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길었다.

아니, 사실은 세상이 어둠에 집어삼켜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독히도 긴 어둠이었다.


해가 뜨기는 하는 걸까, 저택에 대피한 누군가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마물인지 사람인지 모를 비명소리.

쿵, 쿵 울리는 지면.

놀란 마음이 진정되자,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는 목소리.

아직 밖에 있던 자들의 절규.

지휘하는 자들의 목소리.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


그 모든 것이 뒤엉키고, 바스라지고, 사라져가는.

길었던 밤이 지나고, 하얗게, 노랗게, 해가 떠올랐다.




 쿵-.

쉬르테의 저택 앞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마물, 마물이야... 마물이 저택을 공격하는 거야..."

"어, 어떡해..."


몇몇 사람들이 놀라서 몸을 피하는 사이,

쉬르테의 가주가 한 마법사를 시켜 밖을 내다보라고 할 때였다.


"문 좀 열지? 지금 여기 애가 하나 있는데."


문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조금 쉰 것 같지만, 여울의 목소리임을 안 쉬르테의 가주가 문을 열라 명했다.


끼이익, 괴로운 소리를 내며 열린 문 틈으로 밝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며,

자신에게 튄 마물들의 체액을 대충 털어낸 여울이 간밤에 구한 아이와 함께 들어섰다.




"그래서, 상황은? 전하는 어디로 피신하셨지?"


피신한 사람들이 충격으로 아직 심신이 미약하니,

되도록이면 정갈한 모습으로 다니는 게 좋을 것 같다-라는,

쉬르테의 가주이자 로운의 형인, 로헨 쉬르테의 말에

여울은 손님용 방에서 씻고, 저택에서 준비해준 의복으로 갈아입은 뒤 집무실에 들어갔다.


"현재 전부 통신이 닿는 상태이며, 다행히도 어제 연락한 시점보다 피해가 커지진 않은 듯 합니다."


"버펫, 아들러, 바이허. 전부?"


"예. 전하 또한 바론의 기사들과 함께 안전지대로 피신하셨다고 합니다."


"안전지대라... 현재 거기가 어디지?"


"아들러의 정령 숲에 위치해있습니다. 안전가옥이 마법진으로 연결되어있고, 정령의 가호를 받기 쉬운 곳이니 안전하실겁니다."


"아들러의 정령 숲..."


로헨 쉬르테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울이 위치를 입으로 되뇌었다.




아들러의 정령숲.

맑은 기운과 마나가 풍만하다고 하여

종종 정령이 보이기도 하고, 마법사들의 주 연구대상이 되며,

가벼운 상처는 그 숲에 들어가기만 해도 치유된다는 속설이 돌고,

헤니즈의 풍요는 정령의 가호를 받기 때문이라고 할 만큼 헤니즈의 주요한 상징이다.


원래라면 더없이 안전한 곳이지만...

여울의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한 사람, 아니, 정령.

펠이 악기에 당한 모습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당장 로운한테 연락해. 정령숲도 전혀 안전하지 않을 거야."


"안전하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근 정령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었어. 그로 인해 마탑의 마법사들이 연구를 하러 갔던 거고.

대외적으로는 평범한 연구지만 실상은 정령의 수가 줄어드는 원인을 찾는 거였지.

그리고 지금의 마물들은 그냥 일반 마물이 아냐. '악기'라는 독성물질에 오염된 것들이지.

내가 아는 바로는, 그건 정령도, 인간도 물들일 수 있다. 지금 정령숲은 예전만큼 안전하진 않을거야."


여울의 발언에 데어기사단의 부단장, 로헨 쉬르테, 쉬르테가의 보좌관 등

집무실에 있던 모든 이가 입을 열고 웅성거렸다.

그러나 이내, 한 명이 여울에게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현재로썬 가장 안전한 곳일 겁니다."


"무슨 뜻이지?"


"현재... 헤니즈뿐만아니라, 다른 대륙에도 전부 마물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기고 퍼지고 있어, 전부 전쟁통이라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취미로 끄적이거나 이용하는 것 (프로필사진 @ agls_b님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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