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씩 데미안의 말을 적어가던 에단은 데미안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음을 알아채고 고개를 들어 올린다. 소파에 누워있는 데미안은 팔로 자신의 눈으로 다가오는 햇빛을 막고 있었다. 에단은 그런 데미안의 행동마저 기록했다. 둘 사이는 잠깐의 정적이 찾아오지만 이내 데미안이 그 정적을 깨고 에단에게 말을 건넨다.



“저, 톰슨 박사님.”



“네?”



“오늘은 상담을 그만 끝내도록 하죠.”



“아 네, 얼마든지요. 저도 오늘은 데미안 씨가 너무 무리해서 이야기하신 건 아닌가 싶었어요.”



“하하... 그렇습니까? 조금 그런 것 같긴 합니다.”



에단은 살짝 당황한다. 약간의 피곤함이 서려있지만, 자신을 보는 데미안의 얼굴에 따뜻함이 번져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말하던 ‘테스’라는 사람을 말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 에단은 데미안의 기억 어느 부분이 데미안을 저렇게 만들어 줬을까 생각해본다. 그저 테스가 생각나서 일까, 아니면 그 시절의 기억이 데미안에게 저런 느낌을 띄우게 만들었을까. 에단은 깊이 생각해보지만 섣불리 확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빅터’라는 사람을 부를 때의 데미안의 목소리가 에단의 귀를 떠나지 않는다.



“그럼, 쉬세요. 데미안 씨.”



“네, 고생하셨습니다. 톰슨 박사님.”



“아, 데미안 씨.”



“?”



“바쁘신 건 알지만, 규칙적으로 자는 것도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하... 하지만 규칙적인 수면이 돈을 벌어주지는 않죠.”



“...... 그렇긴 하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박사님도 다 생각이 있어서 말하신 거겠죠. 어쨌든 고생하셨습니다.”



“네 데미안 씨도요.”



에단은 방 문을 닫고 복도에 난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본다. 햇빛은 여느 때보다 밝거나, 눈부시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은은하게 따뜻함을 뿜어내는 듯 보였다. 에단은 기지개를 켜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에단이 방을 나선 후 데미안은 한 참 동안 잠들지 못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빅터’라는 이름이 계속해서 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빅터의 얼굴을 떠올렸다. 붉은 머릿결, 회색 눈동자, 자신을 향해 지었던 빅터의 그 수많은 감정들. 데미안은 눈을 감았다.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는 뚜렷하지 않던 빅터의 그 많은 모습들이 눈을 감으면 그제야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얼마간 그렇게 소파에 누워 눈을 감은 채 잠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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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일주일이나 되는 시간 동안 데미안은 에단을 찾지 않았다. 에단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데미안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피한다고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넓은 저택이라도 그 전에는 꼭 일주일에 몇 번은 데미안을 마주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데미안의 머리카락, 목소리 하나마저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에단은 데미안이 자신을 찾지 않는 동안 복도를 지나가던 하인들에게나 재커리, 마거릿에게 물어도 돌아오는 건 데미안이 아프다는 말 뿐이었기에 데미안을 직접 찾아갈 수도 없었다. 에단은 데미안이 그렇게 쉽게 아플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한, 아니 데미안이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가 아팠던 적을 한 번도 말하지 않은 데미안이었기에 아플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어서 상담을 미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사업상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어쩌면 무언의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이라고, 또 어쩌면 그저 자신이 실험용 쥐처럼 보이는 게 못 마땅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에단은 그렇게 계속해서 데미안의 생각을 추측했지만 한 가지, 데미안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피하고 있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떠나보내지 않았다.



며칠쯤이 더 지났을까 아직 해가 밝게 빛나고 있을 시각 하인이 에단을 찾아와 “나리가 박사님을 찾아요.”라고 전해왔고, 이전에 상담했던 사람들의 기록을 데미안의 것과 비교해보며 펜을 굴리던 에단은 급히 노트와 펜을 들고 데미안에게로 향했다. 에단은 데미안에게로 향하며 ‘그 잘난 낯짝 드디어 다시 보는군.’하고 생각했다.



데미안의 방 문 앞에서 노크를 한 에단은 들어오라는 데미안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방 안으로 들어섰다. 데미안이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 자신이 말하기도 전에 들어온 에단을 보고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



“톰슨 박사님은 잠깐 안 본 동안 격식을 많이 버리셨군요.”



“아, 그게 죄송합니다. 들어오라고 한 걸 들은 것 같아서요. 하하...”



“... 그렇게 환청을 듣는 사람들이 박사님께 치료를 받는 것 아니었습니까?”



“하하...”



누구라도 속지 않을 거짓말을 한 에단을 살짝 노려보던 데미안은 한 숨을 작게 내쉬고는 다시 침대로 향했다. 에단은 데미안이 손으로 가리키며 가져오라는 의자를 들고 데미안의 침대 곁으로 향했다.

침대에 앉아 이불을 덮고 햇빛을 쬐는 데미안의 모습은 평소와는 한 참 달랐다. 얼굴에 약간 피곤함이 서려 있기는 하지만 볼에 도는 약간의 홍조와 좀 더 붉어 보이는 입술은 평소 보던 데미안의 얼굴보다 생기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와 풀어진 셔츠가 데미안의 분위기를 평소보다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상담을 한 날부터 점점 몸 상태가 안 좋아지더군요. 오늘에서야 그나마 좀 괜찮아져서 박사님을 불렀습니다.”



“아, 아닙니다. 너무 힘드시면 다음에 하셔도...”



“아뇨. 괜찮습니다. 박사님은 하루빨리 성과를 보여주셔야 될 텐데 느긋하시군요.”



“하하... 정신이 건강하려면 몸도 건강해야 하니까요.”



에단의 말에 뒤이어 데미안이 얕게 기침을 뱉었다. 에단은 이렇게 흐트러져 있는 데미안을 바라보며 데미안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생각한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그리고 데미안 같은 사람도 이런 식으로 크게 아플 때가 있다는 것이 신기함과 동시에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미안은 얼마간 더 기침을 한 후 에단에게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침대 옆 탁자에 놓은 차를 마셨다. 에단은 그런 데미안을 따라서 차를 마셨다.



“그래도 오늘은 하도록 하죠. 제가 원하니까요.”



“정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어디까지 말했었죠?”



“제가 알기론...”



에단은 자신의 노트를 살펴보다 ‘빅터’라는 글자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들어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데미안은 자신을 바라보는 에단을 평소처럼 보았지만, 평소보다는 좀 더 친근한 데미안의 모습이 에단의 목소리에 좀 더 힘을 실어주었다.



빅터라는 분을 처음 만났을 때까지 해주셨습니다.”



“아, 그렇군요. 빅터라...”


?

날씨가 자꾸 왔다갔다 거리네요.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요즘들어 자꾸 글을 쓰는데 머릿속에서 내용이 뒤죽박죽이네요... 그러니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지적해주셔도 됩니다! ㅎㅎㅎ


항상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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