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힘을 다해 피하려 해도 어떻게든 엎어질 수 밖에 없는,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난 바로 엊그제였다.

아침부터 운수가 좋지 않았다. 회사 앞에서 막 신호를 받아 꼬리 물며 세이브해 들어가고 있었다. 강조해 말하지만, 난 잘못 없다. 근데 반대편에서 스포츠 칸이 클락션을 갈기며 존나 달려오는 게 아닌가. 겨우 빗겨 갔으나, 그것이 뭔가 김첨지 하루의 시발탄이었던 것 같다.

회사 업무는 원래 좆 같으니 넘기고, 퇴근 후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어 자주 가는 컴포즈로 향했다. 원래는 아아메만 마셨으나(곧 죽어도 아아메였다. 거기서 라떼를 내 돈 주고 사본 적이 없다), 그날따라 유독 라떼가 먹고 싶었다.

시발 그게 문제였다. 평소 같았으면 가게 바로 앞에 주차했을 것도 그날따라 괜히 머리 굴렸다가 맞은 편에 주차를 하더니, 쿠폰을 써야지, 하고 내렸으나 막상 쿠폰을 쓰려하니 휴대폰이 있어야 한댄다. 평소 휴대폰을 꼭 챙겨 내리던 내가 그날따라 하필 지갑만 들고 내렸던 거다. 게다가 차가 바로 앞에 있으면 다시 가서 챙겨오기라도 할텐데, 맞은 편에 있으니 그것마저 쉽지 않았다.

결국 내 돈 다 주고 고른 아이스돌체라떼와 아이스헤이즐넛라떼. 그게 문제였다. 평소 같으면 커피만 쏙 가져와 차 홀더구멍에 쏙쏙 넣어놨을 것도, 그날따라 괜히 트레이가 편할 것 같아 굳이 트레이에 달라며 들고 왔다. 평소엔 커피가 셋이어도 남은 하나는 허벅지 사이에 껴놓고 갔으면서, 그날따라 하필 트레이가 지구 중력과 자기 중심 정도는 제 알아서 잡을 것 같아 조수석 바닥에 놔두었다. 씨이발 그게 문제였다.

아파트 앞 로터리를 돌다가 쏟아졌다. 난 멘붕이 왔고, 주차한 뒤 코일매트를 들었을 땐 이미 커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라떼가. 그것도 연유와 헤이즐넛 시럽이 들어간 라떼가.

어제 회사에서 하루종일 조수석에 라떼 쏟았으니 말 걸지 말라며 행패를 부린 탓에, 오늘 아침 다른 팀 사원이 개인 차량 세정제를 가져와 닦아주긴 했지만 뭔가 아직도 기분이 이상하다. 마냥 나를 탓하기엔, 우주의 탓이 크다. 이건 나 혼자 잘못했다기엔 너무... 아다리가 안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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