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보내는 호그와트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학생들이 많이 남지도 않은데다가 거의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으니 식사시간을 빼고는 해리는 사람과 마주칠 일도 거의 없었다. 본관 로비 한가운데에 세워져 한껏 장식되어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조차도 쓸쓸해 보일 지경이었다. 여름과 겨울이라는 계절의 차이도 있었지만 8월의 고요함이 기다리는 설렘이었다면 12월의 고요함은 썰물이 빠져나간 백사장 같았다. 아직 학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게 무슨 감상적인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해리는 부스스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해리는 덤블도어와 맥고나걸로부터 작은 선물과 간단한 카드를 받았다. 덤블도어가 보낸 분홍색의 새틴 리본이 달린 안경줄은 더 훌륭한 마법사가 되어 미치지 않는 이상 쓰게 될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았지만 모처럼 피식 웃은 해리는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두었다.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자 방학 중에도 공부에 시달리고 있는 6, 7학년과는 달리 생기가 넘치는 그리핀도르 4학년생들이 해리를 알아보고 활짝 웃으며 인사하고는 자기들끼리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왁자하게 웃어댔다. ‘좋을 때다.’ 하고 나이든 마법사처럼 생각하던 해리의 눈에 슬리데린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책을 읽으며 밥을 먹는 스네이프가 보였다. 그는 눈을 책에 고정하고도 용케 흘리거나 묻히거나 하지 않고 오물오물 먹고 있었다. 스네이프도 남는다는 것은 신청서를 받을 때 봐서 알고 있었지만 아직 5학년이면서도 6, 7학년 버금가게 도서관에 콕 박혀있는지 스네이프는 식사시간에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안녕.”

  어쩐지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가까이 가서 인사를 했더니 스네이프가 눈만 약간 들었다. 방해받은 게 불쾌한 듯 찡그렸던 미간이 해리임을 알아보고는 조금 펴졌다. 스네이프가 해리에게 인사를 하자 동석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는지 스네이프 옆자리에 1인분 식사가 나타났다.

  아는 척을 할 생각이긴 했지만 식사까지 같은 자리에서 하려던 것은 아니어서 해리는 잠깐 당황했다. 잠시 고민하다 옆자리에 앉았지만 해리는 몇 분 지나지도 않아서 후회했는데, 식탁에 흐르는 정적이 무척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이었다. 스네이프가 질문을 하러 자주 찾아오곤 했기 때문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이런 사적인 자리에서 같이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결국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해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밥 먹을 때 잘 안보이던데 계속 도서관에 있었니?”
  “네.”
  “공부하느라?”
  “네.”

  말하나마나한 뻔한 질문에 단답형으로 끝나는 대답으로는 그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지만, 도무지 마땅한 화제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시 어색하게 침묵이 계속되던 중 해리에게 스네이프의 옆자리에 놓여 있는 꾸러미가 보였다. 갈색의 포장지가 풀어헤쳐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거나 그런 모양이다.

  딱히 남의 소지품을 훔쳐보는 취미는 없었지만 포장지에 밋밋한 청회색 표지가 절반쯤 가려져 있어도 해리는 그 책의 제목이 「Advanced Potion Making」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해리가 갑자기 웃자 스네이프가 해리의 시선을 따라 옆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해리가 보고 웃을 만한 것을 딱히 찾을 수 없었기에 스네이프는 의아한 듯 다시 해리를 쳐다보았다. 해리는 흠흠 하며 괜히 목소리를 고르고는 물었다

  “어 저 책, 선물로 받은 거니?”
  “네, 슬러그혼 교수님이.”

  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Advanced Potion Making」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밑으로도 책이 몇 권 더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슬러그혼이 스네이프를 아끼긴 아끼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우울해하느라 미처 자기가 먼저 선물을 보내거나 할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 떠올라서 해리는 내심 미안해졌다. 오늘 아침에도 덤블도어나 맥고나걸에게 받기만 했고, 스네이프도 이렇게 크리스마스 당일에 얼굴까지 마주쳤으니 뭐 간단한 거 하나라도 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네이프는 별로 기대하지도 않은 듯 뭐 서운해 하거나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지만, 해리는 방으로 올라가면 몇 명에게 카드와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 스네이프가 다 먹었는지 먼저 스푼을 내려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는 스네이프에게 해리는 문득 치솟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슬쩍 물었다.

  “혹시 책에 이름은 썼어?”
  “아뇨, 아직. 좀 전에 받았기 때문에.”
  “그래.”

  왜 그런 걸 묻냐는 듯 스네이프가 해리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해리는 모르는 척 스푼을 놀렸다. 그 때 날갯짓 소리와 함께 부엉이 몇 마리가 연회장 안으로 날아들었다. 집에서 느지막이 보낸 선물이라도 가지고 왔는지 부엉이들은 드문드문 앉아있는 학생들 앞으로 털썩 털썩 꾸러미를 떨어뜨렸다. 스네이프 앞으로도 부엉이 한마리가 날아왔다. 스네이프 앞에 떨어진 것은 선물이 아니라 예언자 일보였다.

  스네이프는 조금 미간을 찌푸린 채 테이블 가운데에 떨어진 예언자 일보를 끌어당겼다. 활짝 펼쳐진 1면에 크게 박혀있는 사진의 주인공은 펜릴 그레이백이었다. 올해 들어 벌써 몇 번이나 펜릴 그레이백을 위시한 늑대인간 무리가 마법사와 머글 마을을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마법부가 변변한 대응을 하기는커녕 뒷수습에만 급급하고 있는 것에 대한 특집 기사가 1면 헤드라인으로 실려 있었다. 늑대인간을 모두 특별 보호감호 대상으로 지정해 보다 강경하게 ‘관리’하자고 쓰여 있는 굵은 글씨를 보면서 해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늑대인간이란…….”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스네이프의 목소리에는 진득한 혐오감이 묻어있었다. 그 목소리에 해리는 왠지 안타까워졌다.

  해리 역시 펜릴 그레이백과 그를 따라 머글이건 마법사건 마구 공격하는 늑대인간 무리를 혐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늑대인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묶이는 모두를 싫어하는 것은 해리에게는 무리였다. 게다가 해리는 머지않아 스네이프가 리무스의 정체를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게 언제가 될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길어도 1∼2년 내로 있을 일이었다. 그 일을 막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혹시 바꿀 수 없더라도 가능하면 서로 상처를 덜 받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해리는 스네이프와 리무스가 같이 찾아오는 것을 더욱 반겼다. 물론 그렇게 해서 사이가 좋아졌는지는 미지수였다.

  적어도 해리는 리무스와 스네이프가 자기 연구실이 아니면 심지어 교실에서도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친하지 않다와 싫어한다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찌푸린 얼굴로 기사를 읽는 스네이프를 흘끔 보고 해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언자 일보는 항상 자극적이네. 늑대인간이라고 해도 언제나 그렇지는 않은데 말이야.”

  해리가 ‘언제나’에 강조를 두는 것을 알아들었는지 스네이프는 천천히 해리를 돌아보았다. 그 표정이 꼭 자신이 마법약 수업시간에 바보 같은 짓을 했을 때 자기 앞에서 팔짱을 끼고 지그시 내려다보던 때 같아서 해리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예언자 일보의 기사가 자극적이고 저질적인 면이 있다는 점에서는 동감하지만.”
  천천히 운을 뗀 스네이프는 해리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교수님은 늑대인간에 묘하게 호의적이신 것 같군요. 알고 있는 늑대인간이라도 있으신지?”
  “글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너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긴 하지.”
  “일반적인 시각을 부정적인 선입견이라고 하신다면, 교수님 말씀은 무해한 늑대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그러나 스네이프는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단정적인 투로 덧붙였다.

  “그건 불가능한 가설이에요.”

  스네이프의 목소리 자체는 조용했지만 그만큼 단호하기도 했다.

  “만월의 그들이 매우 흉포하고 공격적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니까요.”
  “말했듯이 그건 만월의 밤에만 한정된 일이야. 말하자면 저주에 걸려 이성을 잃는 셈이지. 예언자일보의 주장은 한 달 중 단 하루 때문에 나머지 29일의 인간성을 모조리 부정하는 거야.”

  해리의 말을 들으며 스네이프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스네이프가 매우 자주 듣던 변명과 유사했다. 스피너즈 엔드에서 보냈던 그의 어린 시절은 폭력과 가혹행위로 얼룩져있었다. 이웃들은 스네이프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외면하며 무책임하게 그의 아버지를 변호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무관심을 정당화했다.

  “술 취한 사람에게 많이 듣던 변명이네요. 술에 의해 이성을 잃었기 때문에 저지른 실수라고. 한순간의 일이라 해도 그 결과가 해악이라면,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거나 무의식중이었다는 건 결코 정당화하는 사유가 되지 못해요.”
  “음주와는 달리 늑대인간이 되는 것은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잖아. 그들 역시 피해자인데.”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린다는 뜻이군요. 더욱 혐오스럽네요.”

  스네이프의 말에서는 혐오와 더불어 은은한 분노마저 느껴졌다. 해리는 문득 스네이프가 강경하게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스네이프는 지금 피해자의 관점에서 생각한다기보다는 그 자신이 피해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해리는 리무스와 스네이프를 친해지게 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을 반성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았다.

  “왜 교수님과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해리가 입을 다물자 스네이프도 썩 내키지 않는 화제였던 듯 그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 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섬주섬 책을 챙겨 스네이프가 돌아간 뒤에도 해리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스프 그릇이 조심스럽게 사라지고 후식이 나타날 때까지도 멍하니 있다가 해리는 문득 스네이프가 예언자일보를 두고 간 것을 알았다. 해리는 불쾌한 기분으로 사진속의 그레이백을 노려보았다. 해리와 눈이 마주치자 그레이백은 흉흉하게 웃었다. 눈 안에서 이글거리는 광기에 해리는 문득 등줄기를 훑는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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