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우째 생각해야되노. 의견 있나?"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진짜 귀신이가?"


"그거 말곤 더 설명할 방법이 있나?"



어제 밤 체육관 앞에서 목격한 상황에 대해서 셋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더니 그거 다 뻥이였음;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에 대해선 아무리 머리수가 많아도 답이 안나오는 것은 뻔했음.


"근데 귀신이라고 치기엔 너무... 그리고 신발을 어떻게 신고 다니노. 발이 없는데."


"아? 그런가?! 그래도 모르지! 신발을 신고 싶은 귀신 이였을 수도 있지!"


"당사자가 다시 와서 해명하지 않는 한 우린 계속 이러고 있겠제."


셋은 지금 심각해 죽겠는데 오늘 따라 유난히 학교 자체가 떠들썩한 기분이 들었음. 어찌나 시끄러운지 대화 소리가 묻힐 정도였음.



"아니 근데 뭔 일 났나. 진짜 시끄럽네. 새끼들."


"야. 모브. 무슨 일 있나? 와이리 시끄럽노."


"니 모르나! 지금 체육관 귀신 나온다고 소문 쫙 났다! 느네 쓰는 체육관이제 그러고 보니! 뭔 일 없었나?"



"...일? 딱히 그런건 없었는데."


지금 셋이서 실컷 여주가 귀신이냐 아니냐 이야기 하고 있었으면서 자기들도 모르게 여주의 이야기를 감춰버린 셋이였음. 다들 모르는 척 하며 모브가 풀어내는 소문을 들었음.

이야기의 전말은 이랬음. 

운동장에서 수업을 받던 어떤 반이 전부다 들었다며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서 문이 덜커덩 거리고 쿵쾅거리거나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 였음. 일본어가 아닌 꼭 주술같은 언어로 어찌나 빠르게 소리를 치는지 너무 놀라서 체육관을 확인도 못해봤단 이야기 였음. 그리고 부활동이 끝난 다른 부 학생은 하교길에 체육관에서 여자의 비명소리를 들었다질 않나. 경비 아저씨가 순찰을 돌다 체육관 앞에 앉아 있는 여학생을 발견하고 집에 보내기 위해서 다가갔는데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둥....

들을 만한 정보를 다 듣곤 모브와 그렇게 떨어졌음.


"...저거 여주 이야기 맞제..?"


"우리가 홀린게 아니라 사실이였나."


"... 내 쫌 무섭다... 화장실 같이 가도."







한편. 귀신으로 오해 받고 있는 사람인 여주는.


"아. 생각해보니 인사도 안하고 왔네. 쩝; 다음에 보게 되면 말해줘야지;"


아무 생각이 없었음.


중요한건 저런게 아니였음. 혹시나 몰라서 여주는 단어들을 몇개 달달 외우기 시작했음; 내가 영어 단어 시험 칠 때도 이렇게 열심히 안 외웠는데 ㅠ 시발... 팔자에도 없는 공부를 다시 하고 있네ㅠ

오늘도 확실히 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만약 트립이 된다면 실험하고 싶은 것도 알고 싶은 것도 있었음. 제일 중요한건 원작에 영향이 가는 것인지 아닌지. 지금은 이야기의 어디쯤 진행이 된 것인지도 궁금했음. 만약 여주의 트립으로 인해 이야기가 변한다면 그건 오타쿠 맘으로써 조금 많이 싫었음 ㅠ 

그리고 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물건이 있는지 없는지. 들고 갈 수있는게 꼭 몸에 걸쳐야 하는지 아님 들고만 있어도 가지고 갈수 있는지. 만약 들고 간다면 전자기기 같은 것도 사용이 가능한지도 궁금했음. 이제 노숙자 생활은 싫다고요!! 일단 확인이 된 것은 여주가 착용하고 있는 물품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없어져도 애들의 기억에 내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버프 같은건 1도 없다는것^^! 시발!


그냥 집도 통채로 옮겨지지 ㅠ 왜 내 몸만 덜렁 가져가지구 이 고생인지 모르겠네.. 하사장 듣고 있나?

이게 이중 생활이라고 카테고리에 넣어도 되는진 모르겠지만 여튼. 처음엔 진짜 너무 개빡치고 짜증났는데 애들을 여럿 만나지니까 신이 좀 나는 것 같기도하고... 생각보다 여주 본인이 덤덤하게 아이들을 마주하는 것도 너무 신기했음. 아직 현실감이 너무 없어서 그런가? 하긴 덤덤한게 낫지; 머릿속 처럼 애들 막 벗기구 희롱하면 진짜 저쪽 경찰서에 잡혀갈 것 같았음. 아니 그전에 미야 형제한테 줘터질수도 ...ㅎㅎ


단어장 마지막 단어를 여러번 곱씹으며 암기를 했음. 드디어 끝났음. 대충 이정도면 저쪽에서 지내는데엔 불편함 없지 않을까 싶었음. '내가 가진 힘은 위험해. 왼손엔 흑염룡이 잠들어 있지.' 이딴거 보단 낫지; ㅠㅋ


낮부터 충전하고 있던 휴대폰을 손에 꼭 쥐었음. 다른 건 몰라도 니는 꼭 따라와야된다 ㅠ 알았지?! 오늘도 편한 체육복에 두꺼운 양말을 한 겹 더 신었음. 진짜 진심 이불 위에 신발은 못신겠음. 난 한국인이라서;

오늘도 갈 수 있나. 반신반의 하며 베개에 머리를 뉘였음. 여전한 그 감각이 느껴졌음. 어디론가 빨려들어가는 느낌.




<오늘은 어딘데!>


지난 번 봤던 골목길도, 어제 왔던 체육관도 아니였음. 여기 어딘데; 그래서; 아니 올 때 어디로 가는지는 말 좀 해주면 안되나 ㅠ 진짜 개 빡치네... 

사람은 경험으로 성장하는 동물임.

2번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처음처럼 멘붕은 아니였지만 당황스러운건 3번째에도 똑같았음. 눈 떳는데 전혀 모르는 공간에 떨어지면 누구든 그렇지 않겠음?ㅠ 시발.

조금 컴컴한 공간에 눈이 익자 대충 어떤 구조들인지 분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음. 아직 늦은 시각은 아닌지 반대편에서 커튼으로 추정되는 천사이로 조그마한 빛이 들어오는게 보였음.


엉금엉금 조심히 가는데 무릎에 딱딱한 뭔가 부딪혔음. 악! 시발! ㅠㅠ 줜나 아파!!

더듬더듬 만져보니 벤치? 의자 같은 가구인 듯했음. 장애물이 있을 줄이야 ㅠ 진짜 또 개빡치네. 주먹 3번 꽂는다. 여주는 또 하사장 욕을 걸죽하게 하며 다시 조심조심 창가로 다가갔음. 진짜 이런게 성취감인가; 존나 별걸로 다 느끼네; 커튼을 양 옆으로 치자 쏟아지는 햇빛이 들어왔음. 암막 커튼이라서 빛 차단이 잘 되는 모양이였음.


벽 양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캐비넷 하며 가운데 있는 벤치. 이거 꼭 이나리자키 부실 같은데?

혹시나 몰라 이나리자키 복습을 하고 와서 그런지 바로 감이 왔음. 그래도 아닐 수 있으니까 캐비넷 이름들을 확인하는데 아 시발; 다 한문; 짜증이 팍 솟았음.


<아오! 공부해오면 뭐하냐고! 글자를 봐도 못 읽는데! 시바아아아알!>


분노의 차오른 여주의 주먹이 케비넷에 꽂혔음.

악 ㅠ 아프네 ㅠㅠㅠㅠ 개딴딴하네 진짜. 여주 손만 아팠음 ㅠ 넓다란 벤치 위에 벌렁 누워 이제 어쩌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떠올랐음!

나 휴대폰 챙겼어! 줜나 잘했어 김여주 줜나 칭찬해! 는 개뿔.... 나 폰 손에 쥐고 왔는데..? 내 손에 없는데...? 주머니에 있나 싶어 온몸을 두들기며 탭댄스를 춰봐도 내 손안 작은 정보의 바다는 나오지 않았음; 시발! 나 파파고 앵무새랑 볼 일이 있다고 ㅠㅠ!!!!


아까 일어서면서 떨어트렸나 바닥을 기며 확인을 해봐도 내 작고 어여쁜 네모난 기계는 보이지 않았음. 하....놔...ㅠ


일단 전자기기는 가지고 올 수 없음을 확인했음. 확인....했..하....

<갑자기 의욕 -999인데요.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는데요.>


다시 쓰러지듯 벤치 위로 누웠음. 진짜 아무 것도 하기 싫어져따...☆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한건가.. 하사장 이 변태.. 줫나.. 하드코어한 난이도 좋아하나.. 이런데서 어떻게 해쳐나가란건데... 보통 안내 가이드라던지 어! 요정처럼 생긴 도우미라던지! 어! 아님 초능력이라도 주던가! 진짜 트립만 시켜주면 다냐고... 나 여기서 스토커에 귀신으로 오해받고 있는데 이게 기쁘냐고....


... ... 그럼 여기 애들 물품 있는건가? 


<그럼 이나리 그 새까만 새끈빠끈 배구복 있나?! 어?! 추억은 필요없어! 현수막은 어딨는건데! 어?!>


오타쿠의 생각 회로는 생각보다 단순한 모양인 듯 했음;

캐비넷을 잠궈두고 있으려나 싶었는데 의외로 대부분 그냥 덜컹이며 열렸음. 여긴 1학년인가 물품이 뭐 없네. 음음. 열심히 해라. 파스는 왜이렇게 많이 사뒀데. 오. 여긴 좀 멋쟁이가 쓰는 건가. 거울이며 빗이며 이야. 깔롱 오지게 부리나보네; 배구나 열심히 할 것이지; 오. 여긴 미친. 이거. 이야 이거 몇번이고! 

<미친. 이 배구복을 내가 실물로 볼 수 있다니 미쳤다. 시발. 굿즈로 보는 거랑 감동이 차원이 다르네 시바아아알!>


오타쿠의 감정기복도 정말 단순한 모양인 듯 했음;

만지지도 못하고 옷걸이에 걸려있는 배구복을 보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음. 사람은 경험의 동물이랬는데...

바깥에서 들리는 인기척도 못느끼고 여전히 감동에 취해있었음.


"아까 스나 같이 화장실 가자고 할 땐 소름 끼치더라."

"그래 놓곤 츠무 니도 따라왔잖아."

"원래 아츠무 아닌 척 엄청 한다 아니가. 남자인척 하지마라."


인기척에 가까워지고 열쇠를 넣는 소리에 드디어 여주의 정신이 돌아왔음.


 

<아 미친! 진짜! 첫 행동강령은 몸을 숨기는 곳을 찾는거라고 그렇게 되뇌여놓곤! 아놔ㅏㅏㅏ!>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여주는 열었던 캐비넷을 닫았음. 정신을 차리고 돌아봐도 여긴 몸을 숨길 곳이 전혀 없었음; 그러나 어쩌겠음; 급하면 어떻게든 몸을 욱여넣어야 되지 않겠음?!

문이 열림과 동시에 여주도 몸을 숨기고 입을 틀어막았음. 누가 다가오는지 파악을 하고 있어야 했는데 ㅠㅠ 배구복에 정신이 팔려가지고오오 ㅠㅠㅠ


부실로 들어오는 인기척이 한둘이 아니였음. 배구부 애들 다 들어온거 아니가 ㅠ시발. 어쩌지. 이럼 들키는 건 시간 문제 일 것 같은데...ㅠㅠ 생각해보니 그냥 앉아있는게 나앗을라나 싶어졌음. 그러나 이미 몸은 움직여버린 것을 어쩌겠음. 그 이후의 사태도 여주가 다 감당해야되겠.. 아니 또 개빡치네? 아니 멀쩡한데 트립을 시켜주면 내가 이런 오해도 안 받잖아? 진짜 하사장 가만 생각해보니까 개빡치네 진짜?! 1대1 면담 좀 하자니까요? 예?


덜컹 거리며 여주의 얼굴에 빛줄기가 드리워졌음.

시발.

조졌다.

존나 어두워서 그냥 못 본척 지나가게 해주세요. 내가 이 순간 다시 트립이 되서 우리집으로 가거나 아님 지금 투명인간이 되어서 안보이게 해주세요 제발 하사장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내가 잘못했어 이제 욕안할게요 이제 존댓말도 쓸게요 그러니까 제발 내가 안보이....


"... ...이야."


<... 그냥 기절하고 싶다. 기절시켜주라. 기절하는 척이라도 할까...> (복화술)


눈이 마주쳤음;

조졌음;


"왜 그러는데. 뭐 있나 거기?"


<사실 내가 안보이는데 그냥 장난치고 있는거라고 해라. 아츠무. 니는 그런 능력있는 애잖아. 근데 하필 들어와도 아츠무 임마 사물함이고. 진짜 복도 지지리 터진거가. 아님 드럽게 없는거가. 하사장..아..진짜..> (복화술)


"...여주...네."




"아하하.. 좋은..아침?"


머쓱한 표정으로 머쓱하게 인사를 건넸음.

그러자 셋은 무슨 못볼 것을 본 사람마냥 움찔하더니 후다닥 멀어지는게 아니겠음;

아니 이건 좀 기분나쁘네; 사람을 무슨 괴물 보듯이 그러냐... 아 물론 내가 있는 위치가 그... 사물함 안이라서 좀 거시기한 생각이 들 수 있긴한데 이건 진짜 크나큰 오해가 있거든? 일단 내말 좀 들어봐바. 어? 얘들아? 왜 자꾸 뒤로 가지? 어디까지 갈거니? 어?



"...그.. 여주 너 진짜 귀신 아니야?"


<또 오바케 타령인가; 아니라니까; 아니 오해의 소지가 뭔지는 알겠는데 나 귀신 아니라니까? 노노 암 휴먼. 닝겐! 오바케 노노!>


"근데 왜 자꾸 사라지는데! 감쪽같이! 어?! 그리고 여기 잠겨있는데 어떻게 들어왔는데! 어?!"


<아. 생각해보니까 내가 할 말만 외워왔지 쟤네가 할 법한 질문은 생각안했네. 시발. 이것도 망한거네 ㅋ 아. 진짜. 캄 다운~ 어? 진정해봐라. 오해라니까 오해. 내가 설명 할 수 있어.>


"일단 알겠으니까 거기서 나온나. 비좁다 아니가. 목 안아프나?"



오사무가 손 짓을 하며 손을 내미는게 꼭 잡고 나오라는 것 같았음. 으음.. 근데 나 나가도 되나..? 일단 뭐.. 나오라니까 나가긴 하는데... 그.. 일단 그래 알았어... 여주는 오사무가 내민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올리곤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나왔음. 여주의 엉덩이 밑에 깔려있던 옷가지들도 여주와 함께 후두둑 떨어졌음.

아! 이건 내가 주워줄게!

주섬주섬 주워서 품에 담는데.


"야! 야! 여주! 니! 그 줍지마라! 하지마라캤다! 내려놔라 그냥 하지마!"


<뭔데. 우짜라고. 왜 떨어져서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는데. 뭔 말인지 모른다니까?>


저 멀리 떨어져서 팔짝 뛰는 아츠무를 무시한 채 옷가지들을 마져 줍는데. 약간 이질적인 감촉이 들었음.


"아 진짜 왜 저기에 뒀는데 도대체 가방에 넣어두라니까 ㅋㅋㅋㅋㅋㅋ"


"... 츠무 니는 진짜 조심성이 너무 없다."


이건 아무리 봐도 빤스였음.

드로즈 : 몸에 '달라붙는' 짧은 반바지 형태의 남성용 팬티 (네이버 사전 발췌)

<...빤스......!>

손에 느껴지는 이 보드라운 감촉... 실키한 이 느낌.. 여주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폈다.. 접었다... 폈다... 접....



"어. 여주 코피 난다."


"휴지. 여주 니 머리 글케 들지마라. 피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안된다."


"코피고 자시고! 여주 니 빨리 내 팬티 내려놓으라고! 그거 쥐고 자꾸 코피 내지 말라고!!!"


개 난장판이었음.

새카만 ck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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