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인물과는 상관 없음을 알립니다


 언니와 나는 열여섯, 열일곱에 처음 만났다. 나는 일월생, 언니는 십일월생이라 개월 수로 따지자면 얼마 되지 않는 나이 차임에도 불구하고,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주는 간격이 언니를 더 높아 보이게 했다. 이름이 샛별이네, 예쁘다. 언니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 그렇게 낯설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이미 미어터질 듯 차버린 연습실에 나 같은 객식구가 딸려 오면 다들 도끼눈을 하고 쳐내기 바빴는데, 언니는 항상 내 손을 꼭 잡고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기 바빴다. 그 어린 나이에 그 손이 너무 따뜻해서, 열일곱 언니가 너무 큰 사람인 줄 알고 그토록 따라다녔다. 언니가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언니는 열넷에 처음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벌써 삼 년째. 언니는 최상위 레벨에서도 가장 예쁜 얼굴이었다. 나도 대전 바닥에서는 제일 예뻐서 꼽힌 건데, 언니는 얼굴 뿐만 아니라 춤도, 노래도 나보다 두 수 위였다. 다음 차기 걸그룹 데뷔조에 몇 번이나 이름을 올렸는데, 자꾸 막바지에서 삐끗하면서도 언니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나 같으면 당장이라도 나가서 대형 기획사에 발을 담글 텐데, 언니는 탑을 찍는 연예인 하나 없는 이 곳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그래도 언니는 샛별아, 샛별아. 참 예쁘게도 내 이름을 불러댔다. 묘하게 무엇인가를 감추는 듯한 얼굴이 보기 싫었다.


 "샛별아, 왔어?"


  언니가 동이 트기도 전에 연습실을 차지했다. 이제 막 겨울 방학이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그것을 즐기지도 못하고 학교에 있을 시간을 통으로 연습에 몰두했다. 나는 연습에 대한 열정이나, 데뷔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 아침부터 시외버스를 타고 달려온 것은 아녔다. 언니가 내일부터 새벽에 연습을 할 거라는 말을 넌지시 흘렸기에 언니 얼굴 한 번 보려고 꼼수를 부렸을 뿐. 밖은 이미 눈이 도톰하게 쌓여서 입은 코트가 얇아 추위에 떨며 왔는데, 넓은 연습실을 언니 혼자서 열기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잠시 앉아 방금 찍은 듯한 안무 영상을 보고 있는 언니의 뒤에 앉아 몸에 착 달라붙은 반팔 티셔츠를 입은 마른 몸 뒤로 가 언니를 안았다.


 "밖에 엄청 춥나 봐. 옷에 추운 기운이 서려 있어."

 

 언니의 보드라운 목덜미가 뺨에 닿았다. 혹시나 따가울까 언니에게 더 붙기 전에 빨간 목도리를 벗어 던졌다. 왜 그랬는지는 몰랐으나, 그냥 언니가 좋았다. 그땐 나를 잘 챙겨주는 언니가, 여자로서 동경할 만큼 예쁘게 생긴 언니가 그저 언니로서 좋은 줄 알았다. 마르고 여린 팔이 내 손에 들어왔다. 키는 나보다 크면서, 무엇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나는 맨날 다이어트 하란 말만 듣는데. 손이 멈출 생각을 안 하고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언니가 막으면 그만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언니도 가만히 내 손등을 쓰다듬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대표실에 들어간 언니가 두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질 않는다. 이번에는 정말 데뷔를 할 작정인가 보다. 그러면 만날 일은 더이상 없는 거겠지? 연습실 끄트머리에 가만히 앉아 저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들락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언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으면 답답하고, 같이 있으면 손 잡고 싶고, 가끔은 붉은 입술의 촉감도 궁금했다. 학교에서도, 회사를 가는 버스 안에서도 항상 언니 생각 뿐이었다. 언니에게 들키고 싶진 않았지만, 늦은 밤 내 방에서도 문득 언니 생각이 났다. 


 연습실 옆 화장실에서 누군가 무엇을 게워내는 소리가 났다. 극심한 다이어트로 인해 먹은 것을 습관적으로 게워내는 친구들은 많았다. 이 곳에 오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그 소리가 무섭고 그렇게 해야지만 데뷔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몇 번 손가락을 집어 넣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소리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자기는 아무리 손가락을 넣어도 역류해 나오지 않는다며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 대화 속에 스며드는 기괴함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내가 그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는 권한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를 거 없다는 생각에 씁쓸하게 웃어 넘겼다. 그 날도 그랬어야 했을까 언니.


 언니가 나왔다. 한참을 울먹이며 토 하는 소리를 내던 화장실 칸에서 언니가 나왔다. 샛별아, 하고 나를 불러주지도 않고 입을 헹구고 나갔다. 언니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아무리 언니라고 하더라도 나는 언니에게 밟고 올라가야 할 경쟁자라는 생각에 쉬이 언니를 부를 수 없었다. 언니의 가느다란 팔에 멍이 들었다.


 [샛별아 나 연습생 그만 두려고]


 그날 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질문을 할 수 없었다. 그냥 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나가서 행복했으면 됐잖아. 언니는 그렇게 회사를 나갔음에도 그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 사실인지 모를 소문들이 언니를 감싸고, 이제 겨우 열여덟이 된 언니를 죽이려 들었다.


 "한유경 어딨어."

 "..전 몰라요 대표님."


 처음으로 대표님께 불려갔다. 언니가 떠난 연습실에 흥미가 있던 것도 아녔고, 꿈에 대해 목을 매달고 있던 것도 아녔다. 데뷔가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혹시, 하는 생각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언니 없이 버틸 힘은 없었다. 나도 조만간 짐을 싸서 원래의 생활을 이어나갈 생각이었다. 언니는 몇 번이나 들락거렸을 대표실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항상 붙어 다녔으면서 거짓말 할 생각 하지 말라는 대표의 말에 정말 모른다며 부인을 했지만,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빼앗겨 대표가 나와 언니가 나눈 문자를 뒤졌다. 별일 아니라 생각했다. 연습실을 나가는 사람이야 널리고 널렸고, 대표도 손수 사람을 내치는 일에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이미 흥미를 잃은 연습생을 다시 거둬드릴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아 묻는 단순한 궁금증인 줄 알았다. 언니가 하던 일을 내가 이어받기 전까지는.


 이런 거였어? 언니가 정말 하고 싶던 일이 고작 이런 거로 만들어지는 일이었어? '한유경 대신'이 된 나를 대표는 자신의 요깃거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들 한 번씩 대표실에 들어가는 모습이 이제는 전처럼 부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저 언니가 들어가고 나오면 쟤가 들어가고, 그 뒤는 나였다. 내가 나가면 또 누가 '최샛별 대신'이 되는 걸까. 이 짓을 몇 년이나 했을 언니 얼굴이 떠올랐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언니와 똑같이 꿈을 위해서 참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또 새로운 연습생이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사람들의 독기가 더욱 날카로워 졌다. 열 다섯이라는 아이. 이 아이는 또 대표실에 끌려가게 될까. 언니도 나를 처음 봤을 때 이런 연민으로 나에게 예쁘다고 말해 준 거겠지. 


 샛별아, 대표님이 부르셔. 언니가 떠난 지 한 달이 되던 날 나는 언니가 원망스러웠다. 언니가 떠나지만 않았어도 나는 그냥 예쁜 언니를 보면서 좋아했을 텐데. 언니가 내 인생을 망쳤다. 여전히 언니의 행방을 찾는 대표님과 부인하는 나, 그리고 익숙한 듯 다리로 올라오는 대표의 손이 쳇바퀴처럼 반복됐다. 조금만 참으면 데뷔 시켜줄게. 이딴 단어들이 언니를 홀렸다는 사실도 원망스러웠다. 데뷔도, 행복도 다 언니의 것이 아닌데 그렇게 애를 쓰다가 떨어져 나간, 어디 있는지도 모를 언니가 참 원망스러웠다. 원망이 분노가 되고 분노는 절규가 됐다. 다리도 모자라 슬금슬금 위로 올라오려는 손을.


 내리 찍었다.


 대표실의 널찍한 책상 위 연필꽂이에 꽂혀있던 가위를 빼 들어 대표의 손을 내리 찍었다. 부득, 하며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대표의 손이 떨어졌다. 항상 반납해야 했던 핸드폰을 가져다 언니에게 전활 걸었다. 그러면서도 대표실을 나오는 시선들을 무시한 채 가지고 온 짐을 모조리 싸서 나갔다. 코트를 걸치지도 못하고 목도리를 두르지도 못한 채 반팔에 돌핀팬츠 차림으로 쌓인 눈을 밟았다. 그러다 그 열다섯짜리 아이가 눈에 밟혔다. 전화를 받지 않는 언니와 그 아이가 겹쳐 보였다.


 "..짜증나."


 정문에 짐을 대충 던져두고 다시 안으로 향했다. 대표는 이미 나를 찾는데에 급급해 성을 내고 있었다. 다시 돌아올 줄은 몰랐는지 나를 보곤 아무 말이 없다. 그저 겁에 질린 사람들 앞에서 열을 낼 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겁에 질려있었고, 아는 사람들은 나를 반역자 취급하며 노려보고 있었다. 도망치려면 지금이라는 것도 모르고.


 금방이라도 머리채를 잡을 듯 손을 뻗는 대표의 손에선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 속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눈이 잔뜩 묻은 옷가지를 챙겨 무작정 걸었다. 그저 아무 말 않고 집으로 돌아가라 말했다. 아이는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저 대표님한테 죽을지도 몰라요]


 답장이 올 지 안 올지도 모르는 문자를 보냈다. 당장 대전 가는 버스도 마땅치가 않아 버스터미널에 죽치고 앉았다. 코트 밑으로 삐져나온 다리가 빨갛다.


 [언니 저 대표 손 찍고 나왔어요]


  말 그대로 찍었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엄마한테 말하면 내가 그런 곳에서 그런 일을 당하고 왔다는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걱정을 할 지도 모른다. 경찰은 증거를 확보해 오지 않으면 수사를 할 수 없단 답변만 쥐여줬다. 이렇게 오는 연습생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다 목적이 있었으니 한 일 아니었냐고 오히려 나를 공격했다. 언니에게는 답변이 오지 않았고, 그렇게 그 기획사에서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신인 걸그룹이 데뷔했다. 몇 번이나 그 방을 오갔을까. 그런 일을 겪고도 무대 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얼굴을 보니 회의감이 들었다. 데뷔 초반엔 여러 방송에 나가 얼굴도 비추는 것 같더니, 결국 얼마 못 가 한 멤버가 탈퇴해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대표 밑에서 가장 아양을 떨던 멤버였다.


 답장 없는 번호로 몇 번이고 문자를 남겼다. 언니, 결국 그 새끼 잡혀갔대요. 거기서 데뷔한 사람이 전부 꼰지르고 나갔대요. 언니도 알죠? 우리랑 같이 연습했던 민정 언니요.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근처 대학에 진학했다. 연습생 생활이 길었던 것도 아니었고, 미련이 남아있던 것도 아니라 남들 다 하는 정도의 공부를 계속 이어갔다. 언니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혹시 몰라 새롭게 데뷔하는 아이돌이나, 시선을 돌려 배우도 전부 찾아보았는데 그 어디에도 한유경이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왜 언니를 뒤에서 안았을까. 왜 언니의 목덜미에 내 뺨을 부벼댔을까. 남들 다 그 새끼 밑에서 허덕였는데, 왜 언니한테만 더 마음이 쓰였던 걸까. 그 새끼를 꼰질러서 벌을 받게 됐단 뉴스를 보았을 때, 왜 내가 아닌 언니가 받은 상처가 치유되길 바랐을까. 무소식은 희소식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샛별아 하는 언니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을 뿐이다. 샛별아, 샛별아. 나는 언니 이름을 한 번이라도 부른 적이 있었나.


 언니는 이게 뭐라고 생각해? 나는 사랑이었다고 생각해. 언니를 오래 본 것도 아니었고, 언니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고, 그저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좋아서, 다들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찌를 때 그래도 보듬어 주던 게 어린 언니라서 좋았어. 그날 화장실에서 언니를 마주했을 때 그냥 언니를 잡을 걸 그랬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으면 나에게 잘해줬던 언니의 그 마음도 조금은 알았을 텐데. 언니는 그냥 새로 온, 언니보다 어린 내가 그 새끼 밑에 있는 게 눈에 밟혀서 그랬던 거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어떻게 그걸 참았어? 어쩌면 언니를 구하지 못한 내가 미워서 그 열다섯짜리 애의 손을 잡았던 걸지도 몰라. 그렇게 죄책감을 덜어서 미안해. 이제는 부디 행복하게 살길 바랄게. 우리가 어떤 일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끝나는 이야기가 참 쓰다. 그 누구도 행복하지 못 했네. 보고 싶다, 언니.


 행복해야 해. 

쫌쫌따리 쫌쫌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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