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그러니까 찬열이 이렇게까지 백현의 음주를 뜯어말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일이었다. 요즘 들어 단란하기 그지없는 늑대 가문의 만찬 시간이었다. 백현이 반류로서 혼현을 가지면서부터 저택의 나날은 평화롭기만 했다. 찬열에겐 사랑하는 백현과 반려로서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이, 찬열의 부모에게는 아들이 일찍 반려를 찾아 가문의 존속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됨이 이 평화의 이유였다. 그래서일까. 정말 중요한 만찬이 아니고서는 외부 일정보다 네 사람이 단란하게 저녁을 먹는 것이 요즘 늑대 가문에 새로 생긴 규칙이나 다름없었다.



백현은 요즘 들어 찬열의 반려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찬열이 그랬듯 백현 역시 가정교사를 집으로 부르곤 했는데, 벌써 이 교육과정을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찬열은 시간이 나면 백현의 수업에 들어와 함께 듣곤 했다. 나란히 앉아 필기를 하다가도 턱을 괴고 멍하니 백현의 옆모습을 바라본다던가, 그의 왼손을 붙잡고 말랑한 손등에 연신 입을 맞추며 공부를 방해하곤 했다.



찬열의 사랑스러운 방해를 받고 있긴 했지만 수업은 꽤 빠르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백현은 찬열이 배우기 싫어하던 ‘반류의 역사’나 ‘정치외교의 기초’ 같은 과목은 잘해내는 편이었지만, 와인이나 커피, 위스키 같은 과목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었다. 확실히 다른 반류보다 오감이 뛰어난 찬열은 냄새만 맡고도 능숙하게 종류와 연도를 구분해내곤 했지만, 백현은 어쩐지 달달 외우는 과목보다 그것들이 더 어려웠다. 그런 백현을 아는 찬열의 부친이 연습이라도 해보라며 만찬에 선물 받은 고급 와인을 꺼내든 것이 화근이었다.



저녁 식사와 함께 곁들인 와인이 생각보다 입에 잘 맞는지 백현은 겁도 없이 따라진 와인을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찬열의 여러 번 그에게 와인이 은근히 금방 취하니 조심하라 일러두었지만 소용없었다. 그 날 만찬의 대화 주제는 찬열과 백현의 결혼식이었다. 백현이 사교파티를 시작으로 찬열과 함께 공식적인 자리를 자주 참여하게 될 거라는 것. 그리고 가을이 다가올 쯤엔 드넓은 저택 내 정원에서의 결혼식이 치러질 거라는 이야기에 백현은 헤실헤실 웃으며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찬열도 10년 정도 함께 지내면서 술을 마시는 백현은 처음 보는 거라 딱히 그를 말리진 않았다. 오히려 얼굴이 붉어져서 조금 더 잘 웃는 백현이 사랑스러워 잔이 빌 때 마다 따라주기까지 했다.



찬열의 부모가 먼저 자리를 뜨고 찬열도 백현과 방으로 돌아가려 몸을 일으켰다. 찬열을 따라 일어나던 백현이 의자에 도로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려 풀썩 주저앉는 모습에 놀란 찬열이 무릎을 꿇고 백현의 얼굴을 살폈다.



“백현 괜찮아?”

“도련니임-”



잔뜩 풀려버린 혀. 그제야 찬열은 자신이 백현의 주량도 모르고 술을 따라줬다는 것을 자각했다.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찬열의 양 볼을 움켜쥔 백현의 손바닥이 뜨끈뜨끈했다. 쪽, 그대로 입을 맞춘 백현이 작게 키득거렸다.



술에 취한 백현은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저를 부축해서 방으로 올라가는 찬열의 귓불을 먼저 깨물고 목덜미에 매달리려 한다던가, 혀를 빼물고 웃으며 말꼬리를 늘이기도 했다. 찬열에겐 그 행동들이 너무 유혹적으로 느껴져서 그는 제 방을 가는 복도에서 일을 치를 뻔 했다. 그리고 정작 방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침대에 엎드려 자는 백현을 보고 아쉬움에 미칠 같았다. 백현 자? 우리 복도에서 좋았잖아. 잠들면 어떻게 해. 찬열의 소리 없는 아우성만 울려 퍼진 밤이었다.



그래서 그 날 찬열은 다짐했다. 다시는 백현을 만취하게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지킬 수 없는 다짐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세훈씨눈- 그럼 우리 도련님이랑 제일 친한 친구인거잖아요- 그러쵸?”

“어허, 친한 거 아니라니까요. 재미없는 애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어울리는 유일한 동지 같은 거라구요.”



백현이 원래도 서글서글한 성격인 건 알았지만, 오세훈 저것과 언제부터 봐왔다고 그의 어깨를 치며 웃는 건지. 찬열은 술이 올라 빨개진 백현의 손에 깍지를 껴 제 주머니 안에 넣어버렸다. 조금 질투가 난 마음도 담겨 있었다. 몸에 힘이 빠진 건지 백현이 찬열의 힘에 의해 휘청거렸다. 휘청거림의 종착지는 찬열의 품 안이었다. 주머니에 갇힌 제 손을 꼼질거려 본 백현이 코앞에 있는 찬열의 어깨에 이마를 대며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도련니임-”

“응, 백현.”

“자구 싶어요….”

“아 제발….”



백현의 자고 싶다는 말이 아침부터 준비하느라 피곤해서 정말 쿨쿨 자고 싶단 의미인 걸 알면서도 찬열은 자꾸 엄한 생각이 들었다. 끙, 오늘은 저택도 아니라 방에도 빨리 못 가는데 왜 이렇게 예쁘게 구는 거야. 찬열이 곤란한 듯 앓는 소리를 냈다.



“박찬열.”

“왜.”

“백현씨 술 되게 못 한다. 와인 넉 잔 마시지 않았어?”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술을 마시는 건 아니야. 아, 백현 목에 대고 숨 쉬지 마. 제발. 응?”



몸을 가누지 못하겠는지 찬열의 목에 팔을 두른 백현이 자꾸만 찬열의 품을 파고들었다. 찬열은 그런 백현의 등을 토닥이며 눈으로 그를 뉘일 만 한 쇼파가 있는지를 찾기 시작했다. 보통 서서 술을 마시고 떠드는 파티라 마땅히 준비된 쇼파가 없는 것 같았다. 톡톡, 세훈이 찬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야, 박찬열.”

“아 왜. 정신없으니까 지금 말 걸지 마.”

“아니 그게 아니고. 여기 호텔이야.”

“뭐?”

“여기 호텔이라고. 이거 내가 오늘 쓰려고 했던 방인데, 백현씨 이렇게 만든 데 내가 지은 죄가 있으니 특별히 너 줄게.”



세훈이 수트 안 쪽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카드 한 장을 꺼냈다. 2706호. 룸 키였다.



“그리고 아직도 도련님이 뭐냐 도련님이. 본딩한 지 꽤 지난 반려잖아 너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그럼 수고. 이 형님은 다른 데 가서 놀아야겠다.”



찬열은 저를 등지고 쿨하게 다른 곳으로 향하는 세훈이 새삼 달라보였다. 우웅- 제 목덜미에 코끝을 비비적거리며 기대오는 백현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고 일어섰다. 찬열이 일어나자 그들을 흘끗거리던 이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세훈이 준 카드키를 주머니에 찔러 넣은 찬열이 엉겨오는 백현을 추슬러 안았다. 그리곤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걸음걸음마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반려와 몸을 섞고 싶어 하는, 욕망에 잠긴 찬열의 페로몬에 다들 낯을 붉혔다. 선조귀환과 본딩 하면 내내 발정 난 것 같다더니 사실인가 봐.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로 회장이 웅성거렸다.



으, 선조귀환이라서 그러긴 무슨. 저건 그냥 닭살 떠는 거구만. 진실을 알고 있는 세훈만이 치를 떨었다.





 

사교 파티는 10층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27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는 동안 찬열은 어쩌면 자신이 백현을 업고 뛰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발 아래로 서울 야경이 빠르게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술도 올랐겠다, 여름도 다가왔겠다 더운 건 알겠다만 백현은 올라가는 내내 옷을 벗고 싶어 했다. 힘이 빠진 손을 들어 꼬물꼬물 셔츠 단추를 풀어내려는 백현에 찬열은 초조해진 마음으로 끌어안은 백현의 어깨를 문질렀다. 백현 조금만 기다려, 응? 여기선 안 돼. 나 다른 사람들이 보는 거 싫어.



급한 마음에 계속해서 엇나가는 손으로 간신히 연 방문이었다. 오세훈 방도 더럽게 좋은 걸 빌렸어. 찬열이 중얼거렸다. 고층일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세훈이 빌린 방은 놀다가 하루 잠만 자고 가기엔 아까운 등급의 방이었다. 그만큼 현관에서 침실까지의 거리가 멀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찬열의 품에 안기듯 기댄 실실 웃으며 찬열을 따라 걸었다.


 

드디어 침실. 방문을 열고 백현을 침대에 눕혔다. 푹신한 침구가 마음에 드는지 백현이 베개에 얼굴을 폭 묻었다. 찬열은 아까부터 다급했던 마음을 담아 서둘러 제 셔츠의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맘 같아서는 당장 찢어버리고 내일 새로 하나 사 입고 싶은데, 백현과 처음 맞춰 입은 같은 옷인데 차마 찢을 수가 없었다.



셔츠와 자켓을 한 번에 벗은 찬열이 옷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미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드러난 흰 가슴팍을 보며 찬열은 음각이 들어간 비싼 벨트를 허겁지겁 풀어냈다. 누워있던 백현이 팔꿈치로 몸을 버티고 반쯤 일어나 웅얼거렸다.



“자구 싶어요….”

“안 돼. 백현 정말 미안한데, 오늘만큼은 저번처럼 못 재워.”

“으응- 아니 코 자는 거 말구요. 나두 얼른 도련님이랑 하구 싶은 건데….”

“뭐?”

“도련니임- 얼른 벗어요. 응?”



백현이 발을 들어 벙찐 찬열의 골반 근처를 문질렀다. 그의 발끝은 벌어진 셔츠 새로 보이는 복근을 타고 내려와 팽팽하게 부푼 앞섬을 톡 건드렸다.



“읏.”



찬열이 짧게 신음했다. 복근이 선명해지도록 숨을 들이키는 반응이 즐거운지 백현의 작은 발을 감싼 검은 양말이 연신 찬열의 앞섬을 건드리고 도망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발끝을 세운 백현이 다시 한 번 발을 가져다댔다. 이번엔 건드리고도 도망치지 않았다. 발바닥을 앞섬에 두자 방금보다 단단하고 뜨거워진 페니스가 느껴졌다. 백현이 진득하게 바지 위를 발로 쓸어 올리며 씨익 웃어보이자 이내 찬열에게 발목이 잡혔다.



“백현.”

“네-”

“난 가끔 질투가 나. 네가 이런 모습을 혹시 누구한테 보여줬던 건 아닐까. 나한테 너는 처음이고 앞으로 평생이잖아. 질투하기 싫은데 자꾸 이런 유치한 마음이 들어.”

“도련님, 저 아무에게나 이러지 않아요.”



술에 취해 느린 말투였지만 백현이 또렷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찬열이 백현의 발목을 잡아 벌리며 그의 다리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위에서 불긋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찬열은 묻고 싶어졌다. 아무나가 아니면 누구에게 그러는 거야. 저의 유치하고 치졸한 마음도 다 이해해주는 백현. 언제나 저를 안심시켜주는 백현이 할 대답이 무언지 알지만, 그래도 소리 내어 묻고 싶었다.



“그럼 누구한테만 이러는데?”



백현이 팔을 들어 찬열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잠시 생긴 침묵에 찬열은 괜히 긴장되어 침을 삼켰다. 너의 대답은 필히 ‘도련님’일 테지만 그래도. 그래도 듣고 싶어.



“찬열이. 찬열이한테만 이래요.”



대답을 들은 찬열은 잠시 숨을 참았다 내쉬었다.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히 그는,



“뭐라고 했어? 응? 다시 말해줘.”

“찬열아, 나는 사랑하는 너한테 이래요.”

 


‘도련님’이 아닌 제 이름을 불러주었다. 백현을 향한 갈증에 찬열이 다급하게 입을 맞췄다. 백현 역시 팔을 벌려 품안 가득 찬열을 끌어안았다. 긴 밤의 시작이었다.







 

 

다음 날 먼저 눈을 뜬 건 백현이었다. 숨 쉬기 조금 답답한 느낌에 몸을 뒤척였더니 아니나 다를까 찬열의 단단한 팔이 허리를 칭칭 감싸고 있었다. 목이 타는 갈증에 백현이 몸을 일으켰다. 보통 백현이 일어난 기척에 깨는 찬열이었지만 오늘은 몸을 뒤척일 뿐 잠에서 깨진 않았다. 이상하게 뻐근한 허리를 짚고 일어난 백현이 넓은 호텔 룸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냉장고는 TV의 옆에 있었다. 시원한 냉수를 마시던 백현은 어두운 TV화면에 비친 나체로 물을 마시는 제 모습에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잠깐만, 생각해보니 나 왜 이렇게 기억이 잘려있지? 도련님과 친하다는 세훈씨와 이야기를 하던 건 기억이 나는데….



백현이 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술에 취하기 전 세훈이 호칭이 아직도 도련님이냐며 타박했고, 자신은 그걸 마음에 담아뒀다. 그가 자신과 찬열의 연애에 일조했다는 얘기를 시작했고 더 듣고 싶으면 술을 한 잔 같이 하자고 했다. 자신이 뉴질랜드에서 귀국할 때 입국했던 공항이 세훈의 가문에서 경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입국 하자마자 찬열에게 알려주었다고. 저가 감사함을 표했고, 세훈은 감사하면 한 잔 더 하라며 와인을 더 따라준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찬열은? 제 도련님은 옆에서 안절부절 못 하며 대신 먹어주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건 내 술이라며 칭얼거렸던 건 제발 꿈이길 바랐다.



서둘러 가운을 찾아 대충 걸친 백현이 쇼파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허리는 왜 아픈 거지? 옷도 다 벗고 있는 게 설마. 생각 한 번 그쪽으로 빠지자 무의식에 묻어두었던 지난밤이 띄엄띄엄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으- 백현, 누구한테만, 읏, 이런다고?’

‘하윽, 내 찬, 아앗!’

‘다시, 응?’

‘찬여, 얼- 아, 흥! 읏!’



조각난 기억의 파편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찬열이 못 일어나는 이유도 제 허리가 뻐근한 것과 연관이 있겠지. 이제 백현은 거의 제 머리를 쥐어뜯을 기세였다. 침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갈라진 찬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백현 일어났어?”

“…네.”

“몸은 괜찮아?”

“음…. 네.”



백현의 허리를 몇 번 쓰다듬은 찬열이 가운만 걸친 채 욕실에 들어갔다 나왔다. 쏴아-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샤워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백현은 멘탈에 지진이 난 것만 같았다. 찬열에게 반말을 하고 이름을 편히 부른 건 찬열이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곤 없었다. 세훈의 말을 듣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조금 마음이 쓰이긴 했지만, 이렇게 바로 술을 먹고 찬열의 이름을 불렀을 줄이야.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게 나쁜 짓은 아니지만 그래도 10년 동안 도련님이란 호칭에 익숙해져 있어서일까. 백현은 왠지 제 반려의 이름을 부르는 게 왠지 잘못된 기분이 들었다.



가볍게 씻고 나온 찬열이 백현의 옆자리에 앉아 물을 들이켰다. 물기를 제대로 닦지 않은 그의 상체가 반짝거렸다. 백현은 그의 목덜미와 가슴팍에 촘촘하게 남겨진 울혈을 보며 속으로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저 자국의 범인은 저일 것이 분명했다.



“백현 어제 일 기억은 나?”

“아, 아니요.”

“흐음, 정말 기억 안 난다고?”



저를 보는 찬열의 시선이 살짝 위로 향한 걸 보니 또 제 혼현이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낑낑대고 있는 모양이었다. 찬열의 머리 위를 보니 붉은 늑대가 희미해져간다. 불공평하지만 백현은 어째서인지 아직까지도 혼현을 감추는 게 어려웠다. 그에 비해 찬열은 자신을 숨기고 나타내는 것에 뛰어났다.



“조금은 기억나요….”

“오세훈이 했던 말은? 그래서 백현이 내 이름 불러줬던 거는?”

“….”

“오세훈 말이 맞아. 우리 이제 상하관계도 아니고, 남들 다 알아볼 수 있게 본딩까지 한 사이잖아. 네가 나를 도련님이라고 계속 부르면 안 될 것 같아. 동등한 반려니까 나를 그냥 찬열이라고 불러줘. 응?”

“아…. 도련님 그게-”

“쓰읍, 이제 도련님이라고 부르면 들은 척도 안할 거야.”

“도련님, 제 입장도 이해해주세요. 응? 전 10년 넘게 도련님이라고 불러왔는데, 갑자기 이름을 부르라하시면….”

“꼭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러라는 건 아니야. 나를 위해서 그냥 내 이름을 불러줘. 내가 태어나서 이름을 불린 적이 처음이 아닌데도 백현이 부르니까 막 심장이 쿵쾅거리는 거 있지. ‘사랑하는 너’라고 할 때, 죽을 것 같았어. 너무 좋아서.”

“도련님, 조금은 시간을 주시면-”



제 이름으로 부르라는 듯 찬열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눈 딱 한 번만 감고 불러볼까. 입술이 달싹였다. 찬열이 눈빛으로 그를 채근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백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자신이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심장이 쿵쾅거리고 좋아죽을 것 같았다는데 무엇이 어렵겠는가. 큼큼, 목을 가다듬은 백현이 조심스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찬열.”

“다시.”

“찬열아….”

“응, 사랑하는 백현.”



제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곧장 대답해오는 찬열 때문에 백현은 고개를 숙였다. 찬열을 위해 자신이 맞춰주는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부끄럽고, 좋았다. 혀와 입술이 부드럽게 굴러가며 내는 그의 이름이 듣기 좋았다. 눈을 마주치고 미소 지은 백현이 아, 하고 다급하게 덧붙였다.



“그렇지만 말은 놓을 수 없어요.”

“아, 왜!”

“이건…. 조금 더 시간을 주세요.”

“안 되는데….”

“응? 찬열. 부탁할게요.”




찬열은 어쩐지 제 약점을 저 스스로 만든 것 같았지만 제 이름을 불러오는 백현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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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까지 한 편 남았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찬백아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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