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기분 좋은 불길한 예감




어떻게 잠든 건지 모르겠다. 눈을 슬며시 뜨니 품에 안겨있는 박지민이 보인다. 결 좋은 머리칼을 쓸어넘기자 예쁜 이마가 드러난다.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입을 맞춘 후 침대를 벗어나 협소한 발코니로 향했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나를 맞는다. 눈을 감고 서 있다 액정을 열어 쌓여있는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 아들?


- 계약 끊는다니까 지랄 지랄하는데.


- 아버지 너무 괴롭다.


- ㅜㅜ




“엄살은.”




마지막 메시지를 확인하다 웃음이 터졌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테이블에 핸드폰을 내려놓고 불을 붙였다. 천천히 숨을 내뱉자 새하얀 담배 연기가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 때랑 비슷하네. 








아버지를 처음 만난 날도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었다. 앵벌이를 마친 뒤 소위 대장이라고 하는 놈에게 바칠 상납금을 가지고 가던 도중 거구의 남자들에게 발길질을 당하며 돈을 빼앗겼다. 퉁퉁 부은 눈을 겨우 떠 남자들을 쳐다보자 발로 내 얼굴을 가격하자 그대로 쓰러졌다. 눈을 떴을 땐 소독약 냄새가 몰칵 코를 찔렀다. 시야가 어느 정도 잡혔을 때쯤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양복을 갖춰 입은 남자가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많아봤자 30대 중반 정도 보이는 남자는 훤칠한 키와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정신이 좀 드냐?”


“........”


“얼굴 봐라. 엉망이다, 엉망.”




혀를 끌끌 찬 남자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내게 건넸다. 아, 상납금. 입꼬리가 올라가자 볼에 난 상처가 벌어졌는지 거즈 위로 피가 비쳤다. 그래도 계속 웃으며 봉투를 끌어안자 남자 또한 나를 따라 웃었다. 내 머리를 마구 헝클인 남자는 나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꼬맹이, 등에 엄청나게 큰 상처가 있던데?”


“.........”


“누가 그랬냐? 앵벌이 시키던 새끼?”


“.........”


“어... 아니, 엄청 멋있더라고! 나도 있거든. 나는 배에 있어. 배에.”


“.........”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작게 웃은 남자가 얼굴을 들이민다.




“너 나랑 많이 닮았네.”


“.........”


“꼬맹아, 이름이 뭐야?”


“.......”


“알려주기 싫냐? 피, 됐다. 됐어.”




입술을 삐죽거리며 허리를 세운 남자는 곁눈질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다 다시 몸을 숙여 나와 시선을 맞춘다.




“그러지 말고, 아저씨 따라갈래?”


“........”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다? 나 따라가면 너 갖고 싶은 거 다 가질 수 있는데.”


“.........”


“맛있는 것도 다 먹을 수 있어. 초콜릿, 캔디, 젤리... 어... 또 뭐 있지?”


“....... 정말요?”




그땐 참 어렸다. 고작 6살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맛있는 거라면 환장할 나이였지. 눈을 빛내며 남자를 향해 묻자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내게 확답을 얻듯 몇 번이고 반복해서 물었다.




“갈 거지? 가는 거다? 응?”


“음, 네.”


“앗싸, 나도 아들 생겼다!”




나는 아들이 되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어느새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버렸다. 양복을 갖춰 입고 있던 거구의 남자는 어마어마한 대기업의 증손주였고 졸지에 재벌가 도련님이 되어버린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훌쩍 자랐다. 지금도 사실 꿈이면 어쩌나 싶다. 다시 그 지옥 같은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진 않으니까.









어제 아버지를 찾아간 건 단순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아침부터 집에 데려다줄 때까지 온종일 사람들에게 시달린 박지민을 보자 속이 많이 상했다. 연민이나 동정 따위가 아닌 이 감정을 뭐라 형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온종일 기분이 바닥을 치는 것 같아 원인을 따져보니 결론은 단 하나, 박재민이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탓인지 나를 보자마자 껴안는 아버지에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지만 소용없었다. 이 인간, 힘은 여전하네.




“아들! 웬일이야? 집엘 다 오고?”


“부탁할 일이 있어.”


“그럼 그렇지. 그 전에 뽀뽀 한 번...”


“나 다시 나가?”


“진짜, 매몰차네.”




아버지는 아이처럼 입을 삐죽거리며 내게서 몸을 뗐다. 일부러 터덜터덜 서재 책상으로 걸어가 대충 걸터앉은 아버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골프공 하나를 집어 허공으로 휙휙 띄운다.




“그래서, 아들. 부탁할 일이 뭐야?”


“이미 다 아시면서 뭘 물어요.”


“S그룹 아들내미 작살 낸 거?”


“응. 그 일 때문에 왔어.”




골프공을 향해 있던 시선이 내게 옮겨진다. 굉장히 심드렁해 보인다.




“뭐, 뒤처리를 부탁하는 건 아닐 테고.”


“항상 생각하는 건데 아버지는 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아직 자라나는 새싹이니까.”


“S그룹이랑 진행 중이던 계약 끊어줘.”


“응? 엇.”




내 부탁이 꽤 파격적이었는지 놀란 아버지가 바닥으로 공을 툭 떨어뜨린다. 얕게 웃으며 아버지를 바라봤다.




“왜? 어려워?”


“그건 껌이지, 껌인데. 생소해서 그러지. 너 나한테 이런 부탁 한 적 없었잖아.”


“그렇지.”


“이유가 뭐야?”




이제야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책상에서 폴짝 내려온다. 이유가 필요한가? 갑작스레 훅 치고 들어온 질문에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진득하게 따라오는 아버지의 시선을 피했다.




“이유? 그냥 박재민이 싫어. 자기 동생 보고 욕정 하는 놈이니까.”


“흐음. 아닌 것 같은데. 여태까지 그런 쓰레기 새끼들 한두 번 본 것도 아니면서 새삼스레?”


“언제까지 가능해?”


“바로 가능하지. 오, 아버지 연락하는 거 구경할래?”


“됐어.”


“아, 아들! 밥 먹고 가!”


“바빠. 갈게요. 또 올게.”




붙잡는 아버지를 뿌리치곤 커다란 문을 열어젖혔다. 큰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자 집안이 고요해진다.




“이유라..”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고개를 저으며 거실을 가로질렀다.





Wanna Bet? 




“.... 뭐야?”


“아.”




갑작스레 등 뒤로 중성적인 목소리가 들려 다급하게 뒤돌았다. 꽤 시간이 흘렀는지 장초가 어느새 짧아져 손가락 근처까지 와 있다. 대충 밖으로 튕겨내고 허공으로 숨을 두어 번 불었다. 조금이라도 냄새가 빠지길 바라며. 까치집을 얹은 박지민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고 있다.




“너... 담배도 피우냐?”




아, 싫나 보다. 눈썹 산이 점점 더 치켜 올라가는 것 같아 웃으며 문을 닫았다.




“내가 깨웠나 보네.”


“어. 너 때문에 추워서 깼어.”


“미안.”




서서히 침대와 가까워지자 이불을 두르고 있던 박지민이 나를 향해 넓게 팔을 벌린다. 새하얀 캔버스 같은 몸에 마치 물감을 칠한 것처럼 붉은 멍울들이 이곳저곳 새겨져 있다. 그 야한 몸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젓자 이번엔 얼굴이 팍 찌푸려진다. 당장 욕이라도 갈길 것 같다.




“안아.”




낮게 으르렁대는 목소리에도 꿋꿋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아직 냄새나.”


“그냥 안아. 나 진짜 추워 뒤지겠으니까.”




졌다, 졌어. 픽 웃으며 작은 몸을 끌어안자 내 등을 조심스레 껴안아 온다. 확실히 몸이 차가운 것 같아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그에 답이라도 하듯 이번엔 내 등을 살살 문지른다. 손끝을 세워 상처를 따라 그리던 박지민이 이젠 등을 토닥거린다. 귀엽네, 진짜. 분명 박지민은 다쳐서 생긴 상처라고 확신하나 보다. 결국 소리 내 웃자 짜증이 났는지 씩씩거리며 몸을 뗀다.




“야, 왜 웃어.”


“귀여워서.”


“뭐가.”


“나 위로하는 거잖아, 아니야?”


“..... 아닌데.”




올곧은 시선을 피하며 냅다 누워버리는 박지민에게 나 또한 자리를 잡았다.




“꺼져라?”


“싫어.”




다리와 팔로 가두듯 껴안고 가녀린 어깨에 턱을 얹자 몸을 들썩거린다.




“아, 진짜!”


“지민아, 이 상처 엄청 좋은 상처야. 행운을 부르는 상처라니까?”


“행운? 지랄하지 마. 상처에 좋은 상처가 어디 있냐? 상처는 그냥 상처야. 다 아프다고.”


“.......... 맞네. 상처는 다 아프지.”




담담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조금 떨리는 목소리가 속상해 곧은 목에 짧게 입 맞추자 박지민이 내 쪽으로 몸을 튼다. 자기가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길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내 입술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점차 거리를 좁히는 박지민에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




“왜.”


“담배.”


“상관없어.”


“쓸 텐데?”


“그래서 하고 싶은 건데? 개소리 말고 빨리 갖고 와.”




다시 몸을 붙이자 슬며시 내 뺨을 붙잡고 입을 맞추는 박지민이다. 찔꺽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혀가 진득하게 섞이고 숨이 가빠올 때쯤 박지민이 먼저 입술을 뗀다. 누구의 타액인지도 모를 것이 길게 이어지자 다시 혀를 내 자신의 입술을 한 번 쓸어내린다.




“쓰긴 쓰네.”




아, 큰일이다.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더니 사고를 정지시킨다. 다시 내 뺨에 따끈한 온기가 전해지더니 입술 또한 따뜻해진다. 눈을 감고 내 치열을 쓸어내리는 혀를 위해 입을 열었다. 어쩌면 이 내기, 조금 불리 할 수도 있겠다. 









자신은 오늘 오후부터 수업이라며 널브러져 자는 박지민의 볼을 살짝 깨물곤 홀로 언덕을 내려갔다. 단대 근처에 다다르자 낯익은 차가 눈에 띈다. 어머니라고 불리던 작자의 차다. 하. 급작스레 바닥을 치는 기분에 한숨을 쉬며 차로 다가가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나를 알아본 건지 벌컥 차 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




사나운 표정을 한 사모 뒤로 비서로 보이는 남자가 다급하게 차에서 내려 달려온다. 기사든 비서든 할 게 못 된다. 얼굴에 미소를 얹고 다가갔다. 분명 박지민을 찾아왔겠지.




“지민이 보러 오셨어요?”


“자네랑 할 얘기 없어.”


“지민이 학교 안 왔는데.”


“뭐?”


“집에서 자고 있어요.”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놀란 사모가 숨을 거칠게 내쉬며 내 멱살을 잡아 올린다. 이 집안은 다들 손버릇이 참 좋지 못하다. 멱살을 잡힌 채 아래를 내려다보자 사모의 손이 잘게 떨린다. 주변을 지나가던 학생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기 바쁘다.




“사모님...”




땀을 삐질 거리며 사모를 말리는 비서에 사모는 씩씩거리며 손을 놓는다. 구겨진 옷을 툭툭 털며 심드렁히 사모를 향해 말했다.




“저랑 차 한잔하실래요?”


“지금 장난하니?”


“다 알거든요. 사모님이 지민이 찾아온 이유.”


“뭐?”


“음, 카페가 불편하시면 우리 집으로 가셔도 좋고요. 전 그게 더 편하지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뺨이라도 올려붙일 줄 알았던 사모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차에 오른다. 의외네. 어깨를 으쓱거리곤 차에 오르자 F1 경주를 하는 것처럼 빠르게 학교를 벗어났다. 정신 나간 사모가 신을 신고 집에 들어가려 하기에 비서를 보며 인상을 팍 찌푸리자 손수 신을 벗긴다. 집주인보다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간 사모가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며 집을 둘러본다. 꽤 흥미 있는 눈치다.




“앉아 계세요. 비서님도요.”




비서는 왜 따라 올라온 건지 모르지만, 굳이 길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사모에게 맞기라도 한다면 말릴 사람은 하나 정도 있어야지. 그래야 나도 정당방위라며 주먹을 휘두르지 않을 테니까. 창수 형이 선물해준 찻잔에 차를 따라 내가니 사모는 여전히 비둘기처럼 두리번거리고 있다.




“우리 집, 마음에 드세요?”


“너, 정체가 뭐니?”


“네?”


“저기 저 조각상, 벽에 걸려있는 저 그림. 한낱 대학생이 살 수 없다는 거 네가 더 잘 알겠지.”




아. 눈썹을 매만지며 피식 웃었다. 내 태도가 건방져 보였는지 사모의 표정이 금세 험악해진다.




“저는 몰라요. 제 취향도 아니고 아버지께서 멋대로 들여놓으신 거라.”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라.”




이 말은 무조건 내 기분을 나쁘게 만들겠다는 선포라고 봐도 무방하다. 숨을 한 번 들이켠 사모가 다시 말을 잇는다.




“내가 네 뒷조사를 좀 해 봤는데 말이지. 아무것도 나오지 않더구나.”


“아, 그러셨어요?”




역시나. 지끈거리는 머리를 받치곤 대충 대답했다. 당연히 아무것도 나오지 않겠지. 아버지가 아예 새로운 사람으로 입적시켰으니까. 찻잔을 내려놓은 사모가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다.




“너, 어느 집 자식이니.”


“음.”


“어느 집 자식이길래 이렇게 건방을 떨어대.”




허리까지 숙여가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같잖아서 정말.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내 웃음소리에 사모와 기사 둘 다 당황했는지 동그랗게 눈을 키운 채 나를 바라본다.




“감당하실 수 있으세요?”


“이런... 건방진...!”


“오늘 김태환 회장님이 연락하셨죠? 계약 끊겠다고.”


“!”


“무슨 이유로 끊는다고 했을까요? 대체 뭣 때문에?”


“ㄴ... 너..! 너...!”




눈에 맺힌 눈물을 슥 닦아내며 숨을 골랐다. 경악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사모 얼굴이 참 가관이다.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잖아요. 지민이 건들지 말라고.”


“.........”


“오늘도 지민이 힘들게 하려고 찾아오신 거죠?”


“........”


“박재민도 그렇고 계약도 그렇고 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다, 탓하고 싶어서 오신 거잖아요.”


“..... 그... 그건!”


“사모님, 제가 했던 말 기억 하세요? 지민이 건들면 박재민 장례식에 참석하게 될 거라던 말?”


“아... 안돼! 재민이.... 재민이만은!”


“두 번은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시계를 보니 곧 수업이 있을 시간이다. 박지민 깨우러 가야 되겠다. 분명 아직 늘어져 자고 있을 테니까.




“장례식에서 뵙죠.”


“안 돼! 안 돼! 내가! 내가... 이렇게... 빌게.... 내 아들만은! 재민이만은!”


“사모님, 지민이도 아들이에요. 이왕이면 아주 예쁜 아들 하나만 있으면 좋죠, 그런 빗다 만 찰흙 같은 놈보단. 그렇죠, 비서님?”


“아악! 안 돼! 안 돼!”




돼지가 멱을 따는 것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모 때문에 오히려 비서가 어쩔 줄 몰라 한다. 현관에서 신발을 구겨 신고 그나마 제정신인 것 같은 비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비서님, 찻잔은 싱크대 안에 넣어두세요. 마르면 씻기 힘드니까. 먼저 가보겠습니다.”




등 뒤로 사모의 비명이 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자업자득이니까. 박지민의 번호를 꾹꾹 눌러 통화버튼을 누르자 얼마 안 가 푹 잠긴 목소리가 들린다.




“일어나.”


- ... 우응... 일어... 났... 어.


“정말 일어났어? 확인하러 간다?”


- .... 그러... 던지...


“조금 더 자고 있어. 금방 갈게.”


- .... 빨리... 와.... 추워....


“응.”




종료된 통화에 웃음이 번진다. 박지민의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참 가볍다. 








도씨 성을 가진 소심한 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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