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내 할일을 하고있는데, 메신저 창이 뿅 나타났다.

 

- 박 대리, 오늘 마치고 뭐합니까?

- 박 대리랑 깊은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 단 둘이서.

 

이런 달달하고 멜랑꼴리한 메세지를 보낼 사람은 우리 회사에 그 분 말고 없지..

나는 베시시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어떡하죠? ㅠ 저 약속있어요~

 

상대방은 내 메세지에 잠시 답장을 뜸들이더니, 바로 내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나는 웃음을 꾹 참고 휴대폰을 들고 사무실을 조용히 나섰다.

 

"응, 왜?"

"무슨 약속인데. 나랑 저녁먹기로 했잖아. 무슨 약속 잡은건데. 나 버리는거야? 어?"

"풉..."

 

요즘 유투브 먹방 보는 낙으로 사는 나는 거어어업나 매운 떡볶이가게를 알게됬고, 그래서 

오늘 마치고 이사님과 거어어업나 매운 떡볶이를 체험하러 가기로 했다.

(원래 나랑 우진이랑 둘이 가려고 했는데, 자기도 매운거 겁나 좋아한다고 자기랑 가자고 졸라 떼쓰는 바람에 박우진을 튕겨내고 라이관린과 단 둘이 가기로했다...우진아, 미안)

 

"당연히 우리 자기랑 저녁약속이지-"

"...그치? 놀랬어."

 

날카로운 말투가 그제서야 조금은 유순해졌다.

 

"보고싶다, 박지훈."

"두시간 뒤면 보잖아.. 조금만 참어."

"지금 당장 보고싶어. 이사실로 올라올래? 아니면 내가 내려갈까?"

"..그러기만 해."

 

안그래도 보는 눈이 많아 불편해 죽겠는데 이 눈치없는 이사님은 계속해서 우리 경영팀 사무실에 출근도장을 찍으신다.

자기도 뻘쭘하니까 맨날

 

'우리 경영팀 사기충전을 위할겸 해서 왔습니다, 하하. 내가 담당했던 팀이라서 그런지 정이 들어서 자꾸 오게되네요. 참...정이란게 무섭죠? 하하.'

 

같은 말도안되는 소리를 지껄여대지만, 팀원들은 애써 모르는 척 하고 이사님을 반겨준다.

너무 고맙게도...

 

"자기 요즘 우리 사무실 너무 자주와. "

"내가 말했잖아. 경영팀은 내 가족과도 같.."

"오지마."

 

내 단호박에 이사님은 잠시 말을 잃으셨다.

 

"맨날 이사실 보다 제 사무실에 먼저 출근도장 찍으면 다들 이사님보구 뭐라하겠어요-"

"...아, 이사님이 박 대리를 많이 좋아하시는구나 하겠지. 그리고, 니가 이사실에 올라오는건 부담스럽다며. 그래서 내려가는거지."

".........."

"에이씨. 이사고 뭐고 다 때려치울래. 그냥 다시 팀장할래. 맨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밥고 같이 먹고, 같이 쉬고싶어. 나 사표낼래. 아버지한테 말하...."

"기만 해. 자기 죽고 나 죽고야."

 

진짜 사직서 (사직사유: 연애) 들고 회장님 찾아갈 기세였다.

이 남자는 한다면 하는 졸라 무서운 남자거든.

 

"밧찌훈 못됐어!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오늘 같이 떡볶이 먹으러가나봐라!"

 

투덜투덜대며 전화 툭 끊더니, 퇴근시간 10분 전부터 경영팀 사무실 앞을 서성거리는 이사님이셨다...

못살아 진짜......

 

.

.

.

 

저녁식사를 마치고 카페갔다가, 이곳저곳 구경하다가, 또 이대로 헤어지기 싫어서 지훈이 손을 잡고

지훈이네 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날이 풀리니까 이렇게 걷기만 하는것도 좋다. 그치?"

"걷는거 제일 싫어하는 박지훈이 왠일이야? 응?"

"그건 엄청 춥거나, 엄청 더울때 얘기구! 지금 이렇게 딱 적당한 날씨에 자기 손 잡고 걸으니까 너무 좋아."


일부러 회사 주차장에 차를 놔두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잡지 못했던 지훈이의 손을 실컷 잡을 수 있어서 나도 좋았다.

내가 깍지를 끼자 조그마한 손가락이 꾸물꾸물 대며 내 손을 맞잡아왔다.


"그래서 하성운이 그 파일을 모조리 지워버린거야! 멍청이, 내가 그렇게 잘 챙겨두라고 몇 번을 말했었는데!"

"그리구, 다은씨 있잖아. 곧 결혼한대. 그 커플 되게 예쁜 커플이잖아. 꼭 결혼했으면 했는데 세달 뒤에 한다더라구!"

"점심때 박우진이 나보고 뭐랬는지 알아? 뱃속에 거지가 몇 명이녜! 나 엄청 배고팠다구! 오전에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오늘 부장님한테 칭찬받았어. 내 보고서 보고 훌륭하대. 자기한테 맨날 구박받다가 칭찬받으니까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기분이 좋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지훈이는 베실베실 웃으며 내 손을 꼭 잡고 조잘조잘 자신의 하루를 나에게 얘기해줬다.

비밀연애가 들키고 나서 지훈이가 회사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다행이 내 애인 답게 잘 적응하고 있었다.

고맙게도.


"근데, 자기야."

"응"

"나 지금 좀 긴장된다."

"왜?"


내가 걸음을 멈추자, 나와 발 맞춰 걷던 지훈이 역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뒤를 힐끗 보더니,


"...또 누군가가 우리를 찍고 있을 것 같애."

"........"

"이미 다 들킨 마당에 숨길게 뭐 있나 싶다가도... 또 누군가가 우리를 따라다니고, 우리 사진 찍고다닐까봐 겁나."

"신경쓰지 말래도. 네 말대로 이미 다 들킨마당에 이제 떳떳하게 다니면 되지 뭘 그런걸 다 걱정하고 그래. "

"...그치?"

"그럼. 오히려 더 당당하게 다닐 수 있어서 좋은데, 나는."


조그마한 지훈이의 손을 꼭 잡고 다시 길을 걸었다.

애써 괜찮은척 했지만 좋은것만 보여주고, 좋은것만 듣게 해주고 싶은 사람인데, 그렇게 해주지 못해서 속상했다.


"지훈아."

"...응?"

"우리 사진 찍어서 유포한사람 내가 찾아내고 있으니까 지훈이 너는 신경 안 써도 되."

"나는 괜찮은데...자기한테 피해 갈 까봐 그러지..."

"어허, 또 이런다."


고개를 푹 숙인 지훈이의 볼을 감싸 얼굴을 들어올렸다.

누구 애인이길래 이리도 예쁠까. 깜깜한 밤에도 예쁜 얼굴은 환하게 잘 보였다.

내가 이마에 쪽 입맞추자 지훈이는 그제서야 베시시 웃었다.


"내가 뭐랬지?"

"이사님만 믿고, 이사님 뒤에서, 걱정없이, 이사님만 사랑하면서 살라구 했어."

"박 대리, 많이 똑똑해졌네."


얼굴도 예쁜사람이 어쩜 이리 말도 예쁘게 할까.

지훈이의 볼을 감싸 볼이며 입술이며 쪽쪽대고 있는데,


"아빠?"


얘가 왜 갑자기 날보고 아빠라 하는거야... 싶어서 지훈이를 멀뚱멀뚱 보고있는데 , 지훈이는 내가 아닌 내 뒷쪽을 보며 웃고있었다.

따라서 뒤를 돌아보자


"아빠가 왠일이야?! 혼자 왔어? 엄마는?"

"너는 엄마만 찾냐? 오랜만에 보는 아빠안부는 물어보지도 않고?"

"에이, 엄마가 안보이니까 걱정되서 그러지이- 엄마 잘 있죠? 아빠는 별 일 없으셨고?"


아까까지 나와 끌어안고 쪽쪽대던 지훈이는 왠 중년의 남성에게 안겨 토닥토닥 보듬보듬을 받고 있었다.

잠만, 아빠? 아빠라고?! 저분이 아버님이라고?!


"지, 지훈아...."


지훈이의 아버님, 그러니까 내 장인어른 되실 분과의 갑작스러운 만남에 벙쪄있는데, 지훈이가 베시시 웃으며 이번에는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지훈아, 잠만 이거 좀 풀고 얘기해봐...아버님 나 죽일듯이 쳐다보고 계시잖아...


"그쪽은 누구..."


역시, 내가 잘못 본게 아니었다.

아버님은 진짜 나를 당장이라도 패 죽일기세로 쳐다보고 계셨다.

말투와 역양도 약간 어금니를 물고계신 듯 했다.


"아, 아. 네.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훈씨 직장의 대표이사이자..."

"아이고, 이사님이 우리 지훈이 집까지 어떻게..."

"내 애인이야!"


'이사'라는 말에 잠시 누그러졌던 아버님의 인상은 눈치 존나 없는 지훈이의 '내 애인이야!' 한 마디에 다시 일그러졌다.


"...애인이라고?"

"네? 아, 네. 지훈이 직장상사이자, 지훈씨 애인입니다. ."

"........."


당장 90도 구부려서 깍듯하게 인사드렸다. 

내 인사에도 아버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기만 하셨다.


차라리 키는 왜그렇게 멀대같이 크냐. 피부는 밀가루 바른것도 아니고 왜그렇게 하얗냐. 손가락은 왜그렇게 고생 한번 안 해본 손가락처럼 길고 고우냐 (그치만, 지훈이는 제 몸중에서 손가락이 제일 좋대요..아버님...) 

뭐라 한 말씀이라도 해 주셨으면 좋으련만, 아버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머리부터 발 끝까지 훑어보기만 하셨다.


"흐음..."


점점 다가오시더니 (때리시는 줄 알고 눈 감고있었다) 이번에는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나를 탐색하고 계셨다.

아버님...저 범죄자 아닌데요...그냥 아버님 아들을 사랑하는 잘생기고 착한 남잔데요...


"큼!"


탐색을 마치친 아버님은 기침을 큼큼 하시더니,


"얼굴은 그럴싸하네."

"...네?"

"내가 본의아니게 두 사람 대화를 끊은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그럼 하던거 마저 하고 지훈이 일찍 집에 들여보내주시죠. 지훈이 너도 일찍 들어오고."


지훈이와 나를 남겨두고 지훈이 자취방으로 쏙 들어가셨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 했다.


"자기, 우리 아빠가 자기보고 그럴싸하대!"

"...칭찬이지?"

"그러엄! 우리아빠 원래 칭찬 안하셔. 생긴것두 봐. 좀 험상궂게 생겼잖아.히히. 근데 자기야, 나 베스킨라빈스 가고 싶..."

"베스킨라빈스는 무슨...! 그건 내일 먹고 얼른 집에 들어가."

"아 왜애....! 이대로 헤어지기 싫다구..."

"지금 안 헤어지면 영원히 헤어 질 수 있어."


정녕 네 애인이 사지가 찢겨죽는 꼴을 보고싶어서 이러니?

그제서야 지훈이는 투덜투덜 대면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손 들 힘도 없었지만 그래도 예쁜 내 애인이 잘가라고 손을 흔드는데 같이 흔들어줘야지. 흔들흔들.


"내, 내일 보자. 지훈아."

"그래애...조심히가구, 잘자! 자기야!"


...글쎄. 예비 장인어른한테 첫인상 존나 시망으로 찍혔는데 잘 잘수있을까 모르겠어, 지훈아...


.

.

.


역시나 한숨도 못잤다.

반면에 출근하자마자 들여다본 지훈이의 얼굴은 블링블링했다.

너라도 푹 자서 다행이다,지훈아.


- 자기야, 우리 아빠가 자기랑 밥 먹고싶대


잠시 어젯밤 일은 보류하고 업무에 집중하고있는데 애인님에게서 무시무시한 카톡이왔다.

내가 잘못봤나 싶어서 눈을 비비고 봐도 '자기야, 우리 아빠가 자기랑 밥먹고 싶대' 였다.


-영광이지

-언제갈까? 다음주?


태연한척 했지만 메세지를 보내는 두 손가락은 달달 떨렸다.


-오늘!


"...김비서."


비상비상. 아주비상.

일이고 뭐고 나는 바로 수트 자켓을 걸치고 나갈준비 했다.


"예, 이사님."

"지금 바로 헤어샵 예약해줘요. 머리가 엉망이네."

"예...?"


잘 손질한 포마드헤어가 오늘따라 엉망진창으로 보였다.

내 머리꼬라지가 원래 이랬어...?! 


"아, 그리고 백화점 가서 최고급 한우세트 다섯개만 준비해줘요."

"다섯개나요...?"

"아니다. 부위별로, 그냥 소 한마리를 잡아와요. 포장 예쁘게해서."

"예, 이사님."

"꽃 바구니랑 과일바구니도 준비해주시구요. 참, 그리고 오늘 일찍 끝내고 수트 좀 보러 갈거니까 실장한테 미리 준비 좀 해놓으라고 연락 좀 줄래요? 최대한 점잖고 세련된걸로."

"네, 이사님"


일분 일초가 급하고 또 신중해야했다.

사위듀스101 콘셉트평가가 다가온 이 시점에 내가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냐고.


열심히 해야지.

이쁨 받아서 센터되야지.

얼른 아버님 사위로 데뷔해야지.



















판윙을 판윙에의한 판윙을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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