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자유로움 / 공백포함 1855자



하늘을 유영遊泳하는 너의 목숨을 뜰채로 건져낼 수는 없을까. 달을 잡는 낚시꾼이 되어 호수에 앉는다. 호수에 잠긴 하늘을 유영하는 너의 목숨. 너의 얼굴은 내가 있는 세상에 비치지 않는다. 차라리 네가 있는 그곳이 현실이고 내가 있는 이곳이 호수 아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며. 반사각이 엇나가는 순간 놓칠까 두려워서 숨을 약하게 하고.

말도 안 되는 자유로움으로 너는 하늘을 배회하며 때때로 이쪽을 보고는 웃는다. 두둥실 떠올라 마앍게 웃어, 너는, 어쩌면 그리도 눈부시게 파란색이야? 사실 호수에 하늘이 비친 게 아니라 하늘에 호수가 비친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그러니까 전부 허튼 거짓말과 서툰 우스개였던 거지. 치사하게도, 내가 너를 사랑하는 동안 너도 나를 사랑했던 거야-깨닫고 나니 심장이 참 아프더라, 죽어서도 성가신 녀석이야 너는.

또 생각해보면 그렇지. 너는 스스로의 감정을 자각하긴 했을까. 어쩌면 네 칼은 너도 모르는 사이에 내 심장을 찢고 들어온 건지도 몰라. 네가 죽은 뒤로 그 칼날이 빠지지 않고 녹슨 쇠냄새가 난다. 그건 빗장 내린 애정의 이음새가 녹슬어 아주 사소한 고백조차 꺼낼 수 없게 되었다는 증명이야. 아니면 그저 네 피냄새가 환각처럼 기어오르는 것뿐이든가. 주욱주욱 찢어진 살점 피비린내에 여러 번 헛구역질을 했지만 목구멍을 넘어온 건 오열밖에 없었어. 이렇게 울어본 것도 오랜만이었지.

칼날을 뽑으면 더 많은 피가 흘러나오리란 걸 알아, 물론 죽을 고비를 넘기면 어찌어찌 상처가 아물지도 모른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꼭 상처가 아물어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멍청한 소리지만 그냥 아무 감흥이 없고, 혈관을 타고 오르는 녹과 독이 체온보다 뜨거워 도리어 살갑다. 네가 꽂은 칼을 내가 어떻게 뽑아? 망할 검사 밥버러지. 그것도 네가 준 거라면 유품이라 생각하고 간직하지 뭐.


그러던 중에 낚싯줄에 무언가가 걸리고, 들어올리지만 추억의 탈을 쓴 그리움 뿐이구나. 하늘을 유영하는 너의 목숨을 뜰채로 건져낼 수는 없을까. 달을 쫓는 낚시꾼은 호숫가를 맴돌고 너는 놀리듯이 호수 너머에서 웃어. 수면에 손을 대는 순간 물고기는 놀라서 전부 사라져버리겠지. 생전에는 그냥 도망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순간에조차 도망가지 않더니 호수 속의 너는 너무 빠르게 사라져, 손가락 틈으로 흘러나가-눈물이 떨어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흐트러져 떨리는 손가락 끝에 닿을 수조차 없는 윤슬-달은 어떻게 해도 건져낼 수 없는 거겠지. 낚시찌는 허무하게 통, 통, 그 작은 소리가 내려앉고 호수가 잔잔해지면 너는 그제서야 다시 고개를 들이밀어. 말도 안 되는 자유로움으로 계속되는 수면 아래 하늘 위 더없이 찬란한 황천의 유영遊泳.

낚시라도 한번 다녀올 걸 그랬나봐. 썩 우리 둘의 성미에는 맞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낚은 물고기가 곧 저녁 재료라고 꾀면 너는 눈에 이채를 띄워가며 낚시에 집중했을 거야. 그게 조금 서운해서 불퉁스레 낚싯대를 두드리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면, 너와 시선이 마주쳤을지도 몰라. 이전에도 종종 그랬듯이, 호수는 하늘을 비추고 하늘은 호수를 비추고, 너는 나를 바라보고 나는 너를 바라보고, 심장이 쿵 떨어져내려 서로 황급히 시선을 피했었다. 그러니까 자유낙하의 순간보다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며 낚싯대를 고쳐들었을지도 모른다.

아아 이제 치어稚漁를 놓아주자-말도 안 되는 자유로움으로 호수를 누비는 나의 어린 사랑 나의 영원히 미완된 그리움-죽은 너는 하늘보다 파란 호수에서 그거면 됐다는 듯이 웃어. 그렇게 그림자 하나 없는 하늘을 유영遊泳하는 너를, 아직도 그림자가 있는 나有影는 계속 떠올려. 너는 내 속도 모른 채 사랑한다고 입모양으로만 속삭인다. 어쩔 수 없이 제멋대로인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래서 나는, 호수가 달을 삼킬 때까지 그 자리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Serin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