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자전거에 앉아 박지민을 기다리는 건 나에게 습관이었다. 박지운 때문에 얼굴 보기가 힘들어진 뒤로는 더 그랬다. 박지민이 더 이상 타고 다니지 않는 자전거에 앉아서, 박지민의 방 창문을 쳐다보기도 하고 괜히 자전거 안장을 닦아두기도 했다. 잠깐 못 보는 것쯤은 어쩔 수 없다고 나름의 체념이란 걸 끝내고 난 뒤였는데도 불구하고, 난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갔다. 내 의지대로로 박지민을 볼 수 없는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어쩌면 박지운이 우릴 감시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이대로 버림받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날은 학교가 일찍 마쳤고 도장에도 가지 않는 날이었다. 그리고 내 생일이기도 했다. 그날도 나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 있는 자전거로 향했다. 습관처럼 자전거에 앉다가 바구니 안에서 상자를 발견했다. 누가 버린 쓰레기가 아니라 일부러 넣어둔 듯 잘 포장된 상자였다. 나는 조심스레 그 상자를 열어봤다. 안에 들어있는 건 손목시계였다. 누가 넣어둔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상자에는 작은 쪽지도 함께 들어있었다. 목울대가 아파왔다. 쪽지에는 아주 익숙한 글씨로 그렇게 쓰여 있었다.



[ 미안해 ]



다시는 박지민을 볼 수 없다고 종신형이라도 선고 받은 기분이었다. 이 마당에서 얼마를 기다린다고 해도, 며칠 몇 달 몇 년을 기다린다고 해도 이제 박지민은 내게 와주지 않을 거란 사실을 더는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 잔인한 세글자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나는 박지민의 자전거를 끌고 대문 밖으로 나왔다. 동네 입구까지 이어진 야트막한 언덕길을 내려다보면서,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더라.



‘........’



나는 자전거에 올라 망설임 없이 페달을 밟았다. 귓바퀴를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 머릿속에 그려본 박지민은 울고 있던 마지막 표정이라서 마음이 쓰렸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속도감에 곧 박지민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다. 만약 운이 나빠 영영 볼 수 없게 된다면? 그 편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살아있는데 박지민을 보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 당시 박지민은 내게 너무도 중요해져서, 언젠가부터는 나 자신보다도 훨씬 중요한 사람이 된 지 오래였다.



















칠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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