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두서없이 흩어진 말의 파편들이 공기중으로 퍼졌다. 너는 언제나 그렇듯 묘한 웃음을 띄고 나에게 말을 건넸다. 마치, 오늘 같이 하교할래? 와 같은 어투로.


"뭐라고?"
"좋아해, 나카하라 츄야"


처음 나에게 태연히 말을 걸었던 넌, 여전했다. 

채 닫지 못한 옥상문만 바람에 삐걱거리고 나는 웃고 있는 너에게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Please, Be Natural



하아-


수백개의 말들이 한숨과 함께 바람에 날렸다. 언제 이렇게 따스해진걸까. 흘러가는 시간을 인지하지 못할만큼 나는 너무도 무뎌져 있었다. 인생의 '재미', 살고 싶어지는 '가치' 라는 건 어디에서 오는걸까. 인생이 따분해서 죽을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고 싶었다. 추구해야 할 가치는 도무지 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나는 그래서 너를 알고 싶었던걸지도 모르겠다.


"야이, 미친새끼가!"
"뭐래 오늘 마치고 콜?"
"콜!"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언제나 여러명이서 어울려 웃고 있는 너는 나에게 너무 신기했던 존재였다. 과연, 너는 무엇을 찾았고 뭐가 즐거웠던걸까. 종이치고 무리가 돌아가버리면 너는 여느때처럼 책을 준비했다.


"안녕"


빤히 올려다보는 시선에서 의문이 보였다. 처음으로 맞부딛친 시선이 즐거웠다. 너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고 나 또한 네 시선위에 가만히 머물렀다. 그러니까 그날은 여름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마지막 봄날이였다. 벚꽃들은 반은 저버리고 실바람만 불어오는, 그런 날이였다.


"반가워"


그것이 우리의 시작이였다.


-


조금씩 풀리는 붕대들을 다시금 감았다. 3교시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어차피 나가봐야 학생들에게 구기종목을 시켜놓고 놀고있을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그러니 조금 늦게 나가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자이"
"어, 츄야다"


아득거리며 이를 가는 츄야의 모습이 생각보다 잘 어울려 웃음이 터졌다. 조그만 얼음들이 깨지는 소리가 리듬을 만들어냈다. 역시 귀여운 사람이구나 츄야는.


"웃기냐?"
"왜 그래 츄야? 아, 이 갈면 이 상하니까 그만두는게 좋아-"
"하?"
 
이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냐고 묻고 싶었다. 아니 몇일전 그 상황은 꿈이었던가 싶을정도로 다자이는 평소와 같았다. 고백받은건 나인데 왜 가시방석인것도 나인가. 몇일을 내내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어딘가에 상담할 건수도 아니었으므로 혼자 앓는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너는 조용히 그 시간들을 지켜보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한마디 하지 않았고 나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내가 받은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네 말들을 곱씹는 동안 너는 언제나처럼 나를 기다렸다.


"다자이, 너..."


결국은, 제자리걸음이다. 어떻게든 결론을 짓고 싶어서 찾아온 너에게 나는 또 어떤 말도 건네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들은 혀끝을 맴돌고 있는데 그 덩어리들을 뱉어도 되는 것인지가 늘 걸렸다. 무슨 이유로 나에게 고백한거야? 바라는게 뭐야? 같은 말들이 목구멍에서 차고 올라오는데 나는 그 어떠한 단어도 내뱉지 못했다. 꽉 쥔 손바닥이 저리기 시작했다.


할말이 담긴 주먹이 발갛게 달아오르는걸 가만히 응시했다. 기세좋게 이름을 불러놓고 결국 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그런 너를.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훨씬 상냥한 사람이니까 츄야는. 그러니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던거지? 츄야. 그 날이후 삐걱거리기 시작한 나와의 관계성을 해치고 싶지 않은 너와, 내 고백의 진상을 밝히고 싶은 너가 대치했겠지.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언제나 올곧게 부딛쳐오던 시선들이 나를 겁내기 시작해버려서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그 시간들이 아깝지 않았던건 나에게 넌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츄쨩.."


채 마무리를 짓지 못한 붕대의 끝을 놓고 넌 마른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왜 그렇게 불안해 하는거야? 나는 츄야에게 사귀자고 한게 아니잖아? 난 츄야에게 어떠한 대답을 바라지 않았어. 나는 단지 너에게 마음을 전한 것 뿐이야"


살짝 미간을 찌뿌린 얼굴이 보내는 말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뭐라고..? 일반적인 상식과는 조금 동떨어진 녀석인건 알고 있었다. 너는 내가 생각치도 못했던 것들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럼 그동안 내가 고민했던 것들은 다 뭐였던가. 평소와 같은 얼굴로 진득하게 묻혀놓은 진심들에 어떻게 답가를 보내야 하는걸까 했던 나는?


"고민했던 시간들에 답은 되었어? 츄야? 딱히 할말 없음 가도 돼. 츄야, 체육시간 좋아하잖아."


순식간에 표정을 풀어버린 너는 평범하게 나에게 말을 건네왔다.  


"다자이, 넌 내가 몇일을 어떻게 고민했는지 모르겠지. 나는 네 무신경함이 정말이지 너무 진절머리가 나"


문이 부셔질듯이 주먹을 내리친 너는 입술을 깨문채 돌아섰다. 네 돌아선 발걸음에 나는 한숨을 따라붙였다. 츄야, 뭘 모르는건 너야. 내가 이말을 전하기까지를 넌 모르잖아. 안그래?


-


"너 우리반이야?"


순수한 물음에 살풋 웃음이 났다. 네 어깨에 붙은 벚꽃잎을 손끝으로 집으며 나는 네 물음에 답을 주었다.


"그럼,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는걸"


흠칫 놀라는 얼굴이 꽤나 귀여웠다. 무채색으로 점철된 인생을 사는 나에게 표정만으로 다채로움을 표현해내는 넌, 어떤 삶을 살아온걸까.


"이름이...뭐야?"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다는게 충격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츄야는 늘 어디서든 사랑받고 살았던 사람이니까. 


"다자이, 다자이 오사무"


한참을 생각하던 츄야에 살짝 웃어주곤 자리로 돌아왔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업을 시작해도 한참을 집중하지 못하는 얼굴이 좋았다. 츄야의 흘러가는 시간속에 제가 비집고 들어간 것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계속 생각해줘 나를.


이상-


선생님의 종례를 끝으로 가방을 챙기고 있는 자신의 눈앞에 대충 채워버린 가쿠란의 단추가 눈에 들어왔다. 


"나, 기억났어"
"그래?"


정말이지 상냥한 사람이구나 츄야는. 생각한 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목 깊숙이 우겨넣었다. 분명 자신의 말에 얼굴이 빨개질 성격임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솔직히 너랑 말한적이 없었던 것 같아.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
"괜찮아. 앞으로 알아가면 되는걸"
"넌 어떻게 나를 알아?"
"말했잖아. 너랑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다고"
"기억력이 좋은거야?"
"츄야ㅡ"


그 단순한 사고회로가 너무 웃겼다면 너는 화를 낼테지만 정말이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힐정도로 웃어본게 언제였었지. 기억도 나지 않는 아득한 과거속을 뒤져도 지금보다 웃은 적은 없을거야.


"왜 웃어?"
"츄야가 좋아서?"

"하?"


눈썹을 찡그리는 얼굴은 마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을 듯했다. 아아, 사랑스러운 사람이여. 아마도 너와 나는 이렇게 될 운명이 아니었을까 츄야. 네 오렌지 빛 머리에 둥지를 튼 햇살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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