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른

*이번화의 값은 하트와 댓글로 받겠습니다.



그 을 기억하는 세가지 방법

부제:The rememder stars

글::달분

전독시×내스급 크로스오버


내밀어진 손은 어색하게 공중을 배회했다. 머쓱하게 웃고있던 김독자가 손을 거두려던 찰나 어린 혼돈의 손이 잡혔다. 어린 혼돈의 손바닥은 굳은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검을 오래 잡은게 여기서 티가나는듯 하였다. 짧은 악수 끝에 남은것은 어색한 정적이었다.


 놀란 한유진은 할말을 잃은듯 눈을 동그랗게 뜬채 어린 혼돈을 바라봤다. 검과 검의 마찰음이 나지 않았더라면 어린혼돈이 달려든지도 몰랐을테다. 그만큼 빠르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우, 어르신 무섭게 왜저러시는거지. 우리 유현이랑 나중에 대련할때 저러시면 다치는거 아닐까? 아니야, 우리 유현이는 그래도 강하니까. 계속되는 생각의 굴레에 한유진은 침음을 짧게 흘렸다.


김독자는 눈을 찌푸렸다. 갑작스레 막아낸 검에 오른 손목이 저릿저릿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채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감싸 쥐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얼굴에 긴 상흔을 남겼을 것이 상상이되니 저절로 소름이 돋았다.


 눈을 반짝이며 저를 보는 어린 혼돈에 김독자는 미간을 슬쩍 찌푸리며 미소지어 보이기만 할뿐이었다. 환영 인사 한번 격하네, 김독자는 속으로 혀를 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게 펼쳐진 설원은 꼭 그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하얀새를 만난….


“아니, 어르신! 깜짝 놀랐잖아요. 여기 연약한 F급도 같이 있다는걸 잊으신건 아니죠?”

“이분이 나의 기척조차 눈치 못챌것 같으냐. 첫째, 너는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고 내가 몇번이나 말했는지 들어먹질 않는구나.”

“아무리 그래도 제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고요.”


한유진은 제 심장을 부여잡은채 호들갑을 떨었다. 어린 혼돈은 그런 한유진을 보며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나를 바라봤다. 어째 눈빛이 굉장히 부담스럽다. 나는 그저 고개를 기울이다 작게 미소를 지어 줄 뿐이었다. 완벽한 대외용 미소였다. 


어린 혼돈은 유심히 김독자를 바라봤다. 이들이 들어온다는 것을 몇분전 부터 눈치 채고 있던 어린 혼돈은 금방 막 들어와 설원을 멍하니 바라보던 김독자에 홀린듯이 시선을 빼앗겼더랬다. 무결점의 그는 가히 세계의 아버지라 불릴만 했고, 고고한 별이었다. 


너무나 빛나 그 곁에 있기만 해도 존경심이 드는 그런존재. 그런 기백에 맞지않게 외형은 여리여리한 미남자이니 시선을 빼앗긴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볼수 있었다. 어린혼돈이 검을 든건 단순한 충동이었다. 


늘 그렇듯 저보다 강해보이는 상대와 합을 맞추어 보고 싶은 것은 검을 든 무인이라면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였다. 그래도 이리 충동적으로 나가다니, 아까의 저를 조금은 타박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별은 별이고, 아버지는 아버지라더니. 그 짧은시간내에 제 기척을 느끼고 재빠르게 검을 막아내는 모습에 묘한 쾌감이 들었다. 사실 얼마만에 전력을 다해 맞춘 첫 합인지 모른다. 둘째와 막내의 교육 선생으로 짧게 짧게 해준것 빼고는 몇 만년 만인지, 햇수를 세려면 하루는 꼬박 걸릴지도 몰랐다. 


아무튼 어린 혼돈은 김독자를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가느스름 해진 붉은 눈동자에는 한유진과 한유현이 가득했다. 쯧, 별에 이끌리는건 어쩔수 없는것이니. 미간을 작게 찌푸리던 어린 혼돈이 작게 혀를 찼다. 그 시선에 김독자는 그저 가만히 서서 눈만 깜빡일수 밖에 없었다. 


어린 혼돈은 김독자에게 한발자국 다가왔다. 흙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김독자는 저보다 살짝 더큰 어린혼돈을 올려다 보았다. 복잡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어린혼돈에 김독자는 무안해져 갈 뿐이었다. 


“어…음…, 어린혼돈?”

“…….”


어색한 정적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보다 못한 한유진이 억지 웃음을 내며 옆으로 다가왔다. 반짝이는 두 눈으로 한유진이 입을 열었다.


“그, 독자 형 보고 싶다던 초월자 분이, 어르신이야.”

“그렇구나.”

“어르신, 말 좀 해봐요. 그렇게 저보고 독자 형 데리고 오라고 닦달, 아니아니, 말씀하셨는데.”


한유진은 삐뚜름 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어린혼돈을 향해 말을 했다. 어린 혼돈의 눈썹이 살짝 들썩였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을 했다.


“하나의 별이, 그것도 세계의 아버지가 뭣하러 이 작은 세계에 몸을 뉘이신건지 궁금합니다만.”


어르신이 존댓말을…? 한유진의 중얼거림을 못들은체 하던 어린혼돈은 곧은 시선으로 김독자를 보았다. 검고 검은 두 눈안에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했다. 그 장면이 어린혼돈에게는 꽤나 인상 깊게 남았다. 살짝 곤란해 보이는 얼굴에 어린혼돈은 기다려주기만 하였다. 입을 달싹이던 김독자는 가벼운 숨을 뱉으며 말했다.


“이미 알고 있는것 같은데, 제 입으로 굳이 들어야 하나요? 어린혼돈.”

“…, 질문을 바꿔 보도록 하지. 어떻게 이 세계에 들어온거지. 그것도 우리의 시선을 피해서 말입니다.”


너도 하나만 해…존댓말을 하던 반말을 하던. 김독자는 꼭 저번달의 한유현을 보는것 같아 의미없는 바람빠진 웃음이 새어나왔다. 새삼 한유현이 얼마나 많이 바뀐건지 느껴졌다. 처음에는 제 형을 지키려는 발톱세운 삵 같았다면 지금은 그저 얌전한 고양이 같은 느낌이었다.

 어찌됐든 저 질문에 답을 하려면 좀 복잡했다. 시스템 자체를 흡수했다는것은 초월자들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으니까. 이 말을 한다 해서 그들이 이해할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제가 왜 설명까지 해야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별이더라도, 남의 세계에 몰래 들어오는것은 선전포고와도 같은건데 그런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나.”


태연한 어린혼돈의 반박에 김독자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질 생각 없어 보이네. 눈에 보이지 않는 전류가 김독자와 어린혼돈 사이에서 파지직-하고 튀었다. 왠지 분위기가 점점 다운되는것을 느낀 한유진은 머쓱하게 웃으며 어…음…같은 이상한 추임새를 넣다가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슬며시 젓는 한유현에 한유진은 그냥 입을 다물다 한유현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러다 싸움 나면 어떡해. 독자 형이 아무리 초월자여도, 어르신은…….”

“형, 아까 독자 형이 어르신 검 막아낸거 봤지. ”

“어, 어어. F급이라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마지막은 봤지. 근데 왜?”

“그거 사실 나도 못봤어. 아니, 그 속도를 못따라간거야. S급인 나조차.”

“…뭐?”

“그러니까, 형은 형 걱정만해. 독자 형은 우리가 상상하는것보다 훨씬 더 강하니까. ”

“…….”


한유진은 입을 슬며시 벌리며 김독자를 바라봤다. 정체를 모르고 본다면 그저 연약한 청년이었겠지만 알고 봐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실감이 안난다. 저런 몸에 그런 힘이 나온다는것이. …어르신 보다 강할지도. 유현이의 중얼거림이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마치 곧 있으면 싸움이 날것 같은 분위기였다.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를 잠시간 보고있던 김독자와 어린혼돈 중, 김독자가 먼저 시선을 돌리며 양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항복을 표했다. 짧은 한숨을 내쉬던 김독자는 말했다.


“두번째 질문에 답하자면 시스템을 흡수 했습니다.”


김독자의 답에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이 어린 혼돈의 미간이 슬며시 찌푸러졌다. 그렇겠지, 저들의 입장에선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겠지. 사실 저도 벼르고 벼르다 써먹은 복불복 방법이었으니. 김독자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난후 어린혼돈을 지나쳐 앞으로 걸었다. 사박사박, 흰 눈을 밟으며 정 중앙으로 향한 김독자가 몸을 돌려 어린혼돈과 한유진, 그리고 한유현을 바라봤다. 

인간이든, 초월자이든. 제 눈으로 직접 보는것을 더욱 믿기에 김독자는 큰 결심을 했다. 이 던전이라면 제 온전한 힘을 받아 낼수 있을것 같았다. 


“설명해드리죠.”


김독자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러자 결좋은 검은 머리칼 위로 검은 뿔이 양쪽으로 솟아났다. 그 모습을 본 한유진은 눈을 크게 뜨며 김독자를 바라봤다. 흰색 코트 사이로, 날개 쭉지에서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검고, 검고, 검어서, 모든 색을 빨아들일것만 같은 검은색의 날개가 커다랗게 펼쳐졌다. 


검은 깃털이 하얀 설원에 대조되게 흩날렸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제가 보고 있는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 한유진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는지, 김독자는 한번 손가락을 튕기더니 검은 뿔 위로 빛나는 하얀 링이 생겨났다. 큰 검은 날개 사이에 순백의 하얀 날개가 교차로 돋아났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혼돈 그 자체. 어린혼돈은 묘하게 느껴지는 희열감에 흐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느껴지는 위압감에 손 끝이 덜덜 떨려왔다. 역시, 그는 가히 고고했다.


한유진은 묘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김독자에 벌린 입을 다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경이로운 장면을 보듯, 날개가 돋아나고, 뿔이 자라나는 김독자의 모습은 가히 초월자라 말을 할수가 있었다. 김독자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늘 창백하기만 하던 얼굴에 혈색이 도니 그 모습은 또다르게 와 닿았다. 


묘하게 색정적인 모습에 한유진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이런 생각을, 이런 마음을 품으면 안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저 멀리를 내다 보고 있었다. 쿵쿵 뛰어오는 심장이 북소리 처럼 귀에 울렸다. 


한유진은 손을 조심스럽게 가슴 언저리에 두었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던 한유현이 시선을 돌려 커다란 날개 안에 있는 김독자를 뚫릴 기세로 바라봤다. 심장이 뛴다. 그때의 불쾌감을 자아내던 열기가 아랫배에서부터 끓어 올라온다. 


흰 날개와 검은 날개, 그 위로 검은 머릿결 사이에 솟아난 검은 뿔에 걸쳐진 커다란 흰 링. 악마와 천사가 공존한다면 저런 모습일까. 저 모습을 특정한 단어로 콕집어 설명하기엔 힘들었다. 한유현은 김독자의 눈 깜빡임조차 놓지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꼼꼼히 바라봤다. 


어째선지 조금은 그가 쓸쓸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하얀 설원이 그에게 너무나도 잘어울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주먹을 쥔 손에 힘이 꽈악 들어갔다. 한유현은 처음으로 한유진이 아닌 타인에게 설렘과 걱정을 동시에 느껴보았다. 김독자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설화가 주변에서 끊임없이 속삭인다.


[설화,‘구원의 마왕’이 이야기를 합니다.]

[설화,‘왕이 없는 세계의 왕’이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설화,‘구원의 마왕’이 너도 반갑다며 키득 거립니다.]


오랜만에 불러낸 설화는 기쁘게 키득거린다. 김독자는 편안함에 느린 미소를 보여줬다. 오랜만에 개방한 힘이라 그런지 몸이 조금 거뿐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유진이 보고 가끔씩 들어오자고 말을 해야겠다.

 김독자는 고개를 돌려 가만히 서있는 셋을 보았다. 조금은 멍해 보였지만 그것까지 신경쓰기에는 김독자는 섬세하지 않았기에 손을 흔들었다. 


[스타스트림의 주인, ‘구원의 마왕’이 인사를 합니다.]


눈앞에 갑작스레 뜬 파란창에 한유진은 숨을 들이켰다. 김독자를 보고 다시 파란창을 번갈아보던 한유진은 한유현을 보고 어린혼돈을 보았다. 표정은 제각각이었지만, 그 안에 포함된 놀라움은 똑같았다.


[스트스트림의 주인, ‘구원의 마왕’이 이게 저라며 손을 흔듭니다.]


김독자는 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린혼돈은 입술을 달싹이다,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김독자의 어깨를 잡아챘다. 그리고는 서슬퍼런 눈으로 김독자를 바라봤다. 의아해진 김독자는 고개를 기울이며 어린혼돈을 올려다봤다.

침음을 삼키던 어린혼돈이 입을 열었다.


“지금…, 뭐, 하신 겁니까?”

“직접 보는게 빠를것 같아서요. 보시다싶이 뭐-.”

“주인이라니, 설마 시스템을 흡수 하신겁니…까?”

“네.”

“그런…! 미친짓을!”


어린혼돈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그리고는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어가 창백해지더니 이내 푸르죽죽해지기 시작했다. 어찌 저런 무모한 짓을…! 자칫 하면 제가 시스템의 일부가 될 위험천만한 짓이다. 자아가 사라진 별은 시스템의 꼭두각시로, 제 아무리 천개의 세계를 읽고 만들어낸 아버지같은 존재라도, 시스템의 강제성은 이기지 못한다. 근데 그런 시스템을 흡수할 생각을 하다니…! 별이지만, 그 별에서 첫째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무모하고, 제 몸을 챙길줄 모르는 그런 바보같은. 두 눈을 순하게 끔뻑이는 모습에 가슴 깊이 울컥거림이 올라왔다. 이해할수가 없다. 첫째도, 별도. 하지만 이들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할것이다. 제가 하는 행동이 최선이고 항상 최악을 생각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자들. 

힘이 들어갔던 손에 힘이 풀렸다.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린 어린혼돈은 김독자를 바라봤다. 어찌됐든 이는 이미 흡수를 성공적으로 끝마친것 같아보였다. 별이 어떻게 이 세계에 들어왔는지 알아냈으니 됐다. 물끄럼히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김독자는 입을 달싹이다 열었다.


“자, 그럼 됐죠? 그럼 이제 제 차례군요.”


김독자의 검은 눈이 깊게 가라 앉았다. 끝없는 어둠은 깊이를 모르고 짙어져 가기만 할 뿐이었다. 한수영의 말, 갑자기 나타나는 스타스트림의 흔적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 아이들. 이 모든것들이 우연이라기엔 너무 억지스러웠다. 뭔가, 분명 뭔가 놓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김독자는 뒤를 슬쩍 바라보다 말했다.


“…이상던전 현상을 아십니까.”

“알고있습니다. 최근에 발견했는데, 신입이 그러더군요. 갑작스럽게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고,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났다고.”

“그렇군요.”

“문제는 그 던전의 영향 때문에 멸망이 조금 가속화 됬다는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하루 빨리 해결해야겠군요. 여기 시스템 관리자가 누구죠?”

“신입입니다.”

“…그는 어디있습니까?”


김독자의 질문에 어린혼돈의 눈썹이 들썩였다. 저건 대체 어떻게 하는거람. 김독자는 어린혼돈의 얼굴을 유심히 보다 한유진과 한유현을 향해 손짓을 했다. 한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유현과 함께 김독자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김독자는 더욱 더 아름다웠다. 

커다란 날개는 윤기가 흘러 부드러워 보였고 검은 머릿결 위로 솟아오른 검은 뿔에 걸쳐진 커다란 흰 링은 성스러워 보였다. 자체발광하는것 같은 모습에 눈이 살짝 찌푸러 졌다. 김독자는 살짝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끌다가 이내 눈을 천천히 내리 감다가 입을 열었다.


“그 신입 불러주세요.”

“그러고보니까, 신입 어디갔대요? 어르신, 아세요?”

“……,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던전에 대해 짐작가는 부분이 있으니 조율좀 하려고요. ”


김독자는 시큰둥하게 말을 하였다. 오랜만에 꺼낸 날개가 무거웠다. 뒤로 쏠린 중심덕분에 혼자서 고군분투 중이었다. 어쨋든, 저번에 말했던 것을 실행시킬때가 다가온듯 하였다. 시스템, <스타스트림>을 여기 시스템과 연결을 하려고 생각중이다. 만약 연결하게된다면 차원과 차원 사이의 연락망이 생길것이고 그 연락망을 통해 성류채널을 열수 있을것이다. 


성류채널, 도깨비 관리국이 없어진 지금 이시점에, 남아있는 도깨비는 비유뿐. 사실상 현재 도깨비왕은 비유이기에 다른 차원이더라도 성류채널을 쉽게 열수 있을것이다. [개연성]은 이제 내가 어떻게든 충당하면되는거고. 성류채널이 열리면 제일 먼저 명계에 연락부터 넣어야겠다.


“시스템 연결하려고 합니다만.”

“…엥? 형 그게 무슨 소리야?”


한유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김독자의 말을 열심히 이해해 보려고 노력중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을 연결 한다니 그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안된다. 고민을 하던중 하얀 손가락이 미간 사이를 꾸욱 눌렀다. 조금은 차갑기도한 손가락에 멀뚱히 그걸 보고 있다가 고개를 슬쩍 들었다. 입꼬리가 말려올라간 모습에 한유진은 볼을 살짝 붉혔다. 


“찌푸리지마, 주름생겨. 뭘 그렇게 귀엽게 골똘히 생각해?”


옅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붉었던 얼굴이 이내 분홍분홍 해지기 시작했다. 심장께가 간질간질 거렸다. 와, 미쳤다. 김독자는 어벙해진 한유진의 머리를 몇번 쓰다듬은 후 어린혼돈을 바라봤다.


“시스템을 연결한다니, 잘못하면 당신도 이 세계도 위험할수 있습니다. 이 세계는 현재 시스템으로 버티는 중 입니다. 근데 당신이 개입하게 된다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겁니다. ”

“위험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 생각해 논 방법이 있고 하니까요. 그러니까 신입, 불러주세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하…. 어린혼돈은 짧은 한숨을 내쉰후 이내 사라졌다. 그의 한숨에 내포된 수많은 뜻을 알고 있던 김독자였지만, 이것만큼은 포기할수가 없었다. 다른 차원이라 할지라도 제 차원과 겹쳐지는 이상현상이 발생되지 않게 미리 보험을 들어놔야했기 때문이었다. 


이 잔재가 무엇으로부터 나타나는지는 아직 예상이 안되었지만, 차차 단서들이 발견되겠지. 김독자는 날개를 살며시 푸드득 거렸다. 검은 깃털과 하얀 깃털이 한데 엉켜 같이 움직였다. 아 날개 관리도 해야하는데 다음에 빗도 가져와야겠다. 김독자는 날개를 물끄럼히 바라보다 저에게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한유진이 멍하니 날개를 바라보다 저를 본다. 


“형, 혹시 이거 날개 그 노아 씨처럼 부분수화 할수있는거야…?”

“노아 씨…?”

“아아, 그 노아 씨라고 부분 수화할수 있는 분이신데, 그 나중에 소개 시켜 줄게! 잘됐다. 그때 명우도 소개시켜 줘야지.”


한유진은 뭐가 그렇게 들떴는지 방긋방긋 웃으며 앞으로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하는 도중에도 시선은 계속 날개 끝자락을 향해 있으니 그 모습이 얼마나 웃겼던건지 저도 모르게 나지막한 웃음이 새어나 왔다. 김독자는 한유진의 머리에 손을 올려 몇번 토닥인후 제 날개를 가리켰다.


“부분수화, 그런거긴 한데. 이 모습이 진짜 모습이라 볼수도 있지 뭐. 만져보고 싶어?”


김독자의 물음에 한유진은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낮은 웃음이 하얀 설원을 가득 메웠다. 그 웃음이 어찌나 감미로웠는지, 저도 모르게 김독자를 따라 웃음을 지어내던 한 형제였다. 김독자는 만지고 싶으면 만져 라고 말을 하며 턱 끝으로 날개를 가리켰다. 뭐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한유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후 손끝을 검은 날개에 가져다 대었다. 생각보다 보드라운 느낌에 손끝만 닿았던것을 이제 아예 날개를 잡고 슬며시 쓸어내리고 올리기를 반복했다.


 마치 피스나 삐약이의 털을 만지는것 처럼 묘한 충족감을 안겨 주었다. 진짜 부드럽다. 관리하는걸까? 검은 날개에를 더 자세히 보니 무언가 수많은것이 반짝였다. 그 반짝임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마치 날개가 하나의 우주를 품은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한유현은 뒤에서 제 형이 날개를 만지작 하는 모습을 한번 본후 다시 김독자를 바라봤다. 형이 날개를 손으로 쓸어 내릴때마다 김독자의 눈꼬리가 살짝씩 꿈틀 거리는것을 볼수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그리 티나지 않는 그런 동작. 한유현은 물끄럼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눈가가 살짝 붉으스럼해 진거 같기도 하고. 


한유현은 묘한 기분에 반 충독적, 반 고의적으로 김독자의 검은 날개의 뿌리부분을 움켜잡고는 살살 쓸어 내렸다. 그러자 김독자의 눈이 커지더니 이내 입가를 양손으로 가렸다. 그 다음은 한유진도, 한유현도 김독자를 동시에 바라봤다. 


푸드더덕-.

“…흐읍!”


검은 날개와 흰 날개가 엇갈려 털렸다. 날개가 큼직큼직하니 움직일 때마다 크게 바람이 일었다. 양쪽 귀가 붉어진 김독자는 막은 입가를 매만졌다. 깜짝이야, 이상한 소리 낼뻔했잖아. 날개가 살살 떨려왔다. 


한유진이 매만질 때는 간지러워도 참을수 있었는데 한유현이 날개 뿌리 쪽을 움켜 잡았을 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김독자는 짧게 날개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보는 표정이 얼마나 똑같았는지, 형제는 형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니. 그건 아니고.”

“독자 형,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혹시 느껴지시는 겁니까?”

“어, 어?”

“날개 말입니다.”

“아, 응. 그게…이게 신경이 연결되어 있어서 만지는 게 다 느껴져. 내 몸이랑 같다고 보면 돼.”


몸과 같다고…, 같다고…, 김독자의 마지막 말이 한유진의 귀에 메아리처럼 여러 번 들려왔다. 그러니까 그게 노아 씨처럼 그냥 탈부착 가능한 그런 게 아니라 모든 감각이 느껴지고 하는… 그런 몸과 같은…. 그러니까 나 지금 따지고 보면 독자 형의 몸을, 몸…몸을! 으악! 한유진의 얼굴이 서서히 달아오르더니 이내 펑, 하고 곧 터져버려도 할말이 없을 정도로 발게 졌다. 


한유진은 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후 슬금슬금 한유현의 뒤로 숨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김독자는 머쓱해져 볼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한유현은 그렇군요, 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그렇게 살짝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있던 와중 무언가 도도도,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말 그대로 도도도. 김독자는 고개를 틀어 그 모습을 바라봤다. 커다란 귀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가 발랄하게 뛰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토끼 같기도 하였고, 강아지 같기도 하였다.


“허니!!”

“신입?”


저게 신입이란 시스템 관리자 인가 보다. 제 4의 벽이 없는 지금, 책 내용들이 그리 예전처럼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어렴풋이 그런 내용이 있었었지, 라는 느낌이었다. 신입의 첫인상은 그저 발랄한 토끼 같았다. 아니 강아지 인가? 신입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던 와중에 신입의 시선이 김독자에게 닿았다. 


와, 예쁘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신입에 모두의 시선이 신입에게 꽂혔다. 뒤에서 느리게 따라오던 어린혼돈조차 잠깐 멈칫했다. 제가 입 밖으로 꺼낸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던 신입은 헤헤 웃으며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다 말을 하였다.


“안녕하세요, 세계의 아버지시여. 저는 이곳에서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는 탑에 갇힌 왕, 신입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저는 김독자라고 합니다. 편하게 김독자라 불러주세요.”

“아니! 어떻게 제가 아버지의 존함을….”

“아버지는 무슨, 그냥 김독자라 불러주세요. 아니면 구원의 마왕이라던가. 그런 거창한 수식언은 왜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

“아…! 그럼 마왕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신입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저를 봐왔다. 왜 여기서 데자뷔가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머리 한번 쓰다듬어 보고 싶다. 복슬복슬한 금발이 손가락 끝을 움찔 거리게 만들었다. 아니, 이게 아니지. 금방 생각을 털어낸 김독자가 말을 했다.


“바로 본론부터 말하자면, 제 시스템과 이쪽 시스템을 엮어 연결하려 합니다.”

“아, 어린혼돈님에게 들었어요. 근데 이게 좀 많이 위험한 짓이에요. 자칫 잘못하면 이 세계는 물론 아버, 아니 마왕님도 무너지실 거에요.”

“괜찮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해볼 수 있으니까요”

“……, 준비하겠습니다.”


신입은 비장한 표정을 지은채 뒤로돌아 무언가를 계속 조작해 나가기 시작했다. 언뜻 언뜻 보이는 촉수에 한유진이 질색하는것 빼고는 순조로웠다. 조금은 언짢은듯한 표정을 짓고있던 어린혼돈이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위험하면 바로 끊어 내십시오. 당신도 중요하지만 저에게는 첫째를 지킬 의무도 있으니까요.”

“어린혼돈의 걱정이 뭔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제가 망가진다 한들 이 세계가 파괴될 일은 없으니까. 그리고 그쪽도 말편하게 하실래요?”

“……, 그리 하도록 하겠네.”


어린혼돈의 시선을 피해 김독자는 신입을 바라봤다. 현재 비유도 누구도 없을때 다 끝내놔야한다. 나중의 후폭풍이 조금 무섭지만 현재가 더욱 중요했다. 며칠을 일어나지 못할지도 몰랐지만 괜찮았다. 이번만 잘 보내면 한동안은 잠잠할지도 모르니까. 신입은 다 했는지 몸을 돌려 김독자를 바라봤다. 그 바라보는 눈에는 깊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김독자는 괜찮다는 듯 살짝 웃어 보이며 신입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생각보다 보드라운 머리칼에 살짝 아쉬웠다.


“모두들 저에게서부터 멀리 떨어지세요.”

“형?”

“형, 독자 형 말대로 떨어져 있자. 혹시 모르니까, 우리가 가까이 있으면 방해될 수 있잖아.”

“하지만….”

“둘째의 말을 들어라. 신입아, 결계를 쳐 놓는 게 어떻겠니.”

“저도 지금 그 생각 중이었어요. 이 던전이 잘 버텨 주었으면 하네요.”

“시작하겠습니다.”


김독자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뜬후 모든 설화를 개방했다. 쿠웅- 하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김독자의 주변으로 환한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김독자는 서서히 하늘로 날아 올랐다. 설화들이 점점 넓게 퍼져가며 음절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설화, ‘구원의 마왕’이 즐겁게 흩어집니다.]

[설화, ‘왕이 없는 세계의 왕’이 비장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설화, ‘이적에 맞서는 자’가 인사를 합니다.]

[설화, ‘이계의 신격을 살해한 자’가 묵례를 합니다.]

[설화, ‘심연을 들어본 자’가…]

[설화, ‘제멋대로 곡해자’……]

[설화,………]

.

.

.

“잘 버텨줘.”


설화들이 소용돌이 친다. 나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함께해준 이야기들이 한번더 속삭인다. 오랜만에 힘을 개방한 설화들은 신났는지 힘차게 서로와 서로를 끌어당긴다. 거대설화들은 잠들어 있었지만, 이만한 설화들이라면 그것을 깨우고도 남았다. 밝은 빛은 점점더 김독자에게로 응축하기 시작했다.


쿠웅-! 한번더 울리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그 설화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흡, 생각보다 버거운 설화였다. 여느 거대 설화보다도 더욱 커다란 이야기를 가진, 모든 이야기의 집합체, 또는 그것들을 권속 아래로 둔 진정한 지배자.


[<스타스트림>이 눈을 뜹니다.]

[<스타스트림>이 주인을 바라봅니다.]

[스타스트림의 주인, 이 <스타스트림>을 바라봅니다.]


무거운 공기가 훅! 하고 떨어진다. 결계 너머에 있던 한유진의 F급 몸뚱아리가 못 버티는지 무릎이 절로 굽혀진다. 마치 머리를 들면 안될것 같은 위압감. 감히 내가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드리면 안될것 같은. 등으로 식은 땀이 주르륵 흘렀다. 옆에서 혀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지자, 헐떡이던 숨이 가라 앉았다. 


고개를 천천히 들자 그의 앞에는 어린혼돈과 신입이 서있었다. 등을 지고있는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커보이는지, 초월자라는것이 확연히 와 닿았다. 고개를 옆으로 틀어보이니 유현이 조차 버거운지 미간을 찌푸리며 앞을 바라봤다.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것이 위험하고도 위험한 일이라는건 느껴졌다. 독자 형…, 부디 아무 일 없이 끝나기를.


<스타스트림>은 아무말없이 김독자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이야기를 속삭이지도,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마치 잘 길들여진 맹수처럼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그 무엇도 하지 않을것 처럼 가만히 있었다. 김독자는 숨을 깊게 들이 마시고 내쉰후 오랜만에 진언을 내뱉었다.


[<스타스트림>, 이 곳의 시스템과 연결하여 성류방송을 할수 있도록 해줘.]


미동도 없던<스타스트림>이 천천히 움직였다. <스타스트림>의 음절들이 모이고 모여 그 예전처럼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광활한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기도 하였고, 두꺼운 책이 파라라락- 하고 넘어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제일 시선을 끌었던건 지하철의 형상을 하여 그 사이를 지나가고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읽혀진다. 이야기들이, 우리의 이야기가, 그들의 이야기가, 세계의 이야기가.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는 누군가의 삶이 되었고, 살이 되었다. 이야기들은 우주를 넘어 별을 감싸고 책을 통과해 시스템과 얽히기 시작했다. 카가각, 음절과 음절 사이에서 날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마찰음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순간 몸안에서 무언가 둑터지듯이 쏟아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스타스트림>과 시스템의 연결이 시작됩니다.]

[연결이 시작됩니다.]

[개연성을 충당합니다.]

[<스타스트림>과 시스템의 연결…12%]

[<스타스트림>과 시스템의 연결…24%]

[<스타스트림>과 시스템의 연결…41%]

.

.

.

파지지직! 개연성 스파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역시 이건 좀 위험한가. 손끝이 타들어간다. 푸른 전류가 김독자의 몸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따가웠고 아팠다. 전류가 눈앞을 가려 그저 푸른 빛 밖에 안보였다. 하지만 멈출수 없었다. 제발, 제발! 


[성흔, ‘희생 의지’ Lv.???가 발동됩니다!]


더욱 빠르게 개연성이 몸 안에서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세계와 세계를 연결하고 차원과 차원을 연결하는 것이기에 많은 개연성이 필요했고, 힘이 필요했다. 눈앞이 서서히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스타스트림>과 시스템의 연결…78%]

[<스타스트림>과 시스템의 연결…94%]

[<스타스트림>과 시스템의 연결…99%]

[<스타스트림>과 시스템의 연결…100%]

[개연성을 충당합니다.]

[개연성이 파훼 됩니다.]

[외부의 개연성을 충당합니다.]

[#*^%@@%@##@*~**~@…….]


뭐? 윽! 머리가 핑 돌았다. 눈앞이 깜깜해진다. 개연성 스파크가 더욱 몸집을 키워간다. 푸른 전류가 김독자를 집어삼킨다. 몸이 바스라진다. 풀어놨던 설화들이 우왕좌왕 하는것이 느껴진다.


[외부의 개연성이 충당되었습니다. ]

[<스타스트림>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시작했습니다.]

[동기화 합니다.]

.

.

.

[구원의 마왕, 너는 언제나 봐도 항상 그 꼴이군. 내가 도와주는것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러니 그런 무모한 짓은 하지 말도록.]


익숙한 진언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의식이 가라앉는다. 그리운 목소리가, 익숙한 손길이 김독자를 훑고 지나간다. 왠지 눈가에 무언가 닿은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개연성 스파크가 가라 앉는다. 설화들이 안정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독자는 그대로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 외부의 개연성이 무엇인지, 그리운 손길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김독자,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


따뜻하면서도 무심한 시선의 김독자를 바라보다 사라졌다.

.

.

[#BY-1채널이 열립니다.]


강한 스파크 이후, 눈을 다시 떠보니 독자 형이 비틀거린다. 성공적으로 끝마친건지 눈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다. 신입이 급하게 창을 조절 하기 시작한후 눈을 크게 뜨며, 진짜로! 진짜로 됐어! 혼돈님! 아버지가 성공하셨어요!! 아, 마왕님! 신입은 방방뛰며 어린혼돈을 바라봤다. 


결계가 풀리고 누구나 할것없이 빠르게 김독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늘에 떠올라있던 김독자가 이내 힘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한유현이 곧바로 뛰어 올라 김독자를 잡아챘다. 창백한 얼굴에 그을림이 남아 있어 거뭇거뭇했다. 기절한것인지 몸이 축 힘없이 늘어졌다. 


날개와 뿔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마치 원래부터 그런건 없었다는 듯이 사라져 있었다. 창백한 낯에 죽은것 같아 심장이 바닥까지 곤두박질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유현의 표정에 서서히 초조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숨이 곧 끊길것 처럼 미약했다. 한유현은 흔들리는 눈으로 한유진을 바라봤다. 한유진은 급하게 김독자의 손목을 잡고는 맥을 짚었다. 뛰는 심장이 미약했다. 몸이 차워진다. 피가 싹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한유진과 한유현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고는 던전 밖으로 냅다 뛰었다. 


“어르신…! 죄송하지만 먼저, 먼저 가볼게요!”

“그래, 그를 얼른 치료해 주기나 해라.”


한유현과 한유진이 빠져나간 던전은 아까의 그을림이 곳곳에 남아있는것 빼고는 평화로웠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어린혼돈이 시선을 돌렸다. 언제 낮아진 시야인건지 목을 돌리며 신입을 바라봤다. 신입은 아까의 그 방방거림은 어디로 갔는지 입을 달싹이다 천천히 말을 했다.


“어린혼돈님도 느끼셨죠.”

“……그래, 누가 그를 도와준것 같더군.”

“마왕님과 비슷했어요. 아니, 그것보다 더 오래된….”


신입은 눈을 굴리며 어린혼돈을 바라봤다. 인간들은 느끼지 못할 아득한 힘. 세월이 우리보다도, 아버지보다도 더 오래된. 숨을 잠깐 삼켰다. 분명히 보았다. 그것이 아버지를 안고 있던 모습을, 그 따뜻했던 시선을. 하지만 허니와 허니 동생은 못봤겠지. 


아주 찰나였으니까, 저도 집중하지 않았으면 못봤을 속도였다. 기다란 검은 면사포를 쓰고 있던 그것은 정말로 강했다. 어쩌면 근원보다도. 어린혼돈은 신입을 보다가 시선을 돌려 던전의 하늘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는 초월자이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할것들은 많고도 많단다. 그것이 어떻게 그를 찾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 세계의 시스템을 좀 더 강화해야 겠구나.”

“…네, 그나저나 마왕님은 괜찮겠죠?”

“그것이 도와줬으니, 괜찮을게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신입은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몸을 돌렸다. 

한유현과 한유진은 급하게 해연으로 향하려다 곧바로 세성으로 향하였다. 한유현은 마음에 안들었지만 제다로된 통제를 할수있는건 세성병원 뿐이었으니 미간만 찌푸리고 김독자를 안아들고 있을 뿐이었다. 미약한 온기를 머금고 있던 김독자는 서서히 차가워져 가기 시작했다.


 한유현은 급히 이린을 불러 김독자의 주변을 감쌋다. 한유진은 손톱을 물어 뜯으며 전화를 걸었다. 그런 한유진에 한유현은 형의 손을 잡아 내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지말라는 거다. 깊게 숨을 내뱉은 한유진이 성현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은 그리 길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파트너 씨.

“빨리! 빨리 병원 좀…!”

-…? 천천히 말해 보게나. 무슨 일인거지?

“독자, 독자 형이 위험해요! ”

-……뭐? …일단 알겠다네. 바로 병실을 준비하지. 얼마나 다친건가.

“숨을 미약하게 쉬어요. 일단 병원가서 정밀검사를….”

-진정하게나, 유진 군. 독자 군은 초월자라네,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일단 빨리 오게나, 어디지?

“세성 길드까지 거의다 왔어요.”

-알겠다네, 그럼 김컴 길드한테도 연락을 넣어놔야겠군.

“아…!”

-내가 할테니 유진 군은 김독자 군만 신경 쓰게나.


전화를 끊은 한유진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김독자의 하얀 손이 보였다. 아까보다 더 창백해 져 있었다. 진짜로 별거 아니었으면 하지만, 아까의 그 강한 전류를 보면 그리 별거가 아닌것 같아 걱정이었다. 


한유현과 한유진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며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맑았던 하늘은 어느새 붉은 노을이 져있었다. 그 노을이 커다란 불길같아, 불안함을 자아냈다. 급박한 발걸음은 거의 날아가다 싶이 뛰어서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앞에 성현제가 서있었다. 성현제는 성큼성큼 걸어와 김독자의 상태를 확인해보다 혀를 찼다.


“일단 정밀검사를 해보고, 무슨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겠나?”

“그게….”

“허억, 허억! 너희끼리 말하지 말고, 김독자가 뭐? 쓰러졌다고? 그게 시발 무슨 소리야!”


날카로운 음성이 고막을 찔렀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 보니 한수영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숨을 몰아쉬며 다가왔다.

한수영은 눈을 날카롭게 지켜뜨며 김독자를 보다 숨을 들이켰다. 이 새끼 왜 이래!


“개연성이랑 설화가 왜이렇게 엉망이야? 여기 아무 병실이나 잡아봐. 일반 치료로는 안돼. 우리만 할수 있어.”


한유진과 성현제 그리고 한유현이 서로 시선을 주고 받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정밀검사보다는 그들이 더욱 잘 알테니까. 그렇게 가장 넓은 VIP 병실로 향하였다. 커다란 병원 침대에 뉘인 김독자가 더욱 하얘 보였다. 뒤늦게 따라 들어온 신유승과 이길영이 입을 떡 벌렸다. 신유승은 숨을 몰아쉬며 허겁지겁 김독자 곁으로 다가갔다. 신유승은 김독자를 보다 한수영을 보며 말했다.


“시…시선이 사라졌어요. 그러니까, 시선이, 시선이 있었는데.”

“진정해, 신유승. 얘가 이러는거 한두번이야? 제천대성 일단 얘 옷부터 벗겨.”

“알겠다.”

“그리고 아무나 구암신의 한테 연락해.”

“내가 할게, 수영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한유진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왠지 익숙해 보이는듯한 그들의 모습에 침을 꿀꺽 삼켰다. 김독자의 상의가 벗겨진다. 


하얀 속살이 들어난다. 가슴에 커다란 흉터가 눈에 사로잡혔다. 크고 동그란것이 무언가 꼭 그를 꿰뚫은것만 같은 흉터였다. 그 흉터를 본 다들 살짝 멈칫 했지만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구암신의 다 왔다는데.”

“헉! 구원의 마왕이 어떻다고?”

“왔네. 와서 얘 좀 봐바.”


구암신의는 흰 가운을 흩날리며 문을 열었다. 급하게 뛰어 왔는지 상투튼 머리칼이 너덜너덜 해져 있었다. 숨을 몰아쉬고 있던 그는 천천히 김독자에게로 다가가 맥을 짚고 몸을 확인한 후 말을 했다.


“흐음…기혈이 뒤틀리고 설화가 엇갈렸소. 남은 설화가 있어서 망정이라네. 일단 이걸 맞고 있다면 내일 모레 쯤, 깰수있겠소. ”


구암신의는 빠르게 설화와 링거를 연결해 김독자에게 바늘을 꽂았다. 한 시름 놓은 그들은 한숨을 내쉰 후 한유진과 한유현을 엇갈아 보다 한수영이 입을 열려다 비유가 입을 달싹이며 소리를 질렀다.


“미…미친!”

펑-!


[아빠가 드디어 미친게 분명해!]

“갑자기?”

[놀라지말고 들어. 채널이…채널이 열렸어!]

“뭐?”

“채널이라니.”

“그게 무슨….”


그와 동시에 익숙한 알림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수영과 성좌들은 물론 신유승조차 경악을 하며 그것을 바라봤다.


[#BY-1채널에 다수의 성좌들이 입장합니다.]

[다수의 성좌들이 놀랍니다!]

[소수의 성좌들이 눈을 비빕니다.]

[성좌, ‘가장 어두운 봄의 여왕’이 눈물을 흘리며 주변을 돌아봅니다.]

[성좌, ‘젊은이와 여행의 수호자’가 기겁을 하며 성좌, ‘악마같은 불의 심판자’를 바라봅니다.]


“…어?”


[성좌, ‘해상전신’이 이게 무슨 일이냐며 놀랍니다!]

[성좌, ‘외눈 미륵’이 머리를 닦던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냅니다.]

[성좌, ‘가장 어두운 봄의 여왕’이 신유승이 맞냐며 기겁합니다.]


우수수 쏟아지는 성좌들의 메세지 향연에 한수영이 입을 달싹였다. 이게 무슨 일인지, 이 미친 새끼가 도대체 무슨일을. 한수영의 눈길에 한기가 서렸다. 한수영의 눈이 한유진을 향했다.


“제가 다 말할게요. 무슨일이 있었는지. ”

“그래야지. 그리고 오랜만이라 너네 신난건 알겠는데 좀 조용히 하면 안되겠냐?”


[성좌, ‘술과 황홀경의 신’이 오랜만에 올림포스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날립니다.]

[성좌, ‘번개의 좌’가 날뜁니다.]


이 새끼들이……,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뒤로하고 한유진을 바라봤다. 한유진은 그 던전에서 어떤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차근 차근 설명하였다. 종종 분개한 한수영이 흑염을 김독자에게로 던지려는 것을 막는 헤프닝만 뺀다면 그래도 차분히 얘기를 끝 마칠수가 있었다. 


“하……, 이 미친 새끼.”


그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동의한다는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무모해도 너무 무모했다. 한숨을 돌리려니 성좌들은 아직도 서로 메세지를 보내며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얼굴에 미소를 피우고 있었다. 이제는 평생 못 본다고 생각하고 건너왔던 그들에게 이건 크나큰 선물이었다. 


서울의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인다. 도시치고는 많은 별들이 보이는 그런 따뜻한 밤이었다. 한수영은 김독자를 보고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멈칫하며 그 수식언을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입장하였습니다.]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성좌들도, 신유승도, 한수영도. 

몸이 붕 뜬 느낌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마치 죽었을 때 처럼 영혼만 띄워진 느낌이었다. 눈을 천천히 떴다. 어떻게 됐지?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말 이후로 정확히 기억이안난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야. 


왜 항상 나만 자꾸 이상한 곳에서 깨어나는지 모르겠다. 한수영이 엄청 화내겠지. 안봐도 비디오였다. 몸에 소름이 돋아 양팔을 손으로 문질렀다. 온통 검은 것이 끝없는 우주 같았다. 그래 우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인영이 나타났다. 뚜벅 뚜벅, 구두소리가 가까워진다. 침을 꿀꺽 삼켰다. 나를 한심해 하는 눈초리가 보였다. 익숙한 검은 면사포가 보였다. 면사포 안에 비친 눈동자가 금색으로 빛났다. 나는 서서히 눈을 크게 떴다. 이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오랜만이군, 구원의 마왕. 아니 이젠 우리의 주인이라 불러야하나.”


은밀한 모략가, 유중혁이었다.


안녕하세요, BL 웹소설 작가 달분입니다 :) 웬만한 2차 판소 연성은 시리즈로 묶어두었습니다. 이어 1차 BL 외전은 따로 묶어 두었으니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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