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치매에 걸렸다.


처음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라고 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이유는 가정통신문의 학부모 한마디란에 엄마가 내 이름을 '지은이가~' 아닌 '지으니가~'로 썼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어머니가 어떻게 네 이름을 이렇게 쓰냐며 날 몰아세우는 가시 돋힌 말에 난 억울해 한마디 못하며 어쩔 줄 몰랐다. 엄마는 호랑이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우리 엄마일까 싶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어서 집에 가는 내내 괜스레 마음이 불편했는데 다행히도 엄마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며 넘겼다.


17살이었다. 학교생활에 적응치 못해 자퇴를 하겠다며 떼를 쓰던 나를 못 이긴 엄마는 결국 학교에 와 대신 내 이름을 적었다. 아주 반듯하게 난 그렇게 대못을 박았다.


19살이었다. 공부를 하고 있는 나를 엄마는 조용히 바라보다 입을 뗐다. 지은이는 글씨가 참 예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엄마 글씨 보고 따라 써서 그런 거야 엄마는 그 날 후로 가족이 모일 때마다 술에 취하면 이 얘기를 하고 이내 술을 못 이겨 고꾸라졌다.


23살이었다. 그때가 카카오톡이 문자의 자리를 대신할 때였고 엄마에게 첫 카톡이 왔다. '지우나' 획이 추가된 별명에선 엄마도 한풀 꺽여보였다.


27살이었다. 엄마는 퇴직을 했다. 두 딸을 키우는 삶에 고단했던 엄마는 당신만의 삶을 사는 것이 꿈이었고 엄마는 눈치를 보며 말했다. 흔쾌히 받아들였고 엄마는 우리에게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그날은 문자가 왔다. 

'고마워 지우나'


32살이었다. 엄마는 약해졌다. 엄마의 보석이 보이지 않는다며 내게 폭언을 하고 아무 말도 없이 멍하게 하루를 보내고 다시 내게 사기꾼이라며 달려들었다.


34살이었다. 엄마는 가끔 나도 모르던 삶으로 돌아간다. 그럼 난 엄마의 언니가, 이모가, 아줌마가 된다. 하루는 메모장에 장 볼 것들을 적는데 엄마가 말했다. '이모는 글씨가 정말 예쁘다' 펜대를 멈추고 고개를 떨궜다.


36살이었다.

혹여 엄마가 길을 잃을까 걱정이 되어 목걸이명찰을 만들고 있었다. 이름 주소 핸드폰 번호를 순서대로 적는데 불현듯 엄마의 번호 뒷자리는 내가 방황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바꾼 내 뒷번호인게 생각이 났다.

그때 당시 난 퉁명스럽게 번호를 왜 따라 하냐며 왜 번호를 바꾸지 않냐 물었고, 엄마는 짧게 말했다.

'이게 좋아'


37살이다. 엄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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