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형이는 사실 네 친동생이 아니야...]

[..............]

[네 친동생이 아니야....]


나는 그 때 열다섯살이었고, 몇년을 병으로 앓던 엄마를 보내주던 날이었다. 태형이 잠시 자리에 없는 사이 엄마는 말했다. 나는 병실에서 마른 엄마의 손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제발 우릴 두고 가지 말라고...제발... 퉁퉁 부은 눈엔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엄마의 손등에도, 엄마의 얼굴에도. 엄마는 찢어질듯 얇은 목소리로 말했다.


태형이는 사실 네 친동생이 아니야...


[지민아. 그래도 태형이를 부탁한다.]


우리 태형이 불쌍해서 어떡하니...


그 때, 아빠가 병실문을 시끄럽게 열면서 들이닥쳤다. 여보, 지금 무슨 말을.. 이미 엄마는 의식을 잃은 뒤였다.

그 날, 엄마는 허무하게 죽어버렸고.

그 빌어먹을 진실은, 나만 온전히 떠맡게 됐다.


***

열다섯살때, 그 사실을 알게되자마자 가족관계 증명서부터 떼어봤다. 장례식 절차에 정신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옆에 있던 태형은 울면서 자고 있었고, 나는 잠을 제대로 잘수 없었다. 


1998.xx.xx 김태형


나보다 3년이나 늦게 가족 관계에 들어온 태형이. 태형이 잠든 사이 태형의 머리카락도 뽑았다. 머리카락을 뽑아 정장 뒷주머니에 넣어놓고 널찍한 바닥에 누웠다. 


[형. 뭐해. 왜 안자?]

[잘거야....]


태형은 그 때 예쁜 얼굴을 갖고있었다. 나보다 몇달 차이로 1살이 어린 태형이. 내가 알던 태형이는 나보다 한살이 어린데. 아빠는 태형이가 출생신고가 늦다고 했다. 1월1일이 생일이 아닌, 12월 30일이 생일인 김태형. 나랑 동갑인 태형이. 사실은 성이 김씨인, 김태형.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의 부부가 교통사고로 전부 죽은 뒤, 양자로 들인 김태형. 나랑은 피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김태형. 그래서 안쓰러운 김태형. 그리고 내가 평생 돌봐줘야되는 내 동생 김태형.


[일로와. 내 옆에서 자.]


태형은 큰 손으로 제 옆을 두드린다. 


[..............]


우리 태형이 불쌍해서 어떡하니..

엄마는 죽기전에 그렇게 말했다.

눈만 감으면 태형을 찾던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태형은 내 품에 비집고 들어왔다. 마른 정장소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형. 왜 울어?]

[...........엄마 생각나서..]


엄마 생각은 무슨, 나는 지금 네 생각뿐이라고.

절대 들켜선 안돼. 그럼 태형이가 너무 불쌍하잖아.. 태형이 가족이 전부 사라지는건데. 태형은 내 울음 소리에 덩달아 저도 훌쩍였다. 어둠 사이에도 태형의 큰 눈이 잘 보였다. 새까만 눈엔 반짝반짝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만 울어, 태형이 저도 울면서 큰 주먹으로 내 눈물을 닦아줬다. 


모르는척 해야한다.


태형은 큰 덩치로 나를 짓이기듯 꽉 끌어안았다.


모르는척 해야한다.


"................."


나는 모르는척 눈을 감았다.

제 것을 내 허벅지에 문지르고 있는 김태형을.



***

열아홉살이 되던해부턴, 다른 꿈을 꾸게 됐다.

늘상 엄마가 죽어가던 병실의 배경이 사라지고, 나는 얼굴만 김태형인 남자와 섹스를 한다. 나는 너무 놀라서 중간에 침대를 박차고 잠에서 깬다. 그러면 옆에서 자고 있는 태형이 묻는다. 깼어?, 어. 그리고 다시 잔다. 


[네 방에서 자.]


나는 냉정하게 말한다. 우리 좀 이상해. 남자끼리 이러면 안돼. 아 맞다, 형제지. 난 내가 말했다가도 혼란스러워서 눈을 번쩍 뜬다.


[싫어...무서워.. 오늘은 아빠도 없고..]

[계속 불편해서 깨잖아.]

[뭐 어때. 어릴땐 매일 같이 잤는데.]

[불편해.]


내 말에 태형이 삐진척 등을 홱 돌린다. 나는 괜히 소심해진 목소리로 변명을 늘어놓는다. 싱글 침대라 너무  꽉 낀다구.. 우리 둘 덩치를 봐. 이러다 나 터져..


소심하게 말해도 태형은 들은체도 안한다.


[나는 형이 좋은데, 형은 나 싫지?]

[뭐 이런 바보같은 질문을 하냐. 가족 사이에.]

[..............]

[그냥 좁아서 그래..좁아서..]


나는 모르는척 태형을 뒤에서 끌어안는다. 밋밋한 가슴이 태형의 등에 닿았다. 두근두근, 나는 눈을 뜨고 두눈을 깜빡거린다.



절대 들켜선 안돼. 절대로.



***

"기획사에서 가족 등본을 가지고 오라고 한다고?"

"어. 왜 그렇게 놀라?"

".......아, 아니. 그냥."


내가 열아홉살이 되던해에, 태형은 호적상으로 열여덟살이 됐다. 태형은 얼마전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다. 정말 잘생긴 얼굴이니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한거 아냐? 당연히 확인해야지."

"내가 대신 갈까? 너 바쁘잖아."

"형, 고3이잖아. 안바빠?"

"아. 나 어차피 수능안보잖아. 내가 갔다올게."


태형은 내 말에 금방 의심스런 눈초리를 거둔다. 맞다, 형 대학 안가지. 태형은 금새 말끔해진 얼굴로 아침밥을 먹는다. 


"설마 등본 벌써 뗐어?"

"아니. 좀 이따 하려고 했지. 왜?"

"아니. 그냥..."


나는 빠르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검색을 했다. 양자, 가족등본. 등등. 기획사 사장님이 말해버리면 어떡하지? 다행히 일반가족부를 떼면 양자로 나오지 않는다는 답변에 난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형. 근데 진짜 대학 안가게?"

".......그냥 집안 사정도 어렵고.. 너 데뷔도 시켜야되고...너 대학도 보내야되고.."


나는 먼 미래를 상상하듯 띄엄띄엄 말을 했다. 나 혼자 희생해서, 태형을 멋있게 키워볼 생각이다. 나는 대학을 못가도, 태형은 꼭 대학에 보내고 싶고. 당연히 내 동생이니깐.


"형. 나중에 내가 커서 다 갚을게."

"됐네요."

"우리 꼭 나중에 우리 둘이서만 살자. 내가 돈 많이 벌게."

"....우리 둘이?"


당연한걸 묻는다는듯, 태형은 강아지처럼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대답대신 태형에게 소세지반찬을 밥에 올려줬다. 그 때 되면, 너가 날 떠나지 않을까. 언젠간 진실을 깨닫고, 내가 네 친형이 아니라는 사실에 넌 배신감을 느껴서 나를..


"돈 많이 벌어서 아무도 없는곳에서 둘이서만 살자."

"그게 뭐야. 무인도냐?"


그럼 우리 아빠는 어떡하라구.

내 말에 태형은 바보같은 얼굴로 웃기만 했다.


***

나는 수업시간만 되면 잔다. 밤새 아르바이트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공부는 글렀고, 졸업장만 따는게 목표이다. 나는 빨리 내 수준을 알게 된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 형편상 둘을 대학교에 보내는건 무리다. 

아빠 사업은 거의 망해가기전이고, 이 쪽 저 쪽 손을 뻗어 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아마 내가 대학교를 간다면, 태형이도 나처럼 밤새 아르바이트를 해야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 애가 고생하는건 못본다. 그냥, 나혼자. 내가 좀만 더 희생하면..


점심시간이 되면, 태형은 3학년반까지 찾아와 나를 찾는다. 우애 좋은 형제라고, 애들은 늘 말한다. 나같으면 매일 집에서 얼굴 쳐보는 형제랑 밥 같이 안먹는다. 토나와. 장난식으로 그렇게 말하며 내 등을 두드린다. 호석이같이. 호석은 또 네 동생왔다며 내 등짝을 때리며 날 깨웠다. 


"형. 뭐해. 점심먹자."

"..............."

"나 메뉴판 다 외웠다."

"너 연습하러 안가?"

"나 밥먹고 갈거야. 형이랑."


우리 나가서 밥 안먹을래? 오늘 메뉴 완전 구려.


태형은 어깨동무를 하면서 날 끌어당겼다. 형이 햄버거 사줄까?, 그 말에 좋다고 태형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가방까지 들고 온 태형은 학교옆 버거킹까지 금방 달려나간다. 

태형은 순수해서 좋다고 하겠다.

모르는게 약.

지금을 즐기자. 나중에는 날 원망할지도 몰라.

원망이 아니면, 어떤 시선으로..


태형은 지금도 키가 크고 있다.

179인데, 곧 180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청 먹는다. 나는 이미 성장판이 닫혀서 크질 않는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태형과 닮은게 하나도 없어져간다. 얼굴도, 키도, 성격도, 체격도 전부. 태형은 제 햄버거를 다 먹고도 배가 고픈지 부담스럽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으며 내 몫의 햄버거도 쥐어줬다.


태형은 좋다고, 허겁지겁 먹는다. 크고 찢어진 눈매, 구릿빛 피부, 높은 코. 젠장. 하나도 나랑 안닮았어. 왜커갈수록 점점 멀어지는것 같지.


난 태형이 먹는 모습을 보는것만으로도 금방 우울해져버리고 만다. 나는 태형이 형제인데 닮은게 하나도..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햄버거 100개는 먹을 수 있겠지?"

"진짜 귀여운 고민한다."

"나는 돈만 많이 버는게 목표거든. 아까 말했잖아. 돈 많이 벌면.."

"알겠어."


태형은 나처럼 일찍 철이 들었다. 아마 저한테 희생하는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듯, 대화가 이어나가보면 결국 돈 얘기다. 나는 그런 태형이 너무 안쓰러웠다.


"돈 너무 신경쓰지 말구.. 너도 다른애들처럼 놀기도 하고, 연애도 하고 그래."

"............."

"그 너 따라다니는 연습생 하나 있다며. 이름이 유리였나. 그 이쁘게 생긴애."


나는 감자튀김을 먹으며 말했다. 태형은 연애 얘기가 나오자마자, 다리를 휙 꼰다.


"연습생끼리 연애 금지야."

"그래도 몰래 하는거지...뭐.."


태형은 뭐가 갑자기 그렇게 기분이 나빴는지 갑자기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몰라. 그런거 내가 알아서 해. 상관 마."

"뭔 말을 그렇게 하냐. 형한테."


형은 무슨!

난 그 말에 눈을 쨍하고 크게 떴다. 태형도 실수를 한것같은지, 큰 눈이 더 커진다. 얼굴에 반이 눈이다. 예쁘고 잘생긴 얼굴은 금방 표정을 잃는다.


"아. 미안. 나 늦었다. 먼저 가볼게."


태형은 그 때 황급히 시계를 확인하고, 가방을 메기 시작했다.


"엥. 벌써?"

"응. 좀따 봐."

"어. 차 조심하고! 연락하고! 신호등 잘보고!"


태형은 어이가 없는 얼굴로 허허 웃더니, 금방 사라졌다. 난 멀리서 큰 소리로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태형은 잘생긴 얼굴로 크게 웃는다. 웃기는.


형은 너밖에 없으니깐 절대 사고치거나, 사고나면..


내가 못산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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