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을 살아오면서 누군가와 살을 부대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여기서 살을 부대낀다는 표현은 단순히 사람과 부딪히거나, 살짝 맞닿는다는 것과는 다르다. 행위, 그러니까.... 'Sex'. 욕구 가득한 성행위를 뜻한다.

그렇다고 나는 순수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행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알았지, 절대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이상형이 까다롭다, 엄청나게 보수적이다. 그것들 또한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그 누구보다 가장 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변태를 말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나는 왜, 어째서, 아직도. 그 야릇한 것을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난 망설임없이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진정한 사랑. 그것만은 서로 깊은 관계를 원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다는 말이 그것의 이유가 되겠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대도 꼭 그러고 싶다. 아주 오래 전부터. 꼭 그러고 싶었다.

꼭, 그러고, 싶었는데...













"아아, 같이 가자~ 거기 바텐더 진짜 조올라 잘생겼다니까??"

"그렇게 좋으면 너 혼자 가 제발.. 나 진짜 피곤해."

"섹스 온 더 비치! 어쩜 그것도 잘 만들까아~? 흐응.. 그러니까 고! 방향 이쪽으로!"

"아 이 미친... 똑바로 걸어 미친 놈아!"


남자에게 오른 팔이 잡혀 무슨 연행되는 수준으로 끌려가는 석진은 시름시름 앓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 상 걸친 차라 술기운과 더불어 식곤증이 밀려와 놈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던 건데, 술에 취하면 어디서 무식한 힘이라도 나오는 건지 무작위로 나오는 녀석을 석진은 더 이상 이기지 못했다. 최근 내내 바텐더바텐더하며 노래를 부르던 놈인 걸 알기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는 했다만, 그게 오늘일줄이야. 뭐라나, 뷔? 비? 어쨌든 놈의 그 사람을 보기 위해 둘은 어느 게이바로 향했다.




딸랑-

지하에 위치한 바(BAR). 분위기 있는 네온사인을 따라 걸음을 옮긴 둘은 유리문을 살짝 밀어 열었다. 한 쪽에 위치한 카운터, 그 앞에 늘어진 고급풍의 식탁들과 소파들.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와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나른하기까지 한 곳이다. 분위기가 장난 아니네. 석진은 금방이라도 빠질 것 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여기 비싼 곳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걱정 마라 친구야. 나 돈 많다?"

"야 그래도..."

"헐. 저기 있다.. 저기."

"아, 야..!"


이번에도 끌려가는대로. 석진은 무의식 중에 팔이 당겨진 탓에 휘청이는 몸을 지탱하려다 결국 왼쪽 발목을 접질렀다. 소음이 적은 공간이라 소리도 못 내고 고통을 참아보지만, 제대로 접질렀는지 발을 땅에 딛기만 해도 찌릿함이 끝에서부터 쭉 올라왔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원인 제공자는 강아지마냥 신나서 벌써 바텐더에게 꼬리를 흔드는 중이었다. 저럴 거면 왜 날 끌고 와? 석진은 속으로 분을 삭혔다.


"힉?? 저보다 어리시네요? 그렇게 안 보였는데!"

"몇 살로 보셨을까 저도 궁금한데요?"


아주 화기애애하시구만.


"인호야, 나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발목을 다쳐서..."

"어어 그래. 조심히 가. 그리고요? 더 말해줘요~ 나 아직 궁금한 거 많은데?"

".. 허?"


석진은 제 앞에서 성의 없이 흔들리는 남자의 손을 쳐다봤다. 저 손목이 한 두어번 꺾였나. 확 부러트릴까봐. 이용 당한 것과 다름 없는 상황에 기분이 팍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힘든 몸에도 따라와줬더니, 발목까지 아파해줬더니 어디서 찬 대우다. 석진은 가만히 있다가 묵묵히 뒤를 돌았다. 분하고 속상해서 무슨 말도 나오질 않는다. 그저 이 새끼랑은 이젠 끝이라고 저절로 다짐하게 된다.


"가시는 거예요? 좀 더 있다 가시지."

"누구... 아 얘요? 얘는 먼저 간다고,"

"이리 와서 앉으세요. 제가 한 잔 만들어 드릴게요."


달콤한 목소리. 진득한 목소리. 두 사람을 등지고 있는 석진은 걸음을 떼지 못 하고 부드럽게 흘러 나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낮고 깊은 저음인데.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라. 조금 전, 신경이 온통 발목에 가있던 탓에 그 잘난 목소리의 주인을 자세히 보지 못 한 석진이다. 달콤한 목소리로 달콤한 제안을 하는 남자에 석진은 여전히 등을 진 채로 주먹만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냥 갈까, 아님 앉을까. 친구 놈을 생각하면 싫다가도, 남자의 목소리를 생각하면 문득 궁금해졌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금방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손님."

"......"


석진은 천천히 자리를 옮겨 남자가 안내한 자리에 착석했다.







"친구 분은 가신 건가 봐요."

"네? 글쎄요.. 화장실 간 게 아닐까요."


석진은 고개를 돌려 어느새 비어있는 옆자리를 쳐다봤다. 갑자기 어딜 가버린 건지 돌아오지 않는 녀석에 석진은 확실한 답을 내놓기 힘들었다.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놈인데. 석진은 덕분에 어색해진 대화에 깊게 스며들진 못하고있었다. 무엇보다 워낙 인물이 좋아서.


"여기 나왔습니다."


떠난 친구를, 때로는 지나가는 시간을. 말없이 잠자코 기다리고 있자, 제 앞으로 화려한 색깔의 칵테일이 건네졌다. 외관부터 눈을 사로 잡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를 감상하던 석진은 곧 몸을 바로 해서 앉는다. 상큼한 레몬이 올라가 있는 유리잔. 역시나 바텐더는 달콤한 것을 내어왔다.


"술 좋아하세요?"

"즐기는 편은 아니에요."

"달콤한 건요?"

"그건.. 즐겨요."

"그럼 잘 맞으시겠네요. 이 칵테일은 알코올도 낮고 달콤해서 가볍게 즐길 수 있거든요."

"아... 이거 이름이 뭔데요?"


유리잔 입구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경청하던 석진이 고개를 들어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호기심이 찬 눈에 조명이 들어가니 꼭 반짝이는 것만 같다. 그 모습이 마치 아이같아 남자가 입꼬리를 살풋 올렸다.


"섹스 온 더 비치."

"......?"

"해변의 정사라고 합니다."

"....아."


올라가 있는 입꼬리가 슬쩍 짓궃게 바뀌었다.


'섹스 온 더 비치! 어쩜 그것도 잘 만들까아~?"

"아하.. 하.. 섹스.... 아아.."


잠시 잊고 있던 술기운 때문일까. 갑자기 얼굴을 덮는 화끈함에 석진은 고개를 내려 식히기 바빴다. 왜인지 겉옷까지 펄럭이며 이곳은 또 언제부터 이렇게 더웠나 생각하기로 머릿 속은 마냥 복잡해졌다. 목은 왜 마르며, 인호 이 녀석은 왜 안 오는지. 섹스의 정사. 단어까지 뒤죽박죽이자 석진은 이내 앞에 놓인 칵테일 잔을 들어 그대로 입안에 털었다.


"어, 그렇게 무리해서 마시면.."

"..크윽, 으...."

"한 방일 텐데..."

"여기.. 끅, 화장실이 어ㄷ..."


쿵. 정신을 잃음과 동시에 필름 또한 모조리 끊겼다.












"......"

"......?"


눈이 떠질길래 떴다. 정신이 들길래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그런 남자를 반기는 건 한 번에 알 수 있듯이 낯선 장소였다. 석진은 눈을 연신 깜빡이며 이게 무슨 상황인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바쁘게 돌아가는 눈동자. 이제 보니, 이불의 차가운 감촉도 잘 느껴진다. 꼭 옷을 벗고 있는 것 처럼..


"일어났어요?"

"아악!"

"괜찮아요?"


바르작 댄 몸짓과 허리를 온통 감고 있는 이유 모를 뻐근함, 아직 낫지 않은 발목의 통증까지. 삼박자가 동시에 이루어지고서야 기차가 지나가듯 어제의 기억 조각들이 한꺼번에 맞추어졌다.


"석진씨??"

'으응, 흣! 아파앙... 읏, 흐윽,'

"괜찮은 거죠?"

'왜 이렇게 조여요, 윽... 큿.'

"아아아아아아악!!"


27년동안 이어온 동정을, 그는 마침내 뗐다.











알코올로 인해 그대로 넘어간 석진을 본 남자는 빠르게 카운터 안에서 빠져 나왔다. 힘없이 쓰러져 있는 석진을 일으켜 보지만 이미 동공은 풀렸고, 몸에는 힘이 들어갈리가 없어 보였다.

"괜찮아요? 이봐요. 손님,"

"나.. 처음인데."

"네? 정신이 들어요?"

"그거어.. 그거 있잖아요오.. 쎅쓰, 응? 그거~"

"하... 일단 일어나 보세요."

"나 동정이라구요..! 아직.. 그거라구... 으으"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까. 남자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황당함을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가, 그제야 대화 주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동정이니 뭐니 구는 게 이상하면서도 궁금해지는 거다. 남자의 표정이 서서히 웃음으로 번졌다. 의도가 궁금하다는 듯, 호기심. 탐색. 다시 또 그 달콤한 목소리다.

"처음이에요?"

"느에...."

"한 번도 안 해 본 거죠?"

"으응.."

대답을 내놓을 때마다 그의 입에서 달콤한 향이 퍼져 나오는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머리를 받친 손에서 그의 머리칼이 부드럽게 스쳤다. 도톰한 입술. 처음부터 잘 보였는데. 바텐더의 입꼬리가 내려 올 생각을 안 했다.

"우리 자리 옮길까요?"

"해주세요..."

"네?"

"동정.. 해주세요." 


"나랑 해요, 그거..."

"..얼른 끝내고 우리 나가요."

'xx 온 더 비치.' 그 달콤한 향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뷔진 #칵테일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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