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귀는 새의 소리에 눈을 떴다. 새벽녘 우는 아이를 한참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언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밤이 물러갔듯이 집 안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다. 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집에 갔을까. 윤기는 가만히 눈을 뜬 채로 미동 없이 커튼이 양 쪽으로 젖혀져 있는 것을 봤다. 침실 안의 모든 걸 절대로 건들지 말라고 일러두었던 적이 있으니, 커튼을 젖힌 건 호석이나 정국이었을 것이다.

윤기는 산다는 건 아주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완전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태어난 인간은 태어난 것부터 원죄이기 때문에 삶 따위 재미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아주 비틀어진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런 것 치고는 윤기와 같은 피를 가진 이들은 꽤나 너그러웠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반 쪽 밖에 섞이지 않은 윤기를 거리낌 없이 받아 들였고, 또 잘 키웠다. 물론 잘 키워지는 것과 본질의 인간성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는 영위하는 것에 집념이 상당했다. 대부분 가치가 있는 것들을 손에 거머쥐는 것으로 일종의 목적 달성에 대한 집념이었다. 회사를 꾸리고 사업을 키워 남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는 것에 청춘을 바쳤다. 청춘이라는 건 먼 훗날 모든 것을 가진 자만이 웃음 지을 수 있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내였다. 이렇게나 어리석은 이가 사랑이라고 제대로 할 리 없었다. 그러나 아쉬워 할 것도 없었다. 섹스 이외의 것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으니. 누군가를 만나 열병을 앓고, 불같은 사랑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편안하게 일생을 보내다 죽음으로 소멸하는 것에 제대로 된 열망을 느껴 봤을 리가. 

그래서였을까. 윤기에게 선우는 벌 같았다. 하도 못난 짓을 많이 하고 다닌 그에게 내려지는 가혹한 벌은 쳐다도 안 봤을 사내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었다. 고작 의사 주제에. 못나게도 윤기가 선우를 처음 만났을 때 던진 말이었다. 비릿하게 웃고는 의기양양하게 휠체어를 끄는 윤기의 머리 위로 청진기가 날아왔다. 선우의 목에 걸려 있던 것이었다. 머리를 맞고 바닥으로 떨어진 청진기를 보던 윤기가 이를 꽉 깨물고 주워들었다. 화를 참지 못해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난 그의 앞으로 선우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청진기를 달라는 뜻이었다. 

‘의사가 환자한테 이런 걸 던져도 됩니까?’
‘저는 환자에게 청진기 안 던집니다.’
‘아. 그 말은 즉 난 환자가 아니다?’
‘아, 재수 없는 사람도 환자로 안 봅니다.’

지지 않고 받아 치는 의사에게 처음부터 마음이 갔던 건 아니었다. 다만 독특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1인실에 자리가 없어 들어간 곳이 하필이면 4인실이었다. 마지막 배드를 차지하고 들어간 윤기는 병실 안을 자주 들어오는, 하루에 다섯 번도 넘게 콜을 하는데도 싫은 표정 하나 없이 늘 해맑게 웃으며 들어오는 의사를 닦달했다. 어, 민윤기 환자분? 아직 1인실 자리가 나지 않았어요. 나는 대로 바로 알려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아무에게나 웃고 다니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지. 그래서 못되게 굴었다. 괴롭히고 이유도 없이 콜을 했다. 다른 의사가 찾아오면 물렸다. 그리고 다시 이름을 꼭 찝어 콜을 했다. 그럴 때마다 귀찮고 지칠 법도 한데 선우는 웃으며 윤기에게로 왔다. 그 짓을 며칠이나 반복했을까. 결국 참지 못한 선우가 머리를 정조준 하여 청진기를 던져버린 것이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고. 퇴원하기 전, 저 버릇없는 의사의 무릎을 꿇리고 사과를 받아 내리라. 그러나 꿇어앉은 건 선우가 아니라 윤기였다. 

윤기에게 선우는 서른이 넘어 하는 첫 사랑이었다. 강렬했다. 선우를 만나고 처음으로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하잘것없는 것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허탈했고, 그만큼 더 선우가 소중했다. 영원을 믿지 않는, 비틀어진 인생관을 내다 버리며 또 다른 새로운 인생을 그리던 순간, 윤기는 선우를 잃었다.

잠깐 반짝하고 모든 것이 사라진 윤기의 삶은 이제 재미를 떠나 잔혹함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고독을 먹고 외로움이 양분인 애처로운 이 사내에게 다 타버리고 집의 골조만 남은 삶이란 이런 걸까. 민윤기의 인생에 이선우가 벌이었다면, 이선우의 죽음 후에 남은 삶은 지옥이었다. 윤기는 이제 묻고 싶어졌다. 이성과 감정, 신체마저 아우르는, 태어날 때부터 가진 자신의 업에게. 딱 한 가지 질문만을 할 수 있다면, 윤기는 주저하지 않고 물어 봤을 것이다. 김태형은 무엇이냐고.

지옥 같은 민윤기의 삶에 김태형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다 죽어 가던 민윤기를 다시 소생시켜 구원 하려고 하는가. 혹여 장난이라면 여기에서 멈춰달라고. 윤기는 정말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업은 쉽게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아니기에 업인 것임을. 윤기는 알고 있었다. 

지난한 삶 속에서 해가 매일 같이 떴다. 때를 잊지 않고 구석구석 찾아드는 따뜻한 볕에 어둠은 서럽게 울며 꽁무니를 빼다 결국 잡아 먹혔다. 시선 끄트머리에 걸려 우는 손톱만큼 남아 있는 어둠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저것은 민윤기이다. 저것은, 나야.

선우야. 미안해.




 




   fiat lux
   10











마른입에 나는 조갈을 견디지 못한 태형이 눈을 떴다. 해가 중천이었다. 이불도 채 덮지도 못하고, 입고 있던 옷을 벗지도 못하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기절하듯 자기 시작했던 게 부친의 기상 시간쯤이었다. 들어가다 마주치면 어쩌지. 그래서 들어오지 않았던 걸 들키면 어쩌지. 조마조마했던 마음과는 달리 눈치를 보며 들어간 집안은 조용했다. 미리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도우미와 눈이 마주쳤지만 태형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침묵을 종용했다. 그래봤자 어차피 다 보고 되겠지만. 

“히익, 눈 좀 봐…”

방 안에 있는 욕실 안에 들어가 거울을 보는 순간 잔뜩 부은 눈에 놀라는 소리가 입에서 터졌다. 치약을 바른 칫솔에 물을 묻혀 입에 넣던 태형이 새벽녘이 떠올라 작게 인상을 썼다. 아, 쪽팔려…. 운건 어쩔 수 없었다고 넘어가도, 결국 그 울음에 깨우지 않으려던 이들을 다 깨우고야 말았다.

터지는 흐느낌에 손등으로 입을 막으며 침실 밖을 빠져나오는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둘의 시선. 그리고 암담해 하는 표정. 태형은 도망치고 싶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재빨리 아파트를 뛰쳐나와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한산한 대로를 달리는 택시 안에서 태형은 또 울었다. 그러니 이렇게 눈이 퉁퉁 부울 수밖에. 

깨끗하게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목구멍이 달라붙는 것만 같은 갈증에 문을 열고 나갔다. 도우미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 태형이 꺼진 채로 충전 된 핸드폰의 전원을 켜며 입을 열었다. 여사님 저 물 좀… 주…

“늦잠 잤구나.”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한 채로 태형은 걸음을 멈춰 섰다. 진작 출근을 했어야 하는 부친이 집에서 점심을 들고 있었다. 반 토막밖에 내뱉지 않은 말을 알아들은 도우미가 태형의 앞으로 시원한 물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작게 인사를 하며 두 손을 받아 든 태형이 꼴깍꼴깍 쉬지 않고 비우고 나서야 그제야 호졸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죄송합니다. 나가신 줄 알았어요. 출근… 안 하셨어요? 천천히 수저질을 하던 부친은 정기 검진이 있는 날이었고, 점심 먹고 출근을 할 거라며 짧게 대답했다. 아. 원장님 집에 오셨었구나. 언제 봤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부친의 주치의를 떠올리던 태형은 더 보탤 말이 없었다. 그럼, 식사 하세요. 들고 있던 유리잔을 내려놓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이제 막 시작했는데. 식사 같이 하자꾸나.”
“…생각이 없어서요.”
“퇴원하고 한 번도 같이 식사 안 했잖니.”
“…….”

퇴원. 부친은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나오는 걸 퇴원이라고 말했다. 그래, 퇴원은 퇴원이지. 더 거절할까 고민하던 태형은 그러지 말라고 눈짓하는 여사님이 마음에 걸려 하는 수 없이 부친의 옆자리에 의자를 빼 앉았다. 곧장 밥과 국이 차려졌다.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밥에서는 윤기가 흘렀고 맑게 끓여진 뭇국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올라왔다. 그러나 태형은 먹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대충 수저질 하는 시늉만 하다 일어나야지. 하는 마음으로 수저를 들던 그때였다. 눈을 내려 깔고 밥을 먹던 부친이 물었다. 요새, 뭐하고 다니는 거니. 수저로 국물을 떠 한 번 삼킨 태형의 수저질이 딱 멈췄다. 

“아무것도요.”
“…….”
“왜요? 제가 또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손목 긋기라도 할 까봐서요?”

싸늘하게 터진 대답에 부친의 수저질도 우뚝 멈췄다. 조금 전 숙이고, 피하려던 자세와는 달리 태형은 똑바로 부친의 눈을 바라봤다. 한마디 거들까 싶어 입을 열던 부친은 전에 없이 날카로워진 아들의 시선을 알아채고는 그냥 입을 꾹 닫았다. 아이가 저렇게까지 싸늘하게 대답하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꽃집에 가는 거야 상관하지 않겠다마는…”
“…저한테 사람 붙이셨어요?”

진짜 궁금한 건 아직 묻지도 않았다. 이틀 마다 한 번씩 찾아가는 그 아파트엔 대체 누가 사는 거냐고. 그 전에 먼저 태형이 물었다. 정해진 대답이 나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물었다. 어차피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고 힐난의 이유였으니.  멈췄던 수저질을 다시 시작한 부친이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럼 붙였지. 네 말마따나 나 모르는 곳에 가서 손목을 그으면 안 되잖니. 순간적으로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한 태형이 의자를 뒤로 빼며 거칠게 일어났다. 드르륵, 밀려나는 의자소리와 함께 식탁으로 내팽개친 수저가 쨍그랑 소리를 냈다. 둘을 지켜보던 도우미의 표정 또한 삽시에 어두워졌다. 후으. 화를 삭이는 한숨을 길게 내 쉰 태형이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

“저, 이제 안 죽어요. 죽을 생각. 그런 거 안 해요. 그러니까.”
“…….”
“저한테 사람 붙이지 마세요.”

제법 살벌한 경고였다. 어느새 커버린 하나 뿐인 아들. 알고 있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왜 좋아하지 않는지도 안다. 지난날의 과오라고 말하기엔 부친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왜 그른지를 모른다. 다시 돌아간대도 나는 네 엄마를 만나 너를 갖게 할 거다. 그리고 영원히 놔주지 않을 거야. 잔인한 남자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에 아들에게 존경은 바라지도 않았다. 징그럽고 추잡한 사내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겸허하게 받아 들였다. 그러나 죽음은 용납할 수 없었다. 죽어서는 안 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평소 같았으면 그저 지나치고 말았을 말이었으나 어쩐지 부친은 고개를 들어 태형을 봤다. 정확히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태형의 눈에 피어오르는 생기를 목도했다. 5년 만이었다. 시든 때도 없이 손목만 그어가며, 생과 사 가운데서 오락가락 하던. 텅 비어있던 아들의 눈에 생기가 깃들어 있었다. 궁금해졌다. 너를 이렇게 움직인 건 과연 뭐지?

“대답해 주세요. 저한테 사람 붙이지 마세요.”
“…알았다.”







*








 

남준을 찾은 건 꽤 오랜만이었다. 딱히 가야지, 생각하고 온 건 아니었다. 그저 말없이 갈 수 있는 선택지의 답이 하나뿐이어서 그랬다. 터덜터덜 걸어가던 태형이 아버지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획, 뒤를 돌아 꽃집 주변을 수색했다. 이상하게 여겨지는 이는 없었지만, 그동안 말없이 사람을 붙였다는 말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활짝 열린 꽃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어쩐 일로 손님이 있었다. 반쯤 만들고 있는 꽃다발을 쥐고 고군분투 하는 남준과 그 앞에서 초조한 듯 바라보고 서 있는 손님이 놀라지 않게 태형이 종이 달려 있는 문을 주먹으로 작게 두드렸다. 청아한 종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고개가 태형에게로 쏠렸다. 어, 왔어? 반갑게 뱉어 내는 말에도 손님에게 먼저 꾸벅 인사를 한 태형이 그 다음으로 남준과 시선을 마주했다.  

“저, 죄송합니다. 제가 손이 다쳐서…”

마음먹은 대로 포장이 잘 안 되는 건지 기어코 사과를 건네는 목소리에 태형이 둘을 흘깃거렸다. 그러다 문득 남준의 오른 손에 감긴 붕대를 확인했다. 어디서 또 다쳐 온 것일까. 결국 의자 등받이에 가방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목에 건 태형이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형, 이거 제가 할게요.”

꽃다발을 슬그머니 빼앗아 가져가며 손님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굳어 있던 손님의 얼굴이 사르르 녹았다. 꽃다발을 만드는 것에 능숙한 편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남준 보다는 태형의 손을 거친 꽃다발이 더 예쁜 것은 누가 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처참하게 묶여 있는 리본을 풀고 새 리본을 잘라 다시 묶기 시작한 태형이 그제야 손님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저희 사장님이 좀 잘 다치세요.”

오래전 지민은 자신의 형을 가리키며 그런 말을 했다. 우리 형이 머리는 엄청 좋거든? 근데 참 이상해. 우리 형 손에 들어가는 건 다 망가져. 아아니, 자기 몸도 막 다쳐. 그래서 옆에서 잘 봐 줘야해.

책상에 앉아 평생을 공부만 해 오던 똑똑이가 어쩌다 적성에 맞지 않는 꽃집을 열었는지, 태형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박지민이 하고 싶어 했던 일이었으니까. 아마도 남준은 이것을 유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하던 일을 다 때려치우고 이렇게 부모님도 찾지 않는 곳에 꽃집을 차려놓고 박혀 있는 것을 과연 지민이 알게 된다면 지민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잘 됐다며 좋아할까. 아니. 태형은 멱살이나 안 잡히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태형은 그런 남준을 말리지 않았다. 제게도 속죄할 죄가 있듯이 남준 역시 그럴 테니까. 자신이 뭐라고. 누군가의 속죄를 말릴 수가 있을까. 그저 관망할 뿐이었다. 

포장을 끝마친 손님이 돈을 지불하기 위해 지갑을 꺼냈다. 얼마죠? 물음에 저만치 가 앉아 있던 남준이 슬그머니 일어나 다가왔다. 손을 다쳐 포장을 잘 하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는지, 남준은 꽃다발 가격의 절반을 불렀다. 딱 봐도 비싼 꽃송이들만 써 놓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던 태형은 손님이 나가자마자 몸을 획 돌려 따졌다.

“형, 왜 밑지는 장사를 하는 거예요?”

새침데기처럼 물어오는 말에 쓰고 남은 포장재들을 정리하던 남준이 숫접게 웃었다. 그러자 졸졸 뒤를 따르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저건 그냥 주는 거잖아요. 내가 공들인 것도 값으로 쳤어야죠. 안 그래요? 이틀에 한 번 꼴로 돈도 받지 않으며 남의 집을 미친 사람처럼 청소해주는 사람이 이런 소릴 하다니. 우스운 꼴이었으나 그걸 알 리 없는 남준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지민이었으면 아예 안 받으려고 했을 걸.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물론 그 전에 멱살부터 잡혔겠지만.

“그런데 웬일이야? 나는 또 날 까맣게 잊고 지내는 줄 알았는데.”
“다시 병원에 들어갔겠지 하는 생각은 안 했구요?”

아침의 일 때문인가, 태형의 말이 전보다 거침이 없었다. 조심스러워 하는 것도 나름 귀여웠는데. 사실 이것도 괜찮았다. 어쩐지 지민이 말하던 예전의 태형이 같아서, 더 그랬다. 자조적인 물음에 남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음, 그건 아니. 

“태형이 넌 안 와도, 검은색 차는 이 앞에 매일 왔거든.”

남준이 털털하고 덜렁대는 성격을 가지긴 했으나,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다. 과거 검사시절, 중요한 사건을 맡을 때마다 수없이 따라 붙던 검은 정장의 사내들을 아직도 기억했다. 그들의 목적은 한결같았다. 주목하는 이가 다른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 태형이 병원에서 퇴원을 한 뒤로 차가 매일 같이 왔으니, 아마도 그들이 원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태형이라는 것을 남준은 아주 쉽게 짐작했다. 더군다나 이렇게 한적한 동네 골목에 매일 같이 찾아오는. 검은색 차에 검은 옷을 입은 사내라. 남준 뿐만이 아닌 그 누구더라도 알아 봤을 것이었다. 잠복하여 미행하던 이가 있었다는 사실에 착잡한 얼굴을 한 태형이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했다.

“죄송해요. 아버지가… 아직 많이 걱정이 드시나 봐요.”
“걱정도 어떻게 보면 사랑이니까.”
“…….”
“지민이가 널 사랑하는 방식도 그랬잖아.”
“…….”
“왜 그런 표정 지어. 그때 다 들었잖아….”

사랑하는 방식이라는 말에 태형의 고개가 들렸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옛날이야기를 꺼낸다.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다. 지민이 죽고 난 후로 단 한 번도. 그건 어쩌면 둘에게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무렇지 않게 남준은 제 동생의 이름을 꺼냈다. 그 순간, 태형의 머릿속으로 과거의 어느 날이 번쩍 떠올랐다. 사고가 나던 날이었다. 




*






그 날은 태형의 조부가 오너로 있는 회사의 창립기념일이었다. 성대하게 연회를 열고 난 뒤, 주요 인사들만 따로 모아 집으로 부른 부친은 자신이 아끼던 정원에 파티를 열었다. 태형에게는 참석하기 싫은 행사였으나, 성인이 되고 처음 맞이하는 연례 행사라 빠질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이 지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 끝에 태형은 지민을 불러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늘 함께였지만 지민은 태형과 달랐다. 모든 것을 다 잘했다. 공부도 잘했고, 학교생활도 착실했다.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좋아 3년 내내 학급 회장까지 맡았다. 그에 반에 태형은 그런 것들이 모두 따분하기만 했다. 어차피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제법 알아주는 학교에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무엇이든 쉽게 갖는 건 쉽게 질리는 법이었다.

그 날도 지민은 태형과는 달리 처음 맞는 대학 중간고사를 대비해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나 그냥 이렇게 둘 거야 박지민? 빨리 와, 응? 보고 싶어 지민아. 애교가 섞인 목소리를 거절하지 못한 지민이 도착한 건, 해가 질 무렵이었다. 

‘이햐, 너네 집 정원이 왜 이렇게 큰가 했더니. 이런 거 하려고 큰 거구나.’

일전에 이미 몇 번 와본 곳이라 집 앞까지 알아서 택시를 타고 온 지민이 정원에 깔려있는 뷔페와 테이블, 그리고 현악단을 구경하며 감탄했다. 잔디 다 망가지는 거 아니야? 진지하게 묻는 목소리에 태형이 입술을 비죽였다. 내가 알게 뭐야. 대답하자, 지민이 인상을 쓰며 태형의 코를 잡아 비틀었다. 너, 내가 못되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 제법 꽉 비트는 것 같았는데. 어쩐지 아프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지민이 하는 행동은 대게 다 그랬다. 

‘여기 있어봐. 내가 마실 거 갖다 줄게.’
‘나 주스 갖다 주라. 다시 들어가서 공부해야 되니까 술은 다음에. 응?’
‘칫, 술쟁이가 웬일이래.’

입술을 비죽이며 몸을 돌아섰다. 테이블에 깔린 주스를 들던 태형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내려놓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분주하게 일을 하는 도우미 하나에게 헤실헤실 웃으며 생과일주스를 만들어 달라 말했다. 암담한 얼굴표정을 하던 도우미는 손을 닦고 쌓여 있는 과일 몇 개를 빠르게 잘라 갈기 시작했다. 대리석 테이블에 기대 선 채로 돌아가는 믹서를 바라보던 태형의 어깨를 누군가 툭툭 건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큰 키의 남자가 손을 흔들며 태형에게 인사했다.

‘안녕?’

아, 누구더라. 아예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 태형은 습관처럼 얼굴을 보다 시선을 내려 슬그머니 사람을 훑었다. 국회의원이면 옷깃에 배지가 있는데. 없다. 그래. 이렇게 젊은 국회의원이 어디 있겠어. 그럼 누구 비서인가. 여전히 애매한 표정으로 남자와 시선을 다시 마주하는 순간, 뒤에서 서 있던 태형의 큰 아버지가 지나치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이봐, 김검사.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태형의 앞에 서 있던 사내의 몸이 큰 아버지를 향해 돌아섰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검장님. 아아, 검사였구나. 그제야 태형은 얼마 전 가족 조찬 모임에 초대 되어 함께 밥을 먹었던 사내들 중 하나라는 것을 기억했다. 이름이 남… 뭐였는데.

‘우리 김검사가 내 조카랑 정답게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을까?’
‘저는 이만 나가 볼게요.’

이제 갓 나온 생과일주스를 손에 받아 들고 잽싸게 자리를 피하려던 그때였다.

‘참 태형아. 네 아버지가 너 찾던데, 아버지께 먼저 가 보거라.’
‘…예에.’

낭패감이 어린 얼굴을 채 숨기지도 못한 태형이 손에 쥐었던 잔 두개를 다시 내려놓고 터덜터덜 나갔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를 대체 왜 필요로 하는 걸까. 나는 족벌경영도 정치에도 관심 없는데. 부친의 뒤에서 크게 심호흡을 한 태형이 활짝 웃는 얼굴로 사람들 사이로 다가갔다. 이런 거 하기 싫다. 웃고 싶지 않은데 웃어야 하는 거. 지민이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렵게 눈치를 보며 빠져 나온 태형이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와 좀 전에 두고 갔던 생과일주스 잔을 다시 들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지민이 홀로 있었다. 주스 얼른 마시고 몰래 빠져 나가야지. 차 리모컨까지 단단히 챙긴 태형의 바지 주머니가 불룩 튀어 나와 있었으나 그걸 신경 쓰는 이는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어디 있냐, 박지민.’

알은 체를 하는 사람들에게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태형은 빠르게 주변을 훑으며 지민을 찾았다. 현악단을 지나쳤음에도 찾지 못한 지민 때문에 에휴, 한숨을 내 쉬던 그때였다. 정원 가장자리, 부친이 좋아하는 나무 뒤로 익숙한 등이 얼핏 보였다. 지민이었다. 놀래어줄까 싶어 살금살금 걸어가는 순간, 지민과 지민의 앞에 서 있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태형의 귀에 닿았다. 어? 하고 바라본 지민의 앞 사내는 조금 전 집 안에서 제게 인사한 검사였다.

‘박지민, 너 여기에 오면 어떻게 해!’ 
‘왜, 나 태형이 초대 받고 온 건데. 그냥 나 모른 척 해. 아니다, 아는 척 하자 지금. 지금 태형이한테 말 할래. 우리 형이라고.’ 
‘지민아, 시키는 일 잘 하다가 이제 와서 왜 그래. 너. 형 하는 일 틀어지게 이럴 거야?’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대화였다.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지? 하는 의문에 태형이 두어 걸음 가까이 걸어갔다. 조금 더 대화가 잘 들렸다. 

‘형, 나 태형이 좋아해.’
‘박지민!’
‘친구로 좋아하는 거 아니야. 형도 알잖아.’
‘너 입 안 다물어?’ 
‘나도 처음엔 그냥 골칫덩이라고 생각해서 싫었어. 다른 애들하고 놀고 싶은데, 형이 김태형하고 붙어 다니라고 그래서 얼마나 싫었는데. 그래도 형 일이니까. 중요한 일이니까. 이 집에 들어와서 뭐라도 알아 가지고 오라고 했을 때. 그냥 눈 딱 감고 형 말마따나 용돈이나 벌어볼까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근데 이젠 하기 싫어.’

그대로 다 들었음에도 믿기 어려웠다. 대체 박지민 쟤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너 하나에 얼마나 큰 일이 달렸는지 알아? 너 이거 계속 안하면 나까지 줄줄이 엮어 들어가. 그렇게 되면 아버지는? 어머니는!? 너, 할머니 생각은 안 해?’
‘그런 거 몰라! 내가 걱정하는 건 태형이 하나야. 나 그냥 태형이만 볼래. 형 그거 알아? 태형이는 웃는 게 예뻐. 얼마나 예쁜지 걔가 웃지 않는 시간이 슬플 정도야. 그래서… 이제 더는 거짓말 못 하겠어. 형, 미안해. 형이 시키는 대로 안 할래.’

이해가 되지 않던 말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정립되어 가자 이번엔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았다. 박지민 너…. 나한테 그동안…. 잔을 쥐고 있던 손의 힘이 풀리며 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잘 자란 잔디가 완충제 역할을 하여 잔이 깨지지 않았으나, 음료가 쏟아지는 소리에 뒤를 돌아 본 지민과 눈이 마주쳤다. 태형의 눈에서 주룩 눈물이 흐른 것은 그때였다.

‘태, 태형아.’
‘박지민 이 나쁜 새끼.’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태형이 등을 돌렸다. 태형아! 하고 소리친 지민은 이미 저만치 가버린 태형의 등과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남준을 번갈아 보다 이내 태형 쪽으로 달려 나갔다. 말없이 인상을 쓴 채로 대문 밖으로 벗어나는 동생의 등을 보던 남준은 들고 있던 와인을 입에 털어 넣었다. 어린 녀석들의 사랑입네, 어쩌네 하는 것들은 관심도 없었다. 다만 앞으로 작업은 어떻게 해야 하지. 겨우 그 정도의 생각을 하던 그때는 몰랐다. 그때 본 동생의 뒷모습이 살아 있을 때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는 것을. 

“우욱! 웁!”

떠오른 옛날 생각을 버티지 못한 태형이 손으로 입을 막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뛰쳐나가는 모습이 꼭 그때 상처를 받고 뒤돌아서던 그 모습과 닮아 있었다. 지금 너를 따라가 붙잡아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남준은 그냥 놔두기로 했다. 어차피 목숨은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태형이 지금 나가 죽는다면 그것은 거기까지 정해진 목숨의 끝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얼마나 목숨이 남아 있는 걸까. 알 수는 없지만 남준은 지치지 않고 자신에게 정해진, 그리고 주어진 삶을 다 할 때까지 이렇게 동생에게 속죄를 하기로 했다. 

영리하고 똘똘했던 나의 동생 박지민…. 남준은 오래전 조모에게 물었던 지민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할머니. 그럼… 눈을 뜨고 죽는 사람은 뭐예요? 

그때 질문을 하던 지민은 알았을까. 자신이 눈도 감지 못하고 죽게 될 거라는 걸. 나가버린 문을 바라보던 남준이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똑똑한 머리로 공부하던 놈의 꿈이란 게 겨우 꽃집이었다니. 남준은 지민이 좋아하던 보라색 라일락꽃을 바라봤다.

후회한다. 나의 이기에 나를 향한 너의 애정을 써먹으려 한 것에. 그 나무 밑에서. 너를 다그치던 것에 대해. 네가 살아있지 않음이… 나 때문이라는 것에 대해. 마지막으로 나누던 대화가 이명처럼 남준에게 닿았다가 멀어졌다.

 태형이한테는 내가 말 잘 할 테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 태형이 착해서 다 이해해 줄 거야. 그럼 나 먼저 갈게 형. 집에서 봐. 응? 














 
태형은 정처 없이 걸었다. 걷고 또 걸으며 머릿속을 뒤 흔드는 상념들에 괴로워했다. 걱정도 사랑이지 않을까. 모른다. 알 수 없다. 그게 사랑이라면,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사랑이 너무나 많지 않을까. 아니, 그렇지만 사랑일 수도 있지. 가령 윤기를 향한 자신의 마음 또한. 그렇게 시작한 것이 아니던가. 오락가락하는 마음에 태형이 하하하, 미친 사람처럼 웃어 댔다. 병신 같은 김태형. 그걸 잘도 사랑이라고. 죽임을 당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어떻게 그 사람을, 그것도 사랑이라고. 

그런데. 이게 사랑이 아니면, 이렇게 아픈 이 마음은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 걸까. 이 마음은 뭔데. 

걷는 내내 수도 없이 제 가슴을 칼로 난도질을 하듯이 굴었다. 다그치고 욕하고 또 화를 냈지만 결국 제자리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우습게도 윤기의 아파트 단지 앞이었다. 슬그머니 아파트를 올려다보던 태형은 차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박지민 나쁜새끼.”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아파트 단지를 빙글빙글 돌던 태형은 아파트 근처 편의점 앞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편의점에서 아무렇게나 쓸어 가지고 나온 술을 연거푸 마셨다. 술을 마시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차 사고를 낸 뒤로 입에 댄 적이 없던 알코올은 어쩐지 취하지 않고 속만 들끓게 했다. 아, 나쁜 새끼. 박지민 이 개새끼. 미친 흐윽, 새끼…. 몸을 가누지 못한 태형이 기어코 테이블 위로 쓰러져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너 때문이야. 너가 나를, 나를 가지고 놀았잖아. 상처 줬잖아…. 난 널 용서하지 않았는데. 용서한 적이 없는데. 너는 어디에도 없어. 왜 죽었어. 왜. 

흐느끼며 뱉어 내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것은 윤기를 보며 죽음으로 속죄하겠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하던 인간 김태형이 말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그래, 나는 이렇게나 나빴어. 이렇게나 이기적이고 못됐어. 나는… 나는 이러고 싶지 않았어. 나라고 왜… 이렇게 살고 싶었겠어.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킨 태형이 손등으로 제 젖은 눈물을 닦아 내고 터덜터덜 걸었다. 가고자 하는 곳은 단 하나였다. 가서는 안 되는 곳. 그러나 이제는 유일하게 가고 싶은 곳.

익숙하게 공동 도어의 비번을 누르는 태형에게 경비가 알은 체를 해 왔다. 하하, 안녕하세요 아저씨이…. 한 번도 웃어주지 않았던 태형의 웃음은 경비를 당혹케 했다. 이봐요, 술 마시고 올라가도 되는 거예요?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와 말리는 경비를 뒤로 하며 태형은 꿋꿋하게 윤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층수 버튼을 눌렀다. 

삐, 삐, 삐, 누르는 전자도어 앞에서 손가락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간만에 마신 술이 몸과 마음을 잔뜩 헤집은 탓이었다. 틀리는 비밀번호 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태형이 눈을 부라리며 다시 한 번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그때였다. 띠리릭. 경쾌한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안으로 부터 열렸다. 현관 앞에는 윤기가 서 있었다. 

“와… 아저씨다.”
“…….”

말끔해진 윤기의 얼굴을 보던 태형이 활짝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비틀거리며 신발을 벗던 태형이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지려는 걸 잡아 세운 건 윤기였다. 단단한 팔이 태형의 허리춤을 끌어안은 그가 현관 안쪽으로 끌었다.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신발을 벗은 태형이 두 팔로 윤기의 어깨를 잡았다. 필시 추태였으며,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모습이었으나 윤기는 여전히 말없이 태형이 하는 걸 지켜 볼 뿐이었다. 

취한 눈으로 윤기를 보며 태형은 히히, 웃었다. 순진하게 웃는 눈꼬리로 눈물이 쪼르륵 흘렀다. 너 또 우는구나. 여전히 품에 아이를 안고 있던 그가 반대 손으로 태형의 눈가를 쓱 닦았다.

“아저씨. 큰일 났어요.”
“…….”
“나, 손목 또 긋고 싶어.”
“…….”
“이번에는 진짜로 잘 죽을 자신이 생기는데.”

나 어떻게 해요? 묻는 말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뭐야, 아저씨는 대답 해 줘야지. 응? 두 팔로 윤기에게 매달리던 태형이 다소 실망한 듯 어깨를 쥐고 있던 팔을 내리며 몸을 돌리던 그때였다. 윤기가 손목을 잡아 다시 제 쪽으로 끌어 당겼다.

“나더러 살라며.”
“…….”
“같이 살아 달라며.”
“…….”

진중하게 내뱉는 낮은 목소리에 태형의 입에서 울음이 터졌다. 눈물이 이렇게 많았던가. 모르겠다. 태형은 지금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오로지 눈앞에 있는 남자만이, 제 심장을 꽉 틀어쥐고 있다는 것. 그 하나만을 여실하게 깨닫는 중이었다. 거짓말. 나한테 죽고 싶다고 그랬으면서…. 죽여 달라고 했었으면서…. 윤기의 품 안에서 흐느낌과 한숨을 토해 내던 태형이 말했다. 아저씨, 우리 죽고 싶은 사람들끼리.

“섹스 할래요?”
“…….”
“나 좀 안아줘요.”
“…….”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
“응?”
















벌써 10편...!

오랜만에 왔삽니다. 여러분 잘 지내고 계셨지요? 수요일에 두 편 올리기로 약속했는데 저에게 실질적 수요일인(?? 목요일 새벽에 두편 올립니다. 지가여,,, 쓰다 보니까 이게 머랄까 쓰는게 생각보다 재미있어가지구... (글이 재밌다 X 쓰는 걸 게티가 재밌어하다 O) 그렇게 쓰다보니 이렇게 늘어나버렸지 뭐예요... 중간에 짜를까 생각 쫌 해봤으나 편수를 늘이는 건 있을 수 엄는 일이지~! 패기있게 한 편으루다가 올립니다. 긴 글 읽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구.. 다음편은 드디어 섹쓰임미다~! 저는 그럼 이만 비티에스월드 투잡뛰러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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