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


“한 번만,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살려달라는 타나카 류노스케의 간절한 외침.
아사히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 잠시로 충분했다. 타나카는 땅을 박차고 일어나 혼비백산하며 달려갔다.
한 번, 이 무슨 의미가 있지. 달려가는 타나카의 뒷모습을 보며 아사히는 생각했다. 이제 타나카는 카게야마에게 죽게 될까. 아니면 다이치에게 죽게 될까. 아니면 조금 후에 다시 만난 나에게 죽게 될까. 무기도 없는 타나카가 죽는다는 사실에 변함이 있을까.


그때 요란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키노시타의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진 타나카가 중심을 잃고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소리였다.


-


쾅 하고 몸이 계단 아래의 평지에 부딪쳤다. 세상이 뒤집히고 온몸이 욱신거리는 와중에 타나카는 소리를 들었다. 빠르고 가볍게,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였다. 도끼와 방패를 든 아즈마네 아사히의 발소리.

눈이 크게 떠진 채로 굳었다.
이번에는 어찌된 일인지 몸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더?


-


타나카의 피가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사히는 눈을 깜박여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아사히가 죽인 사람들의 숫자.
아사히는 겁이 났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데, 사실은 멈추고 싶었다. 누군가가 잠시라도 자신을 멈추어주길 바랐다. 이대로 여섯, 그리고 일곱?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될 수 없기를 바랐다. 


남은 사람은 세 명. 아사히, 다이치, 카게야마.


아사히는 주머니에 넣었던 GPS 단말기를 꺼내 화면을 다시 켰다. 아사히가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점이 딱 세 개 남아 있었다. 둘은 23동 안, 하나는 1동 뒤였다.
보지 못한 사람도 셋 남아 있었다. 스가와 츠키시마, 그리고 다이치. 둘은 죽은 사람이었고 하나는 산 사람이었다.

23동 안에 있는 두 점은 내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래서 아사히는 둘 다 죽은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다. 만약 둘 중 하나가 살아 있는 다이치라면 다이치는 한 구의 시체 곁을 내내 가만히 지키고 있는 게 되니까. 그건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우니까.

그래서 아사히는 다이치가 1동 뒤에 있을 거라고, 그곳으로 가면 다이치와 싸우게 될 거라고 짐작했다.


아사히는 다이치와의 대면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다. 야구 배트라는 괜찮은 무기를 지닌 다이치가 두려웠다. 한편으로는 도끼와 강철 방패를 지닌 자신이 두려웠다. 아사히는 다이치보다 자신이 민첩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힘은 더 세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아즈마네 아사히가 사와무라 다이치를 죽이게 되어버린다면. 그래선 안 될 것 같았다. 어쩐지 불합리했다. 두려웠다. 전부 다.


아사히는 다이치가 1동에 있을 거라 짐작했고, 다이치와의 만남을 늦추고 싶었고, 그래서 엉뚱하게도 23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스가와 츠키시마가 죽어 있을 것이라고 아사히는 짐작했다. 그들의 상태를 살펴본다는 핑계로 조금이라도 결전을 늦추고 싶었다.


끈적거리는 피가 바닥에 들러붙으며 발자국을 남겼다. 북쪽으로 향하다가 아사히는 실수로 시체 하나를 툭 발로 찼다. 기묘하게 웅크린 듯한 자세의, 얼굴이 검어진 시체였다. 시체 다섯을 남겨두고 아즈마네 아사히는 멀어져 갔다.


-


23동으로 들어가기 전 아사히는 마지막으로 단말기를 들여다보고, 주머니에 넣었다. 혹시 모르니 오른손에 도끼를 들고 있기 위해서였다. 오른손에 도끼와 단말기를 함께 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사히는 입술을 깨물고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살고 싶다. 살려면 죽여야 한다. 이미 죽였다. 모두 사실인데도, 그러니까 죽일 것이다, 라는 말이 좀처럼 자신의 말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떠맡은 기분이었다.
아사히는 무서웠다.
무섭다고 해서 달리 택할 수 있는 길도 없었다. 23동은 1동을 향해 가기 전 들를 수 있는 마지막 휴게소인 셈이었다. 떠밀리듯, 아사히는 23동의 유리문을 열었다.

어두운 로비를 초록색 비상등 불빛이 비추고 있었다. 불 꺼진 샹들리에가 있었다. 샹들리에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로비 전체가 텅 비어 있었다.
아사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 양옆으로 복도가 뻗어져 있었다. 복도에는 여러 방이 딸려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아사히는 찾던 것을 발견했다. 시체였다. 하얀 손이 보였다. 복도에 딸린 수많은 방들 중 하나로부터 스가의 손이 뻗어져 나와 있었다. 스가의 시체의 손이었다.
스가의 담요는 스가의 몸에 제대로 묶여 있었다. 스가의 손에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담요가 쥐어져 있었다. 스가가 츠키시마와 싸우다가 담요를 빼앗은 모양이라고, 둘이 싸우다가 여기서 같이 죽은 것 같다고 아사히는 짐작했다. 

나리타의 단말기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쓸쓸함이 몰려왔다. 다시 만나지 못한 채로 죽어버린 동료들. 만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근처 어딘가에 츠키시마의 시체가 있을 것이라고 아사히는 생각했다. 핏자국은 이어지고 있었다. 아사히는 핏자국을 따라갔다. 비상등의 조명이 닿지 않는 곳이라 아사히는 손전등을 켰다. 핏자국은 어느 방 중 하나로 들어가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핏자국은 테이블 아래로 시선을 이끌고 있었다. 여기 츠키시마가 있겠구나, 생각하며 아사히는 방 안으로 한발짝 들어갔다.

그때 뒤통수를 무언가가 후려쳤다.

머리가 찡 울렸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방안에 있던 것은 죽은 츠키시마가 아니라 산 다이치였다. 시체가 있을 것처럼 정황을 위장해 두고 숨죽이며 숨어 있던 다이치.


넘어지면서 순간적으로 아사히는 생각했다. 죽는구나. 그래 나 같은 것보단 이런 녀석이 살아남는 게 맞아. 그렇지만, 죽고 싶지 않다…….

트위터 @eggacchq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