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럼블디오





 

 

 

“...으응, 카이...”

“일어나, 디오.”

 




제 귀에 작게 소곤거리며 목덜미를 지분거리는 카이에 디오는 눈을 감고 살풋 웃어보였다. 아주 작고 미약한 웃음 소리였지만 듣기 좋은 소리였는지 카이가 좀 더 짓궂게 손을 놀렸다. 흐흥, 간지러워요- 하고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디오가 마치 꿈만 같았다.

 



“눈, 떠. 디오.”

 



아직 감겨있는 두 눈 위에 입을 맞추자 검은 눈동자가 담긴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는 살짝 열렸다. 그제야 제가 카이와 부끄러운 모습으로 다리가 얽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지 아, 하고 작게 앓고는 카이를 살짝 떠밀었다. 귀부터 발갛게 달아오른 것이 귀여워 허리를 단단히 잡고 꽉 안자 디오는 당황한 듯 눈을 굴렸다.

 




“이제 곧, 레이가 와요.”

“다른 사람 말고 내 이름.”

“카, 카이!”

 




놀리듯 진득한 손길에 다급해진 디오의 목소리 사이로 가벼운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번의 노크에도 대답 없는 디오에 차분한 목소리의 레이가 들어갈게요, 하고 말했다. 당황해 얼굴부터 목까지 붉어진 디오를 감상하던 카이는 문이 열림과 동시에 문을 등지고 디오를 끌어안았다. 작은 체구의 디오가 카이의 몸에 가려져, 레이는 탄탄한 등을 마주하게 되었다. 카이가 고개만 움직여 레이를 바라보자 알겠다는 듯 곧바로 몸을 돌려 벽을 바라보았다.



하얀 몸은 어디까지 발갛게 물들 셈인지 쇄골 아래까지 붉어져 있었다. 저 혼자 보기에도 아까운 몸이었지만 더 했다간 울어버릴 것만 같아 짓궂은 표정을 감추었다. 카이가 몸을 일으켜 대충 제 옷을 꿰어 입고는 바닥 여기저기에 떨어져있는 디오의 옷을 챙기자 카이의 움직임을 따라 디오의 커다란 눈도 따라 움직였다. 가져온 옷을 직접 입혀주며 눈을 맞추자 디오의 고개가 절로 아래를 향했다. 잡아먹힐 듯한 맹수의 눈빛은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웠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식사를 물렀다고 하기에 걱정이 돼서 왔더니 괜한 걱정을 했네요.”

“아아.”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건 좋은데 식사까지 거르면서 하지는 말아요.”

 




레이의 말에 바른 자세로 앉아있던 디오가 얼굴을 붉히며 다시 소년의 모습을 해 보였다. 디오의 목으로 눈을 돌리자 옅은 멍자국을 머금었던 목은 붉은 잇자국을 품고 있었다. 제 것이라는 표식을 심어놓은 듯한 제 주인의 모습에 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저녁 식사 즈음, 창가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디오가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여러 명의 시종에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렸다. 머리를 가볍게 매만진 듯 차분히 넘긴 카이가 정사를 볼 때 입는 예복을 차려입고 디오의 앞에 멈춰 섰다.

 



“오늘 만찬회에 널 데려갈 거야.”

“잠시만요, 카이!”




디오의 대답도 듣지 않고 뒤에 있는 시종에게 눈짓을 하자 빠른 손놀림으로 옷이 걸쳐졌다. 제 나라에서 입던 옷들 중 가장 얇은 옷을 대충 입고 지내던 디오에게 카이의 나라 예복이 걸쳐지자 어색한 듯 옷깃을 만지작거렸다. 추위 때문에 두툼한 옷을 즐겨 입는 제 나라와는 다르게 얇고 부드러운 소재의 옷이 주를 이루는 카이의 나라였다. 같은 디자인에 색만 다른 두 예복을 각각 차려입은 카이와 디오는 대신들이 기다릴 만찬장으로 향했다.

 



허리를 감싸 안고 함께 만찬장으로 가던 카이는 점점 고개를 떨구며 움츠리는 디오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내딛던 발걸음은 조금씩 무거워졌고, 곱게 입혀진 옷소매도 쥐었다 놓으며 긴장하고 있었다. 디오, 하고 작게 부르니 겁을 집어먹은 표정의 디오가 고개를 들었다.

 





“고개 숙이지 마. 겁먹지도 마.” 

“읏,”

“너는 내 사람이고, 여기는 네 나라야.”





거칠게 붙잡힌 턱과 잡아먹을 듯 사납게 빛을 내는 카이의 눈빛에 디오는 가만히 서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곧 삼켜지는 제 입술에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입 안을 부드럽게 헤집는 그러면서도 거칠게 탐하는 카이에 디오는 힘겨워했다. 볼품없이 내뱉어지는 제 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이는 디오의 아랫입술과 턱을 살짝 물어댔다. 간지러워 고개를 살짝 틀자 뒤따라오던 카이와 디오의 시종들이 모두 벽을 향해 돌아서있는 것이 보였다. 부끄러운 마음에 카이와 살짝 떨어지자 카이가 다시 디오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 시종들도 천천히 몸을 돌려 따라 걷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웠던 만찬장은 카이와 디오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제 나라의 예복을 차려입은 디오에게 날카로운 시선들이 닿아왔다. 곱지 않은 시선과 다시금 들려오는 디오에 대한 수근거림에 카이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제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카이의 손을 살며시 떨어뜨리려 했지만 카이는 더욱 끌어당길 뿐이었다.

 




“...카이, 놓아주세요...”

 




허리 위에 놓인 손을 잡고 디오가 애원하듯 말하자 카이가 살풋 웃고는 디오의 귓가에 속살거렸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이대로 안아버리고 싶으니.”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디오의 허리선을 야릇하게 쓸어내리는 카이였다. 그에 저 혼자만 달아오른 얼굴이 부끄러워 디오는 고개를 푹 숙였고, 카이는 힘없이 안겨오는 디오와 함께 제 자리로 향했다.

 



공식적인 만찬회에 예복을 입혀 디오를 데리고 나온 것은 디오가 왕의 사람임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그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 함을 뜻했다. 더불어 어린 왕이 남색을 밝힌다고 공식화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성 안에서 조용히 떠돌던, 왕을 사로잡은 타국의 왕족 이야기가 사실임을 증명한 셈 이었다. 거침없는 어린 왕의 행동에 어린 귀족들은 동경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나이 지긋한 늙은 대신들은 이런 전례 없는 카이의 행동에 혀를 차거나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

 




“언제부터, 왕의 사람을 함부로 가벼운 입에 올렸지.”

 




날 선 카이의 말에 만찬장은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지난 번 북방의 영주가 머리를 잘리고 성의 시종들이 목소리를 잃었다는 흉흉한 이야기는 대신들 사이에서 빠르게 오고갔다.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는 카이에 모두들 고개를 숙였고 그중에는 몸을 떨어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굳어진 표정을 풀고 한쪽 입 꼬리만 올려 웃던 카이가 식사를 시작했고, 레이를 포함한 몇몇의 사람들만이 식사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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