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절 낳아주신 어머니가 살아 계실 적에.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화약이 떨어지고, 지상에선 폭음爆音이 계속 일어나 눈과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때였습니다. 생물학적 부모님은 저에게 무기를 들이밀며 어서 도망치라며, 도망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단 말로 저를 위협해냈죠. 

그리고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문을 넘어 죽음의 숲으로 도망친 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절멸시킬 수 있어 금지됐던 그 무기가 부모님이 있던 지상으로 떨어졌습니다. 후일, 지금의 제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제 부모님이 발 딛고 있던 행성 하나가 이번 세계에서 영영 사라졌고, 돌아올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명이 ‘죽음의 숲’이니 그쪽으로 문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들어갔다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거나,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변한다거나 하는 소문이 돌았고, 저도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 삶이 달라졌으니 옛날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거죠. 친부모님과 행복하게 살던 어린아이는 없습니다. 죽음의 숲 출신, 계승자의 아이, 소문의 생존자, 의사 케이만이 남아있습니다. 부모님은 이렇게 변하더라도 제가 살아남길 바라셨거나, 이기적이게도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 싫어서 저를 그곳으로 향하게 했겠죠. 

패륜적입니까? 글쎄요. 당사자인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찌 됐건 그 아이는 지금의 어머니에게 거둬졌습니다. 어머니는 자애롭진 않았지만,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수없이도 많은 아이를 키운 듯 보였지요.

내전은 계속 진행됐습니다만, 저는 숲에 들어온 이후로 무기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혹은 무기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그것이 어머니가 막아낸 것이란 걸 알았습니다. 숲이 무기들의 소리를 막아내고, 바람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기들을 없앴다고. 

어머니는 하루에 한 번씩은 숲의 주변을 돌며 악의를 가진 사람들을 혼내고, 다친 이들을 거둬 치료해내고 기억을 지워 내쫓곤 했습니다. 간혹 꽤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다친 사람들을 데려오고선 그들이 저를 가르치도록 내버려 두곤 하기도 했고요. 제 안전이요? 숲 자체가 어머니의 몸이나 다름없습니다. 제 안전이 위협될까 싶으면 어머니는 어디선가 나타나 그들을 발로 차내며 새로운 상처를 입히곤 더불어 숲 밖으로 쫓아버렸습니다.

어느 정도 숲 안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진 뒤의 일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천둥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고, 알 수 없는 어떤 덩어리가 숲의 북쪽에 떨어졌습니다. 상기했듯이 하늘에서 무기가 터지는 소리나 떨어지는 건 다 막아내고 있었지만, 그 천둥소리는 자연현상과 같은 거라 숲이 막아내진 못했을 겁니다. 다만 뭔가 떨어진 소리에 저와 어머니는 서둘러 이동했습니다. 숲의 중심까지 들릴 정도로 크고 둔탁한 소리였기 때문이었죠. 

소리가 난 곳을 따라 가보니, 온몸을 그을린, 어디 보자, 그래, 장성한 당신의 팔뚝보다 더 두꺼운 구렁이 같아 보이는 뱀 한 마리가 배를 뒤집어 깐 채로 수풀 위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전 진짜 그때 구렁이인 줄 알아서, 이리 말했습니다.


“구렁이?”


어머니는 드물게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것에게 다가갔습니다. 그을림과 상처가 사라진 흰 뱀으로 변화했고, 이윽고 어머니가 제 물음에 답했었죠.


“이건 구렁이 같은 뱀이 아니야. 용이다.”


아주 어린 유체는 아니라 너와 같은 외형으로의 변신도 가능하겠다. 라며 뱀을 들어 올리자 당시의 저보다 어린아이로 변해서 얌전히 잠을 자더군요. 그게 제 동생. 카일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적적했던 어린 시절이 동생이 생기면서 좀 더 다채로워졌죠. 시시때때로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고의 반복이었습니다. 여느 집의 아이들이나 다름이 없었죠. 저는 카일을 용가리라 부르고, 카일은 저보고 책벌레 안경잡이라고 하기도 하고. 서로 도움을 받기도 하고. 그렇게 성장해왔죠.

동생에 대해선 잘 아니,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해보라고요? 좋습니다. 먼 길을 떠난 사람을 먼저 말해도 될까요? 쾨헨의 이야기는 이 세계에선 끝났으니.

그는 그 숲이 있는 행성 출신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영원한 밤과 함께하는 행성의 출신이라 말 한 그는 전쟁에 차출됐다고 자신을 소개했었죠. 그는 무기 한 정 없이 숲의 끝자락을 붙들고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쓴 채로 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생존한 의무관에게서 의료기술 일부를 배웠기 때문에 어머니가 데려온 그 남자를 치료할 만한 힘은 됐습니다. 다만 사라진 그의 다리를 복구시킬 힘은 없었죠. 당시 어머니는 방법을 아는 듯했지만, 저와 카일에게 의족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려줬죠.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가 이렇게 전면에 나서게 된 것도 대단하다 싶습니다. 그 당시는 특히 더 심했는데, 자신의 영역이 망가지는 게 아닌 이상 어지간한 외부 일에 간섭하고 싶지 않아 하셨죠. 이에 대해서 저는 물어보진 않았지만, 쾨헨이 물어본 적은 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전면에 나서면 이 어린아이 놀이 같은 전쟁도 막을 수 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습니까?”


어머니는 모닥불에 땔감을 좀 더 넣고 불이 더 잘 일어나도록 부지깽이로 잿더미를 헤치길 몇 번 반복했습니다. 할 말이 다수였지만 밖으로 새어나가면 어머니가 소중히 여기는 몇 안 되는 것마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을 거란 생각이, 가끔은 들게 되는 그런 답이 어느 새에 넘어왔습니다.


“세계를 뒤흔들 정도로 커다란 전쟁의 한복판에서, 선봉에 선 적이 있었지. 몇 번을 죽고도 일어나고, 일어날 때마다 강해지는 자를 이길 수 없었다. 세계의 절반이 죽고 나서야 끝난 전쟁 위에 남은 건 잿더미와 그 잿더미 위에 서게 만들어 준 선봉장 위에 서겠다고 하는 또 다른 전쟁 주의자밖에 없었다.

위대한 대의? 가치? 전쟁은 계산적으로 보이지만 그 무엇보다 자기 파괴적이고 야만적이야. 죽은 생명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해. 나는 그렇게 이용당하고, 모든 것이 공空으로 돌아간 이후로는 힘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소중한 것을 만들지 않기로 했지만……. 그 이후로는 제가 잠에 빠져 듣진 못했지만, 그 이후로 쾨헨은 비슷한 질문을 하진 않았죠. 그가 미래의 선택지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그의 고향 행성으로 돌아갈 때나 알았습니다.

크라이슬러……. 당신들이 눈을 빛낼 이유인가요? 그 사람과 쾨헨은 좀 다른 시기에 만났습니다. 쾨헨이 부상병이었다면, 크라이슬러는 당시 무기상이었죠. 어찌 됐건 상처를 입고 숲에 다다른 건 맞기에, 어머니는 그를 회복시키기로 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여쭤본다면 이건 꽤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눈앞에 있는 건 환자고,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응당 그래야지요. 어머니와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의료진은 그런 생각을 할 겁니다. 크라이슬러도 그건 아는지 숲에서 지낼 시기엔 아무런 말도, 어떤 위협도 하지 않았습니다. 했다면, 아마 그대로 전쟁터 한 바닥에 꽂혀버리고 말았겠죠.

그 베일 아래에 뭐가 있었냐 물어보신다면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저도 그 베일 안쪽을 제대로 본 적은 없어서요. 어머니는 알겠지만, 그 건에 관해선 딱히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궁금하면 당사자에게 물어보란 답이 넘어온 적 있지만, 카일은 남의 얼굴에 관심이 없었고, 저도 딱히 그렇게까지 크라이슬러의 얼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생각보다 오래 이 숲에 눌러앉을 생각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생활하며 사는 삶이 꽤 괜찮게 느껴졌나 보더라고요. 바깥세상의 화약이나 먼지에는 자기도 이골이 났다는 듯 보였습니다. 결국, 뭐, 제가 성인이 된 때 같이 내쫓겼으니 된 이야기로 칩시다.

클라렌드가 발견된 건 저와 카일이 성인이 된 이후였습니다. 기나긴 내전이 끝나고, 사람들이 그제야 행정 양식을 갖추려고 시작한 그 시기를 맞춰 저와 카일, 크라이슬러가 숲에서 독립했습니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재화 주머니를 저와 카일에게 하나씩 준 리현은 주거와 몇 년 치 생존 비용은 될 거라고 말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 그랬지만 저와 동생은 오래 살아왔기에 해마다 한 번씩은 그녀의 숲에 방문했습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또 방문하면 쉬이 내치지는 못하시니 며칠 있다가 또 내쫓기고 그런 반복이었죠.

아직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기밀 정보들을 캐내는 걸 좋아하는 한 사람이 어디서 죽기 직전까지 맞고 숲으로 도망쳐왔으니 손을 급하게 빌리고 싶다며 어머니가 연락해온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뭐 치료는 어머니도 하실 수 있을 텐데 왜 갑자기 절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같이 불러온 크라이슬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클라렌드가 정부의 인류전능화 사업과 계승자 정보에 대해 캐고 다니다가 그렇게 됐다는 것과, 어머니가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우리를 불렀다는 걸 안 이후로는 좀 복잡해졌습니다. 잠깐, 그렇다고 클라렌드을 찾으려는 생각은 마세요. 찾는다고 찾아지는 사람도 아니고, 또 찾았다고 당신들의 목표인 도망자 크라이슬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순 없으니까요.

전 적어도 그 사람이 클라라에게서 선한 의도를, 클라라는 크라이슬러에게서 삶의 이유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범죄에서 손을 털었다면 우리로선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 책임을 다 지지 않은 건 문제겠지요. 어찌 됐건 그에 대한 정보는 이게 답니다.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가끔 어머니를 뵈러 갈 때쯤 한두 번 보는 게 다입니다만, 그때는 당신들도 몸을 사리는 중이지 않습니까? 제 기억을 뒤지기보다야 서아에게 찾아가 물어보시는 게 더 효율적이긴 하겠지만 지금 그 사람은 여러분도 감당 못 하는 사람 둘을 한꺼번에 감당 중이니 알아서 잘 생각하시는 게 좋아 보입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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