마감하면서.

 

누군가가 눈물을 터뜨렸다. 흐느끼는 소리가 숨이 넘어갈 것처럼 들렸다. 그 소리에 카쿄인은 정말 죽음이라는 걸 실감했다. 실감하는 순간 부글거리며 속이 끓었다.

 

억울했다. 화가 났다. 속상했다. 분이 올랐다. 가슴이 정신없이 쿵쾅거리고 생각이 하얗게 날아가는 것 같았다.

 

고작 그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고작 그런 방법으로 죽고 싶지 않았다. 고작 그런 상황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누가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겠어? 난, 난 더 살고 싶었단 말야.

 

장례식장에서 죽어 있는 사람은 그 혼자뿐이었다. 슬픔도 고통도 살아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었다. 그 모든 생이 증오스럽고 역겨웠다. 눈물도 통곡도 가증스럽게만 보였다. 카쿄인은 눈앞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원망했다.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들도 마찬가지로.

 

그러나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시시하군.”

 

카쿄인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자리에서 굳었다. 너무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좋아한 적은 없었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잊지 못했다. 불가능했다.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 외롭던 그를 특별하다고 말해 주었던 첫 번째 목소리.

 

카쿄인은 그 목소리로 인해 잠겨 있던 어둠으로부터 걸어 나올 수 있었다. 비록 그를 이용하기 위해서였지만, 무엇보다도 의미 있는 목소리였다.

 

카쿄인은 고개를 홱 돌렸다.

 

돌아본 시야에,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잊을 수 없는 모습이 보였다.

 

흑백의 장례식장을 깨 놓는 것처럼 금빛으로 화사하게 반짝이는 머리카락. 이제껏 머금었던 생기를 합쳐 놓은 것처럼 타는 듯 선명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 희고 투명한 피부는 장례식장의 흰 꽃과 다르게 요사스러운 활기를 머금고 있었다. 허공에 걸터앉아 여유를 부리고 있는 그 모습을 본 순간 카쿄인은 순식간에 겁에 질렸다.

 

디오.

 

그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디오였다.

 

잡다한 생각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원망과 증오 같은 건 그 모습 앞에 남김없이 녹아 사라졌다. 카쿄인은 하얗게 질린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자신의 최후를 기억하는 것처럼 상대 또한 명확하게 기억했다. 그는 자신을 죽인 사람이었다.

 

카쿄인은 디오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뒤로 물러나길 반복하기만 하다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걸 눈치채기 전까지는.

 

바닥을 기어 도망가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자리였다. 일정 거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처럼 위치가 바뀌지 않았다. 카쿄인은 그제야 다시금 생각했다. 그러니까…… 난 죽은 사람이었지?

 

카쿄인 노리아키는 죽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디오는…… 그 죽은 사람을 정확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정작 죠타로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중에.

 

그걸 깨닫는 순간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카쿄인은 저도 모르게 디오에게 물었다.

 

“너도 죽었어?”

 

카쿄인이 단순하다 못해 멍청하게 들리는 질문을 한 순간 디오는 표정을 왈칵 구겼다. 대놓고 불쾌감을 담은 채 찌푸려지는 얼굴에 카쿄인은 답을 알 수 있었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를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인 장본인 또한 누군가의 손에 죽어 버린 것이다.

 

디오의 스탠드 능력은 시간 정지였다. 깨닫는 순간 이길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렇게 강하고 아득하게 보였는데. 그런 대단하고 엄청난 능력을 가진 채로도 결국 누군가의 손에 스러졌던 것이다.

 

“도대체 누가…… 아.”

 

카쿄인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가 답을 알았다.

 

카쿄인이 정신이 들어 제일 처음 눈에 담은 건 죠타로였다.

 

그리고 디오도 같은 장소에 있었으니까…….

 

……카쿄인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눈이 놀라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카쿄인은 제 입을 틀어막은 채 디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아래쪽에는 묵묵한 얼굴의 죠타로가 여전히 같은 자세로 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기분이 정말 이상해졌다. 죠타로는…… 디오를 이긴 것이다.

 

그렇게 강해 넘을 수 없게만 보이던 상대를 결국 이겼다.

 

자신이 남겼던 최후의 이야기가 닿았다는 걸, 카쿄인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카쿄인은 디오가 무서웠다. 똑같이 죽어 버린 상대라는 걸 알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어딜 가지 않았다.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 버겁고 무거웠다. 배를 뚫리고 끔찍한 고통을 안긴 상대이기도 했다. 반사적으로 긴장하고 움츠러드는 몸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느낀 순간.

 

카쿄인은 덜덜 떨리는 몸을 한 채 처음으로 디오를 마주 보았다. 물러나려는 몸을 잡고 앞으로 한 발 디디며 디오를 쏘아볼 수 있었다. 디오는 건방지고 하찮은 것을 보는 것처럼 그를 내려다보았지만 카쿄인은 굴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한 발, 두 발, 세 발. 부들부들 떨리는 걸음은 꿋꿋하게 디오를 향해 움직였다. 디오의 모습이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카쿄인은 견디기 위해 입술을 앙다물었다.

 

이윽고 카쿄인은 디오의 바로 앞까지 왔다. 살아 있는 몸이었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었을 것처럼 기진맥진했다. 디오는 그때까지 오만한 모습을 잃지 않고 카쿄인을 쳐다보기만 했다.

 

카쿄인은 간신히 팔을 뻗었다. 덜덜 떨리는 팔이 디오의 앞까지 다다랐다. 머리가 엉망진창 어지러웠다. 당장 이 팔째로 갈려 없어질 것처럼 무서웠다.

 

그러나 팔을 거두지 않았다.

 

거두어지지 않은 팔은 결국 디오의 팔을 툭 건드렸다.

 

“난, 널.”

 

카쿄인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무서워하지, 않을, 거야.”

 

스스로도 꼴사납게 느껴질 정도로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

 

디오의 팔에 닿아 있는 제 손이 벌벌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카쿄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미 죽은 상황에서 죽음을 각오하는 의미는 없었다. 남은 건 마음가짐뿐이다.

 

혼자였다면 결코 용기를 내지 못했을 테지만.

 

아주 잠시밖에 함께 있지 못한 인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죠타로는 그를 보지 못하는 지금도, 삶과 죽음으로 세계가 나뉘게 된 지금도 그의 친구로 등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디오가 덜덜 떨리는 그의 손목을 휙 낚아챘다.

 

긴장하고 질려 있었기에 카쿄인은 디오가 제 몸을 힘껏 당겼을 때야 알아차렸다. 아차 하는 순간에 그는 디오에게 안기다시피 가까이 있었다. 카쿄인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화들짝 놀라 그대로 굳었다.

 

디오는 하찮은 것을 보는 것처럼 내려다보기만 하던 얼굴로 처음 미소를 보였다. 요사스럽게 끌려 올라간 입매가 그를 향했다. 그의 팔을 꼼짝하지 못하게 잡아 쥔 채로 디오는 웃었다.

 

“그래, 시시하진 않군. 이 디오가 처음 골랐을 때처럼.”

 

휙, 디오가 밀듯이 내치는 동작에 카쿄인은 뒤로 나가떨어졌다. 여전히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쿵쾅거리는 가슴을 누르다가 카쿄인은 문득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 그를 집어삼킬 것처럼 울렁거리던 감정들이 남김없이 사라져 있다는 사실을. 살필 것도 없이 디오 때문이었다. 디오에게 느꼈던 것들이 더욱 강하게 그의 감정을 짓누른 것이다.

 

카쿄인은 황급히 디오를 쳐다보았지만 디오의 관심은 이미 다른 쪽으로 가 있었다.

 

카쿄인은 디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장례식이 끝났다는 것처럼 자리에 있던 영정 사진과 관은 없었다. 남아 있는 건 꽃이 쌓여 있는 탁자뿐이다. 모여 있던 사람들도 중요한 얼굴은 이미 나갔는지 흩어져 있었다.

 

제 영정도 관도 없는 곳에서 카쿄인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죠타로를 발견했다. 죠타로는 울지도 않고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았지만…… 쓸쓸해 보였다.

 

카쿄인은 애를 써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어떻게 해야 내려갈 수 있는지 몰라 조금 헤매기도 했다. 간신히 죠타로와 거리를 좁히고 카쿄인은 팔을 벌려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죠타로, 외롭지 않을 거야. 내가 외롭지 않은 것처럼.”

 

왠지 찌르는 시선이 느껴졌다. 카쿄인은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디오를 발견하고 덧붙였다. 네가 원할 것 같지는 않지만, 아마 쟤도.

 

그렇게 카쿄인은 죠타로가 그를 볼 수도 없고 존재를 알지도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죠타로의 옆에 있었다.

 

그때 했던 말처럼 외롭지 않았다. ……사실 정말 죠타로 때문은 아니었고 좋으나 싫으나 디오와 함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디오는 카쿄인과 같은 처지였다. 카쿄인이 다른 곳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죠타로 주변에서만 빙빙 맴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디오 또한 다른 곳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죠타로에게 묶여 있었다. 둘은 나름 노력하고 안간힘을 쓰고 심지어 서로 협력도 해 보았지만 죠타로 근처를 벗어나기는 불가능했다.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만큼 계속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좋으나 싫으나 아주 가까이에서 얼굴을 마주 볼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됐다.

 

카쿄인은 디오의 앞에서 겁에 질렸다가 조금씩 나아졌다가 나중에는 먼저 시비도 걸었다가…….

 

“결국엔 나름 친해졌지.”

 

그랬다는 이야기야. 카쿄인은 어깨를 으쓱이며 죠타로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했다.

 

그때부터 계속. 정말 카쿄인이 죽은 후로 십여 년이나 되는 시간이었다. 죠타로 또한 그 시간이 짧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죽은 채 유령이 되어 그의 주변만 맴돌며 보냈던 십여 년이 카쿄인에게 어땠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카쿄인은 그에게 힘들었을 거라며 위로를 건넸다. 그러나 분명, 더 힘들었을 이는…….

 

“누가 네놈과 친해졌단 거지, 카쿄인?”

 

“디오, 그렇게 말해 봤자 사실이 바뀌지는 않아. 너도 인정할 건 인정하란 말이야.”

 

“친구 하나 만들겠다고 목숨까지 건 놈다운 대사군.”

 

“그런 친구도 없는 누구랑은 좀 다를 수밖에.”

 

“이 디오에게 그런 게 필요할 것 같나? 하찮은 것들과 어울린다는 생각은 불쾌하기만 하다만.”

 

“난 ‘누구’가 너란 말은 안 했는데 말야.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나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감히 누구한테 뭐라고?”

 

“으응?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의외로 카쿄인은 잘 지냈을지도 모른다.

 

죠타로는 둘의 실랑이를 어색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티격태격 주고받는 대화가 너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말만 들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뾰족하게 대꾸할 뿐이었지만, 그렇게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까지 같이 보고 있는 죠타로는 둘의 사이가 나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카쿄인이 했던 말처럼 둘은…… 정말 친해 보였다.

 

세상에, 카쿄인과 디오가 친하다니.

 

친하다는 말에 속으로 긍정하면서도 죠타로는 그 말에 긍정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쿄인과 디오는 절대로 친해질 수 없을 사이라고 생각했다.

 

디오는 카쿄인을 육신의 싹으로 조종했다. 카쿄인은 육신의 싹을 떨쳐낸 이후로 디오를 처치하려는 여정에 올랐다. 디오는 카쿄인을 포함한 그들 일행을 죽이고자 스탠드사들을 보냈다. 카쿄인은 디오가 보낸 스탠드사들을 봐주지 않고 처리하고 끝내 디오에게까지 맞섰다. 디오는 그런 카쿄인을…….

 

‘……죽였지.’

 

카쿄인은 디오의 손에 죽었다. 카쿄인은 그때 목숨을 잃었던 동료들 중 유일하게 디오의 손에 직접 당한 사람이었다. 디오는 카쿄인의 원수였다. 카쿄인이 죠타로만큼이나, 어쩌면 죠타로보다 더욱 원망할지 모르는 유일한 한 사람.

 

그런 그들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카쿄인은 여전히 부드럽고 다정한 녀석이었지만 디오에게 하는 말은 조금 까칠하고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디오는 여전히 오만하고 사람을 내려다보는 녀석이었지만 카쿄인에게 하는 말은 조금 누그러지고 부드러운 것처럼 들렸다. 꼭 둘의 성격이 서로에게 일부 옮아 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로 정말 싸우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정작 보이는 모습은 사이가 나쁜 것과 거리가 멀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가까웠고 표정도 나쁘지 않았다. 누구 하나 화가 난 것 같지도 않았다. 카쿄인은 조금 재미있어 보이는 얼굴이었고 디오는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죠타로는 그들의 낯선 모습에 말도 마저 걸지 못하고 눈만 굴렸다.

 

서로 한 마디씩 주고받던 게 툭 끊긴 건 디오가 끝내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카쿄인을 향해 사납게 말했을 때였다.

 

“카쿄인 노리아키, 기어오르는군.”

 

더 이상 장난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디오는 카쿄인을 향해 으르렁대듯이 말했다.

 

카쿄인은 디오가 말하자마자 입을 꾹 다물었다. 이름을 다 불린 게 신호가 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가볍게 넘기던 것과 다르게 카쿄인을 매섭게 노려보는 붉은 눈은 그제야 간신히 죠타로에게 익숙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죠타로는 반사적으로 몸을 긴장시켰다.

 

생각해 보니 친해졌다고 말하는 건 카쿄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디오는 계속 그 말을 부정했다.

 

게다가 설령 친해졌다고 해도 상대는 디오였다. 포악하고 오만하여 인간 같은 건 거들떠보지 않는 흡혈귀다. 죽은 후라 제게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카쿄인에게는 다를 것이다. 같은 영혼 입장인 그가 이제껏 카쿄인에게 어떻게 했을지를 떠올리자면 입술이 악물렸다.

 

카쿄인은 떠나지도 못하고 디오와 함께 그에게 묶여 있었다고 했다. 유령인 이상 두 번 죽을 수도 없다. 이제까지 줄곧 제 주변에 있던 카쿄인을 눈치채지 못했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알았더라면 자신이 도와줄 수도 있었을 텐데.

 

카쿄인은 디오의 위협에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었다. 그는 굳건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큰 다짐이라도 한 것 같다. 죠타로는 역시 디오에게 굴복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카쿄인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이런 모습으로 계속 디오와 싸워 왔을 것이다.

 

카쿄인은 걸음을 옮겨 죠타로에게로 다가왔다. 죠타로는 그를 꼭 지켜 주겠다고 다짐했다.

 

카쿄인은 걸음을 옮기더니…… 죠타로의 뒤로 냉큼 숨었다.

 

죠타로는 제 뒤로 몸을 쏙 숨겨 파고드는 카쿄인을 얼떨떨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뭐, 뭐지……? 물론 죠타로는 카쿄인을 얼마든지 도와줄 생각을 했지만…… 왠지 느낌이 좀 달랐다.

 

“……저, 저게 미쳤냐?”

 

디오는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놓고 미친 게 아니냐 하는 말까지 했다. ……정말 느낌이 달랐다. 왠지 디오가 카쿄인에게서 기대하고 있던 반응이 이런 건 아니었던 것 같았다. 평소에는…… 조금 다른 반응을 했나? 아니, 그걸 알 정도면 평소에도 자주 이랬다는 건가? 죠타로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그의 혼란을 부추기는 것처럼 그의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카쿄인이 디오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디오, 약오르지? 죠타로는 내 친구지 네 친구가 아니거든?”

 

“아니, 이 망할 녀석은 애초에 줘도 사양이다! 난 죠스타 가의 녀석들이 싫고 지긋지긋해.”

 

“넌 친구도 없지?”

 

“애초에 그딴 친구니 뭐니에 일희일비하는 놈은 네 녀석밖에 없다, 카쿄인. 이 디오는 격이 떨어지는 하찮은 인간들 같은 건 상대할 생각도 없어.”

 

“앗, 얄미운 흡혈귀 씨잖아. 죠타로, 부탁이 있는데. 스타 플라티나로 저 녀석 한 번만 때려 주면 안 되나요? 응? 친구의 부탁이잖아.”

 

“이 자식이 건방지게!”

 

죠타로는 카쿄인을 얼마든지 도와주고 디오에게서 지켜 줄 생각이 가득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카쿄인은 디오를 이미 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놀려 먹고 있었다. 거기에 은근슬쩍 자신을 부추기는 말이라니. 이대로라면 디오를 카쿄인에게서 지켜야 할 판이 되지는 않을까.

 

죠타로는 승낙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로 쩔쩔매며 레이미를 쳐다보았다. 그의 난처한 얼굴을 본 레이미는 살폿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동안 제가 지켜봤는데.”

 

“봤는데?”

 

“두 분이 정말 친하시더라고요. 거기에 죠타로 씨에게 매여 있는 걸 보면 생전에도 세 분이 같이 절친한 친구셨나 봐요.”

 

“……그래.”

 

반박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죠타로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들이 살아 있을 때의 관계는 혼자만 알고 가슴에 묻어 두기로 했다. 적어도 둘의 명예 같은 걸 지켜 주려면 차라리 아무 말을 안 하는 게 좋을지도.

 

“카쿄인, 네놈 이리 안 나와?”

 

“싫어! 내가 왜?”

 

물론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죠타로는 바로 제 뒤에서 목소리를 높여 디오와 티격태격하고 있는 카쿄인을 느끼면서 모자를 꾹 눌러썼다. 정말 이거야 원.

 

 

 

*

 

 

 

디오는 죠타로에게 패배했다. 이가 갈리고 분하고 화가 났지만 그 감정을 느꼈을 때는 이미 그의 육신은 아침의 햇빛 아래 검은 재로 부스러져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된 후였다.

 

쿠죠 죠타로라는 존재에게 씨익씨익 화를 내다가 디오는 문득 의아해졌다. 자신은 죠타로에게 패배해 쓰러지고 나서 깨어나기도 전에 햇빛에 부스러졌는데 어떻게 화를 낼 수 있는 거지? 그 생각을 하자 조금 더 근본적인 물음이 치밀었다. 아니, 애초에 깨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제 몸이 검은 재로 날아갔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었지?

 

그제야 디오는 자신이 죽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제 몸이 햇빛에 타들어가는 모습을 직접 본 것이다.

 

죽은 채, 유령인 상태에서 내려다보며.

 

죽음을 인식하기 전까지 디오는 미처 그 어색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인식하게 된 순간 피부로 실감이 기어 들어왔다. 디오는 제가 명백히 살아 있지 않다는 걸 인식했다. 느껴지는 감각 자체가 달랐다. 흡혈귀의 완벽했던 육체를 잃고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가 된 것이다.

 

자신이 쿠죠 죠타로의 손에 죽었다는 걸 알자마자 디오는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죠스타의 피를 이었다고 해도 그딴 애송이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다니. 자존심이 상하고 속이 마구 끓었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자신처럼 시간 정지 능력을 얻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싸운다면 분명 다를 텐데……!

 

디오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잔뜩 화로 끓어오른 머리는 그에게 행동을 재촉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죠타로를 자신과 똑같이 죽여 버리라고 부추겼다. 디오는 눈앞에 있는 죠타로를, 응?

 

디오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증오하고 싫어하는 당사자가 코앞에 있었다. 정말 쿠죠 죠타로였다.

 

아침의 해가 뜨고 흡혈귀의 육신이 검은 재로 날아간 황량한 땅에서 죠타로는 한동안 자리에 시선을 내리깐 채 서 있었다. 죠셉도 자리에 함께 있었지만, 먼저 몸을 돌렸다. 돌아서면서 죠타로를 몇 번 부르기는 했지만 죠타로는 듣지 못한 것처럼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있을 판이었다.

 

디오는 죠타로가 싫은 만큼 죠셉도 싫었다. 둘 다 죠스타의 피를 갖고 있다는 건 같았다. 심지어 죠셉은 죽인 줄 알았는데 또 이렇게 살아 있어서 싫었다. 이왕이면 늙은 쪽이 상대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디오는 죠셉을 쫓아갔지만, 무언가에 잡힌 것처럼 일정 거리 이상으로는 몸을 옮길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쿠죠 죠타로’의 주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란 사실을 알았다.

 

죠타로는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이집트의 뜨거운 태양이 지글지글 끓는 와중에도 더운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 검은 모자를 벗지도 않고 긴 코트를 떨어뜨리지도 않은 채 그는 자리를 지켰다. 그 모습이 꼭 추모하는 것 같았다.

 

그 무방비한 모습을 단번에 해치우고자 죠타로를 잡았지만.

 

그 순간 디오는 정말 자신이 ‘죽은 자’라는 걸 실감했다.

 

원수 같은 쿠죠 죠타로가 코앞에 있는데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분노가 전부 무력함에 쓸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자존심이 상하다 못해 조각조각 갈리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기분, 뒷목을 타고 찌르르 기어오르는 열등감 같은.

 

그런 지독한 기분을 느껴본 건 아주 예전이었다. 아직 키도 다 자라기 전, 죠스타의 이름을 알기 전, 퀴퀴한 곰팡내가 알코올의 싸한 냄새와 섞여 나는 자그마하고 허름한 집…….

 

디오는 그때 기억이 정말 싫고 진저리났다. 다시는 생각하지 못하도록 깊은 곳에 애써 묻어 두었다. 예전의 모습과 가족의 이름을 남김없이 지우고 고급스런 옷감과 우아한 향수를 끼얹어 내보였다. 죠스타의 이름은 기억하면 할수록 화가 나는 것이었지만 그를 장식해 주는 장신구 역할은 했다. 그 이전의 것은 그런 것조차 없었다. 아예 기억할 가지조차 없는 것이었다.

 

그 가치 없는 것이 디오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이제까지 없는 것처럼 치부해 놓았던 기억들이 어서 대가를 치르라는 것처럼 속삭이는 것 같았다. 거꾸로 떠밀려 들이닥치고 있었다. 무력한 건 싫다. 초라한 건 더 싫다. 세상에서 그가 제일이어야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싫어, 싫어, 다 싫어. 그럴 바에야 남는 모든 것들을 전부 죽여 버리겠어. 조금이라도 날 초라하게 만드는 건 모조리 없애 버릴,

 

 

디오는 무언가 턱 걸리는 느낌에 퍼득 정신이 들었다. 어느새 자신은 죠타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지, 머리가 하얗게 질리듯 비어 생각나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에 걸렸다. 돌멩이에라도 걸렸나 싶었지만 유령이 돌멩이에 걸린다는 것도 좀 이상했다. 아무리 디오라도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건 알았다. 디오는 자연스레 자신을 막아 세운 걸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본 곳에는 왜소한 몸 하나가 잔뜩 웅크린 채 있었다.

 

배를 감싸듯 두 팔로 움켜쥔 채 동그랗게 말려 있는 몸.

 

익숙하다고 할 것까지야 없다만, 아는 얼굴이었다. 디오는 희게 질려 알던 것보다 더욱 허여멀건하게 보이는 얼굴을 들여다봤다.

 

“……카쿄인 노리아키.”

 

그러게, 그는 카쿄인이었다.

 

디오는 순식간에 카쿄인에게로 관심을 옮겼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그를 다시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카쿄인 노리아키는 디오의 손에 죽었다. 깊게 팔을 처박아 뱃속을 휘젓고 나왔던 감각은 짜릿하고 즐거워 잊을 수 없다. 고작 그것만으로 끝나는 시시한 녀석이긴 했지만.

 

자신이 죽인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디오는 묘한 기분이 되어 몸을 수그렸다. 카쿄인은 웅크린 채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디오는 카쿄인을 흔들어 봤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그를 적대적으로 노려보던 두 눈이 아직 기억에 있는데.

 

“일어나긴 하는 건가?”

 

지금은 뜨이지도 않은 채 자는 것처럼 꼭 감겨 있었다.

 

설마 이 녀석도 자신처럼 유령이 된 채인 건가. 디오는 죠타로에게 손을 뻗어 봤다. 죠타로에게로 뻗은 팔은 아무렇지 않게 그대로 통과했다. 꼭 이쪽이 스탠드라도 된 것 같다.

 

그에 비해 카쿄인은 흔들면 흔드는 대로 흔들렸다. 그걸 봐서는 자신의 짐작이 맞는 것 같았다. 카쿄인은 디오와 같은 처지였던 것이다.

 

카쿄인이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기만 따지자면 디오보다는 먼저 있었을 것이다. 디오는 카쿄인을 죽였고 죠타로의 손에 죽었다. 시간 순서를 따지자면 그랬다.

 

디오는 카쿄인을 더 흔들어 보았다. 유령 주제에 자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카쿄인은 애초에 정신이 든 적이 없다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발로 은근슬쩍 걷어차 봤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의 답은 어렵지 않았다.

 

먼저 죽어 놓고도 카쿄인은 디오가 깨어나 죠타로를 노려보든 말든 할 때까지 깨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아니면 채 유령이고 뭐고 되지도 못했을지도 모르지.

 

자세한 사정이야 어쨌건 간에 디오는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동그랗게 몸을 만 채로 죽은 듯…… 아니, 죽은 건 맞지만. 어쨌든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카쿄인을 보고 있으니 제 상황이 훨씬 괜찮아 보였다. 먼저 죽었지만 깨어나지 못하는 카쿄인을 보고 있으니 자신의 위대함이 실감났다. 디오는 의기양양해졌다.

 

하찮은 인간이야 고작해야 이 정도뿐인 것이다. 똑같이 ‘죽은 자’라고 해도 격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죽음과 삶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게 가능한 일이었다면 디오도 죠스타의 피가 아니라 그 자체를 되살려 승부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는 역시 이 디오를 따라올 자가 없는 거란 말이지.

 

디오는 으스대면서 걸음을 옮기다가 다시금 발치의 카쿄인에게 툭 걸렸다. 어떤 것도 장애물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카쿄인 노리아키는 그를 유일하게 귀찮게 하고 있는 장애물이었다.

 

디오는 신경질적으로 카쿄인을 걷어찼지만, 여전히 그는 깨어나지 않았다. 디오는 귀찮은 카쿄인을 이리저리 데굴데굴 굴려 보느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를 갉아먹고 삼키던 것들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떠나보냈다. 그보다 못한 다른 것의 존재가 간신히 디오를 안심시켰다.

 

계속 깨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다르게 카쿄인은 그의 장례식에서 눈을 떴다. 디오는 상황에 당황하고 깜짝 놀라는 카쿄인의 모습을 구경했다. 고작 그런 걸로 동요하는 그 멍청한 모습을 비웃어 주기 위해서.

 

유령은 놀랍게도 산사람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악령이니 귀신이 들렸다느니 하는 말은 관용어일 뿐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왕 쿠죠 죠타로에게 매인 처지이니 놈을 조금 괴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기에 디오는 많이 실망했다. 괴롭히지도 못하는데 함께 있어야 하다니, 이런 망할 상황이 따로 없었다. 디오는 그 상황이 짜증나고 싫었지만 카쿄인은 조금 좋아하는 눈치였다. 저 속도 없는 자식.

 

그래도 카쿄인은 죠타로에게 묶여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디오의 말에 동의했다. 디오는 그냥 죠타로가 싫었을 뿐이고 카쿄인은 죠타로에게 해를 끼치게 될까 염려했을 뿐이지만 목적은 비슷했다.

 

협력할 수 있는 게 서로밖에 없는 상황에서 디오는 카쿄인과 함께 죠타로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봤다.

 

그리고 결과는 지금 보이듯이.

 

“……실패란 이야기군.”

 

“흥.”

 

디오는 샐쭉한 얼굴로 코웃음 쳤다.

 

같이 있게 된 지가 어언 십여 년이다. 죠타로가 그들의 죽음을 어느 정도 잊고 다시 제 생을 살아가게 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죠타로의 곁에 있는 게 만족스럽든 만족스럽지 않든 간에 카쿄인도 디오도 유일하게 이야기하며 같이 지낼 수 있는 상대가 서로라는 사실 자체는 지극히 불만스러웠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정말 많이 노력했고.

 

“근데 안 되더라.”

 

“안 되더군.”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갈 수 있는 장소도 제한되어 있고 유령인 만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들은 생전에 스탠드 유저였지만 이렇게 되니 스탠드는 당연히 사용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그들을 볼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어딘가 그들 같은 처지의 다른 유령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죠타로는 스탠드사만 열심히 마주쳤지 다른 유령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서로를 잡고 당기고 닿을 수는 있었지만 육체가 없기에 ‘육체적인 힘’ 자체가 의미 없어 우열을 가릴 수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고뇌의 시간을 거친 끝에 서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그들이 딱 하나 갖고 있는 공통점.

 

혼자는 싫으니까.

 

카쿄인은 다른 사람이 친구란 이름으로 옆에 있길 원했다. 디오는 그가 지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기를 바랐다. 둘 모두 살아가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서로를 거부할 수 없는 건 사실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던 일이었던 셈이다.

 

십여 년 간 그들 사이에 있던 많은 일을 전부 알지는 못했지만, 죠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그들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건 전부 그때 그 죽음 앞에 멈추어 있는 것뿐이다.

 

쿠죠 죠타로 자신 또한 그때와 많이 변했다.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기억에서부터 조금 변한 것이다.

 

죠타로가 어느 정도 납득한 듯 보이자 눈치를 살피고 있던 카쿄인이 답삭 달라붙었다. 죠타로가 깜짝 놀라 물러나는 것보다 빠르게, 카쿄인은 그의 팔을 꼭 끌어안고 매달렸다.

 

“죠타로, 있죠. 하고 싶은 말이 엄청 많았거든. 나는 계속 널 지켜봤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들리지 않고, 그런 건 좀 억울하더라. 가위 눌린다는 말도 있는데 넌 어쩜 악몽 한 번 안 꾸니? 역시 죠타로, 정말 존경할 만큼 강한 남자야.”

 

“근데 이 녀석이 악몽을 꾸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게 무슨 상관이지, 카쿄인?”

 

“아, 물론 상관은 없지만 약오르잖아. 디오 넌 죠타로가 전투 후에 멀쩡할 때마다 화냈으면서 새삼스럽게.”

 

“그건 뭐 그렇지.”

 

“자, 잠깐. 카쿄인.”

 

“레이미 씨를 만나게 된 게 행운이지 뭐야. 이렇게 네게 말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니. 아, 그러고 보니 인사가 늦었습니다. 레이미 씨, 정말 감사드립니다.”

 

“천만에요. 세 분이 사이좋은 모습을 보니 저야말로 너무 기뻐요!”

 

“카, 카쿄인. 잠깐- 잠깐만.”

 

죠타로는 그에게 매달려 쾌활하게 말을 쏟아내는 카쿄인을 슬쩍 밀어냈다. 유령이라 그런지 제대로 밀리는 느낌이 들지 않아 스타 플라티나의 손을 갖다 댔다. 레이미에게 스탠드, 헤븐즈 도어가 먹혔다고 한 로한의 말처럼 스타 플라티나를 꺼내니 카쿄인은 팔에서 떨어져 쭉 밀렸다.

 

카쿄인은 자신을 밀어내는 스타 플라티나의 팔을 충격받은 얼굴로 쳐다보았다.

 

“죠타로…….”

 

순식간에 반짝이던 자색 눈동자가 침울해졌다. 죠타로는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결코 카쿄인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다시 보아 더없이 반갑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 기쁜 건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밤이라도 샐 수 있었다. 다만.

 

“카쿄인, 너무.”

 

“너무?”

 

“너무…… 가까워.”

 

“응?”

 

카쿄인은 죠타로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죠타로는 드물게 난처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었다.

 

말처럼 카쿄인이 너무 가까웠다.

 

예전에 분명 카쿄인과 친했다. 매번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고개를 살짝만 돌리면 즐겁게 웃는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가깝지는 않았다!

 

죠타로는 카쿄인이 방금 그의 팔을 잡고 매달렸던 감각을 기억했다. 소중한 것처럼 품에 꼭 끌어안은 채 얼굴을 대는 동작이 아주 자연스럽다 못해 기꺼웠다. 온기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카쿄인과는 키 차이가 났다. 고개를 돌리니 생전 습관인지 새근거리는 가슴이 내려다보였다.

 

순간 그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다.

 

죠타로는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과도 그렇게 잘 붙어 있지 않았다. 가슴이 덜컥하다 못해 멋대로 뛰었다. 제 기억과 달라진 점이 있다고는 인정했지만, 그사이에 이렇게 달라붙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 되었을 줄이야.

 

카쿄인은 죠타로의 말을 듣고도 영문을 모르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심지어 답을 알려달라는 것처럼 디오를 돌아보았다. 팔짱을 끼고 떨어져 있던 디오가 대놓고 한심하다는 얼굴을 했다.

 

“어…… 나 평소랑 다를 거 없지 않아?”

 

“저놈이 이제까지 이쪽을 보지 못했었다는 걸 잊었던 모양이군. 네놈이 하던 대로 행동하면 놀랄 수밖에.”

 

“아.”

 

디오의 핀잔을 듣고서야 카쿄인은 알아차린 듯했다.

 

곧 카쿄인은 그를 향해 미안하다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죠타로는 그 표정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하던 대로……? 평소에 내가 안 보던 사이에 이렇게 달라붙어 있었단 말인 건가?

 

“카쿄인, 애초에 네 녀석은 저놈에게 헤프게 굴곤 했으니깐.”

 

“누가 헤프단 거야? 아니, 애초에 죠타로랑은 친하니까 그렇지!”

 

“방금 전 저 녀석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네가 죠타로야? 친해 본 적도 없으면서! 비웃지 마!”

 

“…….”

 

별로 알고 싶지 않은 대화인데.

 

그 말을 시작으로 카쿄인은 디오와 다시 멋대로 말다툼을 시작했다. 죠타로는 드물게 그들의 대화를 자세히 듣고 싶지 않았다.

 

멍멍! 짖는 소리에 죠타로는 옆을 돌아보았다. 발치에서 아놀드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죠타로는 지금만큼은 아놀드의 짖는 소리가 고맙게 느껴졌다. 둘의 소란을 피해 종종 걸어온 레이미가 고개를 기울였다.

 

“계속 봤지만, 역시 두 분은 죠타로 씨를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세 분의 우정이 부럽네요.”

 

하나가 아니라 둘……?

 

……도대체 내가 못 보는 곳에서 뭘 한 거냐, 저 자식들. 죠타로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자세한 이야기를 별로 안 알고 싶어졌다.

 

 

 


rang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