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하아, 하아, 하아….”


깔깔깔깔!

신사 숙녀 여러분!

와하하하하하!

맛있겠다!

더! 더 괴롭혀!


싫어, 무서워, 아파, 살려줘


“으아아아!”

“형님!”

“아아악!”

“제기랄! 우림아, 형님 다리 잡아라!”


오늘도 꽃집 위 작은 보금자리엔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비명의 주인은 눈을 뒤집은채 거품을 물고 몸을 주체할 수 없이 떨었다. 성인 남자 둘이 붙잡아야 간신히 진정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격렬하게 움직여도 여전히 의식은 저 깊은 바다 아래에 잠들어있었다. 벌써 ‘그 사건’으로부터 6번째 아침이 밝았다.


“후우, 고생했어요. 형.”

“… 아니다. 네가 더 고생이다. 며칠 동안 너희 집이랑 왔다 갔다 하고.”

“아녜요. 언제든지 부르세요. 저도 두훈이 형 괜찮아지는 거 바라니까요.”

“나도 불러!”

“넌 안 와도 돼.”

“아, 왜! 내가 빵도 만들어오잖아!”

“… 넌 진짜 오지 마라.”


형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두훈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불을 깊게 덮어주었다. 몸의 상처는 주택이 준 약 덕분에 많이 호전되었으나, 마음의 상처는 그 누구도 치료해 줄 수 없었다. 잔혹한 고통 속에 오래 방치된 두훈의 정신은 부서지는 건물 같았다. 의식이라도 깨어나면 자신이 옆에 있으니 안심하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아직 두훈은 깨어나지도 못했다.


“너희 가게는?”

“오늘 휴업일이지.”

“말이 짧다?”

“… 요.”

“오늘 월요일이라 쉬는 날이에요.”

“벌써 그리 됐나….”

“형, 저랑 민규형이 두훈이 형 돌볼 테니까 오랜만에 가게 열고 마음 좀 추슬러요.”

“… 됐어. 무슨 가게야.”

“두훈이 형이 눈 떴을 때 꽃들 다 시들어 없으면 슬퍼할걸? 형 꽃 엄청 좋아했잖아.”

“그건 먹을 거라 좋아한 건데.”

“… 일어났을 때 먹을 거 없음 곤란하잖아? 얼른 내려가서 일해.”

“저희가 잘 돌볼게요. 어차피 아래층이니까 중간중간 올라오면 되잖아요.”

“… 그래. 다녀올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내 계단을 내려갔다. 자신을 보며 손을 흔들어주는 동생들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오랜만에 제대로 살펴본 가게는 형호의 마음처럼 엉망진창인 상태였다. 화분은 깨져있고, 꽃들은 바닥에 짓밟힌 채 시들어있었다. 형호는 한숨을 푹 쉬고 기지개를 한번 켰다.


“그래, 미래를 생각해야지.”


형호는 대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


“하이고, 이제 다 됐네.”


오랜만에 꽃시장까지 들러 싱싱한 꽃들을 채워 넣은 꽃집은 다시 생기가 샘솟았다. 두훈에 비하면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던가 그럴싸하게 꽃들을 사 온 형호는 조금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본업인 커피 도구들을 다 닦고, 늦었지만 오픈 패널을 걸어 가게 문을 활짝 열었다. 꽃집 겸 카페인 ‘Forest’가 거의 일주일 만에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Forest’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 전체에 퍼졌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가게로 발걸음을 향했다. 가게는 다시 북적거리고 꽃처럼 생기가 돋았다. 물론 혼자 가게를 보는 형호는 죽을 맛이었지만, 차라리 바쁜 게 잡념을 없애 더 나았다.


“어? 사장님은 어디 갔어요?”

“… 병원에 입원했어요.”

“아, 그래서 못 열었구나.”

“네, 한동안 저 혼자 일 할 거예요. 아쉽게도 꽃 포장은 무리일 것 같네요.”

“아쉽다….”


손님들은 두훈의 병상 소식에 위로를 표했다. 형호는 마음이 착잡했지만,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두 훈은 깨어날 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가 형호의 마음처럼 씁쓸했다.

정신없이 가게를 보다 보니 벌써 해가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손님들도 한두 명씩 사라지고 가게 안엔 형호와 꽃 그리고 커피 냄새만이 남았다. 형호는 배고프다고 징징거릴 민규와 우림이를 위해 오븐에 두꺼운 식빵을 넣었다. 그때 위층에서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민규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 뭐야? 너 괜찮아?”

“형! 두훈이 형이…!”

“제기랄!”


형호는 넘어진 민규를 지나 다급하게 계단을 올랐다. 문을 열자 보이는 건 두훈의 방문 앞에 주저앉은 채 울고 있는 우림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두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혹시…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는 건 아닐까? 형호는 얼굴이 새하얘진 채로 두훈의 방에 천천히 들어갔다. 그리고 방 안에는,


“… 형님.”

“… 정말 형호니?”

“네, 저예요.”

“형호야….”


두훈이 드디어 눈을 뜨고 형호를 바라봤다.


*


두 훈은 눈을 뜨고 한동안 현실과 꿈을 알아채지 못했다. 폭신한 이불도 따스한 형광등도 믿지 못하고 그저 구석에 박혀 덜덜 떨 뿐이었다. 우림은 두훈에게 천천히 다가갔지만 역효과였다. 그 모습을 보던 민규는 다급히 형호를 불렀다.

구석에서 떨고 있는 두훈을 바라보던 형호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형호라는 걸 인식해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는지 한걸음 한걸음 다가올 때마다 움찔거렸다. 형호가 손을 내밀자 겁에 질린 토끼처럼 움츠러들던 두훈은 천천히 형호의 손에 적응해갔다.


“정말 형호 너구나….”

“형님, 미안해요. 내가, 내가 빨리 갔어야 했어요.”

“네가 와줬으니까 괜찮아.”


두훈은 많이 진정되었는지 뒤늦게 우림이와 민규를 향해 팔을 벌렸다. 그제야 동생들은 달려가 두훈의 품에 안겨 울었다. 한동안 엉엉 울던 네 남자들은 눈이 팅팅 부어 뜨지 못할 때쯤 눈물을 그쳤다.


“… 고마워. 형호야, 우림아. 그리고 민규도.”

“내 속 태우지 말라고 배두훈…. 진짜 못 일어나는 줄 알고 내가….”

“민규 뚝.”

“제 속도 그만 태우세요, 형님.”

“그래, 그래. 안태울게 형호야.”

“…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아, 고우림 언제 적 대사야. 17년 전?”

“네 마음이 타고 있냐? 구리다, 진짜.”

“아니, 진짜 타는 냄새 안 나요?”

“어?”


그때 계단을 타고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기 시작했다. 멍하니 바라보던 형호는 그제야 자신이 오븐에 넣어둔 식빵을 생각했다.


“아 미친!”


다급하게 계단을 내려간 형호를 세 남자들은 멍하니 바라만 봤다. 잠시 후 형호는 새카맣게 타 석탄 같아 보이는 식빵이었던 것을 가지고 올라왔다. 그리고 멋쩍게 웃은 뒤 생크림과 꿀을 잔뜩 올렸다.


“… 허니 석탄 브레드.”

“강형호 개소리하네 진짜.”

“하하하!”

“먹으면 죽을까요?”

“이걸 왜 먹어 곰탱아! 넌 내가 만날 빵 먹여줘도 이 딴 게 먹고 싶냐?”

“아니 그냥 물어본 거예요….”


민규는 씩씩거리며 자신이 가져온 케이크들을 늘어놓고 형호가 만든 석탄은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 버렸다. 오랜만에 먹는 달달함에 다들 행복하게 웃었다. 비록 눈은 개구리가 되고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렀지만, 웃음소리만은 흘러넘치는 밤이었다.


  • 타는 냄새 안나? 내 마음이 타고 있잖아... 요즘 사람들은 이 대사 모르겠죠...? ㅋㅋㅋ 진짜 17년전 드라마 대사입니다ㅋㅋㅋㅋ 저때 감성... 
  • 오랜만에 글쓰니까 좋네요...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과 감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트위터: @i_am_mush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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