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안나. 여길 봐야지.”

“하아, 언니…”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볼을 쓰다듬는 다정한 손길에 안나가 불현듯 기억을 되짚었다.


“도대체 연애는 어떻게 하는 걸까?”


그래, 분명 처음 시작은 제 언니인 엘사의 푸념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으음, 글쎄.”


안나는 그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나오며 깨달은 마음을, 함께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지금까지도 혼자 고이 접어두고 있는 본인으로써는 이런 주제가 항상 불편하게 다가올 뿐이었다.

어릴 적부터 스스로를 옥죄는 것처럼 모범적인 학생의 표본 같았던 엘사는 성인이 되자마자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은 건지, 늘 단정히 틀어올렸던 머리를 풀어헤치고는 자유롭게 변했다. 항상 어딘가 불안해보이던 그때보다야 지금이 훨씬 편해 보인다지만 잠시 연락이 없다 싶으면 애인을 갈아치우는 모습은 안나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누굴 만나도 자꾸 단점만 보여. 하나 같이 나보다 못난 것 같아.”


주변에 잘난 사람이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만나면서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헤어지는 데에는 엘사의 나르시시즘이 한 몫 했다.

연예인은 되어야 만족 할까?

안나가 쓰게 웃으며 테이블 위에 턱을 괴고 있는 엘사를 바라봤다.


“그럴 거면 아예 언니랑 닮은 사람이랑 연애하는 건 어때?”


농담조로 던진 말이 불씨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 그거야!”


긴 백금발이 찰랑이도록 끄덕이는 고개를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안나, 나랑 연애 해볼래?”

“…잠깐, 뭐?”


취기가 잔뜩 올라 베시시 웃는 얼굴에 안나는 하마터면 입 안의 맥주를 전부 뱉어버릴 뻔 했다. 테이블을 짚고 제 턱을 잡아 이리저리 돌려보던 엘사를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던 안나가 상황파악을 끝냈을 땐 이미, 맞은 편에 앉아있던 엘사가 코 앞에 다가온 뒤였다.


“언니, 잠…”

“나랑 닮은 사람이라면 너 밖에 없잖아.”


지금 취한 거지?

몽롱하게 풀린 새파란 눈이 제 피부 위를 집요하게 훑고 지나가는 느낌에 안나가 잘게 몸을 떨었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며 답이 없는 짝사랑이 드디어 결실을 맺을 때가 왔다는 자아와 이건 술주정일 뿐이라며 넘어가면 안된다고 외치는 자아가 끊임 없이 싸워대고 있었다.


“그건, 당연히…”


자매니까, 라고 말하려던 입술 위로 엘사가 대뜸 덮쳐왔다.


“안나, 안나. 여길 봐야지.”

“하아, 언니…”


그렇게 처음으로 돌아간다. 어떻게든 피해보려는 안나의 얼굴을 단단히 붙잡은 채 엘사가 꾹 닫혀 있는 아랫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

“옳지.”


짜릿하게 올라오는 아픔에 벌어진 틈 사이를 집요하게 찾아드는 혀가 단단히 버티던 안나를 결국 무너트렸다.

어차피 내일이면 잊어버리지 않을까.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운 빈 맥주캔을 생각하며 엘사의 목 뒤로 팔을 감아 당겼다. 이러면 안되는데, 라고 생각 하면서도 자취를 시작한 이 후로 달라져버린 샴푸향이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머리색만 같으면 완벽할 텐데…”


잠시 떨어진 틈을 타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에 반쯤 감겼던 안나의 눈이 번쩍 뜨인다.

그래, 안나. 뭘 기대하고 있는 거야.

아무 것도 모르는 엘사가 제 실날 같은 희망을 쥐고 흔드는 게 한 두 번도 아니고, 결국 오늘도 그런 날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 그저 엘사가 조금 더 변덕스러울 뿐. 잠시 떨어진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안나의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나왔다. 뒤틀린 가슴 한 켠 뒤로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에 안나가 조금 헝클어진 엘사의 백금발을 가만히 쓸어넘겼다.


“…하자.”

“…응?”


짝사랑의 결실을 맺기는 무슨, 하늘은 애석한 저를 안타깝게 여겨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이 엘사를 휘두를 수 있는 기회를 내려준 게 아닐까.


“연애 하자고.”


단 한 번만이라도 저 잘난 얼굴이 저로 인해 일그러졌으면 좋겠다고, 안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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