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까지 잔뜩 웅크리고 구석에서 잠을 자는 한밤중, (-)의 핸드폰이 울리며 달갑지 않은 자의 말이 전해져왔다.

“……뭐야….” 겨우 잠든 참에 깨서 기분을 순식간에 잡친 (-)이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충전 중인 핸드폰을 침대 구석으로 밀어버렸다. 그러나 한 번 더 진동이 울렸고, 이 시간에 무례하게 연락할 만한 사람은 그녀의 주위에 단 한 명 뿐이라는 걸 잘 아는 (-)은 손만 쑥 뻗어 핸드폰을 들었다.

[ 내일은 아침 일찍 사진을 보내주십시오. 그자가 근무할 때 탑승하는 차량의 번호판도 부탁합니다. 귀하의 댁에 축복이 깃들길…^^

– 교주]

“…미친 새끼…….” 누구 때문에 잠에서 깼는데 축복은 무슨 축복……. 짜증이 섞인 발길질로 이불을 걷어찬 (-)이 한참 동안 성을 내다가 결국 “네, 알겠습니다.”라는 답장을 보내고 이불로 고치를 만들었다.

살짝 싸늘한 향이 나는 아침.

자기 직전에 온 교주의 문자 때문에 밤새 잠을 설친 (-)이 빌라 밖으로 나섰다. 매번 늦잠을 자다가 낮이 되어서야 느지막이 나와 스토킹을 시작했던 그녀였지만, 오늘은 일찍 출발하여 GTG(이게 대체 어느 나라 이름일까)라는 자를 쫓아야 한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에 간신히 탄 (-)은 꾸벅꾸벅 졸며 한참을 가다가 겨우 깨어났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데다 창밖 풍경을 보니 어제 본 거리가 지나가서 급하게 버스에서 내린 (-)이 교복을 간단히 고쳐 입고 천천히 걸어갔다.

여름이라 아침에도 햇빛이 강하여 땅에 드리운 그림자가 진하고 길었다. 그림자 속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숨던 (-)은 어느새 이상한 종교 학교 앞에 도착했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어떡하지. GTG라는 사람도 정상 같진 않아 보였는데….’

나무 밑 그림자에 서서 학교를 주시하던 (-)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차 한 대가 오는 걸 보고 조심히 따라 들어갔다.

차 안에는 피곤해 보이는 검은 정장의 남자 한 명과 요주의 사내가 타 있었다. 그들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차에서 내렸다. 연거푸 그냥 가겠다는 남자를 억지로 끌고 교사로 들어가는 흰 머리 사내가 살짝 뒤돌아 전처럼 정확히 (-)을 보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또 내가 보였다고…? 교주가 시키는 대로 그림자 속에 잘 숨어있었는데…. 대체 그 교주는 제대로 알려주는 게 뭐야…. 아니, 아니지…. 다른 사람들은 내가 있는지 모르는데 저 남자만 아는 거잖아…….

(-)은 징검다리 건너듯 그림자를 밟고서 고전으로 들어가 차량 곁으로 가까이 갔다. 핸드폰을 들어 빨리 사진만 찍고 가려고 쭈그려 앉았는데, 그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목에 죽도가 들이밀어졌다. 이에 당황한 (-)이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자, 그자는 검을 쓱 치웠다. 교복으로 보이는 하얀 상의에 검정 바지를 입은 남학생은 (-)보다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였고, 약간 어스름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일찍 등교하길 잘했네.”

만약 그가 진심으로 휘둘렀다면 진짜 칼에 맞은 것과 다르지 않은 타격을 입었을 거라는 섬뜩한 확신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넌…… 교복을 보니 중학생인 것 같은데, 혹시 여기서 뭐 하는 걸까?” 그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아….” (-)이 주춤주춤 물러서며 중얼거렸다. “저, 전… 그…….”

“으음, 외부인이 길을 잃어서 잘못 들어온 것 같은데 겁 먹을 건 없어~ 난 또…. 학교에 수상한 사람이 들어온 줄 알고 위협해버렸네. 미안.” 그가 살짝 초췌한 얼굴로 웃어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혹시 이 학교에 지인이 다니는 걸까?”

“그, 그… G, GTG….” 일단 살긴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그의 닉네임을 질러버린 (-)이 그의 손을 잡고 비틀비틀 일어섰다.

“…G… TG…?” 남학생이 불신이 가득한 새카만 눈으로 가만히 (-)을 보다가 이내 소리 내 웃음을 터뜨리고 작게 속삭였다. “아아~ 네가 전에 고죠 선생님이 말한 애구나? 어쩐지~ 넘어지기 전까지 잘 안 보이더라니. 선생님께 너에 대한 간단한 얘기는 들었어.”

고죠가 누군데요. GTG의 진짜 이름?

“으에…? 아, 네…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 맞을 거예요….” (-)이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남학생의 얼굴에 상냥하고 따스한 기운과 함께 어딘가 모르게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깃들어 있어서 호감이 가는 얼굴이어도 똑바로 마주 볼 수 없었다.

“……그럼… 우리 친한 척 하면 안 되겠는데? 들키면 안되니까…….” 그가 주위를 살짝 둘러보고 다시 죽도를 들었다. “내가 지금부터 위협하거나 사납게 굴어도 겁먹지 마.”

“네에…?!! 그——!”

말을 채 잇기도 전에 남학생이 온화한 표정을 순식간에 거두더니, 거칠게 죽도로 바닥을 내리치고 차갑고 크게 말했다.

“외부인은 그만 나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가는 문은 저기로 가면 있습니다.”

“아아… 네…!” (-)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달려갔다. 마치 괴담에서 ‘이 의식 이후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라는 문구를 읽은 사람처럼 건물 그림자 속에 숨어가며 문까지 달려간 (-)이 문에 다다랐을 때 뒤를 돌아보니, 죽도를 든 채로 차량 옆에 비스듬히 서 있는 남학생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가 무어라 말하는 걸까. 그의 실루엣이 약하게 움직였고, (-)은 다시 달려 고전 밖으로 나갔다.

일단 근처 카페에 온 (-)은 교주에게 찍은 사진을 문자로 보내고 떨리는 손으로 컵을 들고 라떼를 마셨다. 손의 떨림을 따라 얼음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귓속에 스미는 감각….

“….” 일단 사진을 더 찍어야 해서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허나, 아까 만난 남학생의 경우처럼 들키면 그땐 어찌해야 하는가.

고민만이 깊어가는데, 교주에게 답장이 왔다.

[ 잘했습니다, 신도님. 그의 사진이 2장 정도 더 필요합니다. 그의 학생들이 훈련하는 모습도 찍혀있으면 좋겠습니다. 들키면, 내가 준 부적을 그자에게 주면 됩니다. 그럼 해결되니 부적을 준 날의 다음 날부터 다시 그의 사진을 찍으십시오.

–교주]

“…이씨… 방금 사진도 엄청 난리 쳐서 겨우 건진건데 뭘 더 추가하고 자빠졌네…. 이럴 거면 자기가 나서서 하지…. 나보다 더 잘난 놈이 왜…….” (-)이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며 그에게 문자를 보낸 후 세라복 상의에 손가락을 걸어 슬쩍 안을 보았다. 안에는 새하얀 한지로 감싼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는 그를 스토킹할 때 입는 세라복 안에 항상 부적을 기름먹은 한지에 싸서 넣고 다녔다. 오늘도 일찍 나오면서 잊지 않고 넣어왔다.

(-)은 세라복 안에 손을 살짝 넣어 부적을 꺼내 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카페에서 나가려는데, 누군가 카페로 들어와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의 손을 뿌리치는데, 눈앞에 있는 것은 백발의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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