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 D+30 ]


“라미! 일어나, 아침 먹을 시간이야~ “. “

라미의 볼에 키스해주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에 가운을 걸쳐준 사샤는 침대용테이블에 토스트와 베이컨, 스크램블에그가 담겨진 접시와 방금 내린 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잔을 우아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직도 잠이 덜 깨 멍하니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라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젯밤에도 굉장했구나..?”

주변에 널려있는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주어 올리며 정리해주고 사샤는 라미를 쳐다보았다.

“으어엇…좀 더 자고 싶은데..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벌써 출근해,샤?”

아직 채 떠지지도 않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사샤를 본 라미는 이미 출근 복장의 사샤를 보고 물었다.

“아, 바스티안 호출. 급한 일이 생겼 나봐.“

“그 녀석은 왜 아침부터 호출이람. 나랑 노는 꼴은 죽어도 못보나 보네. 쳇”

“그것보단, 유능한 내 탓이지 않을까? 후후후. 얼른 먹어. 나 없으면 또 아침 거르고 초저녁까지 자고 있을 것 아니야? 요새 당신, 너무 말랐어.”

걱정된다는 듯 라미를 쳐다본 사샤는 궁시렁거리는 (바스티안 자식, 수당은 챙겨주고 부려먹는 거야. 수당도 안주고 부려먹는 거면 감사관으로서 내가 그 녀석 지갑을 탈탈 털어버리든지 해야지) 라미가 귀여워 라미의 머리를 한번 더 쓰담 해준 뒤 쇼파에 얹어 두었던 재킷을 집어 들었다. 라미는 이제 토스트에 베이컨과 스크램블 에그를 얹은 참이었다.

“응? 같이 안 먹고 바로 가는 거야? 혼자 먹기 싫은데..힝..”

라미는 장화 신은 고양이 마냥 사샤를 쳐다보았다.

“미안해, 라미~ 그대신 이따 저녁에 라미가 좋아하는 술 다 사줄게! 약속.”

라미의 불쌍한 표정에 마음이 약해질 뻔 한 사샤였지만, 아침부터 급한 전갈까지 보내며 자신을 찾는 바스티안을 기다리게 할 순 없었다.

“치..알겠어. 어쩔수 없지. 다녀오세요~ ”

어쩔수 없다는 듯 체념하며 한숨을 푹 쉬고 토스트를 한입 깨무는 라미가 귀엽다는 듯 사샤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고개를 살짝 숙여 라미의 이마에 입 맞추었다.

“응, 이따봐, 라미~”

말을 마친 사샤는 우아하게 재킷을 걸치고 문을 열고 사라졌다. 라미는 사라질때까지 사샤의 뒷모습을 보다가 테이블 위에 있는 토스트 접시로 눈을 돌렸다. 한입 깨문 토스트가 입안에서 도는게 느껴졌다.

“아.. 못 먹겠다. 요새 통 입맛이 없네, 왜지…”

한달 전과는 사뭇 다르게 살이 빠진 라미는 도통 음식이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겨우겨우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나 한두 입 손을 대는 정도 였다. 그 마저도 술과 함께 하면 음식은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런 라미가 걱정스러워 자신의 집에서 세끼를 차려주며 먹는 동안 지켜 봐주던 사샤였다.

“사샤가 지켜 봐주는 동안에는 그래도 한술 더 뜰 수 있었는데..”

사샤가 사라진 문을 쳐다보던 라미는 그대로 침대에 기대 누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래! 결심했어! 이따가 맛있는 술이나 먹을래. 자자!”

결론을 내린 라미는 그대로 얼굴까지 이불을 끌어올려 들어오는 햇빛을 막고 그대로 다시 잠들었다.



[라미 D+45 ]


  • 해상낙원 페이토

“선장! 언제까지 여기 묵을 셈이야. 그리고 선장.. 그러다가 정말 전재산 다 탕진하겠네!”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여있는 동전들이 거의 바닥을 보일 때쯤 되 서야 본인 월급이 걱정되기 시작한 하리기하리는 라미가 도박으로 배까지 넘기기 전에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장! 이러다 방세도 못 내고 쫓겨나게 생겼어! 이제 그만 우리 배로 돌아가자, 선장!"

라미의 검지 손가락을 잡아당기며 하리하리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제서야 검지손가락에 하리하리가 매달려 있는 걸 본 라미는 손바닥에 하리하리를 올리고 눈높이를 맞췄다.

"미안, 뭐라고? 못 들었어~ 다시"

"선장! 요새 왜 그래? 2달 내내 술, 연애, 도박 세가지 밖에 안하고 있다고! 그것도 그렇게 신나 보이지 않는데.. 2달전 페이튼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선장?"

아무리 선장이 방탕한 탕아같은 성격이라도 허투루 놀고 먹지만은 않는 다는 걸 아는 하리하리는 요 몇달 선장의 행보가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다. 덕분에 큰 전투들도 없고, 의뢰들도 없어서 편하긴 했지만.. 몇달 사이에 살도 많이 빠지고 이곳 저곳 놀러만 다니는 듯 하고. 도통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일은 무슨~ 그냥 몇 년 동안 쉬지도 못하고 전투의 연속이었으니까, 좀 쉬는거지. 근데 하리하리 네 말이 맞네. 곧 있으면 동전이 바닥 나겠어. 오늘은 여기까지.”

테이블 위에 있던 동전을 세던 라미는 돈주머니에 동전들을 쓸어 넣었다.

“으… 슬슬 다시 돈을 벌어야겠어. 하리하리. ”

“선장,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는데. 페이튼에서 전갈이 왔어.”

“페이튼에서? 누가 보낸 건데?”

“발신인은 칼도르고, 급한 건 인 것 같더라고. 에슈가 받아서 선장실에 두었다는데.. 선장이 도통 배에 돌아올 생각을 안하니까...”

하리하리는 라미를 책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알았어, 알았어.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마. 돌아가자 배로.”

걸쳐 두었던 외투를 한 손에 걸치고 일어난 라미는 하리하리를 한쪽 어깨에 올려둔 뒤 배로 향했다.


.

.

.


“선장!! 드디어 배로 돌아왔구나!”

에슈는 라미의 귀환을 반기며, 라미의 손의 들려있던 외투를 받아 들었다.

“응, 다녀왔어. 나 없는 동안 배에는 별일 없었지? 어련히 알아서 잘 했겠지만.”

“물론! 이 에슈님이 누군데! 언제든지 배는 출항 준비 완료야. 별일도 없었고.”

“좋아. 그럼 일단 페이튼에서 온 서신부터 읽어보도록 하지.”

“그럴 줄 알고 준비해 뒀어. 자, 여기.”

에슈는 반대 편에 들고 있던 서신을 라미에게 건네주었다. 라미는 서신을 받아 든 뒤 인장을 떼어내고 서신을 읽기 시작했다.


-발신자 : 칼도르

라미, 자네가 떠나고 얼마 안되 여기저기 카오스게이트가 발생했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네. 이틀 전 숲의 파수꾼 거주지 근처에 거대한 카오스게이트가 나타나 숲을 지키던 파수꾼과 데런들이 공격을 당했네. 아베스타 단원들이 급히 출동했지만, 사상자가 한둘이 아니라네. 이 서신이 닿을 즈음에는 상황이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자네가 필요하네. 편지를 받는다면 페이튼으로 와주게.

 


라미는 편지를 읽으면서 점점 표정이 심각해졌다. 급하게 갈겨쓴 듯 글씨가 엉망이었지만, 용건은 간단했다. 페이튼에 거대한 카오스게이트가 나타났고 파수꾼과 데런을 공격했다는 것. 아무래도 페이튼에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인 듯 했다.

“에슈, 출항 준비 해. 페이튼으로 가야겠다. 파이라를 불러와. 최대한 빠르게 페이튼으로 간다.”



[페데리코 D+45 우울]


복구 작업이 한창.

카오스게이트가 열리고 한차례 전투가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곳은 이미 이곳저곳 마물과 데런, 파수꾼들의 시체들로 엉망이었다. 벌써 며칠째 이곳에 머물며 다친 아베스타 단원들을 치료하고 현장 수습을 돕던 페데리코는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입맛은 없었지만 복구 작업을 마저 하기 위해서는 기운을 내야했다.

 “페데리코 사제님,……………………페데리코 사제님..?”

“페디리코 사제님!!”

젓가락으로 밥알을 새며 끄적이던 페데리코는 번쩍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계속해서 자신을 부르고 있던 마고가 걱정스러운 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페데리코 사제님..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며칠 내내 식사도 거의 손도 안 대시고.. 눈 밑까지 다크서클이 내려오셨어요..”

“..그래 보이나?... 그냥..요새 잠도 못 자고 입맛도 통 없어서 말일세... “

기운없이 대답한 페데리코는 결국 더 들지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놓고 옆에 있는 물만 홀짝였다.

“요 근래 카오스게이트가 뜸하다 했더니, 이렇게 사상자들이 많이 생기고. 아무래도 심난하시겠죠. 그래도 식사는 잘 챙겨드셔야 해요”

마고는 힘든 현장에서 며칠 쉬지도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페데리코를 안됐다는 듯 보며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고맙단 인사를 전한 페데리코는 다시 밥알을 끄적이다가 한숨을 푸욱 쉬었다. 옆에서 같이 식사를 하던 비올레와 굴딩까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페데리코를 쳐다보았다.

"사제님, 정말 무슨일 있으세요? "

마고는 힘든 현장에서 며칠 쉬지도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페데리코를 안됐다는 듯 보며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고맙단 인사를 전한 페데리코는 다시 밥알을 끄적이다가 한숨을 푸욱 쉬었다.

페데리코는 도통 손에 잡히는 일이 없고 그저 한숨만 나오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라미 생각을 하며 애달파하다가도, 그녀 생각을 지우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하고, 우울감에 활기를 잃고 방에 쳐박혀 있다가, 다시 기분이 괜찮아졌다가의 연속이었다. 하루에 우울과 천국 사이를 오가며 감정적인 고통을 겼고있었다. 이러다가는 우울증이든, 상사병이든, 최잭감이든.. 무슨 병에라도 걸려 죽을 것만 같았다. 카오스게이트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이 시점에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 딴생각이 들었다. 우울함만 밀려오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우울감을 어떻게 벗어 던져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때 셰이크리아 사제 한명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사제님, 헥헥…새로 들어온 환자가 있습니다. 상처가 위급해 보입니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급한 숨을 들이쉬었다.

“알겠네. 금방 가겠네.”

사제의 말에 페데리코는 우울감을 잠시 접어두었다. 다시.. 일하러 가야지.


[페데리코 D+60 수용]

 

벌써 두달이 지났다.

난 고통스러웠지만, 2달전 일을 인정하기로 했다. 내 안의 죄책감으로 나를 괴롭히고 고통스러워했다. 사실대로 고백하기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거짓을 견뎌내고 숨기는 것은 나에게 더한 고통을 가져왔다.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괴로운 마음에 많이 고통스러웠지만, 이제껏 숨기기만 급급했던 내 부끄러운 마음을 고백하기로 했다.

오늘…

나는 고해성사를 할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기도실을 찾았다. 그리고 루테온 신께 다시 기도했다. 그녀를 잊어보겠노라고. 다시는 흔들리지 않겠노라고. 부끄러움을 신께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더 충실하게 살겠노라고.

오늘 이곳에서 루테온신께 다짐하려고 했다.


…….


"페데 ~ “

그 순간 라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쿵하고 돌덩이 하나가 마음의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고 가슴 한 켠 숨겨두었던 난로에 불을 지펴 다시 뜨겁게 지펴지는 듯 두근거렸다.

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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