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

유하는 눈앞에 풍경을 의심했다. 수많은 반딧불이가 형광 불빛을 반짝이며 눈앞에서 유유히 움직였다. 점멸하는 아름다운 형광 불빛에 마치 판타지 영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형광 물감을 흩뿌린 듯 빛의 파노라마가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와! 예쁘다. 여기 데려오려고 이렇게 힘들게 온 거야.”

하늘에는 별빛이 은은하게 내리고 있었다. 반딧불이가 두 사람을 환영한다는 듯 주위를 배회했다.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유하가 감동해서 눈시울을 붉혔다.

아…. 너무 아름다워. 말문이 막혀.

한결이 유하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혀를 빼꼼 내밀어 맛을 보았다.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윽. 짜네.”

“어? 남의 눈물을 왜 먹어. 너무 아름다우니깐 눈물이 먼저 나온다.”

“선배도 소녀 감성이네요. 크큭.

유하는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한결은 그런 유하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셀카도 찍자.“

유하는 신나서 한결과 함께 셀카를 찍었다. 동영상 촬영도 했다. 한결은 유하가 좋아하자 뿌듯해하며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원래 이런데 사람 많지 않아? 여기는 어떻게 사람이 하나도 없지. 신기하네.”

“그거야…. 제가 만들었으니깐요. 히힛.”

한결이 쑥쓰러워하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선배가 얼마 전에 TV 보면서 반딧불이 있는 풍경 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주변에 없으면 만들면 되죠. 선배가 좋아하는 거라면 저 하늘에 별이라도 따다 주고 싶어요.”

유하는 자신에게 보여주려고 했다는 말에 뭔가 속에서 울컥했다. 이럴 땐 정말 아이처럼 순수한 한결이었다. 

처…천진난만하다. 조금 감동인걸. 한결이가 나를 이렇게 많이 좋아하는 줄은 몰랐어. 나는 그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두근두근.

“진짜? 그럼 저어~기 저 별 하나만 따다 줄래. 크큭.”

유하가 장난스레 손가락을 뻗어서 캄캄한 하늘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별을 가리켰다.

한결이 유하의 손끝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바보. 저건 인공위성이잖아요. 뭐, 워…원하면 인공위성 한 대 사줘요?”

“어…. 인공위성 한 대만 사주라. 크큭.”

유하도 따라서 피식 웃었다.

“아… 알았어요. 다음에 돈 많이 벌게 되면 사줄게요. 아쉽게도 지금은 그 정도 능력은 안 돼요. 좀만 기다려줘요.”

“농담이야. 뭐 안 사줘도 상관없는데…. 안 기다릴래.”

유하는 갑자기 한결의 진지한 눈빛에 가슴이 떨렸다. 반딧불보다 더 초롱초롱하게 반짝이는 맑은 눈빛에 심쿵했다.

요즘 한결이 너무 고단수다. 유하는 이런 거에 특히 약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 하루 종일 연구 하나 봐. 전에는 나 어떻게 엿 먹이는 줄 연구하는 줄 알았는데…. 

얼굴을 붉히며 한결의 눈치를 살폈다. 

“나 한 번도 반딧불이 본 적 없는데. 너무 예쁘다.”

유하는 한결의 뜨겁다 못해 불타오르는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손을 뻗어서 반딧불이 한 마리를 손안에 넣었다가 뺏다가 장난을 쳤다. 

“예쁘죠.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지만 볼 만 하죠?”

한결이 유하를 그윽하게 내려다보았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응.”

유하가 한결의 뜨거운 시선에 눈을 못 맞추고 시선을 회피했다.

두근두근.

유하는 한결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니 자꾸만 뱃속이 간지러웠다. 목이 타서 마른침을 삼켰다. 

한결이 유하를 다정하게 안았다. 

한결의 머스크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후읍. 드…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마주 닿은 몸에서 한결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와 숨결이 느껴졌다.

“선배가 좋아하니깐. 너무 행복해요. 이거 만드는 라고 좀 힘들었어요. 어떻게 알았는지 이 주위에 꼬맹이들이 자꾸만 반딧불이를 납치해 버려서…. 크큭.”

“풉. 그건 좀 웃기다.”

유하는 그런 한결이 귀여웠다. 손을 뻗어 땀에 젖은 한결의 앞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윽. 괜히 앞머리 정리해 줬나. 한결의 눈빛이 농염하다가 못해 유하를 녹여 버릴 듯했다.

유하를 잠시 빤히 쳐다보던 한결이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잠깐 헛기침을 하며 숨을 들이마시다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저…. 오늘 안아주는 거 말고 딴 거 해주면 안 돼요?”

한결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유하는 한결이 키스를 원하는 거라 생각하며 가슴이 설렜다. 

으악.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부끄럽다.

유하는 긴장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여기 이 어둡고 으슥한 숲으로 들어올 때부터 진작에 눈치를 채고 있었던 일이었다. 막상 한결의 입으로 곧 들을 걸 생각하니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게다가 한결이 해주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해달라고 요구하니 더 불안했다.  

어쩌지…. 나 키스 잘 못 하는데. 안 하지 너무 오래됐어. 한결이 실망 할까봐 두렵다. 하필이면 나 같은 쑥맥이 뭐가 좋다고. 

한결이 유하를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수줍게 말했다.

“뽀뽀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유하는 한결의 말에 멍했다.

엇…. 뽀뽀구나. 참 건전하다. 하하. 내가 너무 앞서 갔나보다. 민망하다. 생각보다 한결이는 그다지 욕심이 많지 않네.

한결은 게다가 입술도 아니라 뺨을 내밀며 유하 쪽으로 상체를 푹 숙였다. 이게 뭐라고 몸도 덜덜 떨렸다. 

유하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까치발을 하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긴장해서 그런지 다리가 덜덜 떨렸다. 한결은 아직 뽀뽀도 받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광대가 높이 솟아있었다. 술에 취해서 흐릿했던 눈빛이 어느새 빛이 단단하게 들어와 반짝였다. 막 한결의 뺨에 유하의 입술이 닿으려고 할 때였다.

“아빠, 내가 봤어요. 여기 반딧불이 있었어요. 제 시력이 2.0이예요. 누가 잡아가기 전에 어서 잡으러 가요.”

“뭐 어디…이쪽으로 가면 되냐?”

어디선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아저씨와 소년이 풀숲을 헤치고 불쑥 들어왔다.

두 사람은 한결과 유하를 보고 귀신이라도 발견한 듯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으악!”

유하는 너무 놀라서 한결을 급히 밀쳤다. 두 사람은 불청객을 피해서 있는 힘껏 반대편 풀숲을 헤치고 도망쳤다. 길이 나올 때까지 뛰고 또 뛰었다. 가로등 불빛이 밝게 비추는 길로 나와서 멈췄다.

“크하하핫”  

서로 눈을 마주치며 한바탕 크게 웃었다. 잠시 숨을 골랐다. 유하는 막 뽀뽀를 하려던 참이라서 얼마나 놀랐는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한껏 기분이 들떴기 때문인지 불청객이 오는 발소리를 듣지 못했다. 한결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상체를 숙여서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헉헉….”

“나 진짜 깜짝 놀랐어. 꼭 학교 다닐 때 나쁜 짓 하다가 선생님한테 걸린 것 같았다니깐. 크큭.”

유하가 한결을 보면서 장난스레 말했다. 여전히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다. 한결은 이제 제정신이 돌아왔다. 유하를 한 번 쓱 보며 아쉬운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터덜터덜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분명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유하의 방금전 모습이 떠올랐다. 뽀뽀해달라던 한결의 요구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까치발을 하고 입술을 쭉 내밀며 다가오고 있었다. 한결은 유하가 장난스레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서 한 번 던져 본 말이었다.

요즘 들어 유하의 눈빛이 다정해 진 게 착각이 아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유하도 어느새 한결을 마음에 조금이라도 둔 게 아닐까 싶었다. 사실 한결은 유하가 당연히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며 곧 바로 직접 입술에 입맞춤을 할 생각이었다.

입맞춤을 해도 유하가 별로 싫은 내색을 안 하면 키스까지 쭉 진행하고 싶었다. 

까…까치발을 한 유하를 보니 앞으로 키스를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었다.

갑작스런 불청객은 정말 화가 났다. 왕게임때문에 유하가 태준과 뽀뽀한 것보다 더 화가 났다. 한결은 비록 볼에 하는 거였지만 자신이 직접 하는 것과는 기분이 달랐다. 유하도 그만큼 한결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힛…. 유하 선배의 호감도가 이제 70%이상은 될 것 같다. 오늘 나한테 반한 것 같았어. 이러다가 유하 선배가 언젠가 날 먼저 덮치는 게 아닐까. 

한결의 광대가 볼록 솟았다.

유하는 이제 완전히 녹초가 되어서 비틀비틀 흐느적거리며 좀비처럼 걷고 있었다.

걷는 모습도 어쩜 저렇게 귀여울까. 공주님처럼 번쩍 안아서 방으로 데려가고 싶다. 그러면 유하 선배는 ‘미친놈아!’라며 질색하겠지. 크큭.

한결은 유하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멍하니 걷다가 갑자기 실제로 뽀뽀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한결은 울화가 치밀었다. 시늉만 했다는 사실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조금만 더 그 불청객들이 늦게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한결은 유하를 곁눈질로 보았다. 그거 한 번 하는데 3초면 될 것이었다. 방에 들어가서 유하가 잊지 말고 빚진 뽀뽀를 해주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눈이 퀭해서 흐물거리며 걷는 유하를 보니 왠지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피…피곤해 보인다. 저건 유하 선배가 지독하게 피곤할 때 보이는 모습이네. 

이때 잘못 건드리면 유하는 욕을 하고 까칠하게 대했다. 한결이 미워서라기 보다는 순전히 육체가 너무 피곤해서 만사 귀찮아서 그랬다.

그래도…. 하던 거 마무리는 좀 확실히 하고 자면 안 되나….

한결은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며 만지작거렸다.

유하는 온몸에 힘이 쭉 빠진 채 방으로 들어갔다. 한결은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서 유하에게 ‘뭐 잊은 거 없냐’는 듯한 눈빛으로 최대한 불쌍하게 응시했다. 입술을 쭉 내밀며 신호를 주었다. 유하의 체력은 이미 밧데리가 세 칸 모두 나가고 깜빡거리는 것 같았다. 땀에 푹 절은 몸을 질질 끌며 욕실로 들어갔다.

“먼저 씻을게.”

한결은 다급하게 말을 하려다가 변태 소리 들을 까봐 말을 꿀떡 삼켰다.

가…같이 씻을래요? 으악. 미쳤다. 

유하가 저렇게 피곤한 걸 보니 직접 씻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말…. 이건 사심이 하나도 안 들어가고 그냥 어디까지나 의리상 그런 거였다. 

선배, 의리로 씻겨 줄게요. 

한결은 스스로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물었다.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리는 아니었다. 흑심이었다. 

나…갈수록 변태에 가까워져 가고 있어.

혼자 얼굴이 빨개져서 유하가 들어간 욕실에서 나는 물소리를 들었다. 집에서도 많이 들었는데 어째서 오늘은 저 물소리가 야하게 들리는 건지 몰랐다.

한결은 아까 소주 한 병을 통째로 마신 후유증으로 긴장이 풀리자 급격히 취기와 피로가 몰려왔다. 유하가 다 씻고 나오는 동안 거실에 앉아 있다가 깜빡 졸아버렸다.

눈을 뜨니 욕실에 불이 꺼져있었다. 한결은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잠에 빠진 유하가 보였다.

에이, 씨발!

한숨과 욕이 절로 나왔다.

아까 하던 거마저 해야지 이렇게 그냥 자면 어떻게 해요.

한결은 잔뜩 실망해서 미간을 팍 찌푸렸다. 일단 다시 졸리기 전에 서둘러 샤워하러 갔다. 샤워를 다 하고 나니 상쾌한 기분에 정신이 또렷해졌다.

유하의 침대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많이 피곤한지 코까지 골면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지금 보니 뭔가 섹시해 보였다. 한결은 이 느낌도 나쁘지 않아서 피식 웃었다. 이래나 저래나 유하는 예뻤다. 

유하의 입술을 보았다. 많이 피곤했는지 붉은 입술에 허옇게 각질이 나 있었다.

저 귀여운 입술로 오늘 나 뽀뽀해주려고 했잖아. 힛.

한결은 유하의 입술을 손으로 살짝 만져보았다. 탱글탱글한 감촉에 몸이 찌릿했다. 잠에 깊게 빠진 유하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잊지 말고 오늘 못 한 거 내일 해줘요. 꼭 받아 낼 거예요. 크큭. 

한결은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받아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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