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비님, 온님과 함께 푼 썰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천적인 남성 임신이 가능한 세계관 입니다. 오메가버스를 생각한 것은 아니나, 그렇게 생각하고 읽어주셔도 상관없습니다.



와카야마의 어느 작은 마을. 십여년 전  마을에 새로 종합쇼핑몰이 들어온 후 마을 상가가 죽은 것까지 평범한 수순을 밟은 곳이다. 대규모 자본을 낀 종합쇼핑몰이 들어서는 것은 대세에 따른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고 그건 여기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종합쇼핑몰이 들어선 후 소비는 편리해졌지만 마을 사람들의 선순환은 끊어진 시점에서 마을은 조금 활기를 되찾았다. 이유는 단 하나다. 온천을 포함한 휴양지의 개발. 아직 자연이 많이 남아있는 게 장점인 곳이라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레 기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휴양지의 개발 사업을 담당하러 도쿄에서 단신부임한 것은 LA 유학 경험을 가지고 있는 남자, 니지무라 슈조다.

민족계 자본의 회사에 다니고 있는 니지무라는 해외에 있는 본사와 통역 없이 직통으로 연락할 수 있는 영어 실력 덕분에 현장에 와야만 했다. 회사에서 숙소도 독신자용 원룸으로 하나 떡하니 잡아주고, 단신부임이라 그 인센티브도 월급에 추가되어 나오지만, 니지무라는 반쯤 억지로 떠맡기듯 온 것이라 그리 기쁜 마음은 아니었다.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고 나서 몇달, 니지무라는 그동안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우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커다란 대형종합쇼핑몰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편의점은 좀 작고, 그래서인지 도시락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 쉽게 물려버렸다. 상가의 라멘집이나 튀김집도 있었지만 매번 외식을 한다면 건강에도 좋지 않고 돈도 돈 대로 나간다. 사실 니지무라가 직접 만들어 먹을 결의를 한 것은 이 한달만에 찐 살을 보고 경악해서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니지무라의 원룸에서 종합쇼핑몰까지는 차로 15분. 종합쇼핑몰이지만 지하는 마트형식이다. 니지무라는 먼저 주차를 해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트 안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다양한 상품이 갖춰져 있었다. 밑반찬도 팔고 있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니지무라는 카트를 끌고와 본격적으로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아프고 바빴던 탓에 동생들을 뒤치닥꺼리를 포함한 집안일을 십여년 가까이 해왔다.  

일주일치 식단을 짜고, 그 재료들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렸다. 조금 둘러보다가 중앙에 있는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쪽 마트 캐셔가 손이 빠른지 줄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담배 한대 피고 싶은데.'

대학에 다니면서 배운 담배는 이제 니지무라의 삶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골초까지는 아니어도 가끔 한대 피우고 싶을 때가 공연히 있다. 하지만 이제와서 줄을 빠질 수도 없다. 니지무라는 반쯤 멍하니 담배 생각을 하면서 물건을 컨테이너 위에 올렸다. 마트 캐셔가 빠른 속도로 바코드를 찍고 물건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손놀림을 멍하니 바라보던 니지무라가 문득 카드를 빼들며 캐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카시?"

캐셔가 고개를 들었다. 성장한 기색은 있었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의 그 모습이 얼굴에 남아있었다. 가슴팍에 달린 이름표를 파악했다. 정확히 니지무라가 기억하고 있는 후배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캐셔는 가만히 고개를 다시 내리며 말했다.

"착각입니다."

"아니아니아니, 너 아카시잖아?"

"착각입니다."

"이름표 달고 그런 말 해도 설득력 없거든."

"죄송합니다만, 손님, 제 이름이 아카시인 건 맞습니다만, 손님이 아는 아카시는 아닙니다. 3,184엔입니다."

그 말에 니지무라가 뒤를 바라보니, 어느샌가 줄이 길어져 있었다. 니지무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얼른 계산을 마쳤다. 계산을 하고 다시 물건을 집어넣은 카트를 한손에 잡고, 니지무라는 그 마트 캐셔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빠른 손놀림으로 주변과 비교해도 유독 빠른 속도다. 

"이야, 아카시쨩, 오늘도 고생이네."

한참 바라보고 서 있자니 왠 덩치 크고 수염이 잔뜩 난 남자가 아카시에게 말을 걸었다. 니지무라는 그가 자신이 아는 아카시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카시는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바코드를 찍고 있었다. 

"359엔입니다."

남자가 동전지갑을 꺼냈다. 남자가 아카시가 내민 손에 동전을 하나하나 뚝뚝 떨어뜨리며 능글능글 웃었다. 아카시의 손을 감싸쥐고 손가락으로 아카시의 손등을 매만진다.

"오늘도 예뻐, 응?"

"다음분 와주세요."

아카시가 자연스레 손을 빼고 다음 사람을 불렀다. 많이 경험해본 듯한 대응에, 니지무라는 뒷통수가 얼얼했다. 크게 한방 얻어맞은 것 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옷도 꽤 낡은 듯한 옷이다. 물론 더러워져도 괜찮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지무라가 알던 아카시 세이쥬로가 입을만한 옷은 아니다. 물론, 성희롱에 익숙해지는 것도 아카시 세이쥬로가 당할만한 일은 아니다. 니지무라는 담배가 매우 피고 싶어졌다. 큰 충격에 아직 얼얼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니지무라는 카트를 끌고 흡연실로 향했다.

'아카시잖아, 그거.'

아무도 없는 흡연실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던 니지무라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을 떠올렸다. 표정이 가라앉아 있고, 지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체 왜 이런 곳에서? 후계자 수업인가? 그럴거라면 도쿄에서, 크게 봐줘도 회사일을 하고 있을 것이지, 마트 캐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렇게 성희롱까지 당해가며. 

니지무라가 세 개피째 담배를 뻑뻑 피우다가 손목시계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내일도 출근이니까 이제 슬슬 들어가봐야 한다. 니지무라는 종합쇼핑몰 건물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차에 물건들을 옮겼다. 그러는 와중에도 니지무라의 머릿속은 아카시로 가득 차 있었다.


"안녕, 아카시."

"사람 잘 못 보셨어요."

니지무라가 맥주 네캔들이 한묶음을 아카시에게 건네주었다. 아카시가 빠른 손놀림으로 바코드를 찍고 가격을 말해주었다. 니지무라가 돈을 주면 아카시가 재빠르게 거스름돈을 준다. 이게 몇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제 사야할 물건의 레파토리도 떨어져 간다. 그래도 니지무라는 포기할 수 없았다. 탄탄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던 아카시가 왜 이런 시골마을에서 마트 캐셔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만 했다. 오지랖일지도 몰랐다. 아카시의 인생에 니지무라가 끼어들 틈은 중학교 때 니지무라가 떠난 그 시점에서 사라져 있었다. 

니지무라는 뭐라 말을 이어 나가려다가 포기했다. 첫날 본 성희롱남의 모습이 뇌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니지무라 자신도 그 성희롱남과 다를 바 없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옆 자리에서 손님을 계산해주고 있던 다른 여성이 니지무라 자신이 아카시 줄에 서자 눈을 번뜩거리며 니지무라 자신과 아카시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다. 

니지무라는 머리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실제로 아카시에게 정면돌파를 하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서 정보를 캐고 있었다. 아카시에게 호의적인 듯, 니지무라에 대해 날선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카시에게 부정적인 듯 니지무라에게 쫑알쫑알 악의가 섞인 말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니지무라에게 이것저것 말해준 사람의 말에 따르면 아카시는 3년전 다른 지점에서 이쪽으로 왔다고 한다. 남자를 홀리는 데 천재적인 듯 매번 다른 남자들이 달라붙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니지무라에게 아카시는 아까우니까 관심을 두지 말라는 뉘앙스였다. 니지무라는 그건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아카시가 그런 성격인 것도 아니었고, 처음 봤을때 명백히 성희롱을 당하는 것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능숙하게 넘기는 것도. 하루 이틀 당한 것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아카시는 낡은 옷을 입고 있어도 예뻤다. 니지무라의 콩깍지는 아니다. 그리고 성희롱의 원인은 백퍼센트 가해자다. 

하나 확실한 것은, 아카시는 이 시골마을에 제대로 섞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시는 이곳에 살고 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느 날 포기하지 않고 쇼핑몰를 찾아간 니지무라를 반긴 것은 아카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니지무라가 몇주째 매일 쇼핑몰을 들락날락하며 아카시를 찾는 것이 유명해졌는지, 상대는 니지무라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띄웠다. 사생활 보호라던가 프라이버시 존중 같은 건 이런 시골마을에서는 기대 하지 않는 게 좋다.

"아카시군이라면 오늘은 휴일이에요."

"아, 그렇습니까."

"아들이 아프거든요."

아들. 니지무라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멍하니 서있는 니지무라의 모습을 신경도 쓰지 않고 캐셔가 달걀 12개 들이를 계산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면 힘든 일이 많죠. 사고를 쳤으니 감당을 하는 건 당연한 일지만요."

곱게 웃은 캐셔가 니지무라에게서 돈을 낚아채 계산하고 거스름돈을 거슬러 주었다. 캐셔가 무슨 의도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몰랐지만, 한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니지무라에게 두번째로 큰 충격을 주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다음 날에는 아카시를 볼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손에 집히는 물건 하나를 집고 아카시가 서 있는 계산대에 줄 선다. 오늘은 샐러드팩이었다. 

"안녕, 아카시."

"사람 잘 못 보셨습니다."

아카시는 여전히 빠른 손놀림으로 바코드를 찍고, 니지무라의 손에게 돈을 받아가 계산했다. 손놀림은 능숙하지만, 얼굴에는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다. 원래 동안인 타입이라 더욱 어리게 보일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아이라. 니지무라의 머릿속에서 의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마 그게 맞다면 아카시가 다른 누군가와 잔 것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몇주가 더 지났다. 니지무라는 이제 아카시의 출근시간과 퇴근 시간을 알 수 있었다. 뒤를 밟은 것은 아니고, 불규칙하게 출퇴근을 반복하다보니 아카시가 없는 날과 있는 날을 대조해서 알아낸 것이다. 거기까지만해도 훌륭한 스토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걸로 악용하지는 않았다. 

그 날은 니지무라가 헐레벌떡 마트에 들어섰다. 퇴근 시간이 늦어져 아카시의 퇴근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캐셔 중에서는 가장 오래 일하는 아카시 답게, 마감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계산대에 서 있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은 탓에 오랜만에 달달한 것이 먹고 싶어서 초콜릿을 집은 니지무라가 아카시에게 계산 했다.

"안녕, 아카시."

"사람 잘 못 보셨습니다."

언제나와 같은 교환을 했다. 니지무라는 이제 자신이 아카시에게 무슨 일을 원하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렇게 꿋꿋이 모르는 척 하는 후배를 이제는 존중해줘야 하지 않을까?

사실 오늘 도쿄에 있는 직속상사에게 전화를 받았다. 

[요새 어떤 마트캐셔한테 집적대고 있다며?]

"네?"

[들어보니까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너까지 그러지 마라.]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게 변명이 되는 게 아니지. 아무튼 적당히 해. 회사 측에 항의 전화가 왔어.]

"…네."

항의전화를 한 것이 누구인지는 대략 짐작이 갔다. 니지무라가 마트를 가는 시간에 아카시 옆 라인을 담당하고 있는 캐셔인데, 아카시에게 호의적인 듯 니지무라가 아카시에게 접근하면 날선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이제 정말 그만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쇼핑몰을 나섰다. 담배나 한대 피고 갈까, 그렇게 생각하며 주차장이 아닌 1층으로 나온 니지무라의 시야에 어린 아이가 들어왔다.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슬쩍 뒤로 숨겼다.

'이 시간에?'

벌써 달이 허공에 걸려 있는 시간이었다. 적어도 저런 어린 아이가 밖에 나돌아다닐만한 시간은 아니다. 중학교 때부터 유명한 오지랖으로 니지무라는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검은 머리에 삐쭉 튀어나온 입. 니지무라는 순간 아이의 얼굴을 보고 낯익다는 생각을 했다. 이 지방에 친척은 없는데. 여기와서 알게 된 사람의 아이인가? 니지무라는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

아이는 잔뜩 삐딱한 얼굴로 니지무라를 올려다보았다. 

"너, 부모님은?"

"…."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니지무라는 아이가 걱정이 되어 읏챠,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당신이지."

"응?"

"엄마 괴롭히는 사람."

"응?"

엄마? 내가 누굴 괴롭혔나? 니지무라는 머릿속으로 요근래 일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문득, 순간적으로 아이의 얼굴이 거울 속에서 자주 보던 얼굴과 닮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니지무라의 머리는 나쁘지 않았고, 순식간에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

니지무라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니지무라의 뒤에서 누군가를 발견하고 반갑게 소리치며 쇼핑몰쪽으로 달려나갔다. 니지무라가 잔뜩 창백해진 얼굴을 한 채 끼긱, 끼긱, 소리가 들릴 듯한 움직임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예상대로 아카시가 서있었다. 아카시의 얼굴은 달빛 아래에서도 확연히 눈에 띌 정도로 창백해져 있었다. 아카시가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자신의 몸 뒤로 숨겼다.

"아카시, 그러니까, 그 아이는…,"

"제 아이입니다! 절대로 당신과는 관계없어요, 니지무라씨!"

그건 아카시 세이쥬로의 패배 선언이기도 했다. 끝까지 모른 척 하려던 아카시 세이쥬로의. 그러나 패배 선언을 받아낸 니지무라는 그걸 생각할 경황이 아니었다. 뒤로 숨긴 손에서 담배가 툭하니 떨어졌다. 니지무라의 얼굴이 괴상해졌다. 머릿속에 허리케인이 불고 있는 것 같았다. 니지무라는 그 자리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이 없다.

다만 다음날 아침 사무실 책상 앞에서 정신을 차렸다. 어떻게 출근은 했다. 다만 머릿속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내 아이라면 중학생 때 아이를 가졌다는 건데 그럼 애가 애를 낳은 거잖아. 애가 애를 낳고 어떻게 살았으며 왜 나에게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머리를 움켜쥐고 있던 니지무라가 자신의 생각에 하나씩 토를 달았다. 

'어떻게 살았긴, 지금처럼 여기저기서 안 좋은 시선이나 받으면서 노동하면서 살았겠지. 그리고 나한테 연락해봐야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있었을까? 그건 아카시도 알고 있었겠지. '

니지무라는 그 날부터 쇼핑몰에 있는 마트에 발길을 끊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아카시가 모른 척 한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지무라의 머리가 복잡하건 말건 시간은 지나갔고, 일은 진행되고, 결과가 나와 본사에서 1차 시안이 통과되었다. 회식이 벌어졌고, 니지무라도 거기에 참여했다. 니지무라는 복잡한 머리를 잊기 위해 술을 마구 들이켰다. 주변에서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니지무라가 최근 몇일동안 방황하던 것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마침내 니지무라를 내버려두었다. 

줄창 술만 마시던 니지무라가 사람들이 2차를 가는 틈에 몰래 술자리에 빠져나왔다. 니지무라는 발길이 닿는대로 걸었다. 어느사이엔가 달이 휘영청 떠있었다. 꽤 먼거리를 걸었던 듯 싶었다. 눈 앞에 얼마전까지만 해도 매일 다녔던 종합쇼핑몰 건물이 보였다. 니지무라는 술이라도 좀 깰 겸 입구에서 서 있었다. 들어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슬슬 쇼핑몰에도 불이 꺼지고,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아카시."

안에서 나오던 아카시가 니지무라의 모습을 보고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손을 꽉 쥔다. 니지무라는 옆에 아이가 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주춤거리며 니지무라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아카시의 모습을 보고 니지무라의 상식이라던가, 자존심 같은 둑이 후두둑 무너졌다. 

"아카시, 이러지 마라…."

"!"

"나한테 이러지마, 제발, 이러지마…."

니지무라가 아카시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니지무라의 품에 안긴 아카시가 눈을 크게 떴지만 니지무라는 신경 쓰지 않고 아카시를 꽉 껴안았다. 아카시의 어깨가 니지무라의 눈물로 젖어들어갔다. 

"아! 나쁜 아저씨가 엄마한테 나쁜 짓 한다!"

아이의 외침에도 니지무라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저 애, 이름이 뭐야?"

울음기 잔뜩 서린 목소리에 아카시가 천천히 어깨의 힘을 뺐다. 니지무라의 품에 꼭 안겨, 아이의 손을 잡고. 그렇게 서 있던 아카시가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슌, 이에요. 방패라는 뜻의."

니지무라가 아카시를 더욱 힘 줘 껴안았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슌의 슈는 니지무라 슈조의 슈다. 자신의 이름에게서 발음을 따온 니지무라와 아카시의 아이. 

"그래, …그래."

웅얼거리는 듯한 울먹이는 말에 아카시도 눈물을 뚝 흘렸다. 물방울 한개로 시작된 울음은 곧 억수와 같은 울음이 되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니지무라씨, 미안해요…"

갑자기 낯선 남자의 품에서 울어버리는 모친의 모습이 낯선지 아이가 "엄마…." 하고 불렀다. 니지무라가 한손에 아카시를 껴안고 빈 한 손으로 아이를 안아 올렸다. 아이는 놀란 듯 했지만 니지무라의 품에 안겨 있었다. 오히려 니지무라에게 들어올려진 탓에 가까워진 모친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작은 손이 아카시의 뺨에 닿였다. 

"엄마, 왜 그래."

우는 어른 둘. 바깥에서 보이기에는 부끄러운 형태였지만 니지무라도 아카시도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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