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를 처음 본 날, 그날은 어머니의 생일이었다.

 벚꽃 잎이 흩날리던 날 태어난 어머니는 따스하고, 생동하는 햇살 아래서만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햇살은 어머니에게 쉽게 다가오고 쉽게 떠나갔다.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그 진실을 견딜 수 없어했다. 몇 번의 실패에도 절대로 그 빛 같은 사랑만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 사랑만 없다면 조용하고 아늑한 그 아름다운 이층집은 어머니의 울음소리로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만 없다면 어머니는 세간의 가십거리로 전략하지 않았을 것이다. 술에 취해, 부은 눈을 한 어머니는 말했다. 준면아, 사랑이 없다면 난 떠다닐 거야. 그리고 곧 추락하겠지. 하늘은 자신이 곧 떨어질 높이일 뿐이고. 날 잡아줄 동아줄 같은 존재가 필요해. 어머니의 불분명한 발음과 수척한 얼굴. 얇은 살갗, 관자놀이에 드러난 푸르스름한 실핏줄은 고통에 헐떡대고 있었다. 어머니, 그건 환상이에요. …… 알고 있어. 알면서도 그 진창에 다시 발을 들이시는 거예요. 알고 있으면서 왜 자꾸 상처를 받으시는 거예요. 맹목적인 건 비현실적이에요. 그런 사랑이 없다는 걸 아시잖아요. 지금은 밤이고, 참으로 삭막해. 내 눈동자에 빛이 어룽대는구나. 간직하고 싶어서 눈을 꼭 감은 어머니는 말했다. 그 사람이 보여. 이게 정녕 환상이니……? 이 고통이 환상이니……? 어머니에겐 고통도 사랑이었다.
 
 나는 무심히 시계를 보거나 따사로운 볕이 쏟아지는 창문 너머를 내다보며 침입자를 기다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사주었을 게 분명한 비싼 옷과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는 잠시 얼떨떨했다. 그전의 침입자들은 비열하고, 거만한 웃음을 띠는 사내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내의 얼굴은 고생한 흔적이 여실히 드러났다. 가까이에서 본 사내의 뭉툭한 손바닥은 굳은살이 박여있었다.

‘네가 준면이구나….’
 나는 대답하지 않고 목례를 했을 뿐이다. 나의 날선 태도에도 사내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다 안다는 듯이, 다 이해한다는 듯이…. 어쩌면 어머니의 사랑이, 마지막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다시 문이 열렸다.

 경수를 처음 본 순간 난 아마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있지 않았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느낌이 끼쳤다.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고 나를 향한 낯익은 미소. 그럼에도 낯선 내 반응. 이 어긋남. 검은 머리, 길게 뻗은 흰 목, 자그마한 얼굴. 나의 사랑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그의 시선. 그러나 모든 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네가

 나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 이 어긋남.
 빌어먹을, 하필 봄이었다.




 현관문을 열리고, 경수는 독이 묻은, 시선으로 나를 본다. 하지만 그런 시선도 잠시뿐이었다.

 그는 그때를 추억으로 남겼겠지만 나에겐 어제이고 내일이었다. 현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나는 그 2층집을 떠났다. 더 이상 그 집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내가 다가서면 흠칫 몸을 떠는 경수는 그 일 년이란 시간 동안 더 말라갔다. 마른 미소. 짧은 미소 끝. 다시 짓는 미소.

 계속되는 내 집요한 시선에도 반찬을 정리하려 냉장고의 문을 열고 한숨을 뱉은, 끝은 언제나 동정이었다. 나는 손끝이 저릿해진다. 그런 동정하는 경수조차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나를 동정하는 그를 죽여버리고 싶어진다.

 “어머니가 집에 한 번 들르래…요.”


 만남이 있은 후 사내와 경수는 서둘러 집으로 이사했다. 어머니의 쾌활하고 행복에 들뜬 목소리와, 낮고 가지런한 사내의 목소리. 그리고 경수의 쾌활한 웃음소리를 들려왔다. 다시 그 소리는 드문드문 끊이지 않고 이어졌지만 내 안에 머문 건 오로지 경수의 웃음소리였다. 그 온전한 모습을 보고 싶으면서도 문을 열면 난 그의 미소를 망가뜨리게 될 것이다. 노크 소리. …… 형. 준면이 형. 조심스러운 목소리. 문고리를 쥐고 잠시 눈을 감았다. 문 너머에 경수는 어떤 얼굴일까, 어떤 자세일까, 그 큰 눈망울은 문 너머, 자신을 향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나를 그리고 있을까? 나처럼? …… 문을 열었다. 그는 없었다.

 층계를 올라오는 어머니의 발걸음. 마주하자, 어머니는 말했다. 미안하다, 준면아. 나는 울음을 참고 다시 방문을 닫았다. 그 말은 어머니, 제가 당신에게 할 말이에요.

 정말, 꿈조차 없는 잠을 잘 것만 같아,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테라스의 문을 열고 아침의 공기를 맞았을 때 새의 지저귐. 향긋한 숲의 향. 그리고 옆 편엔, 교복을 입은 경수가 난간에 팔을 괴고 있었다.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을까. 이렇게 위태로운 나를 앞에 두고 경수는 말했다.  형. 우리는 이제부터 가족이며 그와 나는 형제이며… 그러나 익숙해질 수가 없을 것이다. 세차게 뛰는 미련한 내 심장.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아 더욱더 아름다웠던 그때 그 모습 때문에 나는 네가 나타나는 꿈도 별 게 아니었어.

 난 그 순간 모든 걸 봐버렸고, 모든 걸 이루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숨쉬는 듯 나의 시선은 그만을 쫓았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갔고 일주일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 날, 어둑어둑 해진 운동장에서 그가 교복을 입은 어떤 이의 손을 잡은 걸 보았을 때 나는 발작적으로 그놈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단말마 비명이 나고, 나의 무지막한 주먹질에도 방어도 하지 않는 놈 때문에 나는 조금씩 손에 힘이 풀렸다.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며 경수를 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경수의 눈동자. 땀이 밴 손은 헐거워지고, 명백했다. 그는 나를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나의 내부의 소리가 아우성치고 있었다. 벽을 주먹으로 치며, 머리를 박으며 시위하듯 발악하는 피 터지는 소리. 억센 신음 소리, 울음을 참아내는 소리. 그럴수록 나는 알아차릴 뿐이다. 경수는 연민으로 나를 감쌀 뿐. 그 이상으로는 나를 감싸줄 순 없다는 것을.

 경수는 놈을 부축하고 그렇게 어둠의 끝으로 사라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운동장 벤치에 앉아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경수는 다시 나타났다. 지쳐 바스락거리는 검은 눈동자. 곧 나의 피 터진 손을 붙잡고 주저앉아 울음을 참아내고,

 나는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네가 가버릴 까봐 밤하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형….”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형이라고 부른다. 때때로 그는 무서울 정도로 영악하다. 나의 기색을 놓치지 않곤 나의 저릿저릿한 손끝에 못을 박는다. 옅은 갈색으로 염색한 그는, 햇살 냄새가 묻어 있다. 하얗고 말간 그의 얼굴과 대비되는 검은 눈동자. 그 안에 올곧이 비치는 나의 어둠. 정적 속에 진동 소리가 나자 경수는 몸을 흠칫 떨며,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한동안 액정에서 눈길을 떼지 않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가 휴대폰을 귓가에 대며 몸을 돌리자마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어있는 반지가 선명히 보인다. 동시에 놈의 짙은 눈동자가 생각난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매달고 그놈은 내게 말했었다.

 ‘경수가 많이 힘들어합니다. 그만 놓아 주십시오…….’

 

 난 아직 시작도 못했어. 그런데 뭘 놓아줘…….


 “응…. 금방 갈게….”

 나는 돌연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 어려웠다. 서둘러 몸을 돌리고, 등을 보이며 현관문을 향해 걷는 그의 어깨를 잡은 건 한순간이었다. 나는 왼손에 있는 핸드폰을 잡아챘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어떤 이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쏟아져 나온다. 숨을 몰아쉬며 핏발이 선 나의 두 눈을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마주한 경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잡힌 손목을 빼내려 안간힘을 쓴다. 바닥으로 시선을 떨군 그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오른다. 그는 점점 힘이 풀리는 내 손을 내치고 서둘러 대답했다.

 “ㅇ…으응, 아니야. 잠시 헛디뎌서… 아무 일도 없어. 응, 응. 알았어.”

 끊은 휴대폰을 쥐고 숨을 몰아쉬던 그가 일순간 차분해지고, 숨이 멎는다. 그리곤 나를 스쳐 커튼을 젖혀지고, 눈이 멀 것만 같은 햇살에, 나는 팔로 시야를 가린다.

 그리곤 버티고 있었던 힘이 한순간에 빠지는 듯한 아득함이 몰려왔다.


“나 같은 거 때문에 그렇게 살지 마. 형…….”

 침묵이 이어지고, 햇살을 받고 있는 경수의 뒷모습은 아스라이 사라질 것만 같다. 이건 환상일까? 아니야. 환상이 아니야. 아냐, 이토록 아프니깐, 환상일 거야. 환상이어야만 해.
 다시 커튼이 내려지고, 시야에 어룽대는 빛의 잔영.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내게 입을 맞추었다.

 “나 별거 아니야……”

 그 말을 들은 순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갖가지 감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한 가지 뚜렷한 감정은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분노였다. 나는 턱에 힘을 주며 눈을 감았다. 나는 내 안에 비릿한 울기를 맛보았고 그리고 더 이상 구원받지 못해 처절히 숨을 몰아쉬는 내 사랑을 느꼈다. 다시 경수의 손목을 붙잡고 거칠게 방문을 열었다. 구겨진 시트에 그를 내팽개치자 어긋난 초점의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는 철저히 나를 미워하지 못하면서 미워한다.

 그런 네가 이런 모진 말을 하는 건. 정말,
 
 “끝내…….”
 “끝내……? 끝내자고? 이딴 식으로 끝내자고? 넌 날 도대체 어떻게 본 거니? 응?”

 나는 거칠게 경수의 멱살을 잡고 일으켰다. 그의 목덜미에 이마를 박고 말을 끄집어냈다. 그래. …… 끝내자는 거지?


“내가 더 참기 힘든 건……. 넌 다 알고 있다는 거야.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어떤 식으로 끝내고 싶어 하는지 알면서도!!! 알면서도 넌 죽어도!!!! 죽어도 그 말은 안 해 줄 거야. 그렇지? 넌 죽어도 그 말은 안 해 줄 거야…….”

 힘없이 흔들리는 경수의 얇은 어깨에선 어머니의 체취와 사내의 온기가 느껴졌다.


 “어느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줘……. 경수야…….”

 

 지친 듯 그가 나의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아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만 사랑한다고 말해줘…….”

 벨소리는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듯 아득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그의 이름이 들려온다.

 소리는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오고

 

 우리는 서로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마주한다.







단편을 끝내자 선물같은 시 한 편.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멸망을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에 이별하자.
어디쯤 왔는가, 멸망이여.

- 심보선, 이 별의 일 (전문)




됴른을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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