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여자 마법사, 말라





브레실리안 숲은 풀과 나무의 향기, 오즈마는 흙과 먼지, 그리고 쇠를 재련하는 용광로의 냄새.

그러나 데네림의 공기는 그야말로 인간들의 도시답게, 약간의 악취가 난다. 


인간들의 도시에 온 것은 꽤나 오래간만인데, 자신도 같은 인간인 주제에 왜 이렇게 반갑긴 커녕 불쾌하고, 어딘가 낯설기까지 한걸까? 말라는 제법 이런저런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는 거리를 걸으며, 누군가가와 부딪칠 수 있을 정도로 밀집된 지역이 아주 오래간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수라장이었던 로더링과는 다르게, 재앙의 그림자라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냥, 사람이 이렇게 많은 광경은 오래간만이라서."


하지만 말라는 아무튼 그런 생각들을 알리스터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럴싸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이 일행중에서 가장 '인간다운' 인간을 뽑아본다면 그건 알리스터가 아닐까, 그리고 알리스터는 이 도시를 나름 좋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알리스터는 꽤나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라를 쳐다보며 그녀의 손을 슬쩍 잡아왔다. 말라는 아까보다 속이 조금 더 나아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악취와 우글거리는 사람들의 틈에서 걷는 것이 불편했다.


거리에는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상인들은 물건을 팔고, 빨랫감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여인들과 성을 지키는 경비병들이 보이는 곳. 데네림은 재앙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도시였고, 가장 '사람 냄새가 진한' 도시였다. 그리고, 말라는 자신이 이 도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는 한, 평생을 마법사의 탑에 갖혀 살았으니까. 


그래, 분명 래드클리프나 로더링도 인간이 주로 거주하는 인간의 도시였다. 로더링은 '마을'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가까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인간들이 살았다. 그러나 데네림처럼 크고, 다양한 인간들이 있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곳은 전쟁터나 전쟁이 휩쓸고 간 잔재에 더 가까웠다. 그러니 데네림처럼 부자인 사람, 가난한 사람, 행복해보이는 사람, 불행한 사람 같은 구분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데네림은 달랐다. 데네림은 '더 괜찮은 삶'을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확연히 눈에 보였다. 마법사의 탑에서는 어디에서 왔든, 종족이 무엇이든 그냥 마법사이기만 했는데.


탑 바깥의 세상은 이런 걸까? 만약에 세상을 대재앙으로부터 구하게 된다면, 이런 광경들을 지켜야 하는걸까? 그리고, 앞으로 알리스터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이런 곳일까?


말라는 이 광경이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분명 데네림은 큰 도시지만, 안티바에 간다면 더더욱 놀랄걸?"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제브란은 씨익 웃으며 자연스레 그녀의 한 쪽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알리스터가 잡은 손의 반대쪽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모리건은 말라의 귀에 들릴 정도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안티바가 그렇게 사람이 많아?"


"오, 물론이지. 이곳은 그나마 날씨가 덥지 않으니 악취가 나지 않는거야. 더 많은 사람, 그리고 더 높은 기온. 그야말로 주정뱅이가 아니면 코를 막고 다녀야 할걸?"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제브란의 이 노린듯한 화제 전환이 반가울수밖에 없었다. 

제브란은 온갖 '진지하고 우중충한' 것들을 싫어했다. 오죽하면, 그 시체와 마물로 가득찬 답답한 땅굴 속에서도 말라에게 농담을 하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눈치 빠른 제브란이라면, 지금 말라가 왜 기분이 안좋은지는 진작 다 눈치챘을 것이고, 최대한 그녀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저런 말을 꺼낸 것이다.


하지만 알리스터는 그런 제브란의 성향과 비슷하면서 달랐다. 그는 정말로 중요한 시점이나 진지해져야 할 때에 이런 식으로 물을 흐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가보지도 않은 도시에 편견 생기려고 하네."


그래서인지 알리스터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라의 손을 조금 더 꽉 잡았다. 마치 그녀의 시선이나 생각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것을, 손에 힘을 좀 더 주면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물론, 아프지 않게 잡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말도 안될 만큼 순해빠진 녀석이지만 말이다.


"알리스터, 너는 페럴던을 한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던가?"


그래서인지 알리스터와 제브란의 대화는 묘하게 기싸움으로 이어졌다. 양 옆에 키 큰 남자들을 두고, 그 둘이 기싸움 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되자 말라는 모리건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물론 모리건은 다시 야영장으로 탈출이나 하고싶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라는 정말이지 렐리아나가 보고싶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번에 알리스터의 왕위계승 문제로 어색해진 둘의 사이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국경지대도 페럴던 밖이라고 말해준다면, 아예 없진 않을걸."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는 걸로 하지."


정말, 인생에 쉬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말라는 마법 지팡이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온화하게 웃었다.


"우리, 길 한복판에서 이러지 말자."


"알았어, 알았다고."


"일단 그 지팡이 내려놓고 말해, 내 사랑."


아무튼 두 남자를 닥치게 만드는 것에는 무력만큼이나 좋은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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