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 전공과목 교수님의 남편이었다.

 


 

 

 

 

이 미친 학비와 집세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코피 터지도록 공부하고 남는 시간엔 몸으로 뛰는 것뿐이었다. 누구야 머리도 타고나고 집안도 잘 타고나서 마음대로 실컷 자유시간에 파티도 즐기고 연애도 존나 하고 놀러다니겠지만.

 

그날도 나는 하던 과제를 끝마치지도 못하고 급하게 배낭에 노트북을 쑤셔넣고 달려와 간신히 지각은 면할 수 있었다. 이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한 지는 꽤 오래 되었고, 그래서 매니저 누나도 지금 저렇게 저 큰 눈을 한번 나무라듯 부라리고만 넘어가 주는 것이다.

 

 

"조던, 언제쯤 제시간에 올 거야?"

"지각은 안 했는데."

 

 

씩 웃으면서 앞치마를 내밀자, 어이없어 하면서도 내 몸을 빙글 돌려 허리에 앞치마를 매준다. 고맙다고 대답해주고, 거울 앞에서 뒤집어진 폴로셔츠 깃을 제대로 하며 거울을 한 번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캐주얼 다이닝펍에 걸맞는 아주 평범한 하얀색 유니폼이었지만, 나는 항상 그 옷을 입고 있는 내가 참 병신 같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거울을 오래 보고 싶지도, 볼 시간도 없었다.

 

 

 

주문을 받고, 주문을 넣고, 음식을 서빙하고, 커피나 술잔을 채워주고, 계산해주고, 팁을 챙기고.

기계적인 미소(팁을 위한)를 대충 지어가며 실수만 면할 정도로 집중하다보면 이 지루한 시간도 끝난다.

가끔 같이 일하는 애들이랑 시시덕거리기도 하지만, 오늘은 바빠서 그럴 틈도 없었다. 정신없이 배정받은 테이블로 가, 나는 기계적으로 멘트를 읊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주문을 도와드릴 마이클B조던입니다. 추천해드릴만한 와인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어요?"

"...조던, 자네가 여기에서 일하는 줄은 몰랐는데."

".... 안녕하세요, 교수님."

 

 

테이블의 손님들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메뉴판을 건네는데,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 차림으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되도록 학교와 조금 먼 곳에 있는 곳에서 일하는데도, 이렇게 가끔 아는 얼굴을 만나기도 했다.

 

항상 공들여 매만진 머리와 단정한 정장차림을 하고 있는 교수님은 오늘도 마찬가지로 완벽히 세팅된 머리를 하고 앉아있었다. 다만 옷차림은 조금 더 캐주얼해보였다. 한 손으론 턱을 괴고, 한 손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을 다정하게 잡고 있는 다른 커다란 손-

 

 

"인사하지, 내 남편 채드윅이야."

"아,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교수님의 손을 잡고 있던 그 큰 손을 잠시 풀고, 교수님의 남편은 내 손을 맞잡고 악수를 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교수님의 남편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그의 커다란 두 눈이었다. 약간 나른해보이기도 하고, 조금 수심에 잠긴듯 하기도 한 커다란 두 눈. 지금 그 눈이 참 다정한 빛을 띠고 교수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절로 '와, 진짜 잘생겼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턱라인을 덮고 있는 수염은 굉장히 남자다워 보이면서도, 눈빛이 섬세해 조금 중성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뭐... 그냥 그렇다는 거다. 내가 뭘 어쩌겠는가... 말 그대로 그냥 정말 잘생겼다는 거지. 


감상은 이쯤해두고, 다시 일로 복귀했다. 주문한 음식을 잘 내주고, 와인도 따라주고, 계산도 잘 도와드리고.... 교수님이 통크게 큰 팁을 주셔서 기분이 좀 좋기는 했다. 식당문을 나서는 동안, 교수님의 남편은 교수님이 자켓을 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교수님의 팔짱을 꼈다. 나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남기고 그 둘이 나갔고, 그걸로 끝.. 이었다. 

 

 








 

 

 

가끔씩 보스먼교수님의 남편이 생각난다. 참 다정하게 생긴 눈이라든지, 손가락이 곧고 긴데다 뼈대가 드러나 섹시해보이는 손등이라든지, 살짝 허스키한 섹시한 목소리... ...하지만 교수님 남편이랑 내가 뭘 어쩌겠는가. 나이도 나랑 적어도 스무살은 차이날 거야...

 

오늘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살며, 나는 이따금씩 떠오르는 그 사람의 얼굴에 고개를 도리질치며 그 잘난 얼굴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했다.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을 가져다 막 서빙하고 오는데, 매니저누나가 내 이름을 불렀다.

 

 

“조던, 8번 테이블 좀 가줄래. 원래 내 테이블인데 나 잠깐 손을 베여서.”

“알았어. 괜찮아?”

“괜찮아. 안에서 반창고 붙이면 돼. 고마워!”

 

 

검지손가락을 꼭 쥐고 있는 누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한 번 쳐다보고, 나는 누나를 대신해서 8번 테이블로 갔다. ...오, 내가 알고 있는 뒷통수인 것 같아. 내가 급작스럽게 이 테이블을 맡게 된 게 좋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확실한 건 내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음, 안녕하세요...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아, 조던 군.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저.. 네.”

 

 

아, 왜 귀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지. 약간 심장이 세게 뛰기 시작했는데, 이게 저 부드럽게 웃는 눈 때문인지, 나지막한 목소리 때문인지, 내 이름을 기억하기 때문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오늘 미리암이 Women’s night을 보내는 날이라서. 혼자 한 잔 할까 하고 들렀어요.”

“아.... 네.”

 

 

나는 왜 빙시같이 네.... 밖에 못하는 거야 지금. 얼굴 빨개진 게 티 나지는 않겠지.

교수님의 남편은 맥주와 스타터 하나를 주문하며 나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난 메뉴판을 받아들며 수첩에 적었던 메뉴를 다시 확인하던 참이었다.

 

 

“맥주 한 잔, 프렌치프라이 주문....”

“..... .... 음.”

“...도와드리겠습니다.”

 

 

무심결에 수첩에서 눈을 떼 고개를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말꼬리를 흐려먹고 말았다. 교수님의 남편이 그 큰 손으로 턱을 가볍게 쥔 채, 그 예쁜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완전 대놓고 내 몸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벙찐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교수님의 남편은 당황한 기색조차 없이 평온했다. 되려 여유롭게, 기분 좋다는 듯 나지막한 콧소리를 내며 약간 미소를 띤 채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다. 말문이 막혀 눈을 껌뻑거리자 그는 여전히 웃음기를 거두지 않은 채 그제야 시선을 테이블쪽으로 돌렸다. 나는 뺨까지 화끈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되는대로 말꼬리를 주워 웅얼대고는 자리를 떴다.

 
 

솔직히, 지금 이순간에도 내 등으로 꽂히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데, 뒤를 돌아다보면 그 끈적한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까봐 차마 뒤도 돌아보지 못하겠어.

나도 남자라서, 아주 잘 안다. 저 눈빛이 어떤 눈빛인지. 수업 들으러 가다가 맞은편에서 엉덩이가 빵빵한 여자애가 괜히 머리카락 한번 쓸어넘기며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로 돌아가 시선이 그 phat ass에 달라붙는...

 

 

“미쳤다 미쳤어, 마이클. 일이나 하자.”

 

 

..라고 생각하면서도, 집중이 하나도 안 돼서 미칠 것 같았다. 기분이 굉장히 더러운 동시에 굉장히 신경 쓰이고 조금 들떴다. 내 허벅지와 가슴, 입술을 거쳐서 두 눈을 정확히 바라보던 그 시선, 피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당당하고 대범하게 나를 똑바로 쳐다보던 그 시선.... 내가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라지만, 그건 분명 ‘네가 뭘 어쩔 수 있을까?’라는, 자신감이 내포되어있는 눈빛이었다.

그 자신감이 ‘내가 너의 몸을 쳐다보겠다는데 어쩔 거냐’인지 자기 자신의 매력에 대한 믿음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는 없었다..

 

 

기계적으로 몸에 밴 습관처럼 일은 어찌 하는데도, 사실 내 정신은 온통 교수님의 남편에게 가있었다. 다른 테이블에 서빙하면서도, 8번 테이블에서 내가 보이는 각도라면 나도 모르게 내 옷매무새를 신경 쓰고 허리와 엉덩이에 힘을 줬다. 그런 스스로가 미쳤다고, 모욕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몸이 이성을 따라주질 않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 지금 뭐하는 거야?

 

그리고 더 짜증나는 건, 주문을 받을 때, 그때를 제외하고는 교수님의 남편이 나를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는 거다. 솔직히 그 정도로 사람을 끈적거리게 쳐다봤으면 뭐 후속편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심지어 내가 주문받은 음식을 서빙할 때도, 쳐다보고 있던 아이패드에 시선을 쳐박고 ‘고마워요’라고 짧게, 웃음기도 없이 대꾸하고는 끝이었다.

 

나 혼자 오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게 쪽팔린 건지, 왜 나를 더 이상 그렇게 (섹시한 눈으로)쳐다봐주지 않는 게 기분이 나쁜 건지, 나는 다시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불쾌해진 기분으로 테이블을 떴다.

아무렇지 않고 싶었지만,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교수님의 남편이 계속 아이패드로 뭔가를 하면서 천천히 맥주를 비우고 감자튀김을 집어먹는 동안 내 쪽으로 정말 단 한 순간도(저정도 끈적이는 시선이었으면 내가 정말 모를 수가 없었다) 눈길을 주지 않는 모습을 보며, 심지어 모욕감까지 느끼기 시작했다. 시발,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냥 지멋대로 성희롱 했다 말았다 해도 되는 한심한 놈으로 보는 거야 뭐야?

 

괜히 기분이 더러워지고 복잡해지는 게 짜증났다. 나는 아무 것도 안 했는데 혼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싫었고, 자꾸만 신경 쓰면서 내 자신을 스스로 한심하게 추락시키는 건 더 열 받았다. 나도 신경 안 쓸 거야, 라고 스스로 계속 되뇌이는 꼴 자체가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있단 반증이잖아.

 
 

심지어 한참 후에, 다른 테이블들에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고 왔더니, 교수님의 남편은 아예 자리에 없었다. 절로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지금 나랑 장난하잔 거냐고. 신경질적으로 계산서를 집어들어 펼쳤는데, 그로 인해 내 기분은 한층 더 깊게 추락했다. 저번에 교수님과 왔을 때도 보통 내가 평균적으로 받는 팁 액수보다 조금 더 많긴 했지만, 오늘 받은 팁은 진짜 팁으로 생각하기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었다. 정말 눈 돌아가게 많은 돈은 절대 아니지만, 그냥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한 웨이터에게 주는 금액은 또 절대 아닌 그런 돈.

나도 모르게 이 돈과 내 몸을 끈적이게 훑어보던 그 남자의 눈빛이 같이 떠올라 연결지어져, 나는 그저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퇴근하고 나오며, 이번에는 혹시,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그도 모자라 1분 정도 서성이고 나서야, 정말 어디 더 내려갈 곳도 없이, 내 무들렛이 바닥을 쳤다.

아, 씨발 나 진짜 뭐하는 거냐.

 

 

 
 







 

 

 

그 망할 아저씨, 까먹고 있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얼굴에 눈살을 찌푸렸다. 기본적으로는 어쨌든 아직도 매우 바쁜 몸이므로, 살다보면 바빠서 어차피 뭐 되지도 않을 관계 따위 주저앉아 궁리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그럴 바에는 농구라도 한판 뛰는 게 훨씬 나은 일이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재수 없는 아저씨의 얼굴을 털어버리려고, 걸치고 있던 후디를 벗어버리고 지나가던 동기들을 붙잡아 농구 한 판을 제안했다.

 

 

농구 할 때마다 이름가지고 놀려대는 망할 동기녀석들 때문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어쨌든 공을 쫓아서 정신없이 뛰고 땀을 빼고 나면 기분이 조금 상쾌해졌다. 과제를 마무리할 시간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이제 집에 가서 샤워를 좀 하고 집중하면 출근 전까지 대강은 끝낼 수 있을 것 같네, 라고 생각하면서 동기들과 피스트범프를 몇 번 주고받고 벗어들었던 후디를 걸치고 교문으로 걸어 나오는데, 어디선가 나에게로 와 꽂히는 시선에 주위를 휘휘 둘러보다 눈이 딱 마주친 순간, 나는.. 온 몸이 굳어버리는 걸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안녕, 조던.”

“....... 안녕하세요.”

 

 

여전한 저 눈빛. 그때만큼 직접적이고 색이 짙지는 않지만, 즐거움이 잔뜩 묻어나는 저 눈은... 단순한 반가움 따위가 아니었다.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벤치에 앉아있던 그는 천천히 일어서서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나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모욕감을 느껴야 하나, 설레야 하나, 기분 나쁜 짓은 그만두라고 한 마디 해줘야 하나, 아니면....

 

 

“정말 잘 하던데. 운동신경이 뛰어난 것 같아.”

“......”

“그래, 맞아. 게임하는 걸 쭉 지켜봤어. 정말... 멋지던데.”

 

 

내가 약간 울컥 치밀어 오른 표정으로 아무 말 않고 그를 쏘아보자, 그는 단 0.1초의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씨익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저런 파렴치한! 저 ‘멋지던데’는 단순히 내 게임실력을 칭찬하는 게 아니었다. 다시 한 번 그 끈적한 눈빛이 내 몸을 빠르게 훑었다. 너무 대놓고 저러니 진짜 환장하고 돌아버릴 것 같았다.

 

 

“저기, 적당히 좀..”

“음?”

 

 

뭐가? 하는 얼굴이 가증스럽다. 갑자기 순진한 척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눈썹을 치켜올리는데, 아, 제기랄, 저 미소나 거두고 나서 오리발을 내밀든지. 근데 왜 나는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설레기까지 하는 거야? 왜 심박수가 빨라지는 거야?

 

 

당연히 연애도 해봤고, 그냥 데이트도 많이 해봤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동정은 아니라고. 하지만... 하지만....

 

 

그는 달랐다. 섹시하지만 자기 멋대로이고 떼도 잘 쓰는 또래 여자애들하고도 달랐고, 같이 웃통 벗고 농구 한 게임 때리고 손인사 주고받는 친구 놈들하고도 달랐다.

저 사람 앞에서 나는 발발 떠는 토끼가 되는 기분이었다. 저 사람은 뭐든지 다 알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고 있는 어른이라고.

그 ‘원숙미’라는 것에 내가 설레고 있구나, 라고 알아채갈 무렵... 갑자기 그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 번호 좀 알려주겠니?”

“무...뭐라구요? 제가.. 제가 왜요?”

 

 

나도 모르게 너무 황당한 나머지 말을 마구 더듬자, 그가 푸훕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정말 사랑스러워 못견디겠다는 눈빛이라, 내 심장은 점점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미친놈, 마이클 바카리 조던!!! 정신 차려, 저사람이 너를 갖고 노는 걸 모르겠어? 아니, 그걸 떠나서 저사람은 니가 수업을 듣는 교수님의 남편이라고. 저 사람이 뭘 원하는 지도 모르고 그렇게 혼자 얼굴 붉혔다 푸르렸다 하지 말라

 

 


 

“너랑 데이트하고 싶은데.”

 

 

....고. 와, 씨발, 미쳤나봐.

상도덕(?)을 무시하는 그의 관념 때문에 불쾌감이 화끈하게 몰려왔다가, 이제는 심장이 입밖으로 기어나올 만큼 빨리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는 비상등이 켜지고 있는데, 왜 온 몸은 설렘으로 떨리는 거야? 대체 왜? 내가 미쳤나?

 

 

정의 내리기 힘든 오만 가지 감정에 휩싸여 도저히 정상적인 반응도 판단도 할 수가 없었다. 그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그 길고 잘생긴 손 약지에 끼워진 은색 결혼반지였다. 그 반지를 보자 교수님의 손을 다정히 잡고 있던 그의 모습, 교수님과 팔짱을 끼던 모습, 다정히 자켓을 걸쳐주던 모습 등등이 한꺼번에 어지럽게 떠올랐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미칠 수 있나? 나를.. 나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 그래... 잠시 이것 좀 들어줄래?”

 

 

내가 나도 모르게 못박힌 듯 그의 약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나보다. 그는 그런 내 눈과 자신의 손을 번갈아가며 보더니, 갑자기 나에게 자신이 마시던 커피를 건네주었다. 얼결에 받아든 나는 저절로 입을 헤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왼손에 걸린 결혼반지를 빼냈다. 그 긴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반지, 그 반지를 버버리코트 안쪽에 넣은 그는 코트 앞섬을 오른손으로 탁 한번 덮더니, 다시 없을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시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러면 되겠니? 이제... 너와 데이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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