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프랑스에서 존재하는 특별한 계약인 자발적 도움 계약에 대해 설명하겠다.


자발적 도움 계약이란 특별한 상황에서 생기는 계약인데, A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B가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경우에 생기는 계약이다. 이 계약은 말한대로 당사자끼리 체결되는 게 아니라 당사자 사이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 계약의 목적은 자신이 준 도움의 대가를 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인 계약이 아니다.


사실상 이 계약은 B가 A를 도와주려는 상황에서 다칠 경우, A가 B에게 손해를 배상해줄 의무를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계약이 필요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상 효율적인 해결책을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어떤 아이가 파도에 휩쓸려서 물에 빠질 위기에 놓여있다. 그리고 이를 본 한 남성이 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들어갔고, 아이를 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저체온증이 왔다. 그렇다면 남성의 피해는 누가 배상할 수 있는가?


손해배상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불법행위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불법행위가 성립하기는 어렵다. 참고로 불법행위의 조건은 3가지인데 문제를 일으킨 불법행위, 그로 인해 생기는 피해와 그 둘 사이의 인과관계가 필요하다.

개인의 책임을 물으려면 민법 1382조에 따라 가해자의 과실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을 과실이라 볼 수는 없다. 혹여나 자살을 하기 위해 물에 빠졌다 할지라도 이것은 과실이라 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개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프랑스 불법행위법에선 자신의 물건으로 인해 생긴 피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판례가 민법 1384조 1항을 해석하면서 만든 제도이다. 당시 남성에게 저체온증을 준 것은 바다, 즉 물이기 때문에 성립하기 어렵다. 개인의 수영장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바다는 누군가의 소유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이 감독해야 하는 사람의 행위로 인해 생긴 피해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예를 들어 선생은 자신이 감독하고 있는 아이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이 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선 감독을 받고 있는 자의 과실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다시 1382조와 같은 경우로 돌아가기 때문에 성립이 불가능하다.


불법행위가 안 되면 계약, 준계약이나 법 분야를 확인해야 하는데, 우선 법으로 이와 같은 상황을 다루는 제도가 없고, 준계약은 거의 항상 재산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제도기 때문에 사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판례가 계약 분야에서 자발적 도움 계약을 만든 것이다. 

계약은 원래 당사자 사이에 제의와 승낙이 있어야만 채결되는 것인데, 여기선 제의나 승낙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주로 가해자는 승낙하기 어려운 시점이기 때문에, 사실상 승낙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살기 위해 한 것이므로 제대로 된 동의라 할 수 없다. 하지만 프랑스 판사들은 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보다도 신체적 손해를 배상하는 것을 더 중요시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계약을 억지로 만든 것이다.

이 계약의 주 내용은 바로 안전보장채무다. 도움을 받은 갑은 도움을 준 을의 신체적 안전을 보장해줄 의무가 있고, 이 의무는 결과채무다. 즉 수단채무와는 다르게 을이 조금이라도 다치면 갑은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안전보장채무를 이행하지 않았기에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해 갑은 계약적인 차원에서 을의 손해를 배상해줘야 한다. 


이 계약의 조건은 무엇인가?

바로 시의적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전혀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인데 가서 도와줬다가 다쳐서 배상을 요구할 수는 없다. 상대방이 정말 필요로 하는 상황일 때만 가능한 것이다. 물에 빠진 아이의 경우 당연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기에 시의적절한 도움이 맞다. 하지만 보다 애매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밑에서 잡으려다가 그 사람에게 깔려서 다치고 만다면, 이 도움이 과연 시의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까? 몇 층에서 뛰어내렸는지, 뛰어내리는 사람 및 받는 사람의 체격 등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2층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잡으려는 어른의 상황은 시의적절하지만 20층에서 떨어지는 어른을 잡으려는 아이의 상황은 시의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시의적절함이란 조건은 사실상 매우 실질적이다. 그래서 각 사건의 상황 및 요소들을 토대로 판사가 정하는 것이 맞다.

참고로 시의적절함은 위급함과는 다르다. 구조가 필요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에만 이 계약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흔들거리는 사다리를 잡아주는 것처럼 그냥 간단하게 도와주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반대로 도움을 주는 자도, 받는 자도 꼭 살아있을 필요는 없다. 그들의 상속인들이 소송을 걸 수 있기 때문에 자발적 도움 계약의 조건은 오로지 시의적절함이다. 참고로 실제로 소송에서 손해배상을 하는 사람은 도움을 받은 자의 보험사기 때문에 도움을 받은 자도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손해배상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이 자발적 도움 계약의 분야가 바뀔지도 모른다. 파기원은 지난 2010년 1월 28일 결정에서 준계약 중 하나인 사무관리로 이와 같은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하지 않았다. 예를 들었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의 사건으로, 물에 빠진 아이들의 아버지가 도움을 청하자 다른 남성 둘이 구하러 가다 그 중 한 명이 익사해서 죽었고, 익사한 남성의 아내가 그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자발적 도움 계약이 아닌 사무관리를 주장했고, 고등법원은 사무관리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사무관리의 조건은 바로 시의적절함으로 자발적 도움 계약의 조건과 동일하다. 그래서 파기원이 이 상황에서 시의적절함을 인정하지 않은 고등법원의 결정을 파기했다. 사무관리로 실제로 배상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렇다면 이것은 엄청난 변화가 될 것이다. 사무관리와 같은 준계약은 남의 사무를 대신 관리해서 생긴 비용, 즉 그로 인해 생긴 재산의 대한 손해를 배상받는 제도다. 이런 사무관리 제도를 신체적인 손해배상에 쓴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자발적 도움 계약이든, 사무관리든 이 모든 것은 신체적인 손해배상이 프랑스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입법자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 구멍을 판사가 메우는 것은 당연한거다. 그래서 현 프랑스 헌법이 권력분립에서 입법부(pouvoir législatif)와 행정부(pouvoir exécutif)를 인정하지만 사법부를 (pouvoir judiciaire가 아니라 autorité judiciaire라며)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 프랑스에도 사법부는 존재하고, 자신의 권한 내에서 입법부가 만들지 않은, 하지만 국민에게 필요한 제도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법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인간이 법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Portalis


프랑스에서 법대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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