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과


    “일어났어?”


  그보다 환하게 웃는 정윤호가 있다. 




  처음에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뜨면 존재하는 정윤호가, 환하게 웃으며 나와 대화하는 정윤호가. 너무 보고 싶어서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비행기 조종사던 정윤호와 정윤호의 비행기가 대서양의 버뮤다 지대에서 사라진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갔다. 정윤호가 나타난 지 1년. 사라진지 2년째 되던 때 나는 마이애미, 대서양 가까운 바다에 수중 가옥을 지었다. 위험하다고 다들 말렸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정윤호가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 그런 말 따위는 들리지 않은지 오래였다. 혼자라 적적하다는 기분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 바다 가까이에 정윤호가 있다고 생각하면 전혀 외롭지도 않았다. 그저, 정윤호를 찍은 동영상을 하루 종일 돌려봤고, 이 곳에 있었다면 정윤호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그런 생각뿐이었다. 이 큰 창이 마음에 든다며 바다너머로 오랫동안 지는 노을을 한참이나 손을 잡고 봤겠지. 그런 나날이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던 때, 정윤호가 나타났다.


    “우리 창민이, 잘 잤어?”


  눈을 뜨고 있지만 꿈을 꾸고 있을까. 정윤호가 사라질까봐 눈도 감지 못하고 햇살보다 더 눈부신 정윤호를 바라보자 정윤호는 웃으며 다가와 내 눈가를 어루만졌다. 손길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왜 울고 그래.”

   “...”

   “나 보고 싶었어?”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까지 정윤호였다. 한참을 껴안고 있었다. 정윤호는 배고프지 않냐며 내 손을 이끌었고 나는 이 순간이 끝날까봐 정윤호의 손만 꼭 잡고 있었다. 정윤호는 자기가 좋아하던 시리얼을 꺼내서 두 그릇 야무지게 말아서 식탁에 나란히 놓았다. 손을 잡은 채 시리얼을 먹는 둥 마는 둥, 정윤호만 쳐다봤다.


   “왜?” 


  정윤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돌아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피식 웃고는 입을 가볍게 맞춰왔다. 


   “심창민 귀여운 거 나만 알아야 하는데.”


  아무 말도 못하는 나에게 억지로 시리얼을 다 먹이고는 소파로 이끌었다. 앉아서 쉬어. 그리고는 빨래를 돌리고는 다림질을 하는 정윤호를 한참 바라봤다. 그만하고 이리와. 내 말에 정윤호가 다 했다며 셔츠를 옷장에 걸고는 소파로 돌아왔다.


   “뭐 봐?”


  조종사였던 정윤호의 취향대로 기상예보를 한참을 봤고, 나는 정윤호의 손 발 얼굴 샅샅이 보며 어루만졌다.


   “왜?”

   “정윤호 예뻐서.”

   “너도 예뻐.”


  장난스럽게 물어오는 입술에 정윤호의 목을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정윤호의 입술과 키스. 숨도 못쉴 듯이 입술을 섞다가 정윤호가 고개를 들었다. 


   “창민아. 노을 너무 예쁘다. 봐.”


  정윤호의 얼굴에 노을이 잔뜩 기울었다. 그러게, 예쁘다. 그대로 나를 끌어안은 정윤호를 꼭 마주 안아 함께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사랑해, 창민아.”


  왈칵 눈물이 넘쳐 눈을 꼭 감았다 떴을 때, 정윤호는 사라지고 없었다. 




  정윤호는 해가 뜰 때 나타났고, 해가 질 때 사라졌다. 나는 알람을 맞춰 항상 같은 시간대에 눈을 떴고, 정윤호는 항상 그 시간에 집 문을 열고 나타났다. 제복과 가방을 들고선 나타난 정윤호에게 모닝키스를 하고 함께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집안일도 하고. 그리고 같이 커피와 과자를 먹다보면 노을이 졌다. 정윤호와 손을 잡고 그걸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면 없었다.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이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환영일지 모르는 정윤호는 분명 존재했다. 따뜻한 손과 포옹 모두 정윤호였다. 정윤호는 나타나면 끊임없이 나에게 사랑을 말했고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하면 사라졌다. 그저 사랑한다고 말하면 사라질까봐 말 할 수도 없었다. 불안해도 불안하다고 말할 수 없던 하루 하루가 이어졌다. 


   “창민아 졸려? 좀 자자.”

   “아냐. 괜찮아.”

   “에이. 이리와. 형이랑 누워서 하늘 보자. 구름 너무 예뻐.”


  정윤호의 손길에 끌려서 함께 누워서 큰 창을 바라봤다. 창민아 사랑해. 내 뒷목에 입을 맞추며 웅얼거린 정윤호에 웃으며 돌아누웠다.


   “구름 보라니까?”

   “정윤호 볼 거야.”

   “오늘 구름 진짜 예쁜데.”

   “정윤호가 더 예쁘거든?”

   “심창민 진짜... 왜 이렇게 귀여워?”


  다정하게 웃으며 내 얼굴을 조심스레 끌어와 입을 맞추는 정윤호에 목을 끌어안았다. 평소와는 달리 다정한 입맞춤이 조금씨 격해지고 몸이 포개졌다. 은밀한 움직임에 손은 옷 속으로 파고들었고 언제 벗겼는지, 벗었는지도 모르게 서로를 탐하기에 바빴다. 


   “사랑해. 사랑해. 창민아. 응?”

   “형. 정윤호...”

   “응? 창민아. 사랑해...”


  한참을 끌어안고 사랑해라고 말하는 정윤호의 몸짓과 목소리가 애처로웠다. 난 욕심에 정윤호의 얼굴을 끌어 키스하고 볼에 입을 맞췄다. 정윤호의 몸짓과 함께 파정을 맞이할 때 나도 모르게 정윤호의 귀에 입을 맞췄다. 


   “사랑해.”


  정윤호 사랑해. 그리고 까무룩 잠들었고 눈을 떴을 때 정윤호는 없었다. 나는 한참 울다가 다시 눈을 감았고 다음날도 역시 정윤호가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가 밤을 새어보고 해가 뜨는 걸 봤지만 정윤호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1달이 지나갈 때 정윤호가 틀어놨던 티비 채널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영어로 한참을 나오는 뉴스는 관심도 없었다. 밖의 구름을 보면 정윤호가 생각났다. 창민이 커피 크림 같아. 예쁘지? 이제는 흐를 눈물도 없었다. 정윤호가 물을 주던 화초들은 시들어 다 축 쳐져 있었고 유리창은 닦지 않아 빗물자국이 뿌옇게 그대로 남아있었다. 수십 번의 자책에 더 이상 할 자책도 남지 않았다. 노을도 져버렸고 이제는 하늘이 캄캄했다. 자동으로 켜지는 형광등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정윤호가 좋아하던 시리얼이 다 떨어졌는데. 오랜만에 장을 봐 올까. 터덜터덜 현관으로 나설 때 무거운 현관문이 열렸다.


   “...”

   “창민아. 다녀왔어.”


  깜깜한 밤하늘에 환한 정윤호는 햇살처럼 웃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사랑해 정윤호. 정윤호는 끄덕이며 입을 맞춰왔다. 알아, 심창민. 여전히 켜져 있던 뉴스에서는 다소 격앙된 리포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서양에서 사라졌던 한국의 항공기가 기적처럼 3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항공기 TQ1226의 탑승자 전원 생존한 것으로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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