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HONNE - Shrink ◐

https://youtu.be/2-oO4qG396U



19. Shrink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는데 웬 꽃바구니가 집 앞에 떡하니 있다. 나한테 온 건가 싶어서 꽃바구니에 꽂혀있는 카드를 열어보려다, ‘To. 종인.’ 이 써진 걸 보니 백퍼 경수형이 보낸 거다.


“김사촌 꽃 왔어! 경수형이 보냈나봐.”

“……”


살짝 열려있는 방에 크게 소리치곤 꽃바구니는 주방 홈바에 올려놓는다.


“..좋겠네, 사촌은.”


부러운지 입을 삐쭉거리던 찬열은 꽃바구니에서 몰래 장미 한 송이를 빼더니 제 방으로 쏙 들어간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찬열이 1인용 소파에 눕듯이 앉는다. 앉아서 몰래 가져온 장미를 빤히 본다. 꽃잎을 하나.. 둘, 셋... 


접자.

아직은 아니야.

..접자.

아직은..


무릎 위에 떨어진 꽃잎들을 보다가 백현을 떠올린다.


“………”


가게 창문 너머로 눈이 마주쳤을 때. 녀석은 손을 흔들며 인사하던 지난 날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왜 너까지..”


의도적으로 피했다. 주스.. 그 날 이후로 어색함은 더해졌다. 그 후로 대체 며칠이 지난 거야. 저는 분명 늘, 변함없이 친구로 대하는 중인데 왜 녀석만 다르냐 이거다.


“..알아버렸나 혹시.”


그래서 멀어지고 싶은 건지. 우린 친구라며. 니 입으로 직접 짱친이라 좋다더니 왜 서서히 멀어지는 걸까 우린.


“접어야 되나..”


자주 주고받는 연락도 텀이 길어졌다. 친구인데도 껄끄러워진 사이. 변백현과 나는 서서히 최악의 관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예전처럼 돌아가기엔 나는 아직 단 한 발자국도 너를 향해 떼질 못했다. 다가가지 못한 소심한 내 마음을 벌써 들킨 거라면, 그래서 멀어지고 있는 거라면. 친구마저 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리면,


“안 되는데..”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게 내 마음을 접어야 하는 것일지라도.


* *


맑은 하늘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탁한 오후가 물러간 어느 저녁. 땅거미가 진 창문 밖은 고독이 사무쳤다. 어슴푸레 떠오른 희미한 잡념들의 색이 진해지고 연기처럼 머릿속을 가득채운다. 


강요에 가까운 제안, 아니 협박. 그게 저만의 문제라면 고민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수십 장의 사진 속엔 행복한 우리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행복을 지키지 못하고, 나로 인해 그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훌쩍 현실로 다가온 문제. 미로 속에 갇힌 나, 그리고 어쩌면 너.


나는 뭘 할 수 있지.

나는 널 사랑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데.


“………”


생각을 미뤘었다. 미룬다고 해결될 수 없단 걸 알지만 고민을 거듭할 수록 더해 가는 고통에 어느 순간은 그 생각을 억지로 밀어냈다. 하지만 이제는,


“……보고싶어 죽겠다.”


그러다 종인은 경수를 떠올린다. 보고싶어도 차마 볼 수 없었던, 떠올리는 것 조차 죄책감이 응어리지던 사랑하는 그를.


“……”


갑작스레 어떤 감정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역류하던 그 감정이 머릿속에 번진다. 눈을 질끈 감자 두 눈에서 쉴 새 없이 무색의 뜨거움이 흘러내린다. 텅 빈 책상에 앉아있던 종인은 결국 고개를 숙인 채 두 팔로 제 머리를 가둔다. 얼굴을 감추고 엎드려 앉아 흐느껴 운다. 괴로움이 제 몸을 덮친다.


놓아줘야 할 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



* *



“부모님 여행가셔서 오늘 저밖에 없어요. 사장님 같이 놀아요~~”


일단 짠 하시구! 소맥 두 잔을 후다닥 만 백현이 힘없이 앉아있는 경수를 복돋웠다. 


“몇 군데서 시킨거냐 상다리 휘어지겠어 부농아.”

“배달의 힘을 빌려봤죠~! 사장님 쭈욱 들이키세요 저 잘 말아요 소맥.”

“..생각 없는데.”


자신의 잔을 호로록 비운 백현이 요지부동인 경수에게 술을 권했다. 


“아니면 와인 드릴까요? 저희 집에 와인 냉장고,”

“아냐. 괜찮아..”


며칠 전, 경수는 종인의 집 앞에 장미꽃 한 바구니를 배달시켰다. 카드엔 잘 지내고 있냐, 보고싶다, 사랑한다, 는 내용을 담백히도 적어내렸다. 감동을 받고 제게 달려온다는 기대까진 없었지만 해도해도 이건 너무 하다 싶었다. 가까이 사는데도 보질 못하고 잠수 탄 애인을 몇 날 며칠 기다리고 있자니 속이 타들어가는거다.


“..나 차였나.”

“네에?!!!”

“꽃을 보냈는데도 며칠 간 답이 없다. 얘는.”

“꽃이요?”

“어..”

“설마..요.. 종인이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겠죠…”

“후..”


타들어가는 속엔 당장 눈 앞에 놓인 술이 장땡이다. 뭘 어쩌겠어.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사장님..”

“하나 더 말아줘. 먹고 그냥 취하게.”

“..네에..”


속도가 오른 경수에, 덩달아 백현도 한 잔 더 들이마셨다. 술도 약한 대다가 연속으로 두 잔을 마신 백현은 평소보다 훨씬 발랄한 상태가 되었다. 빈 속에 드시지 말구 먹을 것도 더 드세여.. 알았어. 별명처럼 볼이 분홍분홍해진 백현이 살짝 취기가 올라 알딸딸해졌다.


“찬열이는 뭐한대?”

“어… 글쎄..여..”

“먹을 것도 많은데 찬열이도 부르자.”

“..어어……”

“왜?”

“아, 아니에여! 불러야죠! 짱친 불러야지이…”


눈을 끔뻑끔뻑하던 백현은 핸드폰을 몇 번 두드리더니 빵긋 미소를 짓는다.


“헤헤… 불러써여.. 사장님.”

“오는 길에 소주 몇 병 더 사오라 해야겠다.”

“사장님 지짜 먹고 죽으시려구여?!”

“..그러면 볼 수 있으려나. 김종인.”

“에?!”

“아니다. 너 좀 취한 것 같으니까 물이라도 마셔.”

“네엥..”


홀로 중얼거린 경수는 어느새 바닥이 보이는 소주병을 들곤 찰랑찰랑 흔들다가 씁쓸히 웃는다. 




그리고 삼십 분 뒤, 경수는 그렇게 그리던 사람의 인영을 술잔 너머 먼저 보았다. 마시던 잔을 통해 보이는 종인의 무기력한 얼굴이,


“아무래도.. 데려와야 할 것 같아서.. 데려왔어요. 얘는.. 아까 튀어오라더니 자네요?”

“응, 초반에 주량을 훌쩍 넘기게 달려서 뻗었네 부농인. 종인아.. 왔어?”

“어, 어어…”


근 2주 가까이 못 만난 연인의 재회는 생각만큼 밝지 않았다.


“크흠.. 변백 얘가 엄청 시켜놨네요. 별로 먹지도 않은 것 같은데..”

“스케일이 크네 부농이가. 날 위해서 파티라도 열려고 그랬나봐. 둘..이 저녁은 먹었어?”

“아니요, 아직.”

“얼른 먹어. 조금 식긴 했어도 괜찮아.”


근처 배달 음식은 다 가져온듯 술안주부터 식사까지 백현이 제대로 시킨 모양이다. 어색하게 둘러 앉아 밥부터 먹는 찬열과 종인을 경수가 슬쩍 바라본다.


“으..음.. 어?! 왔네? 둘이?”


무울.. 물 마실래.. 여깄어, 변백. 얼마나 마신거야. 여느 때처럼 찬열이 백현을 챙겨준다.


“사장님 속상해보이셔서.. 같이 달렸더니.. 사장님은 역시 취하시질 않어.. 최고야.. 리스펙.”

“형이..?”

“어.. 야 말도 마.. 야!! 김종인! 너때문에 사장님이 얼마나…! 읍..!!”

“잠깐 입 다물고 있자, 변백.”


어브브!!웁웁!! 찬열과 대화를 나누던 백현이 종인에게 삿대질을 하며 성을 내자 눈치만 보고있던 찬열이 백현의 입을 다급히 막는다.


“아냐, 찬열아 내버려둬. 나도 할 말 있으니까.”

“..네.”


찬열을 저지한 경수가 연신 마시던 술잔을 큰소리나게 내려놓는다. 종인은 이곳에 와서도 여전히 자신을 보지 않는 중이다.


“꽃은.. 받았어?”

“……어.”

“카드있었는데, 못 봤어?”

“..봤어.”

“보고도 아무 생각 안 들었어?”

“………”

“역시나, 대답이 없네. 김종인.”

“……”

“무슨 일인지 물어도. 이번에도 말해주지 않을 거지?”

“……”

“2주, 2주 간 우리가 이렇ㄱ, 아니다. 니가 그러고 있었는데도 나에게 아무런 말도, 어떤 변명도 해줄 생각이 없는 거지 넌.”

“…난,”

“너의 그 대단한 고민을 털어놓기엔 내가 그걸 해결해줄 수 없을테니까. 보잘 것 없는 네 애인이,”

“..도경수!”

“왜? 아니야? 그럼 대체 뭔데? 대체 그 대단한 고민이 뭐길래 14일이 흘러가는 동안 나한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건데?”


종인에게 따지는 동안 경수는 어조도, 행동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종인에게 퍼붓는 말들이 모두 차가운 분노 그 자체다. 그마저도 냉정히 고르고 고른 그런 말들.


“해결.. 될 수 없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다만,”

“…”

“굳이 말해서 뭐 할 건데.. 해서 좋을 거 없는 고민들을 너한테 말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잖아.”

“달라질 거 없어도, 적어도 널 위로해 줄 수 있잖아. 그게.. 그게 연인인 거잖아, 종인아.”

“형이 그것말곤 뭘 해줄 수 있는데!!”

“..그것말곤?”

“하아.. 아니야. 그만하자, 이런 얘기 그만하고싶어 경수야.”

“수도 없는 밤을 네 걱정만 하면서 지냈어. 처음엔 얼마나 바쁜 걸까, 얼마나 힘들길래 나한테 말도 못하고 끙끙대고 있는 건지. 나는 뭘 해야할까. 너에게 어떻게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수도 없이, 셀 수도 없이 네 생각만 했어. 그런데 고작 만나고나서 한다는 말이. 뭘 해줄 수 있냐고? 김종인, 너. ..나한테 그렇게밖에 말 못 해?”


순간적으로 흘러나온 짜증섞인 언어가 얼음덩이가 되어 돌아온다. 경수에게 그런 식으로 말했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전에 후회를 집어삼켰다. 굳어지는 표정으로 싸늘히 제게 말하는 경수는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선다.


“..형, 형 잠시만 진정을 좀..”

“..됐어. 가야겠다 난. 더이상 얘 앞에 있을 자신이 없어.”

“사장님 그래도 .. 야, 김종인. 너 말이 좀 심했잖아.”

“……”

“놔. 필요없다잖아 내가.”


모두가 일어선 가운데 종인만이 경수에게 등을 돌리고 서있다. 찬열과 백현은 집을 나서려는 경수의 양 팔을 잡고선 어떻게든 이 싸움을 막으려했다.


“..김종인 넌 끝까지,”

“........”

“끝까지 나한테. ..진짜 잔인하다 너.”

“.......”


잡을 수 없다. 

잡지 못 하겠어 널.


“갈게.”

“..사장님!!”

“경수형!!!”


양 팔을 뿌리친 경수가 소파 위에 있던 겉옷을 가지고선 백현의 집을 나선다. 쿵!!! 띠링 소리와 함께 잠기는 문소리가 처량했다.


“……”


있는 힘껏 주먹을 쥔 종인만이 떠난 경수의 자리조차 정면으로 보지 못한 채 눈물을 삼킬 뿐이었다. 아스러진 마음을 주워담지 못한다.



나는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

있을까.

잠시 떠나있으면 내 모든 약점이, 

..너와 나는 다시. 어쩌면.

조각조각 바스러지는 나의 마음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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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시는 모든 분들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글 속의 종경이들도 얼른...!!(눈물

In Heartfelt Happ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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