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au; 대학 조교 송태원 X 학부생 성현제

사랑할 자유

; 미친사람들의 연애


W. 허버허버






“안녕.”

 

가을비가 내렸다. 계절은 아직 여름이자 가을의 초입이었다. 사계절중 가장 이상한 날씨. 춥고 더운 날들이 이어지는, 예측이 불가능한 그런 시간의 중간. 성현제는 중앙 출입구 앞 계단에 앉아 희뿌연 연기를 내뱉었다. 노을이 져도 한참 전에 졌을 시간. 남아 있는 사람이라곤 대학원생과 야작하는 학생 몇만이 남아 있을 캠퍼스. 그리고 그 중 낡은 전등 몇 개만이 켜진 건물 앞, 성현제는 검은 슬랙스에 하얀 와이셔츠, 그것도 윗단추가 반쯤 떨어진 와이셔츠를 입은 채 앉아 송태원을 향해 인사를 건냈다.

 

“오늘은 퇴근이 늦네, 조교님.”

“...성현제씨.”

 

성현제의 얼굴이 희게 질려있었다. 송태원은 낮은 숨을 흘렸다. 그리곤 입고 있던 도톰한 연갈색 가디건을 벗어 그의 어깨 위에 덮었다. 성현제의 입술이 느릿하게 휘었다. 휘어진 입가 옆에 붉은 립스틱 자국이 선명했다. 그 자국을 따라가면 목덜미와 어깨선, 와이셔츠 깃까지 이어졌다. 성현제가 들고 있던 담배를 계단에 비벼껐다. 송태원이 한마디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벌써부터 두통이 밀려오는 감각. 성현제가 자리에 앉아 송태원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오늘 내가 누구랑 있었는지 안 궁금해?”

“내가 궁금해해야 합니까?”

“궁금해해야지. 당신 애인인데.”

 

여상하게 내뱉는 말의 형태는 어린아이와도 닮아있었다. 해맑은 악의. 순수함과 뒤섞인 강한 원초적 욕망. 그것을 억제할 줄 모르는 이들. 성현제의 시선이 송태원의 손에 닿았다. 그의 왼쪽 약지. 오래된 것을 잃어버린 듯 다른 피부보다 색이 옅은 구간. 얇고, 동그란, 마치 오래된 커플링이 있었을 것만 같은 곳. 시선을 인식한 송태원의 입매가 굳었다. 가방을 쥐고 있던 송태원의 손이 하얗게 질렸다. 성현제가 예쁘게 눈웃음을 지었다.

 

“차였나봐?”

“찼습니다.”

“왜?”

“당신과 상관이 있습니까?”

 

성현제가 그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그의 왼손을 끌어와 손등 위에 입술을 맞췄다. 송태원의 얼굴이 끝끝내 일그러졌다. 성현제가 기꺼운 듯 힘이 들어간 그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제 손가락을 밀어넣어 깍지를 꼈다.

 

“아니, 이젠 없지.”

 

이제 당신 목줄을 놨잖아. 나긋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끔찍하도록 달콤했다. 송태원이 분노로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숨을 들이켰다. 성현제가 그의 앞에 섰다. 립스틱이 번진 입술. 낯익은 색. 성현제가 송태원의 손을 잡은 채 느릿하게 말을 내뱉었다.

 

“위로가 필요해 보이는 얼굴인데.”

 

송태원이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듯 빼냈다. 성현제의 시선은 여전히 송태원에게 닿아있었다. 송태원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피곤함과 짜증이 여력히 묻어나는 얼굴.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성현제를 살피고 있었다. 송태원이 반쯤 갈라진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나를, 좋아한다고요.”

“응. 지금도 좋아하고 있어.”

“당신은 좋아하는 사람을 상처주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합니까?”

 

송태원의 말에 성현제의 밀빛 눈동자가 사랑스럽게 깜빡거렸다. 한품은 큰 카디건을 입은 성현제는 옷에 파묻혀 있는 모양새였다. 성현제의 손이 다시금 그의 팔뚝에 닿았다. 그가 까치발을 들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난 당신이 필요해.”

“그렇다면 일반적인 구애를 하십시오.”

“당신도 날 좋아하잖아.”

“정신병원이라도 가보는 게 어떻습니까.”

“매번 거절도 못하면서.”

 

성현제가 헤프게 웃었다. 송태원의 허리에 그의 팔이 감기고, 턱선 끝에 말랑한 입술이 닿았다. 평소보다 조금 부운 입술. 성현제는 제게 입을 맞추고도 ‘립스틱 묻었어.’ 따위의 말을 하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제 연인을 빼앗아 헤어지게 만들어 놓고, 그 흔적을 묻혀와 제게 되돌려주면서 하는 말이 저따위였다. 성현제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었다.

 

“송태원.”

“...”

“키스해줘.”

 

성현제가 고개를 들었다. 빽빽한 속눈썹이 나비의 날개짓을 따라하듯 파르르 떨렸다. 그 속에 감춰진 꿀과 같은 눈동자. 성헌제의 손바닥이 송태원의 척추를 쓸고, 날개뼈를 덧그리듯 쓸어올렸다. 송태원은 인상을 썼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8년간 사귄 제 애인의 립스틱이 남은 입술 위에 키스했다.

 

송태원 자신도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진 않았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애인을 꼬셔 헤어지게 만든 남자에게 키스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성현제의 샛노란 눈동자가 나긋하게 휘었다. 그 웃음이 빌어먹게 예뻤다.

 

송태원의 혀가 난폭하게 움직였다. 성현제의 작은 입안은 송태원의 두툼한 혀 하나에 가득 차버린 듯 좁았다. 그의 혀를 세게 빨고, 물고, 입천장 하나하나를 더듬었다. 목젖까지 혀를 밀어넣어 쑤시길 반복했다. 호흡을 빼앗기고, 목젖이 찔려 콜록거리면서도 성현제는 송태원에게 매달렸다. 그의 목덜미에 팔을 감고,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어딘가 취한 사람같았다. 마약을 한 사람처럼, 몽롱한 얼굴을 하고 송태원에게 제 몸을 붙여왔다. 차갑게 식은 몸. 달콤하고 차가운 향이 콧속을 파고들었다. 송태원은 성현제를 끝에 끝까지 밀어붙였고, 성현제는 숨이 부족해 새빨갛게 얼굴이 달아올라서 까지 그 끝을 내어주길 반복했다.

 

“흐읍, 아…, 콜록, 흐…”

 

송태원이 그의 아랫입술을 빨면, 성현제가 헐떡이며 숨을 들이켰다. 한번의 호흡. 그 짧은 숨이 끝나면 송태원의 입술이 다시금 그를 덮쳤다. 원망과 욕망이 점칠된 키스. 사랑스럽고 원망스러운 것을 대하듯 함부로 깨물고 쑤시다가도, 깨지는 것을 대하듯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그의 뺨 밑을 핥고 혀를 빨았다. 성현제의 눈꼬리 끝에 눈물이 고였다. 눈매가 발갛게 잘 익은 과실처럼 색을 입었다. 꿀이 넘쳐 흐르듯 눈물이 차오르면, 송태원은 문득 그게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눈매가 다시 일그러졌다. 성현제가 학과에서 예쁜 미친놈이라 불릴 때 조심했었어야 했다. 그 다음 미친놈이 송태원 자신이 될 줄은 몰랐으니까.

 

“흐…,”

 

성현제가 눈을 꽉 감았다. 더 못버티겠다는 듯 그의 등을 감싼 팔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눈동자에서 뚝뚝 물덩이가 떨어졌다. 송태원은 미친놈처럼 그 눈물을 핥아먹었다. 캠퍼스 안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맨정신인 상태에서. 성현제가 입술이 떨어지자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송태원의 입맞춤을 기억하듯 눈을 뜬 채 그를 응시하면서.

 

“태원아…,”

“반말 하지마.”

“사랑해.”

 

성현제의 얼굴은 반쯤 풀려있었다. 다리는 이미 다 풀려버려 송태원의 몸을 잡고 버티는 중이었다. 송태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짝-, 오른쪽 뺨이 화끈거렸다. 입 안을 잘못 씹어 비린 피맛이 났다. 시야가 뒤바뀌고,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송태원이 으르렁거리듯 그에게 경고했다.

 

“그냥 휘둘리는 꼴이 재밌다고 해.”

 

참 같잖고 사랑스러운 인간. 성현제가 낮게 웃었다. 그렇게나 욕망에 절은 눈으로 쳐다본 건 송태원이었다. 눈알을 더듬고, 입술을 응시하고, 온몸을 매만지듯 노골적으로 굴던 송태원. 저 딴에는 숨긴다고 숨긴게 그 꼴인건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건지…. 이러나 저러나 우습긴 매한가지인 인간. 그리고 그 점이 퍽 사랑스러운 송태원. 성현제가 환하게 웃었다. 송태원의 시선이 홀린 듯 그 웃음을 덧그렸다. 그 시선이 짙어질수록 성현제의 미소도 짙어졌다. 만약 그의 시선이 유형(有形)의 무언가로 표현되면 성현제 자신은 틀림없이 질식해 죽을 것이다. 그정도로 짙고, 노골적이고, 거대한 욕망을 송태원 홀로 인식하지 못했다.

 

“송태원, 너는 가련한 피해자로 남아.”

“성현제.”

“나만 미친놈이면 되는 일이지.”

 

성현제가 그의 뺨을 감싸 잡았다. 새까만 눈동자가 충격을 받은 듯 멈칫했으나 이내 성현제의 눈동자에 사로잡혔다.

 

“날 사랑하잖아.”

 

성현제의 입술이 벌어졌다. 송태원의 손에 들려 있던 가방이 떨어졌다. 성현제의 허리가 송태원의 팔에 감기고, 입술이 부딪혔다. 두 번째 키스에선 비린 피맛이 났다. 짧게 떨어진 입술이 아쉬워 성현제가 송태원을 바라보면, 그가 헛소리를 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

 

송태원은 간절히 바랐다. 성현제가 사랑스럽게 웃음지었다.  그리고 나직히 말을 내뱉었다. 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한 음성이었다.

 

“알아. 나도 사랑해.”

 

낡은 전구 아래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변했다. 송태원의 그림자가 성현제를 잡아먹었다. 웅크린 짐승처럼 거대한 송태원의 목덜미 뒤로 감싸진 하얀 팔이 전구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질척이는 물소리가 길게 이어지고, 헐떡이는 숨 소리가 울렸다. 성현제의 살갗이 차갑고, 뜨겁고, 부드러웠다.  태원아, 부르는 나직한 음성이 다 이어지지 못하고 먹혀들어갔다. 


가을과 여름의 중간에 있는 짧은 계절의 틈. 그 곳에 둘은 서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이어지는 날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송태원의 뺨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비냄새보다 달콤하고 쌉쌀한 향이 폐부를 채웠다. 성현제에게서 달콤한 향수냄새와 함께 쌉쌀하고 매쾌한 담배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쾌하지 않다는게 이상해 그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폐가 터질정도로 그의 향을 들이마쉬다 보면 불쾌해질까. 질려서 다신 그를 옆에 두고싶지 않아질까. 성현제는 여전히 그의 등을 세게 끌어안고 있었다. 

송태원은 그게 마치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보일까봐 두려웠다. 그럼에도 그를 안은 팔을 놓을 수 없다는 것에 절망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것이 분명했다. 


 가련하게 미친 송태원.

빌어먹게 예쁜 성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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