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고장난 무전기에서는 불이 켜졌다꺼졌다 반복하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어느날에는 치직거리는 잡음이 끼어들었고 결국, 시작 되어버린 무전은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몹시도 힘든 하루였다. 다 잡은 용의자는 튀질 않나, 이상한 제보는 하루에 수백 건씩 밀려들어오지 않나. 이와중에 강력계를 무슨 파출소급으로 생각하는 모양인지 대낮부터 술 들이붓고 고주망태가 되어 찾는 사람도 한 둘이 아니었다.


경찰서 꼴이 이게 다 뭐냐. 개난장판이다 아주. 재한이 그 난장판 다 수습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시간은 이미 밤 10시를 훌쩍 넘어있었다. 훌렁 옷 갈아입고 욕실로 들어가 머리부터 찬물을 끼얹는다. 봄에서 여름으로, 날이 점점 더워지는 중이라 재한은 곧잘 몸에 찬물 끼얹는 것을 즐기곤 했다. 눈 깜짝할 새에 대충 몸 비누칠로 문댄 간단한 샤워가 끝나고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방으로 들어온 재한은 책상 위에 올려둔 무전기에 불이 들어오는 걸 목격했다.


이상하다. 꽤 오래 전에 용의자 잡는답시고 한바탕 구른 후부터는 저 무전기에 도통 불이 들어온 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젖은 머리 갸웃하고서 책상 앞에 앉아 무전기를 한참 응시해본다. 치직─치지직. 소란스러운 잡음 사이로 난데없는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목소리로 추측해보건대 젊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이재한 형사님?


"누구십니까?"


─나 박해영입니다.



자신을 박해영이라고 소개하는 남자는 이미 재한을 알고있는 듯했다. 그러나 재한은 박해영이라는 사람은 금시초문이었다. 주변에 이토록 여자같은 이름을 가진 놈이 있었나. 고장난 지 오래된 무전기가 켜진 것 만큼이나 아리송하다.


그러나 무슨 말을 더 묻기도 전에 무전기의 불이 꺼졌다. 잡음도 목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재한은 무전기를 들고 털털 털어도 보고 두드려도 보았으나 무전기는 평소대로 고장난 그대로였다. 순간, 밀려드는 오싹함에 무전기를 내던지듯 놓았다. 뭐야, 귀신이라도 들린 건가?




-




무전기 너머에서는 또다른 무전기를, 아니 꼭 같은 무전기를 들고있는 자가 있었다. 그가 해영이었다. 박해영. 재한이 생각하길, 자신에게 무전을 건 사람인 줄 아는 사람. 그러나 그렇게 나오면 되레 이쪽이 황당한 셈이다. 왜냐면 이 무전의 시작은 재한이었으니까.


탑차 뒤 쓰레기더미처럼 쌓여있는 폐기된 증거물들 사이, 무전기가 있었다. 노란 스마일 스티커가 붙은 고장난 지 오래된 무전기. 그 무전기에서 불이 들어오고 소리가 들렸다. 박해영 경위님. 분명히 자신을 불렀었다. 이름과 직함까지 정확히.



─박해영 경위님.


"…당신 누굽니까? 나 알아요?"


─나 이재한입니다.



이미 해영을 알고있는 듯한 무전 너머의 이재한이라는 사람. 그게, 그 둘의 첫 무전이었다. 또한 앞으로 이어갈 무전의 시작이었고. 그리고 그때는 그게 이 모든 것의 시작일 줄,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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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에게는 더없이 낯선 공기가 실내를 가득 메우고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곳은 처음이니까. 지난 밤에 철용이 술상 옆 막걸리그릇 내려놓고 진지하게 권유하더랬다. 무당도 들여보고 부적도 사보고 그랬는데 아직도 그 고장난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리냐고. 이천십오년인지 십육년인지 하는 헛소리가 자꾸 들리냐고.


네 들려요. 이천십오년에도 사건이 안 풀렸다고 자꾸 나더러 도와달랍디다. 그렇게 대답하니 철용이 막걸리그릇을 엎어버렸다. 야 너 안 되겠다 재한아. 병원을 가자 응? 아무도 모르게 한 번 갔다와라.


그렇다고 무턱대고 정신과로 보내버리다니. 이런 데는 정신 홰까닥 돈 사람들만 오는 거 아닌가. 아니지, 고장난 무전기에서 이천십오년에서 무전이 걸려온다고 주장하는 본인도 제정신이 아니긴 하지. 박해영인지 뭔지, 아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야. 재한은 머쓱하게 뒷목 쓰다듬고는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묻는 물음에 고장난 무전기에서 무전 소리가 들린다고. 그건 나한테만 들리는 모양이라고. 그렇게 털어놓으니 흰 가운을 입은 남성의 눈쌀이 확 찌푸려졌다. 주름살 잡힌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더니 테없는 안경을 벗어들고 옆 소파로 안내한다. 거 앉아보세요. 눈 감으시고요.


시키는대로 눈 감고 자리에 앉으니 가지런히 두 손도 모아보란다. 다소곳하게 등 기대고 눕듯이 앉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편안하다. 꼭 잠이 올 것만 같다. 그러나 의식을 붙잡는 의사의 물음이 있었다.



"뭐가 들려요?"


"…그냥… 매일마다 시도 때도 없이 무전이 와요. 고장난 무전기에서. 그게…작동될 리가 없는데… 작동돼요. 소리가 들려요."


"소리요?"


"…이재한 형사님…하고…나를 부르는 소리……."


"누가 부르는 거죠?"


"……."


"이재한씨?"


"…박해영……. 박해영 경위…라는 사람……."




-




고된 하루였다. 범인을 잡으면 뭐하나. 다들 저를 쳐다보는 눈초리가 수상했다. 어떻게 네가 그런 걸 알고있느냐는 듯한 눈치였다. 프로파일링 스킬이란 겁니다, 하면서 둘러대도 이제는 씨알도 안 먹히는 것 같다. 특히 팀장인 수현의 눈초리가 가장 날카로웠다. 박해영 너 요즘 이상해.


이상하겠죠. 이상하고말고. 과거에서 무전이 걸려오는데 이게 이상하지 않은 일이 아니고 뭐겠어. 근데 이런 얘기를 도대체 누굴 붙잡고 나눠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입밖으로 내는 즉시, 박해영 경위에서 박해영 환자가 되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당사자인 본인도 믿기지 않는 일을 누가 믿어줄까. 그러니 수현이 아무리 수상쩍어해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말이 안 되지만,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정말이라고. 정말로 과거에서 무전이 걸려왔고 자신에게 무전을 거는 그 사람은 이재한이라는 형사라고.


결국,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털어놓을 수 있을 사람은 단언컨대 재한 밖에 존재치 않는 셈이었다. 나와 무전이 닿는 당신만이 내 심정을 알겠지. 거기도 그래요? 당신도 그러냐고. 당신도 거기서 미래에서 무전이 걸려왔다는 그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꺼내지 못하고 끙끙 앓느냐고. 꼭 나처럼.


결국은 그 답답함에 눈물이 터졌다. 밤 11시 23분이 아니면 작동되지 않는 고장난 옛날 무전기. 흔들어도 보고 두드려도 보았지만 밤 11시 23분이 아니면 도통 켜지질 않는 무전기. 어느 때는 그 시각에도 답이 없던 무전기. 그리고 이재한 형사.


무전기를 손에 꽉 쥐고 흔들어보다 벽에 던져버렸다. 쿠웅─ 벽에 부딪힌 무전기가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동시에 해영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진다. 서러움, 억울함, 답답함.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감정.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눈물로 흘러나왔다.



"나 생각해서 자주자주 좀 켜져주라! 전화는 바라지도 않는다! 나 답답하다 진짜……."



혼자 삼키고 견디고 꾹꾹 눌러 버티다못해 터져나온 눈물은 쉽사리 멎질 않았다. 해도 안 졌는데 이거 어떡할 거야 진짜. 짜증내보아도 무전기는 여전히 응답이 없다. 소리내 울면서도 속으로는 고장난 무전기가 유일하게 불이 켜지는 시각을 기다린다. 밤 11시 23분.




-




정신과 의사는 아무런 조언도 해주지 못했다. 그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면서 혀를 찼다. 눈앞에 문제의 무전기를 갖다줘도 다른 사람 반응과 다를 게 없었다. 흔들어보고 털어보고 두드려보고. 무전기에 응답은 없다. 그래, 나 혼자 미친놈이구나.


머리맡에 수상쩍은 무전기를 둔다. 오늘 이 무전기는 하루종일 울리지 않아 정신과에서도 재한을 바보로 만들었다. 24시간 하루종일 내내 지켜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켜지겠지. 그걸 증명해보이면 되는데, 영 켜질 기미가 없었다. 결국 재한은 병원을 나왔다.


내가 미친놈이지, 내가 미친놈이야. 이불 끌어당기며 몸을 뒤집고 눈을 감는다. 무전이 울리면, 항상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늘 자신에게 무전을 보내는 사람. 자신을 박해영이라고 소개하는 젊은 남성.


박해영. 박해영. 박해영……. 누굴까. 어떤 사람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머리맡이 부산스럽다. 치직─치지직. 익숙한 소리에 올려다보니 무전기에 불이 들어왔다. 치직─치지직. 여전히 시끄러운 잡음도 함께. 답답한 마음에 다짜고짜 무전기 들어 질러버렸다. 당신 대체 누구냐고. 그러면, 약속이라도 한듯 늘 똑같은 대답이 무전기에서 흘러나온다. 이재한 형사님, 저 박해영입니다.



"당신 누굽니까? 누군데 날 알아요?"


─저 박해영입니다. 이재한 형사님.



또,

박해영이다.








연성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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