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풀이? 한잔? 

윤우가 다소 뚱한 얼굴로 쳐다보자 원일이 말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과 술자리도 안나오잖아요. 그러지 말고 하고 가요. 지원이 짐도 가져가야 되고. 응응?”

원일의 속셈은 이거였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본 연예인이 아닌가. 제 방에 데려가서 사진 같이 찍고 술마시고 사인받고 최윤우랑 같이 술마신 썰 푼다며 여자애들에게 어그로 끌어볼 요량이었다. 

”아?!“

지원은 지원대로 윤우의 눈치를 봤다. 도와준답시고 이곳까지 와줬는데 원일이 놈이 같이 술을 마시자니 공연히 제가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그랬는데. 

”술…좋아요.“

해서 깜놀했다. 사실 더 놀란건 원일이었다. 뭐든 던지고 보는 원습관대로 던졌더니 의외로 흔쾌히 답이 돌아오는 것 아닌가. 

배달앱을 켜는 원일의 손이 달달 떨렸다. 

”피자? 치킨? 둘다?“

”둘다.“

 ”소주 맥주?“

”소주.“

초록병 소주 말고... 안동소주나 수요...같은거.... 비싼거 사야하나…. 눈에 지진이 일어난 원일이 중얼거리자 지원이 원일의 등을 떠밀었다. 

”빨리 그거나 시켜. 내가 사서 올라갈테니까.“

원룸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지원은 급히 윤우도 같이 올려보내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셋은 배달 온 피자부터 풀고 뒤이어 도착한 치킨까지 풀었다. 그때도 말 없이 치킨 박스며 피자 박스를 뜯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하는 윤우를 보며 원일은 계속해서 제 뺨을 때렸다. 

”내 방에…연예인이…“

”잘 먹겠습니다!“

낮은 원일의 밥상에 둘러앉은 세 사람이 종이컵을 들었다. 그때였다. 

”근데 우리 말 놔도 되요? 다 동갑 아닌가?“

원일이 말하자 지원도 그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계속 존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네. “ 

바로 반말로 윤우가 대답했다. 

”개쿨.“

원샷하는 윤우를 보며 원일이 휴대전화를 들이대는 순간이었다. 지원이 고개를 저으며 하지 말라고 저었다. 정작 윤우는 가만 있었지만 원일도 아차 싶어 전화기를 내렸다. 

드드득-

윤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기정이? 강아지 잘 도착했대.“

윤우가 휴대전화를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사진 속의 기정떡은 다소 겁을 먹은 것 같았지만 이내 집의 곳곳의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정떡... 형이야!"

"쉿."

그러자 윤우가 지원을 가볍게 잡았다.

"갑자기 안보이는데서 부르면 개가 혼란할수도 있대서." 

"아...응."

개를 키우지도 않으면서 의외로 개에 대해 많이 아는 최윤우였다. 

-아구....이뻐라...냄새 맡는거야?

화면 속에서 매니저 형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정떡은 눈치는 보면서도 제법당당했기에 지원은 입을 다물고 뿌듯하고도 섭섭한 마음으로 화면을 지켜봤다. 

그나저나 정말 속전 속결이었다. 삼주동안 기정떡 거취 문제로 정말 맘고생 몸고생한걸 전화 한통으로 해결해주고…애프터케어까지. 

“밥은 잘 먹는대?”

“응.”

개 밥그릇에 고개를 파뭍고 밥을 먹는 영상까지 받자 지원은 비로소 안도했다. 

“나중에 형한테 너한테 따로 연락하라고 말할게.”

“진짜 고마워.”

제 마음을 들여다본 것 같은 윤우의 말에지원은 울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본 윤우의 얼굴이 좀 이상하게 변했다. 이상해도 잘생겼지만 꼭 뭐랄까…미지의 생물을 보고 놀라고 호기심 어린 사람의 얼굴같달까. 지원은 둔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근데 왜 자꾸 나한테 할말 있는 것처럼 쳐다봤어?”

”그러게? 그래서 감자가 잔뜩 시달렸잖아.“

원일이 묻자 윤우가 지원을 보고 대답했다. 

“나 때문에 너 방에 안오는 것 같아서 물어보려고 했지. 내가 방을 바꾸거나 해야 할까봐.”

그 말에 지원이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 아냐 하나도 안 불편해. 사실 너가 기정떡 사감한테 말하면 퇴사각이라 걱정했거든. 기정떡 말 안해줘서 고마워.”

그것 때문에, 날 그렇게 쳐다본 거였구나…. 윤우도 지원의 말을 듣고 그간의 오해를 풀었다. 

‘하도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보길래 남팬인줄 알았는데.’

“어. 나도 개 좋아하거든. 근데 알레르기가 장난 아니라서.”

“그렇구나…맞아  너 재채기 엄청 했지.“

지원이 후후 웃었다. 웃으니까 눈이 다 접혀서 실처럼 보였다. 

어쩐지 그게 귀엽기도 해서 윤우는 저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그럼 이제, 우리 오늘부턴 같이 자는 거다?“

”어!“

털퍽-

지원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원일이 맥주를 떨구고 있었다. 허연 거품이 밥상을 타고 방바닥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너 왜그래?“

”아 아냐… 내가 잘 못 들어서. 근데 너가 그런 얼굴로 말하면 나도 같이 잘 수 있을 것 같아.“ 

오해한 얼굴로 원일이 후다닥 일어나 닦을 것을 가지러 화장실로 갔다. 

”하여간, 짠~만나서 방갑슴다!“

돌아온 원일이 치킨 다리를 집어들자, 술자리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술마시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다 되가는 시각이엇다. 

”아니 핑크블랙…. 사인좀… 하….샤니...샤니 실물 봤어? 내 일생일대 소원이 샤니...실물...그거때문에 죽도록 공부해서 인서울 했는데....음...죄송해요...“

”이제 일어날까?“

꽐라가 된 원일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지원이 물었다. 

”그러자.“ 

맥주캔과 음식을 정리한 윤우는 마지막으로 원일의 집 문을 닫고 나오며 문이 잠긴것 까지 확인했다. 룸메는 꼼꼼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자정이 넘어 그런지 캠퍼스는 조용했다. 올때와 달리 나란히 걷는 지원에게 윤우가 물었다.

”근데 왜 원일이가 너한테 감자라고 해?“

”어. 보다시피. 내가 이름이 감지원이어서. “

보다시피…. 이름 때문만은 아닌것 같은데

윤우는 황급히 속엣 말을 삼켰다. 그리고는 가로등 불빛 아래 보이는 지원의 모습을 저도 모르게 살폈다. 

곱슬기가 있는 짧은 머리, 동글한 생김새, 보기 좋게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까지. 뭔가 시골의 감자나 고구마가 연상되는 느낌이긴 했다. 

앗, 내가 무슨 생각을…

”그렇구나.“

윤우는 미안해서 맞장구쳤다.

 살면서 자기나 남의 외모에 특별히 눈이 가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룸메의 얼굴은 계속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왜 이러지.’ 

윤우는 미안해서 괜히 지원이 든 옷가지를 제가 더 들었다. 

“짐 들어줘서 고마워.”

“기숙사 조식 잘 나오는데 먹어봤어?”

“아니, 아직.”

“왜?”

”아침은 그냥 안 먹어.“

”헉 왜?!“

”습관이 됐네.“

”그럼 점심이랑 저녁은?“

지원이 놀란 눈으로 묻자 윤우가 대답했다 

“수업 끝나면 연기 수업 들으러 가는데 그때 보통 차에서 먹고 저녁도 매니저 형이랑 먹어.”

”아… 그래서 식당에 안보였구나. “

밥도 안 먹는것 같아서 좀 걱정은 됐다. 우리 학교에 들어온 것도 공부만 하고 싶어서라고 해서 정말 수업하고 기숙사만 다니는 것 같더니, 나름 본업?인 연예인 일도 열심히 하는 거였구나.

정작 윤우는 윤우대로 신기했다. 자신이 연예인이면 으레 따라붙는 질문을 하지 않는 지원이. 

연예인 누구를 봤냐는 둥, 얼마를 버느냐는 둥, 누구 사인좀 받아줄 수없냐는 둥. 

”그럼 내일 해장 안해?“

지원의 말에 윤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술 많이 마셨잖아.“

지원이 편의점을 가리켰다.

”해장엔 컵라지.“

”기숙사 내부에서 컵라면 금지 아냐?“

”컵라면만 금지야? 다 금지지.“

지원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근데?“

”몰래 먹으면 더 맛있거든. 뭐 좋아해?“

지원이 척척척 윤우를 끌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아. 그럼 난…문틈새라면.“

”헉. 그 매운 걸?“

매운건 전혀 못먹을 것 같은 흰 피부에 고상한 생김새를 하고, 물론 마스크와 모자 때문에 가려지긴 했지만 숨길 수 없는 순한맛과 고급진 아우라를 내뿜는 최윤우가 검붉은 포장의 컵라면을 들어올렸다. 

”너 좀 대박이다?“

“그러는 너도.” 

윤우가 지원이 집어든 계란라면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렇게 지원은 룸메이자 연예인인 최윤우와 대학 친구가 되었다. 

처음 대학에 와 만난 기숙사 생활은 처음엔 혼자였다. 

난생처음 혼자 도시에 나와 정신이 없었지만 가끔 마음이 붕 뜨기도 했다. 그걸 외로움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지원에게 첫 룸메인 기정떡이 생겼다. 

불안했지만 그 첫 룸메 때문에 대학 생활은 스펙타클했다.

그리고 이번에 만난 사람 룸메는 사람같지 않은 미모를 가진 연예인이었다. 여전히 스펙타클 할 예정일 것 같다. 

하지만 원일이 놈 말대로 우리랑 절대로 말 섞을 일 없게 생긴 최윤우는 생각보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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