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님이 써주신 의경AU입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허락 받고 가져왔습니다. 



없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세어봐도 기동복 하나가 없다. 요즘 들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걸리는 집합과 기합, 온갖 부조리 덕분에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눈이 잘못된 것이었음 좋겠다. 아니면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것이었으면. 아, 어떡하지. 그냥 여기서 창문 열고 뛰어내려서 가져올까. 덜컹거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기대마 (경찰버스) 안에서 구름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생전 안 하던 멀미를 했다. 의경에 입대한 후로 이런 상황은 또 처음이었다. 군대에 가면 훈련을 하지만 의경은 상황이 터지면 늘 실전이다. 지금 전쟁터에 나가면서 무기를 두고 온 거다. 심지어 훈련을 할 때도 실제 시위현장 못지않게 긴장한 분위기 속에 리얼하게 지행된다.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가뜩이나 요즘 잦은 시위에 긴급출동 때문에 다들 예민해서 소대 분위기 안 좋은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한참을 멍하니 서 있자 버스 뒤쪽에서 분대 표를 짜던 은호가 버스 앞쪽으로 걸어왔다. 정확하게는 구름을 향해. 


"민구름, 왜 그러고 서 있어."

"상경 민 구 름. 상황 때 필요한 물품 체크하고 있었습니다."

"그니까 아는데 왜 그러고 서 있냐고. 뭐 문제있어?"

"……그게…."


기동복 하나가 없습니다. 정은호상경님. 혹시나 뒤 쪽에 앉아있는 선임들에게 들릴까 싶어 웅얼대듯 작은 목소리로 보고하는 구름을 보며 정은호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뭐가 없다고? 

구름은 조금 움츠러든 듯 하다가 이내 다시 허리를 곧게 펴고 뒷짐을 졌다. 그리고는 얼굴을 때리기 좋게끔 고개를 바로 들었다. 갑자기 뺨을 때린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니까. 그 정도의, 아니 그 이상의 잘못을 했다고 생각했다. 이건 진짜 중대깨스 감이니까. 그에 비해 은호는 꽤 이성적이었다. 왜 있어야 할 기동복이 없는지부터 물어왔다.


"어제 시위 때 소화기 분말 제대로 맞은 거 몇 개 빨아서 널어놓고 오늘 긴급시위 떨어져서 급하게 준비한다고 하나가 누락된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 같은 소리하고있네. 그거 일경들이 하는 일 아니야? 니가 제대로 안 잡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잖아. 관리 똑바로 못해?"

"시정하겠습니다. 제 실수입니다. 제가 책임지겠ㅅ…."

"누가 니 잘못 아니래? 출발하기 전에 점검하고 나한테 보고하는 것까지가 너 일인데 버스 출발하고 나서 점검하면 뭐해, 구름아."

"상경 민 구 름." 

"일단 다 자리에 앉아. 내가 위에다 보고하고 어떻게든 해볼테니까, 그리고 오늘은 박도민이 무전기 잡아."

"상경 박도민…?!"


이건 정말로 중대깨스 감이다. 직원들 귀에도 들어갈거다. 무전기를 잡고 버스에 서서 대기하는 건 받데기 기수 중 가장 에이스인 민구름이 대부분 맡는 일이었다. 갑자기 호명되어 놀란 도민이 관등성명을 대고 구름의 뒤로 와 재빠르게 서자 구름이 뒤를 돌아 제 허리춤에 끼워져있던 무전기를 도민에게 전달하고 다시 은호 앞에 곧은 자세로 서서 고개를 숙이고 뒷짐을 졌다. 시골길이라 더욱 덜컹거리던 버스 안에서는 온몸에 힘을 주어야 겨우 균형을 잡고 바르게 설 수 있었다.


"민구름."

"상경 민 구 름. 제가 이번 일 어떻게든 책임 지겠ㅅ…."

"야."

"상경 민 구 름."

"헛소리 하지말고 대가리 박아."


'쿵'하는 소리와 함께 좁은 버스 가운데서 머리를 박는데 까지 은호의 명령 후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버스 바닥에서 퀘퀘하고 역한 고무 냄새가 올라왔다. 은호는 구름의 뒤에 서 있던 도민이 무전기를 잡고 일할 준비를 마친 것 까지 본 다음 소대 수인 정우에게 보고하기 위해 뒷자석으로 걸어갔다. 이내 쿵, 배를 까여 넘어지는 소리. 다시 일어나지만 또 맞아 뒤로 주춤하는 발소리가 구름의 귓 속을, 머리 속을 울려댔다. 제 잘못으로 은호가 또 책임을 대신 지고 맞는거다. 죽고싶다. 구름은 팔과 다리 끝에 힘을 주며 눈을 꽉 감았다. 


*


"엉덩이 더 쳐들어."


결국 시위상황에 도착하고나서야 정은호가 타소대까지 가서 예비기동복을 빌려왔더란다. 그 소문은 2,3소대를 거쳐 본부, 중대수인, 그 위의 직원들에게도 빠르게 퍼졌다. 안그래도 좋지않던 소대 분위기에 기름을 들이붓고는 거친 시위를 막고 돌아와 살벌했던 저녁 점호가 끝났다. 역시나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정은호는 수경들에게 돌아가며 뺨을 맞았다. 열외수경들이 한마디 씩 보탰다. 애들 많이 빠졌더라,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나봐? 은호 이제 곧 수경 단다고 일 놓는거야? 은호는 오늘 그들이 말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 기대마 뒤로 집합해 깍지를 끼고 엎드려 뻗친 구름이 앞에 이내 한 손에는 진압봉을 들고 절뚝거리며 은호가 등장했다. 제가 실컷 맞았던 매를 들고 기대마까지 걸어온 은호가 구름의 앞에 섰다.


"똑바로 엎드려. 맞다가 피하면 죽는다."


구름은 깍지를 풀고 생채기가 난 손가락 마디를 바라보며 온 몸에 힘을 주고는 바르게 엎드려뻗쳤다. 이내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묵직한 고통이 머리까지 저릿하게 올라왔다. 정신없이 매가 떨어지자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조금이라도 옆으로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본능 보다 은호의 명령이 먼저였다. 정신이 빠질 만큼 호되게 매를 맞으면서도 슬슬 내려가는 엉덩이를 때리기 좋게끔 바짝 올렸다. 아프다는 말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반신을 덜덜 떨며 움찔하다가도, 매가 멈추면 다시 이를 악물고 벌벌 떨면서도 엉덩이를 바짝 들어 올리는 구름을 보며 은호가 인상을 썼다. 엉덩이며 허벅지며 할 것 없이 진압봉을 쥔 손에 더 힘을 주어 때렸다. 


"하, 윽… 시정하겠습니다."

"맞다가 피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어."

"…죽는다ㄱ… 아 흑… 흐으… 시정하겠습니다…."


정신없이 명령을 따르며 엉덩이를 바르게 들던 구름도 결국 제 본능을 이기지 못해 넘어져 매를 피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매는 더욱 세게 떨어졌다. 이 밤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만 맞고 싶다. 이제는 뭘 잘못했던 것인지도 흐릿해 질만큼 그만 맞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순전히 너무 아파서 드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정말 한계다. 싶을 때 쯤 은호의 매가 멈췄다. 구름이 다리를 덜덜 떨다가 이내 다시 바르게 자세를 잡았다. 은호는 그런 민구름의 뒷모습을 꽤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진압봉을 내다 던진 채 다리를 절며 자대로 들어갔다, 얼마나 세게 매를 쥐었는지 뜨거울 정도였다. 은호는 남들보다 구름을 유독 아꼈으며 제 라인을 태워주는 듯 하면서도 이런 실수에는 모질게 매를 댔다. 그게 저를 아껴서 그러는 건지, 악행인 것인지 구름은 가끔 잘 구분이 안 되었지만 매를 맞고서라도 용서받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미 불이 꺼진 내무반에 조용히 들어와 그 상태 그대로 잠들었다. 고된 하루의 끝이었다. 


*


"다시 닦아."

"민구름 상경님이 다시 닦으라고 하십니다!"


와장창, 식판 수백개가 요란하게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팽겨쳐졌다. 상경 이상의 계급을 단 선임이 지시하는 모든 것들은 일,이경들이 무조건 큰 목소리로 복창해야한다. 세계는 나름 막내들 중에서 짬을 어느정도 먹었기에 아침 식당 사역까지 들어오지는 않아도 되었지만 어제의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퍽퍽한 맨 밥을 입에 마구 쑤셔넣고는 급하게 주방으로 들어갔다. 세계와 눈이 마주친 구름이 보란듯이 다 닦아서 반질반질 깨끗하게 쌓여있는 식판을 그대로 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저걸 다 다시 닦으라고? 순간적으로 뇌가 멈춘 듯 얼어붙어있자 또 한번 와장창,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식판이 무너져내렸다. 무너져내리는 식판에 발등을 맞은 세계가 순간적인 아픔을 참지 못하고 발등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전세계."

"일경! 전 세 계!"

"이새끼가… 안일어나? 대가리에 나사 다 빠졌지? 개 막내 시절 생각나게 해줄게. 내 밑으로 오늘 아침, 점심, 저녁 주방 사역 전부 들어와. 사역 끝나면 빨래 돌리고, 걸레 잡고 내무실 닦아. 저녁사역 끝나고 근무 나가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쉬고있는 거 보이는 새끼들 다 죽여버릴거니까 걸어다니지도 말고 뛰어다녀. 1초도 멈추지 말고, 담배 피지말고, 물 마시지말고, 화장실도 가지마. 저녁점호 끝나고 보자."

"예 알겠습니다!"


빨리 닦아라, 빨리 닦아라, 민구름 상경님이 빨리 닦으라고 하십니다 ! 민구름 상경님이 빨리 닦으라고 하십니다 ! 미친듯이 식판을 잡고 수세미 질을 해대면서 구름의 지시까지 복창해야 했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럴만한 잘못이긴 했지. 심지어 정은호상경님이 깨지셨으니 더욱 더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식판을 내치는 구름의 손마디에 붉은 생채기가 선명했다. 어제 점호 끝나고 맞으셨구나, 나도 차라리 맞고싶다. 하루종일 사역에 온갖 잡일과 눈칫밥, 기합에 시달리는 것 보다는 그냥 맞고 끝내는 게 가장 깔끔했다. 그걸 너무 잘 아는 구름은 절대 그렇게 끝내주지않았지만.


*


"민구름 이리와."

"상경 민 구 름. 부르셨습니까."


절뚝이는 다리를 이끌고 내무실로 향하던 구름을 부른 것 은 은호였다. 어제의 기동복 사건은 마지막에 확인 못 한 구름의 실수도 맞지만, 사실 일,이경들의 실수가 맞아서 구름이 저렇게 굴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조금 심하게 기합을 줬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다들 그럴만 하다는 평가였다. 일 이경들이 빠져가지고 선임들 쪽 주고, 챙짱에 받데기짱까지 쥐어터졌으니 그럴만도 하다. 중대수인도 구름의 독단적 기합을 묵인해주는 눈치였다. 민구름 컨트롤 되는 사람은 은호밖에 없었다. 어쩌면 당장 1시간 뒤라도 긴급상황이 뜨면 바로 빡센 시위를 막으러 출동해야하는 인력들에게 너무 과한 징계가 아닌가 싶었지만, 제 앞에 서서는 무서워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허벅지를 얕게 떠는 구름을 보고는 그냥 모르는 체 해주기로 했다. 


" 애들 깨스 걸었습니다. 그냥 때리고 끝내기에는 보는 눈들도 있고해서 말입니다."

" 그래. 고생해라."

"아, 그리고 점심, 저녁 사역도 들여보내기로 했습니다. 내무실 청소도 일경들이 할겁니다."

"구름아."

"상경 민 구 름."

"니가 알아서 잘 하겠지. 믿는다.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말고."

"옛슴다. 다시는 어제 같은 상황 만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두 번 만들었다간 너나 나나 죽는거지. 뒤에서 내심 은호의 쉴드를 바랬던 전세계의 곡소리가 들리는 듯 했으나 구름과 은호가 있는 1소대는 그렇게 또 하루가 뉘엿뉘엿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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