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드림 60분

*주제: 달력

*쿠로코의 농구 아카시 세이쥬로(오레시) 드림





마이 러블리 다이어리





나는 다이어리 쓰는 걸 좋아한다. 정확히는 다이어리의 달력칸에 할 일을 이것저것 짧게 써놓고 그 할 일을 끝낼 때마다 스티커를 붙여서 표시하는 걸 좋아한다. 하루에 몇 번씩 다이어이를 들여다보는 게 취미이다보니 나름대로 엄격한 기준도 정해져 있다. 다이어리에만 쓰는 마스킹 테이프나 스티커는 내 나름의 색과 크기 기준을 통과해야만 구입하고, 다이어리에만 쓰는 펜도 따로 정해져 있다.


나의 다이어리 꾸미기에 대한 열정을 같은 반의 아카시는 '신기한 취미'라고 평가했지만, 글쎄 내가 보기엔 매일 땀 흘리면서 농구만 하는 쪽이 신기한 취미 같다. 어떻게 그런 고통을 즐길 수 있는 거지. 운동이라곤 숨쉬기 밖에 모르는 내가 보기엔 거의 세계 불가사의에 가깝다고.


그렇게 말하자 아카시는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가,


"글쎄, 그건 취미라기 보다는 신진대사에 가까운데."


라고 대답했다. 


취미가 아니라니 어떤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건 알겠어. 별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아카시는 짧게 웃었다.


"봐도 될까?"

"응, 마음대로."


다시 다이어리를 펴서 내일 모레 도서관에 책을 반납할 것이라고 쓰고 나니 내 알록달록 다이어리를 신기한 듯이 구경하던 아카시가 다음주의 텅 빈 날짜를 가리켰다.


"시험 날짜는 표시 안 해뒀네."

"으윽."


일부러 외면하고 있던 걸 굳이 말하지 마. 피도 눈물도 없는 수석 녀석이. 어떻게 사람이 입학 할 때부터 올해까지 내내 모든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수 있죠. 심지어 농구는 작년 전국대회 우승에 윈터컵 준우승이라니 문무양도라고 하기에도 지나친 설정 과잉 사기 스펙이다.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야."


재수 없어.


투덜거리면서 아카시의 지적대로 시험 날짜를 표시해뒀지만, 그 뒤로 일정을 이것저것 추가하면서도 시험 공부를 쓰지는 않았다. 하기 싫으니까.


"공부는 안 할 거야?"

"할 거야…가끔은."


숨 쉬는 게 질리면 한 번쯤은 할 수도 있다. 양심이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교과서를 한 번 들춰보기는 할 것이다.


"써놓지 않았잖아."

"여기에다 써놓으면 꼭 해야 할 것 같잖아…."


아무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루고 싶은 것이 공부라는 녀석인 것이다.


"흐음."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어떤 눈 말이야?"


아카시가 고양이 같은 눈을 좁히면서 되물었다. 차마 내 입으로 태어나 처음 보는 외계인을 관찰하는 NASA의 연구원 같은 눈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아마 반 정도는 내가 지레 찔린 것일 테니까.


"그렇게 찔려하면서 공부할 생각은 안 드는구나."


사람 마음 읽지 마.


"그래도 공부 안 하면서 높은 성적을 바라진 않는 게 저의 마지막 양심이라고나 할까요…."

"과연. 양심이 아주 없지는 않네."

"팩트 폭력하지 말아줄래…."


아카시는 여전히 대단히 신기한 생명체를 관찰하는 듯한 눈을 하고서 나와 내 다이어리를 번갈아 보았다. 물론 농구도 잘하고 학생회장도 빈틈없이 해내는 주제에 1등을 도맡아 하는 아카시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일 게 틀림 없기는 했다. 그래서 더 재수 없지만.


"아카시 군은 대체 공부 언제 해?"


내 물음에 아카시는 교과서를 꺼내면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이해하면 따로 공부할 시간을 내지 않아도 학교 시험은 어렵지 않잖아?"


역시 재수 없다. 하지만 조금 귀가 솔깃하긴 했다.


"나도 그렇게 해볼까…."

"글쎄,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뭐라고. 그렇게까지 단언하기냐.


뭐라 항의하기도 전에 수업종이 쳤다. 언제나 정시에 도착하기로 유명한 고전 선생님이 딱 시간을 맞춰 교실문을 여는 바람에 허둥지둥 교과서를 꺼냈다. 어디더라? 서둘러 페이지를 찾고 있는 사이 아카시가 손을 뻗어 내 책을 대신 펴주며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너는 늘 졸잖아."


그 말도 반론의 여지가 없는 팩트라서 나는 얌전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카시의 말은 오늘도 신나게 졸다가 수업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눈을 뜬 것으로 증명되었다.


노트에 후대에 발견되면 해석 되지 않아 7대 미스터리에 등극할 법한 휴먼졸림체 상형문자를 새겨두고 깨어나는 것은 나에게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었다.


"잘 잤어?"


아카시가 이렇게 물어오는 것은 드문 일이었지만. 뻑뻑한 눈을 껌뻑거리면서 하품을 하고 나니 아카시가 어딘지 웃음기 어린 얼굴로 내 노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는 것을 발견했다.


"뭘 봐."

"이렇게 의미불명인 글씨를 많이 써놓는 것도 재능일까 싶어서."


얄미워 죽겠네. 아카시를 한 번 흘기고는 노트로 시선을 돌렸다가 의외로 아카시의 꽤 표현이 온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글씨라고 봐주기는 했군. 도저히 해독할 수 없다.


"으음…."


어쩐다. 필기라도 빌려야 하나? 물론 공부는 안 하긴 하지만 이런 상태의 노트를 방치하는 것도 역시 양심의 문제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 누구한테 빌리지. 내 친구들은 나랑 크게 수준 차이가 없는데.


"알려줄까?"


고민하는 나를 구원한 것은 아카시의 한 마디였다.


"어?"

"필기 빌리고 싶은 거 아니었어?"

"그렇긴 한데…."


갑자기 전교 1등의 필기라니 마음 속의 허들이 너무 높다. 그야 노트를 빌려준다면 감사하긴 하지만….


"진짜로?"

"대신."


아카시가 손짓으로 가리킨 것은 내 다이어리였다. 왜죠? 떨떠름한 기분으로 다이어리를 펴서 건네자 아카시가 펜을 집어 이번주 주말의 빈 칸에 멋대로 글씨를 써넣었다.


방과 후

도서관


…음?


이거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착각인가요?


"나는 따로 필기를 하지 않으니까 이 날 알려줄게."


물론 착각이 아니었다.


"…그, 농구부는?"

"시험 전에는 연습을 쉬니까 괜찮아."

"개인연습은 하지 않으셔도…?"

"잠깐 공부를 봐줄 정도의 여유는 있어."

"본인 공부는 어떻게…?"

"말했잖아. 평소에 이해하면 된다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내가 다이어리에 선명하게, 심지어 내가 애용하는 펜을 정확하게 골라 쓰인 아카시의 글씨를 내려다보며 입을 뻐끔거리는 사이 아카시가 작게 웃으며 책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거기에 써놓으면 꼭 해야 하는 것 아니었어?"

"일단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고는 있습니다만…."


그래서 공부는 안 써놨잖아. 다 말해줬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기냐.


"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


아카시가 다시 내 다이어리를 가져가더니 아까 써놓았던 것 옆에 글씨를 추가했다. 설마 공부할 시간을 정해놓는다든가 뭐 그런 끔찍한 짓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앜리번 선생님…. 으윽…내 다이어리가 공부에 침식되고 있어….


"자."

"성은이…망극……어?"


돌려받은 다이어리를 우울하게 들여다보았다가, 추가된 글씨를 읽고 잠시 내 눈을 의심했다.


방과 후

도서관 데이트


데이트. 데이트에는 그러니까…날짜라는 뜻이 있던가? 도서관…날짜…이상하게 말이 안 이어지는 것 같지만 설마 아무리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그런 뜻은 아니겠―


"데이트 신청하는 게 맞는데."


아카시가 펜 뚜껑을 닫아 내 손가락 사이에 친절히 끼워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인생 방침을 바꾸고 싶어?"

"……."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에 아카시의 얼굴이 반짝 빛난다.


설마 그럴 리가.


그보다 인생 방침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건 아닌데…."

"아닌데?"

"그래도 첫 데이트로 도서관은 최악이라고 생각해…."


아카시의 글씨로 채워진 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웅얼거리자 아카시가 큭큭 소리 내서 웃었다.


농구부의 연습이 쉬는 다음 휴일의 빈칸에 다시 아카시의 글씨로 데이트라는 일정이 쓰인 것은 그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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